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드림 유니버스)/역사

1990년 이전

현실 대한민국과 동일

1990년대

북한이 대기근, 즉 고난의 행군을 겪게 되면서 인구의 10%가 사망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당초 예상되었던 사망률인 3~5%를 크게 웃돈 수치였다. 더불어, 이듬해 식량 생산에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북한의 경제와 생활이 모두 파탄나게 된다. UN과 대한민국의 원조로 겨우 식량 배급은 재개되었지만 또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백두산의 폭발 징후가 보인 것이다. 결국 1993년 2월, 백두산은 총 4번 폭발, 북한과 중국 일부 지역을 덮쳤다. 남한에도 화산재가 일부 날아오는 등 피해가 있었다. 북한의 김정일과 그 측근은 공교롭게도 북쪽의 별장으로 가 상황을 보고받지 못했고, 결국 그대로 지진의 여파를 받아 사망했다. 이후 북한은 엄청난 혼란기를 겪는다. 김평일이 군 장성 일부와 손잡고 김정일의 측근들을 모두 사살하고 최고지도자의 자리에 올랐으나 최고지도자에 오른지 1년만인 1994년 5월, 한국과의 12번에 걸친 회담 끝에 통일을 결의하게 된다. 2002년까지 북한과 남한은 공조하며 북한의 경제개발과 남한의 안정을 도모하기로 하였다.

2000년대

약속대로 2000년 3월 11일, 양국은 통일에 합의하고 전세계 만방에 이 사실을 알린다. 우려했었던 쿠데타나 군사적 행위는 향후 전혀 없었고 치안 유지에 관한 문제도 없었으나 중국과 미국, 일본의 간섭 문제가 통일 합의 직후부터 시작돼 통일이 이루어진 2002년까지도 이어졌다. 이는 중국과 미국, 일본, 그리고 통일 대한민국 정부의 협의를 통하여 각국의 대표단과 일부 군대가 접경지 및 허가된 곳에 향후 25년간 소수 주둔하는 것으로 합의를 마쳤다. 이후 2002년 12월 4일, 역사적인 통일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선거가 개최되게 된다. 다만 1대 총선은 이북 지역 비례대표 100석, 이남 지역 지역구 177석, 비례대표 23석을 선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