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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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회 휘장.svg 대한국 국민원의원 (황북 사리원 갑)
제92-24대
최성봉
제25-29대
이수현
현직

제25-29대 국민원의원
이수현
李壽炫ㅣLee Soo-hyen

이수현 프로필.png
출생 1960년 7월 14일 (69세)
함경남도 흥남시 구룡면 운중리
(現 함흥광역시 흥남구 구룡면 운중리)
거주지 황해북도 사리원시 사원구 구천동 해늘로5길 14
함경남도 영흥군 요덕면 북평리[1]
현직 제29대 국민원의원
민주진보당 황북 사리원 갑 지역위원장
서명 이수현 사인.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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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함주 이씨
부모 아버지 이병호, 어머니 신옥선
형제자매[2] 남동생 이호현, 이상현[3]
여동생 이서현[4], 이소현
배우자 박미경
자녀 장남 이성연, 장남 이성호, 차남 이성민
학력 운중국민학교[5] (졸업)
구룡중학교 (졸업)
흥남상업고등학교 (졸업)
황북대학교 야간강좌개설부 (행정학 / 학사)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 석사)
병역 면제 (생계곤란)
종교 천주교 (세례명: 유스티노)
신체 176cm, 64kg, O형
소속 정당 민주진보당 흰색 로고타입.svg
파벌 혁신회 (회장)
지역구 황북 사리원 갑
의원 선수 5 (국)
의원 대수 25, 26, 27, 28, 29
약력 제29회 행정고등고시 합격
총무성 사무관
대구지방국세청 안동세무서 세무과장
국세청 사무관
재무성 사무관
재정경제원 서기관
기획예산처 산업재정2과장
기획예산처 재정전략과장
수상비서실 정책실장실 행정관
경제수석비서관실 행정관
기획재정성 종합정책과장
기획재정성 대변인
기획재정성 예산총괄심의관
기획재정성 예산실장
기획재정성 사무차관 (제4대 / 이명박 내각)
제19대 한국수출입은행 은행장
황북대학교 석좌교수
민주진보당 제29대 국민원의원 총선거 황해북도대전환 선거대책위원장
제29대 국민원의원 (황북 사리원 갑 / 민주진보당)
약칭 ,

개요

대한국의 관료 출신 정치인.

대한국의 제29대 국민원 의원이며 지역구는 황북 사리원 갑이다. 정치 입문 전엔 주로 기획재정성 등 경제부처에 근무하는 관료로 근무했으며, 제4대 기획재정성 사무차관, 제3대 국무조정실장 등을 지냈다.

생애

청년 시절

1960년7월 14일 함경남도 흥남시 구룡면 운중리(現 함흥광역시 흥남구 구룡면 운중리)에서 3남 2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 본래 출생할 적에는 위로 연년생 누나 한명이 있었지만 8살에 요절하면서 맏이가 됐다.

그의 부친 이병호(李炳浩, 1926. 3. 29~1987. 12. 17)는 흥남시에서 8대째 살아온 흥남 토박이였으며, 흥남항에서 하역 노동자로 근무했다. 어머니인 신옥선(申玉善, 1930. 5. 6~2019. 5. 2) 또한 방직공장에 다니며 사회생활을 했기 때문에 이수현 형제들은 많은 시간을 집에서 농사를 짓던 조부모들과 보냈다고 한다.

한편 이러한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의무교육인 국민교육은 받아야겠다고 생각한 어머니에 의해 산을 하나 넘어 1시간쯤 걸어야 있는 초등학교에 다녔다. 통학시간이 너무 길다 보니, 학교를 못갈 일이 생기거나 본인이 사정을 만들거나 해서 어느 달은 결석일과 출석일이 같은 수준까지 갔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산짐승이 많아 돈을 많이 벌 것 같아 이때 당시 꿈이 사냥꾼이였다고 한다.[6]

초등학교를 마치고, 부모님은 모두 공장이나 항구에 취직하여 돈을 벌길 바랬으나 교육열이 강했던 그는 딱 중학교까지만 다니고 공부는 말겠다고 부모님을 설득했다. 결국 할아버지의 지원에 힘입어 부모님을 설득할 수 있었고, 구룡중학교로 진학했다. 이때에도 통학요건은 나아지기는 커녕 시간이 더 길어져서 학교까지 1시간 반을 걸어가야 했다고 한다. 물론 중학교 2학년때 길이 개통되며 다시 1시간(...)으로 줄어들긴 했다.

