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편년통록(編年通錄)
《편녕통록》은 고려 초의 문학가 천유역을 필두로 그의 손자 천독고, 후손 천제공, 그리고 후손 천무영에 이르기까지 대대로 이어져 저술되고 있는 민간 역사기록서이다.
왕실과 조정의 공식 기록에는 담기기 어려운 인물들의 일화와 사건, 세간에 전해지는 이야기 등을 폭넓게 기록하고 있어 흔히 야사(野史)로도 불린다. 고려 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러 세대의 기록이 누적되어 있으며, 각 시대의 필자가 자신의 견문과 전승을 덧붙여 완성해 나가는 것이 특징이다.
역사
편년통록이 처음 저술되기 시작한 것은 940년이다. 영양 천씨의 시조인 천유역(千有易)이 지경서원을 열고 《유정언집》을 저술하던 때에 함께 편찬하기 시작한 것이 그 시초라 전한다.
당시에는 한림원이나 중추원에 소속된 신료가 아니고서는 감히 왕조의 역사를 논하거나 기록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으므로, 민간인이 왕조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자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에 조정에서는 이를 두고 신분을 벗어난 월권이라 하여 강하게 규탄하였다.
그러나 당시 임금은 천유역의 행위가 조정의 명목을 크게 해치는 일이 아니라고 판단하였으며, 마침내 그 저술을 허락하였다. 이로써 편년통록은 본격적인 편찬에 들어가게 되었다.
편년통록의 가장 큰 특징은 한 시대의 필자 한 사람이 전부 저술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거치며 수십 명에 이르는 필자들이 각자의 견문과 전승, 경험을 덧붙여 완성해 나간다는 점에 있다. 따라서 필자마다 기록을 남긴 시기와 관심을 둔 대상 또한 크게 달랐다.
초대 필자인 천유역은 조정의 결정이 내려진 뒤 그것이 백성들에게 어떠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는지를 주로 기록하였다. 특히 조정의 정책과 명령이 민간에 전해지는 과정과 그에 따른 백성들의 여론을 상세히 남겼다.
그의 손자인 천독고는 나라가 어지럽고 정국이 혼란하던 시기의 기록을 맡았다. 당시의 혼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공식 기록에 미처 담기지 못한 조정 내부의 사정과 정치적 동향을 집중적으로 저술하였다.
후대의 필자인 천제공은 중앙의 정치보다는 지방 사회에 관심을 두었다. 특히 부곡·소·향에 거주하던 노비와 지방 농민들 사이에서 벌어진 사건과 생활상을 주로 기록하여, 다른 필자들이 다루지 않았던 민간의 모습을 편년통록에 남겼다.
가장 후대의 인물인 천무영은 처음에는 귀족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권력 다툼과 정치적 갈등을 주로 기록하는 듯하였으나, 저술을 이어가면서 점차 궁중에서 벌어지는 암투와 내밀한 사건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였다. 이후에는 그 범위를 더욱 넓혀 왕실의 여성들뿐만 아니라 왕실을 가까이에서 보필하는 궁녀와 상궁, 각종 허드렛일을 맡던 무수리와 여종 등 궁중의 하층 여성들에 이르기까지 집요하게 기록하였다.
특히 천무영은 왕후와 후궁, 왕녀와 궁인 등 궁중 여성들의 관계와 갈등뿐만 아니라 그들의 일상과 처지, 궁중에서의 역할과 서로 간의 관계까지 세세하게 기록하였는데, 이는 당시의 다른 관찬·민간 기록서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편년통록만의 독특한 특징으로 평가된다. 그의 기록으로 인해 편년통록은 단순히 왕조와 조정의 역사를 기록한 사서에 그치지 않고, 역사 속에서 쉽게 기록되지 않았던 궁중 여성들의 삶과 목소리를 집요하게 담아낸 기록서로도 평가받게 되었다.
이처럼 편년통록은 조정의 정치에서 백성들의 여론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시대와 서로 다른 계층을 바라본 여러 필자의 기록이 축적되어 이루어진 역사서라는 점에서 그 독특한 가치를 가진다.
내용
특징
편년통록은 조정의 관찬 사서가 아닌 민간인이 직접 서술한 역사 기록이라는 점에서 가장 큰 특징을 가진다. 따라서 각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와 평가가 상당 부분 반영되어 있으며, 공식 기록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당시 백성들과 세간에서 특정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민간인이 기록한 사서인 만큼 공식적인 역사 기록으로 인정받지는 못했으며, 기록에 등장하는 사건과 인물에 대한 사실성 역시 완전히 보장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편년통록은 흔히 야사(野史)로 분류되며, 기록된 모든 내용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당시의 구전과 세간의 인식, 필자의 견해가 함께 담긴 기록으로 이해하고 흥미를 곁들여 참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담
편년통록은 공식 사서가 아니었던 탓에 천씨 가문이 직접 소장하고 대대로 보관하였다. 민간 가문에서 관리한 만큼 보안과 보관에 취약했음에도, 신기하게도 한 차례도 훼손되거나 분실되지 않고 현재까지 전해졌다.
반면 조정에서 편찬한 공식 왕조 기록인 《고려사》는 전쟁 중 훼손되거나 내란으로 소실될 위기에 처했고, 심지어 일부 기록은 후대에 내용이 위조될 뻔한 일까지 있었다고 전한다.
이에 후대 사람들은 이를 두고 “관에서 보관한 역사는 불타고, 집안에 숨겨둔 야사는 살아남았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