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НСССР)/역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국장 2 (НСССР).png
소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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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 국기 ㆍ 국장 ㆍ 노동자 마르세예즈 ㆍ 인터내셔널가 ㆍ 소련 찬가 ㆍ 낫과 망치 ㆍ 붉은 별 ㆍ 소련 훈장
정치 정치 전반 ㆍ 소련 공산당 ㆍ 소련 공산당대회 ㆍ 크렘린 ㆍ 소련 장관회의 ㆍ 소련 최고회의 ㆍ 소련 헌법 ㆍ 소련 인민평의회 ㆍ 소련 최고 인민 회의 ㆍ 소련 집행위원회 ㆍ 소련 중앙집행위원회 ㆍ 크렘린 벽 묘지 ㆍ 파르니예프 영묘 ㆍ 정부 전용기
페르빌 파르니예프 · 매흠 · 블라디미르 레닌 · 이오시프 스탈린 ㆍ 레오니트 고보로프 ㆍ 을파소
최고지도자(서기장) · 국가수반 · 대통령 ㆍ 권한대행(부서기장)
경제 소련 루블 ㆍ 굼 ㆍ 콤비나트 ㆍ 콜호스와 솝호스
행정 구성국 틀
교통 교통 전반 ㆍ 러시아 ㆍ 벨로루시 ㆍ 카자흐 ㆍ 그루지야 ㆍ 몰도바 ㆍ 키르기스 ㆍ 아제르바이잔 ㆍ 우즈베크 ㆍ 아르메니아 ㆍ 타지크 ㆍ 투르크멘 ㆍ 리투아니아 ㆍ 라트비아 ㆍ 에스토니아 ㆍ 우크라이나 ㆍ 대한 ㆍ 아메리카 ㆍ 동독 ㆍ 폴란드 ㆍ 핀란드 ㆍ 라오스 ㆍ 일본 ㆍ 유고슬라비아 ㆍ 노르웨이 ㆍ 스웨덴 ㆍ 알바니아
군사 소련군(장비 · 소련 육군 · 소련 해군 · 소련 공군 · 소련 방공군 · 소련 전략로켓군) · 스타프카 ㆍ 소련 국방부 ㆍ 스페츠나츠 ㆍ 모스크바 조약 기구 ㆍ 열병식
대외전쟁
치안 국가보안위원회 ㆍ 밀리치야
인문 민족 ㆍ 언어 ㆍ 종교
역사 역사
문화 문화 ㆍ 소련 음악 ㆍ 사회주의 리얼리즘 · 사미즈다트 · 공휴일 ㆍ 프라우다
교육 ㆍ 국제 공산주의 학교
과학 스푸트니크 · 소유즈 우주선 · 보스토크 계획 · 보스호드 계획 · 살류트 프로그램 · 미르 우주정거장 ㆍ 비아코누르 우주기지


개요

이 문서는 소련의 역사를 2022년 10월부터 다루고 있음을 알리고자 한다.

상세

НСССР 세계관 자체는 2020년 중기에 구성된 신소련을 바탕으로 두고 있으며, 카카오톡 가상국가 기준으로는 2022년 10월부터가 맞다.

역사

가상국가에서의 역사

페르빌 파르니예프 (2022.10 ~ 2023.02.19) (1)

네뷸러스 가상국가에 근간을 두고 이를 바탕으로 처음으로 카카오톡 가상국가에 구현을 한 형태이다. 이 시기에는 가장 원시적인 최고회의와 장관회의, 전당대회 기관이 형식적으로 구현이 되었으나 네뷸러스 가상국가에 본적을 두었던 지라, 그리 큰 활동은 없었다.