그는 정말로 딱 중학교만 다니고 공장에 취업하든 항구에 취업하든 농사를 시작하든 할 작정이였다. 하지만 중학교 3학년 담임교사가 이를 극구 말렸는데, "넌 성적이 전교 3등 안에는 무조건 들어가니 꼭 고졸을 해야 한다"고 닥달을 해댔다고. 어느 정도였냐면 도보로 1시간이 걸리는 그의 집에 직접 찾아가 어머니가 퇴근하는 9시까지 기다린 다음 어머니에게도 설득을 했다고 한다. 이러한 담임교사의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인지 부모님도 고등학교 진학을 막지 않는 분위기로 흘러갔으나 고등학교까지 가는 것은 집안 형편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 생각, 그렇다면 졸업 후 은행원으로 취업할 기회가 있는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2028년 스승의 날에 이수현은 페이스북에 자신의 학창시절을 되돌아보며 "고집이 세셨던 그 선생님의 생떼가 내 모든 것을 바꿨다"라고 적었다. 또 "가난으로 무기력해진 삶에게 심페소생술을 해주시고, 가장 큰 벽을 넘을 수 있게 기꺼이 등허리를 내어주셨던 그 선생님이 내 학창 시절의 가장 큰 용자다"라고 말했다.

1980년 흥남상고를 졸업하기 6개월 전 그는 대한신탁은행에 입사했다. 그러나 '상고 출신' 이라는 벽은 높았고, 이에 큰 반발을 느낀 그는 1981년 일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는 황북대학교 야간개설학부 행정학과에 장학생으로 진학했다. 이때 은행원으로 일하며 번 돈을 모두 흥남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내며 본인은 장학금을 아끼고 아낀 돈으로 단칸방 생활을 했다고 한다. 이어 1984년 대학교를 졸업하며 직장인 은행에 완전 복귀하나 싶었지만 교수의 권유로 제27회 행정고등고시에 응시, 놀랍게도 이게 한번에 붙으면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관료 시절

1984년 은행에 사직서를 내고 총무성에서 일하게 됐다. 사무관 수습을 받을 때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서울 사람들은 일머리도 없고 영 질이 좋지 못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것이 생각나서 지방으로의 발령을 희망했다.[7] 그래서 발령된 곳이 안동세무서였고, 그곳에서 총무과장을 지낸 뒤 귀경길에 올라 재무성 세재실 국제조사과 사무관, 기획예산처 서기관, 기획예산처 재정전략과장 등을 역임했다.

그러던 중 국장실에서 일을 맡기게 할 사람을 찾아달라는 요청을 받은 직속상관이 오히려 자신보다 고시 기수가 낮고 사회 경험이라고는 없는 서울대 출신 후배를 추천하고 "그래도 지방대 나온 애 보다야 서울대 나온 애가 낫지 않겠냐"고 장난스레 말하는 것에 관료생활에 큰 회의감을 느껴 사직서를 던질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서연고 등 명문대 출신들이 꽉 쥐고 있는 경제관료계에서 황북대 출신의 이수현이 느낀 감정은 마치 6년 전 은행에서 상고 출신이라는 차별을 당했을 때와 같았다. 결국 각고의 노력 끝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해 그런 차별에서는 그나마 좀 벗어나게 되었다.

