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 문종의 후궁 인절덕비ㅣ仁節悳妃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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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 1030년 4월 16일 |
| 고려 서경 황유민의 사저 | |
| 사망 | 1099년 6월 11일 |
| 고려 개경 만월대 | |
| 본관 | 황려민씨 |
| 재위기간 | 고려 황려원주 |
| 1060년 11월 11일 ~ 1068년 4월 14일 | |
| 고려 승복궁주 | |
| 1068년 4월 14일 ~ 1073년 4월 16일 | |
| 고려 덕비 | |
| 1073년 4월 16일 ~ 1099년 6월 11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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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고려 11대 국왕인 문종의 3비로 진한공의 생모이며 본관 황려 민씨이다.
생애
몰락한 가문에서 태어나다.
인절덕비가 태어난 황려민씨 가문은 과거 조부가 박수경의 난에 동조하는 죄를 지어 몰락산 가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민의는 조정에서 형부상서를 지냈으나 조부의 죄로 끝없이 모함을 당하고 동생들이 관직에 출세하지 못하자 가문의 명예를 되살리기 위해 원치않은 혼례를 스스로 강행하여 20세에 왕실로 시집왔다.
문종의 후비
인경현비와 함께 입궁했으나 인경현비는 정 2품 궁주에 봉해지고 인절덕비는 정 3품 원주에 봉해지는 비교적 차별 대우를 받았다.
이후 약 10년간 원주로 지내다 아들 진한공을 낳고 승복궁주에 봉해졌다. 진한공이 다섯살이 되던해 정식 작위를 받고 정 1품 덕비에 봉해졌고 며느리 진한공비를 시험하는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덕비께서 자수를 두며 공비께 하문하시길 ,
"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것이 무엇이냐? "
그러자 공비께서 답하시길 ,
" 임금에 대한 충이옵니다. "
덕비께선 " 아니니라, " 하시곤 두분의 대화가 이어졌다.
" 남편의 대한 내조이옵니다. "
" 아니니라. "
그러자 공비께서 무언갈 깨달은듯 다시 답을 하니,— 고려사 일부
" 자기 자신이옵니다. "
덕비께서 " 드디어 맞췄구나 ! " 하곤 기뻐하셨다.
인절덕비가 며느리를 시험한 대화내용
갑갑한 궁중생활
왕실의 여인들은 한번 궐로 들어오면 쉽게 나갈수 없었기에 전각 안에서 늘 세상 밖으로 나가길 원했다. 그런 삶속에서 아들 진한공은 유일한 기쁨이었지만 진한공이 출궁한 이후로 죽을때까지 외롭게 지냈다.
학질에 걸리다
1099년 3월 학질에 걸려 두달간 투병을 하다 끝내 이기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사후
사후 인절덕비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백년이란 세월이 지나 고려사를 제작하는 학자들간에 "인절덕비 왕후 주장론"과 "인절덕비 왕후 주장 반대론" 의견이 맞붙으며 세상에 다시 이름이 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