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요전쟁

여요전쟁
麗遼戰爭

고려-거란 전쟁 | 高麗-契丹戰爭

기간
993년 3월 8일 ~ 1091년 12월 28일
장소
한반도 북부
원인
고려와 요의 관계 악화
교전 세력
고려
(수세)
요
(공세)
지휘관
성종 (고려 국왕)
목종 (고려 국왕)
현종 (고려 국왕)
선종 (고려 국왕)
요 성종 (요 황제)
요 도종 (요 황제)
예지황후 (요 섭정태후)
주요 인물
천추태후 (고려 대왕태후)
인예왕후 (고려 섭정태후)
이자헌 (고려 문하시중)
이자연 (고려 섭정공)
박수연 (고려 문하시랑)
천제공 (고려 문하시랑)
강감찬 (고려 중서시랑)
서희 (고려 내사령)
양규 (고려 서북면 도순검사)
요마 (고려 예부상서)
김러시아 (고려 대장군)
소손녕
소효목 (요 북추밀원사)
소배압
야율적로
야율분노
야율팔갑
야율홍고
야율세량
야율희은 (요 남추밀원사)
장림 (요 동경유수)
야율세량 (요 북부재상)
결과
-
영향
고려-요-송의 세력균형 체제 구축

개요

여요전쟁(麗遼戰爭) 또는 고려-거란 전쟁(高麗-契丹戰爭)은 993년(성종 12년)부터 1091년(선종 21연)에 이르기까지 거의 99년 동안 세 차례에 걸쳐 요나라가 고려를 침략한 전쟁을 가리킨다. 1차, 2차, 3차, 귀주대첩으로 이루어져있다.

의의와 영향

여요전쟁은 고려가 요의 침공을 막아내고 국권을 지켜낸 전쟁으로, 강동 6주의 확보와 북방 방어체계의 정비를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장기간의 전쟁을 거치며 왕권과 중앙집권 체제가 더욱 강화되었고, 요 또한 고려의 국력을 인정하게 되어 이후 양국은 군사적 대립보다 외교를 중심으로 관계를 이어가게 되었다.

아울러 이 전쟁은 한반도 내 다른 중원 국가의 지원 없이 고려가 단독으로 중국의 정복왕조인 요와 맞서 치른 최초의 대규모 전면전으로 평가된다. 이에 고려는 국가의 존망을 걸고 전 국력을 동원하였으며, 이는 고려의 군사력과 국가 역량을 입증한 전쟁이자 동아시아 강국으로 자리매김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목록

제1차 여요전쟁

제1차 여요전쟁

제2차 여요전쟁

제2차 여요전쟁

제3차 여요전쟁

제3차 여요전쟁

여담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