2000년에는 수상비서실 비서관, 경제수석비서관실 행정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기획재정성으로 복귀한 후에는 종합정책과장과 대변인을 역임했다. 2008년에 예산총괄심의관, 2011년에는 기재성 제3차관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기획재정성 예산실장에 임명됐다. 당시 사회간접자본 예산을 축소하며 이명박 내각의 정책 기조에 맞춰 재정 건정성을 추구했다는 평을 받았고, 2012년에는 이명박이 기초보장예산을 삭감하려는 것을 막았다. 김성연 전 예산실장의 소외계층 고등학교 졸업생의 해외 유학 사업인 드림장학생 사업을 더욱 확대시켰고, 전임 예산실장이 공을 들인 대부분의 사업을 확대, 혹은 유지했다.

이수현 악수.jpg

2013년에는 기재성 공무원으로서는 가장 높은 직위였던 기획재정성 사무차관으로 발탁되었다.

취임 후에는 약자와의 동행을 가슴에 새기는 마음으로 아버지가 근무했던 흥남항 노동자들의 합숙소에 방문하거나 어려운 상황으로 꿈을 펼치지 못하는 전국의 학생들에게 학비를 지원하는 '마음이음장학사업'을 만들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명박 정부에서 발탁된 인사라는 이유로 박근혜 내각에서는 한직인 한국수출입은행 은행장으로 좌천됐다. 좌천 후에는 중앙 관료계와 거리를 두고 생활했다고 한다. 결국 2015년, 30년 공직생활의 마침표를 찍었다.

정계 입문

퇴임 후에는 모교인 황북대학교의 교수로 들어가서 행정학 교편을 잡았다. 그러나 평소 친분이 있었던 경제학자 출신 정치인 유승호 의원의 적극적인 중앙당 설득으로 25대 총선에 영입 제안이 들어왔고, 더불어민주당 인재영입 7호로 정치에 입문했다. 중앙당은 당시 부실한 지역구 관리와 사이다를 빙자한 막말 논란으로 사리원 갑 내 지지율이 하락세였던 최성봉 의원을 컷오프하고 이수현 의원을 전략공천했다.

25대 총선에서 황복 사리원 갑에 전략공천된 후 예비후보로 등록한 뒤 본격적인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물론 지역위원회 내에서의 민심 이반은 있었다. 컷오프된 최성봉 지역위원장을 비롯한 핵심 당직자 300여명이 중앙당의 이수현 차관 전략공천 철회를 요구하며 집단 탈당을 예고하고 나선 것. 이에 문재인 대표는 탈당한 인원에 대해 엄격한 조치를 경고하는 등 이수현 감싸기에 나섰고, 결국 이에 굴복하지 않은 최성봉 의원과 지역위원회 당직자 200여명은 집단 탈당해 무소속 출마를 감행했다. 다행히 도의원이나 시의원들의 탈당은 이뤄지지 않았다.

최성봉 의원의 무소속 출마 감행으로 표 분산이 우려되었으나 2016년 9월 11일~12일 알앤써치가 실행한 여론조사에서 45.8%로 31.6%로 2위를 기록한 새자유당 후보를 여유롭게 제치며 선두에 섰다.

개표 결과 46.1%의 득표율로 여유롭게 승리했고, 가장 큰 위협으로 생각됐던 최성봉 후보에게 그 어떤 행정동도 빼았기지 않고 전승했다. 아직 상임위원회는 정해지지 않았으나 경제관료 출신인 점을 감안하면 산업통상자원위원회나 기획재정위원회 등지로 배치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산업통상자원위원회로 배치되었다.

26대 총선에서 사리원 갑에 재출마, 새보수당 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최성봉 전 의원이 새보수당의 추천을 받고 무소속으로 다시 출마해 제대로 된 1:1 리턴매치가 성사됐다. 그러나 최성봉 후보가 유세현장, 토론회를 가리지 않고 이수현 후보에 대한 막말과 허위사실을 유포하며 고발당했고, 지지율은 급격히 내림세를 그리며 26대 총선에서는 67:33이라는 더블스코어 차로 승리했다.