페르빌 파르니예프가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국 서기장으로 취임하였고 추가 정치 활동 등은 한적이 없다.[1]

2022년 10월 3일 위대한의 러시아 연방이 카카오톡 가상국가에 대한 선전포고를 진행하자, 맞서서 카카오톡 가상국가들이 저항하였고 유엔 가입국이 대부분이었기에 결집하여 항전하는 반면, 그때 당시 규모가 작은 국가들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국가들은 중립을 선언하며 이어갔고 소련 역시 10월 4일에 이를 접하고 중립 생활을 이어간다.

2022년 11월, 당시 유니온 소련의 발트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의 서기장이었던 워게이 측에게 코민테른 가입 여부를 물었었으나, 워게이 측은 "이미 유니온 쪽에 가입하였다."라는 근거로 거절의 의사를 표하였다.

이후, 11월 11일경에 워게이 측이 제안을 걸어왔고, 이를 의심은 하였으나 끝까지 의심하지 못하고 '동시 방주 교환안'에 찬성하여 본래 근거지에서 추방당하는 우를 범하였다.

바로 2022년 11월 12일에, 새로운 근거지를 삼았고 이게 2026년 기준 現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근거지이다.

외교를 통하여 근거지의 인구를 그때부터 폭발적으로 확대하였고,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가국은 가국이지만 외교를 하러 가지 않는 곳들을 기준으로 외무 행위를 일관하였고, 이때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들과 수교를 하여 인구 복구에 그치지 않고 기존보다 많은 양의 인구를 확대하였다.

11월 16일부터 '극동민주주의연방공화국', 이하 '극동 연방'에 비공식적인 어거지(?)로 소련이 구성국으로 간주되었고 당시 지도부였던 페르빌 파르니예프 측은 잠정적으로 이를 받아들였다. 후에, 소련의 인구가 연방정부보다 확대되자, 연방정부 측이 강제탈퇴[2]를 집행하려고 하자 소련 측은 거부 의사를 표한다. 그러나, 협의에 의해 결국 소련은 극동 연방에게서 독립한다.[3][4]

12월 1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5]에서[6] 무타쿠치 렌야 측이 환전 거래를 제의하였으나 심사숙고를 근거로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12월부터 매흠이 입국하여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바로 유력자로 활동하고 원시 형식적 체계가 어느정도 잡히기 시작하였다. 추가적으로, 당 노선상에서 나치즘과 스탈린에 대하여 검열이 등장하였고 극초기의 혁명수출론이 등장하였다.

2023년 2월, 위대한의 러시아 연방 인구 수급이 어려워지고 유토[7]의 인원이 합세하여 카카오톡 가상국가의 유엔을 이용하여 격퇴를 강조하던 시기, 유력국에서의 위대한 추방이 이루어지고 소련에도 이들이 찾아와 갠톡으로까지 "반러연은 중립국의 필수 소양입니다 중립국이라고 러연을 강퇴하지 않는 건 자기 방이 터져도 괜찮다는 말입니다."라고 언급하며 위대한의 추방을 종용하였다.[8]

이에 페르빌 파르니예프 서기장은 강경한 중립을 때려박았고, 차후 학업을 근거로 매흠에게 서기장 직을 승계하고 직에서 물러난다.

매흠 (1) (2023.02.19 ~ 2023. 04. 13)

매흠은 스탈린을 "실제 소련을 망친 독재자"라고 발언하며 스탈린 사진에 대한 부분적인 제제를 계속 시행하였으며, 장관회의의 폐지 및 최고 인민 회의로의 대체 추진, 최고 소비에트와 소련공산당의 동일화 추진, 헌법재판소와 사법부에 각각 해당되는 소비에트 중앙집행위원회와 소비에트 집행위원회 설치 추진 등 정치 체제의 개혁에 힘썼다.

