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경

고려 상장군
박수경
朴守卿
출생 947년
고려 평산박씨 문중
사망 1017년 1월 21일
고려 개경 개성부 박수경의 사저ㅁ
본관 평산박씨
재임기간 고려 대장군
미상 ~ 미상
재임기간 고려 상장군
미상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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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위 상장군
종교 불교
부모 父 박지성
母 홍씨부인
배우자 군군 해씨
자녀 대장군 박지윤

개요

고려 경종 ~ 목종때까지 활동한 상장군으로 박수경의 난을 일으켜 남북조시대를 열었고 문하시랑 박수연의 오빠이다.

생애

박수경은 고려 제5대 경종대부터 제7대 목종대까지 활동한 상장군으로, 삼한벽상공신 박지성의 아들이자 고려 최초의 여성 재신으로 알려진 문하시랑 국대부인 박수연의 오라비였다.

박수경의 난

광종대에 이루어진 대대적인 호족 숙청으로 삼천여 명의 지방 호족들이 제거되자, 그는 이때부터 왕조에 깊은 원한을 품게 되었다. 이후 남궁희진 등과 결탁하여 수십 년에 걸쳐 반란을 준비하였다.

목종 재위기에는 조정 내부에서 귀족 세력 간의 대립이 극심하였는데, 정유자의 의인들과 천추태후의 태인들이 서로 맞서며 정국은 혼란에 빠졌다. 그러던 중 정유자가 끝내 사사되자, 박수경은 이를 구실 삼아 군사를 일으켰으니, 이를 후세에서는 ‘박수경의 난’이라 한다.

당시 상장군이었던 그는 중앙군에 막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군권을 손쉽게 장악할 수 있었고, 불과 이틀 만에 개경을 함락시켰다. 왕실이 북방으로 피난하자 그는 스스로를 황제라 칭하며 칭제하였고, 양주목을 남경으로 승격시켜 새로운 수도로 삼았다. 이 난은 무려 5년간 지속되었다.

박수경은 남부 대부분의 지역을 장악하였기에, 후대 사가들은 이 시기를 두고 “제2의 남북조 시대”라 평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남쪽에서는 왜국이 침입을 노리고, 북쪽에서는 요나라가 압박해오자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조정과 지방 세력들이 다시 힘을 합치게 되었다. 결국 박수경은 패배하였으나, 오랜 공훈과 정치적 영향력을 고려하여 목숨만은 보전받았다. 대신 당근형에 처해졌고, 그의 휘하 장수들과 측근들은 대부분 처형되었다.

말년과 죽음

이후 그는 아들의 집에 머물며 은거 생활을 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원인을 알 수 없는 죽음을 맞이하였다.

여담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