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 곽씨

고려 금상의 후비
수비 곽씨ㅣ綏妃 郭氏
수비.jpg
출생 1159년
고려 서경 평양부 곽진현의 사저
사망 1226년 5월 9일
고려 개경 개성부 연덕궁 정침
본관 현풍 곽씨
재위기간 고려 비부인
1177년 12월 12일 ~ 1181년 12월 14일
고려 연덕궁주
1181년 12월 14일 ~ 1190년 1월 11일
고려 수비
1190년 1월 11일 ~ 1226년 5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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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불교
부군 금상
슬하 1녀
작호 비부인(妃婦人) → 연덕궁주 → 수비(綏妃)
궁호 연덕궁
시호 현목(顯穆)

개요

고려 작금의 금상의 왕비. 상서우복야를 지낸 곽진현과 문하시랑을 지낸 국대부인 김지은의 장녀이다.

슬하에 1녀만을 두었으나 그녀의 가문과 금상의 총애로 종2품 비부인에서 시작해 정2품 궁주에 봉해져 연덕궁을 하사받고, 종국에는 정1품 수비에 봉해졌다.

생애

1159년 호부상서 곽진현과 참지정사 김지은 사이에서 장냐로 태어났으며 당시 금상의 후비를 구하던 공예왕후에 의해 입궁하여 비궁의 지위를 얻는다.

현목수비 곽씨의 졸기
9일에 수비(壽妃) 곽씨(郭氏)가 졸(卒)하였다.

수비의 이름은 지현(智賢)으로, 1159년에 태어났다. 1177년 입궁하여 비부인에 봉해졌고, 뒤에 연덕궁주를 거쳐 1190년 왕비에 책봉되니 작호를 수비라 하였다.

말년에 두부에 병이 깊어졌으나 이를 알리지 않고 지내다가 화순택주의 집에 머물던 중 훙서하였다. 화순택주가 관 앞에서 통곡하며 슬픔을 이기지 못하니 듣는 자들이 모두 눈물을 흘렸다.

장례 중 손자 이옥영이 권세를 탐하여 승복궁주를 모함하고자 수비의 죽음을 이용하였으나, 뒤에 모두 거짓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이 일로 화순택주가 왕녀의 작위를 잃고 가문 또한 쇠락하니, 사람들이 이를 두고 크게 탄식하였다.

왕이 몹시 슬퍼하여 예를 다해 장사지내고 서경에 묘를 조성하였다. 시호를 현목(顯穆)이라 하였다.

여담

본래 정1품 비에 임명될 정도의 인물은 아니나 그녀의 삼촌이 섭정공 문하시중을 지낸 김지한이며 어머니가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낸 김지은이라는 점 덕분에 높은 지위에 올랐다. 또한 내명부에서 사촌이 왕후 김씨였고 삭막한 궁궐 속 왕후가 친족이라는 점을 높게 사 자신의 다음 가는 대우를 해주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성품이 웃전을 넘보지 않았으며 슬하에 아들이 없다는 점도 매우 컸다.

공예왕후는 왕후 시절 태자이던 금상의 태자비를 정할 때 왕후 김씨가 아닌 수비 곽씨를 차기 내명부 수장으로 임명하려 했다. 그러나 문하시중 김지한의 위세가 매우 대단했으며 공예왕후의 숙원인 선경귀비의 신궁 관련 문제를 유일하게 해결할 수 있는 자도 김지한이었기에 왕후 김씨가 태자비가 되었고 수비는 후궁이 된다.

가족관계

  • 배우자 : 금상 왕창
    • 장녀 : 화순택주
      • 사위 : 의창후 이주형
        • 손자 : 이옥환
        • 손자 : 이옥영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