특히 그는 무엇보다도 사회주의 혁명의 해외로의 수출을 강조하며, 여러 가상국가에 진출하여 합법적인 선거 절차를 이용해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추진하였다.[9] 또한 그는 한 진영을 지지함으로써 가질 위험 부담을 고려해, 가국 세계에서의 여러 중대한 국제적 분쟁에 대해 단호하게 중립을 지켰고, 따라서 소련과 세계 혁명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었다.[10]

이러한 그의 노력은 네덜란드 사회주의 공화국과 프랑스 사회주의 공화국의 건국과 해당 신생 국가들에서의 최고 지도자로서의 집권, 소비에트 연방(타국)에서의 2대 서기장직 겸임, 그외 여러 국가에서의 공산당 창당 및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의 활성화와 같은 여러 성과들을 일구어냈다.

그리고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에 관하여 토론을 즐기는 활동을 보여주었으며 이후 일신상의 이유로 파르니예프에게 승계가 이루어지면서, 사직하였다.[11][12]

페르빌 파르니예프 (2) (2023.04.13 ~ 2023.07.04)

이 기간은 매흠 서기장의 사임 이후부터 붉은평화의 집권 이전의 기간을 설명한다.

매흠 서기장의 사임 이후, 파르니예프는 장관회의 부활, 최고회의 무기한 연기등을 시행하는등 이전체제 복고에 힘을 썼으며, 나치 사진을 제외한 모든 사진 및 정치적 발언에 대한 제제를 해금하였다.

이 시기를 레닌에서 스탈린이 권력을 위임받았다고 일부 평가가 있었다.

또한, 당시 성적인 요소가 있다하더라도, 수위가 청소년관람불가라도 되지 않는 이상, 규제를 하지 않았다.

이 시기를 (신) 소련의 브레즈네프 시대라고 평가한다.

당시, 인민들은 이 시기를 가장 좋았던 시기로 체감하기도 한다.

붉은평화(페르빌 파르니예프)1 (2023.07.04 ~ 2023.08.12)

이 시기는 붉은평화의 유입직후부터 헌법 백지화까지의 기간을 설명한다.

붉은평화, 혹은 쇼스타코비치 고양이가 소련에 유입하면서 즉시 임시 최고권력기구인 장관회의를 폐지하고 최고소비에트를 만들었다. 최고 소비에트 대의원은 7인으로 구성되었으며, 붉은평화 헌법을 토대로 갖추었다.

이후, 붉은평화는 스탈린 서기장 집권기의 맑스레닌주의로 하여끔 의원들을 설득하였고, 끝까지 반대한 한국 출신 김영삼과 스탈렌을 제외한 나머지 5인을 토대로 정책을 이행하기로 결의한다.

이에, 김영삼 의원은 최고 소비에트 대의원직을 사임하였고, 이후 정책을 펼쳐 제국주의 국가와의 단교, 제국주의ㆍ자본주의ㆍ종교주의 프로필 추방, 그리고 소련 내의 반대사상 매흠주의를 위해 반매흠주의를 외치는등 스탈린의 맑스레닌주의로 무장하면서 냉전이 일부 기획되었다.

당시, 미국이 미 제국주의로 연루되면서 추방되었는데 이걸 빌미로 소련에 들어와 난리를 피우면서 미ㆍ소간의 상태가 과열되었으며 이 사건으로 소련의 입지가 커지는데 성공하였다.

이 사건으로, 당시 최고 운영자간의 회담을 통해, 미국이 내부적으로 사과를 하는것 및 표면적으로 일단락되었으며 이후 미국은 강경적 대통령이 선출되며 향후 제 1차, 2차 충돌에 자국내의 이익에 공헌한다.

소련이 반사회주의적 반동분자 추방 정책을 하자, 여러 국가들이 동조하거나 주시하였으며, 몇몇 제국주의 국가 언론사는 신문을 통해 소련의 행보에 주목하였고 카카오톡의 사실상 최고 기득권 단체나 다름없는 라인에 의해 2차 테러를 당하게 된다.

이후, 소련의 인구는 다시 80%까지 회복되었으나, 최고 기득권 단체의 견제에 의해 다시 인구 회복은 어려워 보였고, 소련의 당대 서기장과 최고회의 임시주석은 소련의 국경을 폐쇄하였지만 내부 감소가 지속되거나, 소련의 자칭 구성국이 침략당하는등 1차 사과문을 발표하여 인구회복에 주력한다.

