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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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革命 / Revolution

혁명이란 정치사회학,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급격한 변화를 지칭하는 말이다. 본 문서에서는 주로 정치사회학적 혁명에 대해 논한다.

정치사회학에서 혁명이란 정치권력을 가지는 정부의 체제를 사회 정의의 이름으로 대중 또는 군인[1] 동원을 통해, (mass mobilization) 강제적으로 전복하여, 새로운 정치 체제를 수립하는 것을 지칭한다.[2]

어원

한자

라틴 문자

정의

혁명이 아닌 것

쿠데타

반란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유명한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경우 혁명과 반란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그러나 혁명의 목적이 자유의 확립이고 반란의 목적은 해방이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정치학자는 최소한, 훨씬 조용하게 진행되는 제2단계의 혁명과 헌법 제정을 손상시키면서까지 제1단계의 갑작스런 반란과 해방 운동, 전제정에 대한 봉기를 강조하기 쉬운 역사가의 함정을 어떻게 피할 것인지 알아야 할 것이다. 역사가가 부각하는 이야기의 극적 측면들은 모두 제1단계에 포함되는 것같이 보이기 때문이며, 아마도 해방 운동의 소요가 아주 종종 혁명을 좌절시켜왔기 때문이다. 역사가는 이야기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러한 유혹에 빠지기 쉽고, 그 유혹은 훨씬 더 유해한 이론과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 이 이론이 담고 있는 내용에 따르면, 반동 세력에게서 나온 헌법과 헌법을 제정하려는 열기는 그 국가의 혁명 정신을 진정으로 표현하기는커녕 실제로는 혁명을 좌절시키거나 혁명의 완전한 발전을 저해했다고 한다. 그 결과―충분히 논리적이게도―혁명 과정의 진정한 정점인 미국 헌법은 반혁명의 실질적 결과로 이해된다. 근본적인 곡해는 해방과 자유를 구분하지 못한데 있다. 반란과 해방 운동이 새롭게 획득한 정치적 자유를 헌법에 담지 못한다면, 반란과 해방보다 더 무익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왜냐하면 "도덕, 재산, 군대의 규율은 모두 헌법이 부재한 상황에서는 실효를 갖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존 애덤스)"
한나 아렌트, <혁명론>(홍원표 역) 241쪽

한나 아렌트는 혁명과 반란의 차이를 엄격하게 구분했는데, 그녀에 따르면 혁명은 자유(freedom)를[3] 목적으로 하는 반면에 반란은 해방(liberty)을[4] 목적으로 한다. 아렌트의 관점에 의하면 혁명이란 단지 폭정을 뒤집었다고 해서 완료되는 것이 아니라 폭정의 종결 이후 자유(freedom)를 체제에 성공적으로 반영함으로써 완료된다.

그러나 모두가 한나 아렌트처럼 혁명과 반란을 이질적인 개념으로 구분하는 것은 아니며, 혁명을 반란의 한 형태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 경우, 반란(rebellion)은 혁명보다 더 넓은 의미의 총체적인 반정부활동 개념을 지칭하여, 혁명은 정의 그 자체로 반란의 일종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는 대체로 실패하면 반란, 성공하면 혁명으로 구분된다.[5]

영어에서 반란이라는 단어는 유교문화권인 대한민국, 일본, 중국 등에서처럼 부정적인 의미만을 내포하지 않는다. 가령 러시아 혁명은 포템킨 반란 사건의 영향을 받았고, 독일 11월 혁명킬 군항의 반란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전두환이 일으킨 12.12는 위에서 서술된 5.16과는 달리 현재 이론의 여지 없이 학문적으로도, 판례(관습법)적으로도 확실히 '군사 반란'으로 정의되고 있으며, 혁명으로 서술되지 않는다. 심지어 이는 5공 치하에서도 '구국의 결단' 등으로 에둘러 지칭되었지 신군부 스스로도 혁명이라 칭하지는 않았다.

내전

내전도 정부에 대한 강제적인 체제 전복이 이루어 질 때가 있지만, 그 자체로 혁명이라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사회 정의의 이름으로 새로운 정치 체제를 실현하기 위한 내전은 보통 혁명 전쟁이라고 불리며, 성공할 경우 혁명으로 규정된다.

