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공비

고려 진한공의 부인
진한공비 최씨ㅣ漢陽侯妃 崔氏
진한공비.jpeg
출생 1062년
고려
사망 1104년 7월 1일
고려 충주 진한궁
본관 충주최씨
재위기간 고려 진한공비
1083년 11월 3일 ~ 1104년 7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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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 여인 麗人
배우자 진한공
자녀 선경귀비
사벌공
작호 진한공비(漢陽侯妃)

개요

사람이 먼저 있고 법도가 있는것이지 , 어찌 법도가 먼저 있고 사람이 있단 말입니까.

진한공비 최씨는 진한공 왕유의 부인으로 예종의 2비인 선경귀비의 어머니이다.

생애

출신

본래 본방에도 소속되지 않은 마크 유저로 이름은 여인이며 인생서버에서 낚시를 하여 생계를 이어가고 산과 절을 다녔고 평소 양궁과 경마를 즐겨 웬만한 사내와 다름 없는 여장부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진한공을 사모하다.

평소 어머니 인절덕비 몰래 궐을 탈출해 사냥을 하는것을 즐기던 진한공과 마주쳤다. 산에서 늑대에게 위협받고 있을때 활을 쏴 목숨을 구해주며 진한공과 친해졌고 수년동안 함께 송악산을 타며 사냥을 하고 말을 타고 다녔는데 이때부터 사모한것으로 보인다.

인예왕후를 설득하다.

진한공이 진한공비에게 청혼하고 아버지에게 혼인을 하게 해달라고 했으나 진한공비는 방에도 소속되지 않아 신분을 알 수 없는 마크유저였기에 왕실과 운영부의 반대로 혼례를 치루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진한공비는 인예왕후가 친정집인 경원이씨 문중으로 내려 갔을 때 따라붙어 이씨 문중 대문앞에 자리를 피고 앉아 사흘간 목놓아 울며 혼인을 허락해달라고 하였다. 이때 왕후의 아버지였던 문하시중 이자연이 여종들을 시켜 끌어내려 했으나 진한공비가 품속에있는 은장도를 은글슬쩍 보여주며 여종들에게 물러나라고 속삭였다. 사흘간에 노력이 통한건지 결국 인예왕후가 문종에게 청하여 혼인이 성사되었다.

시어머니의 시험을 통과하다.

인절덕비는 진한공비의 고집과 여장부같은 성격때문에 탐탁치 않고 있어했다.

어머님이라니 , 무례하구나. 난 너를 내 며느리로 인정한적 없다.

진한공비가 인절덕비의 처소에 문안인사를 하러 와 어머님이라 부르자 인절덕비가 다음과 같이 꾸짖으곤 " 내 며느리로 인정받고싶다면 내 수수께끼를 맞추렴 " 이라 하고 다음과 같은 문제를 냈다.

덕비께서 자수를 두며 공비께 하문하시길 ,


"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것이 무엇이냐? "


그러자 공비께서 답하시길 ,


" 임금에 대한 충이옵니다. "
덕비께선 " 아니니라, " 하시곤 두분의 대화가 이어졌다.


" 남편의 대한 내조이옵니다. "
" 아니니라. "


그러자 공비께서 무언갈 깨달은듯 다시 답을 하니,


" 자기 자신이옵니다. "
덕비께서 " 드디어 맞췄구나 ! " 하곤 기뻐하셨다.

—  고려사 일부

인절덕비가 이러한 수수께끼를 낸 이유는 가문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원치않았지만 문종에게 시집와 한평생 궐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난 자신의 처지를 통해 자기처럼 되지 말라는 깊은 뜻을 담아 수수께끼를 낸거라는 추측이 있다.

행복한 부부생활

과거 문덕왕태비의 거주를 마지막으로 폐궁이 되어 오랫동안 방치된 충주궁을 개조하여 진한궁을 설립하고 그곳에서 1남 1녀를 뒀는데 선경귀비와 사벌공다. 왕실에서 지급하는 생활 지원금을 돌려보내고 낚시를 하여 생계를 이어갔다.

사후

서버 접속이 점점 뜸해지기 시작했고 이후 약 일주일간 서버접속이 없어짐과 동시에 진한궁에서 공비의 유언이 적힌 책과기펫이 발견되며 공식 사망처리가 되었다.

가족 관계

여담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