НСССР 수립이후, 2번째 다당제[13]가 시행되었으며 수정주의적 노선을 타는등 미 제국주의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였고 미 제국주의의 민주주의를 받아들인다. 이때, 소련 민주당(향후, 소련 국민위원회로 개칭)등이 창당되었으며 소련 민주당이 집권하는등 최초의 여야집권이 이루어지는등 여러사건이 일어났다.

그러나, 소련의 다당제는 기존과 다른 방식이였는데 1명당 1당이 아닌, 1명이 여러 정당에 가입할수 있었고, 소련 공산당이 선거에 출마하지 않자 민주당으로서 활동하다가 사실상 재집권하는데 성공한다.

이후, 소련 국민위원회는 여당으로서 활동하였고 차후 소련의 다른 정당이 부정투표를 통해 요직을 차지하자, 많은 사람들이 정부에게 항의하였지만 당시에 소련의 서기장은 사실상 헌법에 의해 최고권력이 아니었으므로, 최고회의 정식 주석으로 선출된 쇼스타코비치 고양이에 의해 "선거법이 없어 처벌할수 없다."라는 입장을 발표한다.

이에, 많은 국가 및 인민들이 항의하였으며, 그중 캐나다 이민자 스탈린은 부정투표 논란중심자, 리넛에 의해 영구추방을 당하였고 리넛은 이 사건을 계기로 사임한다. 이후에는 사실상 최고 소비에트 대의원이 쇼스타코비치 고양이밖에 남지 않으면서 모든 권력이 집중된다.

한편, 미국인이 대량으로 일본으로 넘어가 정치활동을 펼쳤는데, 여기에 대해 주변국들이 내부적으로 눈살을 찌푸렸는데 이는 과거 반일을 연상케 하게 되었고, 추후 당대 서기장, 페르빌 파르니예프가 일본 정치인의 발언의 처리에 자문하였고, 명목상 서기장이 자리를 비운사이 쇼스타코비치 고양이는 일 제국주의를 외치며 일본출신 정치인, 언론사를 추방하고 1차 추방때처럼은 다르게 맑스레닌주의가 아닌, 맑스레닌마오주의로 무장하여 2차 추방을 한다.

붉은평화(페르빌 파르니예프)2 (2023.07.04 ~ 2023.08.12)

(글이 길어서 이곳에 이어서 서술한다.)

이후, 소련 서기장의 성격을 평소 잘알고 있는 유니온 등이 현재 상태를 알렸고, 소련 서기장, 페르빌 파르니예프는 1차 추방을 직접하긴 했지만 회의감을 느끼고 있던 터라, 이게 명분이 되었고 무력으로 헌법 백지화를 2023년 8월 12일에 선언하였고, 이에 쇼스타코비치 고양이가 반발하였으나, 결국 직접 소련 공산당 출당, 소련 자진 이민행을 하면서 소련의 대부분 사건은 종결된다.

페르빌 파르니예프 (3) (2023.08.12 ~ 2024.02.01)

이 시기는 붉은평화의 출당이후부터 블라디미르 레닌 취임 이전까지의 기간을 설명한다.

출당이후, 서기장은 2차 사과문을 전달하였고, 일본과의 불평등조약 체결을 하려 하였으나, 소련의 인민들이 일 제국주의라고 비난하자 일본측은 정당하다고 반박하였으나, 여러 국가들의 비판 및 대한 연방 공화국의 최고지도자에 의해 전쟁 우려까지 예측되면서 일본은 대통령이 만든 조약을 파기 및 동등한 조약을 다시 내면서, "우리는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니까 이렇게 한다."를 재차 강조하면서 조약을 체결한다.

