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識人
| '인간사에 중대한 의미를 갖는 문제'에 대한 진실을 '그 문제에 대해 뭔가를 해낼 수 있는 대중'에게 알리려고 노력하는 것이 지식인의 책무다. |
| 노엄 촘스키,《지식인의 책무》中 |
| 難作人間識字人 (난작인간식자인)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 어렵기도 하구나. |
| 황현,《절명시》中 |
| 空蝗黍粟無補於世者 著述之士實爲之最 메뚜기 처럼 곡식이나 축내며 세상에 보탬이 없는 자들 중에서는 글이나 쓰는 선비가 실로 으뜸이다 |
| 서유구,《金華知非集卷第三》 |
지식인은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고 정신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지식인은 민중의 일부가 아니라 중간계급이나 지배계급을 구성하는 존재이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 지식인 계급인 선비들은 다른 계급의 견제를 받지 않는 유일한 지배계급으로서 민중 위에 군림하여 이들을 억압하였다. 대한민국에서도 사법부, 입법부, 행정부는 물론 관료계, 언론계, 교육계, 출판계와 같이 권력과 밀접한 집단의 상층부는 거의 대부분이 명문 문과대학 출신의 지식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식인의 범주에는 법조인, 종교인, 예술가, 엘리트, 사회운동가 등이 포함되며 일부 교수나 학자도 포함될 수 있다. 근대에서야 등장한 자본가 계급과 달리, 지식인은 선사 시대부터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였다. 종교적 리더, 의례를 수행하는 사제와 무녀, 부족의 이야기를 전승하는 이야기꾼들은 초기의 지식인으로 볼 수 있다. 중세 유럽의 신부, 불교 승려, 조선시대의 선비들도 이 범주에 속한다.
명칭
비판
| It is hard to imagine a more stupid or more dangerous way of making decisions than by putting those decisions in the hands of people who pay no price for being wrong. 잘못된 것에 대해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는 사람들의 손에 결정을 맡기는 것보다 더 어리석고 위험한 의사결정법은 상상하기 어렵다. |
| 토마스 소웰 |
| 먹물, 이 씨발 주둥이들만 살아갖고 말이야. 나라를 망친 새끼도 먹물, 뇌물 주는 새끼들, 받아 처먹는 개새끼들도 먹물, 그걸 씹고 있는 씨팔새끼도 먹물이고 주둥이만 나불댔다가 나라 깡통차니까 제일 투덜거리는 개 좆같은 새끼들도 먹물이고. 다 쓸어버려야 돼! |
| 송능한,《세기말》 |
그러나 모든 정신 노동자를 지식인이라 부르는 것은 아니다. 공학자, 과학자, 기업인, 의사 등은 많은 교육을 받고 매우 높은 수준의 정신 노동에 종사하지만 지식인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드물다. 이는 자신이 깊은 지식과 경험을 가진 좁은 분야에만 관여하는 '전문가'와 대비되는 용어로 '지식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지식인'은 대개 문과적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국한하여 사용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프랑스의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는 지식인을 자신의 지적 영역에서 쌓은 명성을 '남용'하여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에서 기성 체제를 비판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핵무기 개발에 참여하는 물리학자는 자신의 전문영역을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단지 학자일 뿐이다. 그러나 핵무기의 위력에 놀라서 핵무기 반대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하면 그 물리학자는 지식인이 되는 것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토머스 소웰은 지식인을 '결과물이 아이디어인 사람'으로 정의한다. 이에 따르면 기업인인 빌 게이츠는 상품인 운영체제가 결과물이기 때문에 지식인이 아니다. 또한 건축 공학자는 다리나 댐 같은 구체적인 건축물이 결과물이기 때문에 지식인이 아니다. 반면 철학자들은 그들의 결과물이 아이디어뿐이기 때문에 지식인으로 간주된다고 한다.
소웰은 지식인을 구분짓는 중요한 특성 중 하나로 외부 평가[1]의 부재를 지적한다. 예를 들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인정받은 것은 물리학자 집단의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이론이 예측한 중력 렌즈 효과가 일식 동안 실제로 관찰되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건축공학자들은 아무리 동료들의 지지를 받는다고 해도 자신이 설계한 건축물이 실제로 건설되었을 때 물리학 법칙에 의해 무너지지 않아야만 성공할 수 있다. 반면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은 외부 평가가 불가능한 사례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식인들 사이에서 지지를 얻어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따라서 상대성 이론을 제시한 아인슈타인이나 건축물을 설계하는 공학자들은 지식인으로 분류되지 않지만, 노동가치론을 주장한 마르크스는 지식인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노엄 촘스키의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 지식인들은 스스로 사회의 규범적인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안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사회문제 해결을 명분으로 내세운 지식인들이 문제를 고착화시키거나, 더 큰 문제를 만들어내거나, 자신들이 하는 주장의 위험성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 한 사례는 흔하다. 예를 들어 마르틴 하이데거는 독일의 철학자로 명성을 날렸으나, 독일 민족의 문제, 더 나아가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종의 과감한 영웅적 결단이 필요함을 주장했고, 그에 따라 나치에 찬동하며 대학 총장 취임 연설로 나치 지지를 선언했으며 이후 나치 치하에서 일어난 유대인 학살과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등에 대해선 침묵 및 책임회피로 일관하여 사후에도 비판받고 있다. 또 다른 예시로, 공산주의를 표방하며 자본주의의 착취를 해소하겠다고 주장한 지식인들은 권력다툼을 벌이다 숙청당하거나, 독재자가 되어 자신의 독재를 정당화하거나, 권력에 아부하는 행태를 보이기도 했으며, 소련 등의 현실사회주의 국가 외부에서는 해당 국가들이 인위적으로 조성한 긍정적인 면만 보고 부정적인 면은 보려 들지 않아 현실과는 동떨어진 옹호를 하기도 하였다.
지식인은 문화 세계의 창조자로서나 중재자로서,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거나 거부하고 확장함으로써, 또한 가치 체계를 방어함으로써 구체적인 명제를 옹호하거나 불의를 규탄하기 위해 정치에 참여한다.
정부와 유력자들을 비판하는 것도 지식인 계급의 특성 중 하나로 이들은 개혁이나 혁명을 주장하기도 한다.(비판적 지식인) 따라서 지식인 계급은 대중을 단순히 계몽해야 한다거나 이끌어야 하는 존재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대중에게는 지식인적 계몽의식, 전위의식으로 비판받을 수 있다. 장폴 사르트르에 따르면 지식인은 사회에 참여하고 비판하는 존재이므로 도덕성, 특히 위선의 문제에서 치명적일 수 있다. 지식인의 위선에 대한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와 바리사이파들의 관계부터 비판적 의미로 오랜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2]
그렇기 때문에 지식인은 중립적 관점에서 사건을 올바르게 판단하여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되 잘못된 것과 부조리한 권력에 대해 맞서는 지식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