고려 왕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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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선종의 왕후 선희왕태후ㅣ宣禧王太后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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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 1062년 11월 26일 | ||||
| 고려 개경 만월대 수령궁 | |||||
| 사망 | 1120년 1월 31일 | ||||
| 고려 개경 만월대 만령전 | |||||
| 능묘 | 인릉 | ||||
| 재위기간 | 고려 왕후 | ||||
| 1086년 12월 20일 ~ 1098년 1월 18 | |||||
| 고려 왕태후 | |||||
| 1098년 1월 18일 ~ 1120년 1월 31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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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고려 선종의 왕후. 1071년 11월 26일 본궐 수령궁에서 문종과 인경현비의 차녀로 태어났다. 남편 선종과는 이복남매관계이며 인평왕후의 장녀인 보령공주의 여동생이다.
정식 시호는 화순공의선희왕태후(和順恭懿宣禧王太后)이며 줄여서 선희왕후라고도 부른다.
생애
문종의 공주
문종대왕의 늦둥이 딸로 태어나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 예시로 전각을 하사받고 연총전이라는 전호를 받았는데, 연총은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뜻이다.
또한 이복언니 보령공주와 가까이 지냈으며 슬하에 공주가 없던 인예왕후가 딸처럼 여기며 많이 예뻐했다고 한다.
선종의 왕후
1086년 12월 20일 인예왕후의 장남인 선종과 혼례를 치뤄 15살의 나이로 고려의 왕후가 되었다.
왕후였으나 15살은 턱없이 어린 나이였기에 초기에는 태후였던 인예왕후가 대부분의 내명부 업무들을 처리했었다.
요의 침공과 유산
첫 왕자를 귀태했을 당시 요나라의 기습 침공으로 순식간에 개경에 함락당하자 왕실은 조정 및 개경 백성들과 강화행궁으로 피난을 가기 위해 벽란도로 가고있었다.
하지만 요나라의 철기군이 벽란도를 기습 침공하여 백성들이 혼란스럽게 도망치는 바람에 가마가 심하게 흔들리고 결국 가마 밑으로 떨어졌다. 고려사에 따르면 선희왕후는 이때 유산한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피난민들이 뿔뿔이 흩어져 죽을위기에 처했을때 이복언니 보령공주가 구해줘 목숨을 부지했으나 갈곳이 없어 결국 다시 본궐로 가 숨어있었다. 12월의 추운 눈보라속 철기군을 피해서 선희왕후는 뱃속 아이를 감싸안고 보령공주와 함께 무너진 만월대에 숨어있었다.
전쟁이 끝난 후 몸을 회복하여 1남 1녀를 낳는데 헌종과 공효왕후다. 두 남매를 낳은 이후 평화롭게 왕후 시절을 보냈다.
말년
선종이 승하하고 만령전 왕태후가 되었다. 헌종이 병약하여 6일만에 선위를 하고 태상왕이 되자 자신의 딸 연화전주도 태후가 되며 고려 왕실은 살아있는 태후가 세명이나 한 궁궐에서 거주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만다.
내명부와 조정의 갈등이 극으로 치닫던 시기, 술에 취한 형부상서 천수현이 선희왕후의 지밀 상궁을 폭행해 크게 격노하였다.
이후 선희왕후는 1110년 1월 31일 폐혈증을 앓다가 39세의 나이로 본궐 만령전에서 훙서하였다.
여담
어머니 인경현비를 닮아 그 외모가 매우 출중했다고 전해진다.
감히 일국의 국모의 용모를 함부로 후비전에 기록할 수는 없으나, 선희왕후는 외가의 혈통을 이어 그 미색이 매우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정사에는 다만 “용모가 아름다웠다.”는 한 줄만이 남아 있으나, 야사에서는 폐혈증이 깊어지기 전까지 맑은 눈과 짙은 속눈썹, 붉은 입술을 지녀 당시 고려 제일의 미인으로 불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딸인 공효왕후와 손녀인 보화공주 또한 그 외모가 매우 아름다웠다고 전해지니 외가에서 대대로 내려지는 유전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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