이후, 소련의 정치는 크게 바뀌는데, 소련 공산당이 다시 여당이 되고, 일당제로 복고, 최고회의 무기한 중단, 장관회의 대신의 권력기구 인민평의회 폐지를 하였으며, 종교 및 파시즘 국가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간의 외교를 맺었고 사회주의 외교를 적극 재 시행하였다.

한편, 2차 추방 당시, 러시아 제국의 힘을 빌린적이 있어 러시아 제국의 황제가 대화에 간섭하였고 소련정부는 힘이 없어 잠자코 지켜보던 도중, "러시아어는 도움이 안되니 영어나 하라."라는식의 주장에 의해 대화가 과열되자 이 사건을 기준으로 소련 정부가 적극 개입하며 황제의 입지를 줄이는데 성공하면서, 모든 간섭세력을 제거하는데 성공하였다.

이후, 소련은 구성국 구체화를 실시, 15국 수립 및 몽골, 만주 수립 추후, 위성국등을 만드는등 НСССР 세력권을 확대하고 사회주의 국가 건설에 힘쓰고 있다. 소련의 공휴일을 지정 및 확대하며 소련 중앙텔레비전을 확대하거나, 영향력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레닌 (2024.02.01 ~ 2024.02.14)

2024년 2월 1일부터 전대 서기장의 사임에 따라, 새로운 서기장으로 선출되었다. 이 기간 동안, 페르빌 파르니예프를 블라디미르 레닌으로 동격화하고 신격화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으며, 이때 파르니예프 영묘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2024년 2월 14일, 일신상의 문제로 사임하였다.

이오시프 스탈린 (2024.02.14 ~ 2024.02.21)

2024년 2월 14일, 갑작스레 서기장으로 선출된 상태였다. 재해 복구에 힘을 쏟아부어 어느정도 유동 인구를 회복시켰으나, 일신상의 문제로 페르빌 파르니예프를 선출하고 사임하였다.

페르빌 파르니예프 (4) (2024.02.21 ~ 2024.12.01)

2024년 2월 21일, 재선출되었고 이전 서기장의 정책을 유지하고 아메리카 ССР와 고려 ССР까지 영토를 확장하였다.

2024년 5월 6일, 제10대 최고소비에트 분기에 신 헌법을 제작하고 다른 법률을 구체화중이며, 현재는 인터내셔널을 재정비하여 바야흐로 가상국가의 침체기인 현재에 사회주의자들의 단결을 도모하고 있다. 유동 인구는 계속 줄어들었고, 한때 페르빌 파르니예프의 자진 사임이 제기되었으나, 전 가국적인 침체기로 참작되었기에 유지중이다.

2024년 10월 2일, 현임 서기장에 의해 인류제국의 비판 항목이 작성된걸 인류제국이 문제 삼으면서 외교적 분쟁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는 인류제국의 공습 이후, 10월 3일 파르니예프 정부에서만 3번째 테러가 발생하였고 이에 파르니예프 또한 인류제국에 대한 감정인 반인류 노선을 채택하였다. 사건 이후, 구성국 내 거의 모든 인류제국 소속을 퇴출하였으며, 신발전-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에서의 인류제국 소속을 추방하였다.

소련의 유동 인구는 급격히 감소한 상태이며 실질 및 유동 인구의 회복에 타격을 입은 상태로 점차 복구중이며, 모든 카카오톡 가상국가의 전자정부 주소를 모두 폐쇄하였다.[14][15] 이후, 2024년 12월 1일에 사임하고 매흠을 차기 지도자로 선출하였다.

매흠 (2) (2024.12.01 ~ 2025.01.11)

2024년 12월 1일, 선출되었으나 전보다는 소극적으로 활동하였고 인류제국의 황제와 회담을 개최하려는 등 관계 완화 정책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반드시 1:1 회담이 아닌 2:2 회담을 계속 들먹이자, 소련 최고회의는 이를 보고 국가 안보를 위협하려는 또다른 낌새로 판단하였고, 결국 당대 최고지도자인 매흠에 의해 무산된다. 이러한 조치로 폐쇄 정책을 계속 이어갔고, 2025년 1월 11일 매흠이 사임한 이후 을파소가 집권할때까지 계속 존속하였다.