27대 총선은 대체적으로 민주당의 패배였지만 (구)자유민주당에 입당해 세번째 도전에 나선 최성봉 전 의원을 72:27, 6만표 차로 찍어눌렀다.

28대 총선에서 4번째 도전에 나선 최성봉 전 의원과 또 다시 맞붙는가 싶었지만 최성봉 전 의원이 고령을 사유로 투표일을 2주 앞두고 자민당 후보를 지지하며 후보를 사퇴해서 자유민주당 후보와의 1:1 매치로 바뀌었다. 사실상 극우 유튜버로 변질된 최성봉의 지지율이 자민당 후보로 가면서 자민당 득표율이 38%를 기록하는 등 선전했지만 62.4%를 득표하며 승리했다.

이때쯤 유승호 의원과의 연합을 통해 혁신회를 발족했다. 혁신회는 당시 민중민주당 중도계열의 민정호, 은수원, 전윤우 등 서부 인사들이 참여하는 소규모 파벌이였으나, 29대 총선 직전 오태양 전 대표의 탈당으로 위태로워진 사회운동계가 혁신회로 편입하면서 혁신회가 민진당 온건파의 새로운 주요 파벌로 떠올랐다.

29대 총선에서 민진당이 대승하며 자신도 69.8%의 득표율로 5선에 성공했다. 이후 제2차 한동원 내각에 혁신회 소속 국무위원 3인이 진출하며 명실상부 5대 파벌로 거듭났다. 6회 지선에서는 강원, 인천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출마한 혁신회 소속 후보가 광역자치단체장에 당선(충남, 대전, 황북, 평북)되며 민진당이 새누리-화합의 야합으로 광역자치단체장을 대부분 빼았기는 와중에도 텃밭을 제외한 3곳의 광역자치단체장 방어에 성공하며 정구연과 함께 지방에서의 내실을 다졌다.

혁신회는 6회 지선 참패의 영향으로 한동원 총리가 사임하고 제2차 한동원 내각이 붕괴한 후 새로 조각된 도민정 내각에서도 이현진 교육대신, 김병진 국방대신, 이종현 문화체육관광대신, 이은혁 환경대신이 입각에 성공하며 주요 계파임을 입증했다.

사상 및 견해

다른 정치인과의 관계

비판 및 논란

여담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여부 비고
2021 제25대 대한국 국민원의원 총선거 황북 사리원 갑
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51,867 (46.18%) 당선 (1위) 초선
2024 제26대 대한국 국민원의원 총선거 68,321 (67.83%) 재선
2026 제27대 대한국 국민원의원 총선거
민중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87,468 (72.66%) 3선
2028 제28대 대한국 국민원의원 총선거 71,675 (62.47%) 4선
2030 제29대 대한국 국민원의원 총선거 민주진보당 흰색 로고타입.svg 76,434 (69.82%) 5선

역대 선거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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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2021 - 2025 정계 입문
미래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2025 - 2026 당명 변경
민중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2026 - 2029 신설 합당
민주진보당 흰색 로고타입.svg 2029 - 당명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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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별 계파 (민진 · 새누리 · 생정 · 퍼제)
계파 역사 (진보정당 · 민주당계 · 보수정당)
  1. 땅 구입 후 부모님의 묘를 이곳으로 옮겼으며, 작은 농장을 지어 작물도 계속해서 재배하고 있다.
  2. 본래 위로 누나가 있었으나 가난으로 인해 일찍 사망해 3남 2녀 중 맏이가 되었다고 한다.
  3. 1975년생으로 이수현 의원과 15살의 나이차가 난다. 현 대구지방검찰청 검사장.
  4. 오빠를 따라 관료생활을 시작해 총무성 기획조정실장으로 퇴직했다고 한다.
  5. 現구룡초등학교 운중분교장
  6. 실제로 사슴에게 치어 기절했던걸 마침 주위를 지나던 사냥꾼이 살려줬던 일화도 있다.
  7. 이후 안동의 상황을 보고 이 결정을 매우 후회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