개혁

정치 체제를 아예 갈아엎는 체제전복 행위인 혁명과는 달리 기존의 정치체제를 유지하면서 제도변화를 추구하는 경우는 개혁이라고 부른다. 혁명과 개혁의 차이점의 대표적인 예로, 사회주의 이론에서 혁명적 사회주의는 폭력혁명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수립하려고 하지만, 개혁적 사회주의(개량주의)인 사회민주주의는 민주주의 제도는 유지하면서 선거를 통하여 집권하려고 한다.

혁명의 원인

정치사회학적으로, 역사적으로 다양한 혁명의 원인들에 대한 관점은 크게는 둘로 나뉜다. 주체적(agency[6]) 관점과 구조적(structure) 관점이다. 주체적 관점은 혁명을 주도한 세력, 인물등의 전략이나 리더십 등에 집중하는 관점으로, 극적이고 겉으로 드러나는 혁명의 단기적 원인에 집중하는 미시적 관점이다. 구조적 관점이란 정치, 경제, 사회, 역사적으로 형성된 혁명의 장기적 원인에 집중하는 거시적 관점을 의미한다. 혁명의 주체가 없이 구조적으로만 혁명이 발생할 수 있는지, 혁명의 주체는 구조적 원인에 종속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정치학자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벌어지는 주제이다.

내용

긍정적인 측면

체제 변혁

혁명은 대개 인민들의 봉기에서 무력을 통해 구 체제를 폐지한다. 하지만 그러한 무력 사용을 불법으로 단정지을 수 없는 이유는 기존 정부가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상실하게 되면 지지에 기반을 두었던 정부의 정당성 내지 정통성도 함께 상실되어 버리는 것이며, 설령 그 정부가 형식적인 합법성을 여전히 보유한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인 합법성은 없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불법적인' 정부를 무력 형태로써 제거하는 것도 정당화될 수 있다.

사회적 혼란을 가져옴에도 혁명이 재평가될 수 있는 이유는 낡고 부패한 기존 정치체제를 제거하고, 새로운 정치체제로의 이행이 가능하다는 점에 있다. 이로 말미암아 새로운 헌법 체계(헌법 제정)가 생겨나게 되고, 기득권층이 몰락하는 것은 혁명의 부수적인 효과이다. 그렇기에 각국 정부와 기득권층은 혁명과 그 혼란상을 무척 싫어한다.[7] 반면 기존에 억압을 받던 인민 대중은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대변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 체제가 들어섰기 때문에 환호한다.[8]

지배세력 교체

혁명은 합법세력과 불법세력을 바꾼다. 종전에는 그걸 판가름하던 사람들이 모두 기존 정치세력이었고 그들이 정(正)이었지만, 혁명으로 몰락한 이상 그들은 더 이상 정(正)이 될 수 없고 반(反)이 된다. 세계사에서는 올리버 크롬웰(영국 → 잉글랜드 연방)이나 볼셰비키(러시아 제국[9]소련)가 집권층이 되는 그 순간부터 합법과 불법이 뒤바뀌었다. 한국사에서는 대표적으로 4.19 혁명이나 6월 항쟁이 있으며, 이로써 3.15 부정선거를 통해 독재를 기도한 이승만12.12 군사반란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10]를 벌인 전두환 및 신군부 세력에 대한 단죄가 이루어졌다.[11]

미국 혁명 혁명처럼 독립이 겹친 경우, 기존의 지배세력이자 합법세력이 단순히 외세가 되어버려 새로 지정되어야 할 불법세력 자체가 붕 뜨기도 한다. 물론 거기에 한층 더해 미국은 독립 이후 국내의 친영파를 불법화하지 않고 달래기 위해 수정헌법 1조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법을 통과시켰다.[12]

부정적인 측면

사회적 혼란

혁명은 무력 사용으로 인해 혼란상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 와중에 폭력적으로 변한 민중들에 의해서 기존 정부, 기존 정치 세력들이 반민주적이고 반인권적으로 탄압 당하고 숙청될 가능성이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13] 이후 권력의 공백과 새로운 체제를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혼란은 혁명과 함께 따라오는 요소. 혁명 주도 세력 사이의 내분, 전통적인 가치관이 무너지며 발생하는 부정적 변화, 경제 시스템의 붕괴 등이 그 예시이다.