레오니트 고보로프 (2025.01.11 ~ 2025.02.03)

2025년 1월 11일, 매흠에 의해 선출된 레오니트 고보로프는 총 8번째로 최고지도자의 자리에 올랐으며, 기존 폐쇄 정책을 이어갔고 동시에 자신의 특기를 살려 소련 국가보안위원회를 재정비하였다. 그러나, 직무에 대한 책임감으로 인해 1달 정도의 집권 끝에 2025년 2월 3일, 을파소를 선출하고 사임하였다.

을파소 (2025.02.03 ~ 현재)

2025년 2월 3일, 레오니트 고보로프의 선출로 집권하게 되었으며, 국제 정세 정보를 파악하고 파르니예프와의 대화를 통해 공식적으로 폐쇄 정책을 종료한다.

이후, 소련의 인구를 살리기 위해 안드레이 그로미코를 외무관으로 채용하였고, 계속해서 상승 곡선을 보이며 결국 2026년에 테러 이전의 인구를 회복하는데 성공한다.

추가로, 구성국 재건과 구성국 개발 사업, 사회주의 국가 건설 사업을 추진하여 결과적으로 사회주의 국가의 부흥과 소련의 영향력을 늘리는데 성공하였다.

형식적 역사

각주

  1. ↑ 이때는 적응기였고, 무엇보다 냉정하게 카카오톡 가상국가에 관해서 겉핥기식으로 아는 정도 역시 작용할 것이다.
  2. ↑ 강제가입에 이은 강제탈퇴...
  3. ↑ 사실 소련은 공식적으로는 독자적인 국가로서의 삶을 이어갔다. 극동 연방의 가입은 당시 협약이나 조약은 없었고 신청서란에도 그냥 복사된 정보만 있었기에, 공식적 성격을 가지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4. ↑ 정확한 탈퇴일은 불명.
  5. ↑ 지도자는 고치돈.
  6. ↑ 국가는 정확히 불명.
  7. ↑ 밴드 가상국가에 위치한 좀비의 유토제국을 가리킨다.
  8. ↑ 참고로 이 말을 한 사람이 당시 UN 선전부장 직의 유엘이었고, 이 인물이 좀비 유토제국 소속원이었다. 물론, 카카오톡 가상국가 인원들은 그때는 유토였는지 판별하기엔 그 상황이 고조되어 대부분의 인원들이 인지하지 못하였다.
  9. ↑ 가상국가는 이처럼 부르주아 민주주의식 절차를 통해 추진할수밖에 없었다. 사유는 마음만 먹으면 방주들이 추방을 단행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제대로 된 헌법을 가진 국가가 찾아보기 힘들었으며, 법 역시 단순히 운영하기 위한 준칙적 성격에 그쳤다.
  10. ↑ 파르니예프의 위대한 추방 분쟁과 관련하여 계속 중립을 강조하고 활동을 이어갔다.
  11. ↑ 물론, 당시에는 일신상의 이유라고 칭하며 자세한 언급은 없었으나 당사자가 밝히길, 학업을 이유로 이른바 연극을 통한 절차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12. ↑ 이 방법을 어찌 실행할지에 대해서는 페르빌 파르니예프가 제안하였고 2023년 4월 13일에 승계가 이루어졌다.
  13. ↑ 초기 카카오톡 가상국가에 위치한 НСССР는 놀랍게도 4개의 정당이 있는 다당제 국가였다.
  14. ↑ 이는 2023년 제4•5대 최고소비에트 주석 이후로, 두번째 폐쇄 조치이다.
  15. ↑ 여담으로, 인류제국 측에서는, 인류제국의 승전보로 전카국에 알린 상태이지만 아직까지도 소련과 대치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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