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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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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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태조의 제2왕후
신명순성왕태후ㅣ神明順成王太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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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혜종조 왕태비
충주태비 유씨ㅣ忠州太妃 劉氏
고려 정종·광종조 왕태후
왕태후 유씨ㅣ王太后 劉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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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900년 1월 31일
신라 중원경 유긍달의 사저
사망 951년 3월 3일
고려 황도 개주 만월대
재위기간 고려 왕후ㅣ충주원부인
918년 11월 3일 ~ 943년 7월 9일
고려 왕태비
943년 7월 9일 ~ 945년 12월 28일
고려 왕태후
945년 12월 28일 ~ 951년 3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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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충주 유씨
부모 유긍달
부군 태조
슬하 장남 정종
차남 광종
장녀 흥방궁주
차녀 낙랑공주
종교 불교
작호 충주원부인(忠州院夫人)
→ 왕태비(王太妃)
→ 왕태후(王太后)
궁호 충주원(忠州院) → 충주궁(忠州宮)
시호 신명순성왕태후(神明順成王太后)
별호 충주태비(忠州太妃)

개요

고려 태조의 제2왕후. 충주 호족 출신 재상 유긍달의 딸로 정종과 광종의 어머니이며 경종의 할머니이다.

생애

태조와 혼인하다.

신명왕후는 유금필의 딸로, 충주유씨 호족 세력을 기반으로 태조와 혼인하여 제2왕후에 봉해졌다. 슬하에는 정종과 광종, 증통국사, 흥방궁주, 낙랑공주 등 3남 2녀를 두었다.

《고려사》 후비전에 따르면 신명왕후는 투기심이 몹시 강한 인물로 전해진다. 그녀는 자신이 제1왕후가 아닌 제2왕후라는 이유로 내명부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는 현실에 깊은 불만을 품고 있었다. 더욱이 제1왕후였던 장화왕후는 외척의 세력이 미약하였고, 약재상을 지낸 신하의 딸에 불과하였음에도 태조와 가장 먼저 혼인하여 정윤 왕무를 낳고 총애까지 받았기에, 신명왕후는 마음 깊은 곳에서 강한 질투를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 정종을 정윤의 자리에 올리고 훗날 태후가 되기 위해 여러 극단적인 행위를 벌였다. '태조 몰래 후궁과 부인 스물세 명을 광에 가두고 충성 맹세 서약에 지장을 찍도록 강요하였으며, 이후에도 신정왕후와 신성왕후를 굴복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신정왕후는 황주 호족의 후원을 받고 있었고, 신성왕후는 신라 왕실의 후예였기에 감히 함부로 손을 대지는 못하였다.

또한 어느 날 장화왕후와 함께 다과를 즐기던 자리에서 일부러 찻잔을 깨뜨린 뒤, 그 파편으로 어린 광종의 얼굴에 상처를 내고는 이를 장화왕후의 소행이라 꾸며냈다. 이에 충주 유씨를 비롯한 여러 호족 세력은 장화왕후의 폐출을 강하게 요구하였다.

결국 태조는 장화왕후를 궁 밖으로 내보냈으나, 끝내 왕후의 지위만큼은 박탈하지 않았다.[1] 이후에도 신명왕후는 자신의 아들을 정윤으로 세우기 위해 수많은 음모에 가담하였으나, 태조는 왕무에게 자신의 자룡포를 하사하며 왕위 계승자로 삼겠다는 뜻을 더욱 굳건히 하였다.

두 군주의 어머니

신명왕후는 훗날 두 명의 군주를 낳았으니, 바로 정종과 광종이었다. 이로 인해 충주유씨 세력은 더욱 막강해졌고, 왕실과 조정 내에서 그 영향력 또한 절정에 이르렀다.

정종이 즉위하자 그녀는 왕태후의 자리에 올랐으며, 이후 광종마저 왕위에 오르면서 왕실 최고 어른으로서 커다란 권위를 누렸다. 생전 내명부와 외척 세력을 장악하며 강한 존재감을 드러냈던 그녀는 사후 ‘신명순성왕태후(神明順成王太后)’라는 시호를 받았고, 후대에도 고려 왕실의 대표적인 태후 가운데 한 사람으로 기록되었다.


비참한 말년과 지위 회복

장화왕후의 아들 혜종이 즉위하자, 유씨는 곧 왕태비의 자리로 물러나 충주로 내쳐졌으며 충주궁에 유폐되었다. 이후 조정에서는 충주 호족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견제가 시작되었고, 한때 막강하였던 충주유씨의 권세 또한 급속히 쇠퇴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광종이 즉위한 뒤에야 비로소 회복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다. 성종은 신정왕후를 대왕태후로 존봉하면서, 신명순성왕태후라는 시호 가운데 ‘순성(順成)’과 ‘태후(太后)’의 존호를 거두어들이고 그녀를 ‘신명왕후’로 강등시켰다.

이후 신성왕후의 후손인 현종이 즉위하자 상황은 더욱 가혹해졌다. 현종은 생전 그녀가 벌였던 여러 악행과 왕실 내 암투를 문제 삼아 지위를 후궁 수준으로 격하시켰고, 끝내 능까지 파헤쳐지는 치욕을 겪게 하였고 11대 문종대가 되서야 겨우 지위가 회복되었다. 이로써 신명왕후는 살아생전 누렸던 권세와 영광과는 반대로, 사후에는 자신이 저질렀던 죄업에 대한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가족관계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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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 이후에 비슷한 방식으로 신정왕후를 황주로 내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