실제로 프랑스 혁명루이 16세와 그의 아내 마리 앙투아네트사치논란 및 정부의 부정부패에서 비롯되었으며, 그로 말미암아 인민들은 바스티유 감옥에 쳐들어 가서 죄인들을 풀어주고 단두대로 그 두 사람의 목을 날려버렸다.[14] 이후 혁명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혼란은 혁명을 지지하던 사람들마저 지치거나 등을 돌리게 만들었고, 곧 프랑스 혁명은 새로운 황제를 탄생시키는 것으로 종결된다.[15]

대개 혁명에서의 사회적 혼란은 일시적 현상에 그치는 게 많지만, 그 혼란으로 말미암아 국가가 완전히 망가지는 경우도 발생하기도 한다. 민주주의 시스템이 취약하거나 거의 전무한 시리아 같은 국가들은 집권 세력을 몰아내고 새로운 정부를 세우려고 했다가 오히려 혼란이 고착화되는 경우에 해당된다. 이럴 때 그 나라에 사는 소시민적 사고를 가진 국민들 입장에서는 과거의 폭압적인 정권이 더 낫다고 한탄하게 된다. 그 틈을 타서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와 같은 극단주의 세력이 등장하여 정권을 탈취하는 경우도 있다.

지나친 인명 피해

혁명을 단순하게 정의하면 집권 세력을 축출하는 행위이다. 집권 세력에 대한 살인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윤리적인 딜레마는 차치하고서라도, 혁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타도대상 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희생되곤 한다. 혁명이 과열되다 보면 분위기에 휩쓸린 군중과 혁명 주도세력이 정도(正道)를 넘어선 행위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자신들의 혁명에 조금이라도 못마땅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을 반동세력(또는 반동분자)로 몰고 탄압하는 것이다. 설사 그러한 의사가 없더라도 권력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탄압이 행해진다.

이는 치안 부재 상황에서 그들의 행동을 제지할 어떠한 수단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권력 수뇌부와 집권층, 그들을 보호하는 군대, 집권 세력의 가족, 나아가 집권 계급 전체, 마지막으로 혁명에 동참하지 않거나 미온적인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까지 대상이 될 수 있다. 프랑스 대혁명방데 학살에서 살해된 사람들은 농민과 노인 등의 민간인이었다.

새로운 독재의 탄생

무력을 통한 혁명의 결과, 과거의 폭압적인 정권을 축출해였음에도 오히려 새로운 독재자나 권위적인 정권이 탄생하는 경우가 많다. 그 원인들을 정리해 보자면

  • 무력 혁명은 피치 못하게 군대에 의존해야 하며, 자연스럽게 군사적 지도자의 역할이 돋보이게 된다. 하지만 군대라는 조직은 기본적으로 상명하복을 요구하는, 민주적인 논의보다는 권위와 효율을 우선시 하는 조직이다. 이러한 조직에 장기간 몸을 담그고 있는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정치도 같은 방식으로 진행하면서 고압적인 통치를 할 수 있다.
  • 위에 대한 연장선으로 혁명이 성공한 뒤 정권의 초창기에도 산더미같이 쌓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절차적 정의보다는 효율을 추구하는 기간이 있다. 이 기간 역시 반대파들을 강압적으로 누르는 등 민주주의가 결여될 수 있는데 문제는 이 기간이 언제까지인지를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여 임시방편으로 시행되던 정책이 어느새 관례로 자리잡을 수도 있다.
  • 혁명을 승리로 이끄는 지도자는 그 과정에서 대개 엄청난 카리스마와 명성을 쌓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독재를 펼치기에도 딱 좋은 조건으로, 어떻게 보면 양날의 검이다. 반대로 지도자의 카리스마와 리더십이 부족하다면 혁명을 주도한 집단이나 계급의 폭주를 막을 수가 없고 이 경우는 후자가 독재 집단이 되어서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할 지도자를 바지사장으로 내세우거나, 서로 권력을 잡겠다고 다시 내전을 벌일 수도 있다.
  • 피흘려 탈취한 정권은 그 과정이 어렵다보니 지도자들도 어느새 초심을 잃고 권력에 애착이 생겨서 자신의 사유물로 취급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게 아니라도 반대파들의 보복 등을 신경써야 하는 입장이라면 마음 편하게 권력을 놓기가 힘들다. 워싱턴처럼 권력을 버리는 경우는 어디까지나 극소수일 뿐이다.
  • 혁명은 권력을 찬탈하는 과정이며, 설사 혁명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혁명 주도 세력 사이의 권력 경쟁이 발생한다. 정권을 무너뜨린다는 목적만 같지 사상은 다른 집단들이 모여 혁명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결국 혁명이 이루어진 후 권력 투쟁에서 승리한 집단이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집단을 탄압하는 경우가 많다. 이후 위협이 될만한 세럭이 사라지면 자연스럽게 독재로 이어지는 것이다.
  • 혁명 후 생긴 체제가 혁명 이전의 체제보다 더 악랄한 경우도 있다. 러시아 혁명 후 소련 공산당은 러시아 민중들에게 빵,평화,토지,행복을 약속했지만 되려 러시아 황실보다 더 폭력적이고 악랄한 체제가 되었다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를 위해서 자신들이 혁명으로 만든 체제를 스스로 붕괴시켰다 , 이란의 이슬람 혁명은 팔레비 왕조의 세속화 정책에 기득권상실을 우려된 이슬람 성직자와 지주들이 주도해서 일어난 만큼 혁명 후 이슬람 종교 중심의 독재로 변질되었다.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프랑스 대혁명은 온건 공화파인 지롱드, 공화파인 자코뱅 등의 세력이 주도권을 갖기 위해 싸웠고 그 과정에서 공포 정치가 행해졌다.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러시아 혁명은 공산주의자인 볼셰비키와 보다 민주적 성향을 띄었던 멘셰비키, 또 나로드니키 등의 세력이 참여했으나 최종적으로 승리한 볼셰비키는 권력을 쥐고 어제의 동지였던 멘셰비키를 탄압했다.

  • 혁명 과정은 많은 혼란과 인명 피해를 수반하므로, 혁명이 또 다른 폭압적인 정권을 낳더라도 국민들이 다시 새로운 혁명에 찬동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 때, 새로운 독재자가 전 정권 이상으로 삽질하면 다시 정권이 뒤바뀔 수 있지만 경제를 안정시키면 독재가 고착화되는 경우가 많다.

상기한 원인들의 복합적인 작용 때문에 혁명을 통하여 혁명의 지지자듵이 꿈꿨던 세상이 정말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유혈사태가 동반되지 않는다면 그나마 나을 수도 있으나, 무력 혁명이라면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민주정치는 포용과 타협을 요구하지만, 혁명은 투쟁과 강단을 요구한다는 딜레마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혁명은 또 다른 혁명을 낳고, 혁명의 지지자들이 원했던 시대가 오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사례

정치적 혁명

비정치적 혁명

관련 어록

"인(仁)을 해치면 적(賊)이라 하고, 의(義)를 해치면 잔(殘)이라 한다. 잔적(殘賊)한 자는 일부(一夫)라 하니, 그를 폐한다 한들 임금을 폐했다 하지 않는다."
맹자
"백성(下民)은 지극히 약하지만 힘으로 위협할 수 없고 지극히 어리석지만 지혜로서 속일 수 없는 것이다. 백성(民)의 마음을 얻으면 백성(民)은 복종하지만 백성(民)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백성(民)은 인군(人君)을 버린다."
정도전, 조선경국전 中
혁명은 사고에서가 아니라 필연에서 나온다.
빅토르 위고
혁명은 다 익어 저절로 떨어지는 사과가 아니다. 떨어뜨려야 하는 것이다.
체 게바라
혁명은 애들 장난[16]이 아니다. 혁명은 미래와 과거 사이에서의 분투다.
피델 카스트로
혁명이란 하나의 불행이다. 그리고 가장 큰 불행은 실패가 예정된 혁명이다.
하인리히 하이네
사는 것은 목적도, 수단도 아니다. 사는 것은 권리다. 사는 것은 다름 아닌 경화(硬化)하는 죽음에 대해서, 과거에 대해서 이 권리를 행사하는 일이다. 이러한 힘의 발휘야말로 혁명이다.
하인리히 하이네
역사상 위대한 혁명은 자유를 단호하게 갈구하는 사람들의 혁명이다.
존 F. 케네디
혁명은 역사의 기관차이다.
카를 마르크스
혁명은 역사기관차가 아니라 열차가 나락으로 떨어지기 전에 열차의 비상 브레이크를 당기는 것이다.
발터 벤야민
혁명의 목적은 자유의 확립, 반란의 목적은 해방
한나 아렌트
반란과 해방 운동이 새롭게 획득한 정치적 자유를 헌법에 담지 못한다면, 반란과 해방보다 더 무익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한나 아렌트
역사가 보여주듯이, 혁명이란 것은 사건이라기보다 과정이다.[17]
존 그린
내가 춤 출 수 없다면, 나는 당신의 혁명에 참여하지 않겠다
If I Can't Dance, I Don't Want To Be Part Of Your Revolution.
옘마 골드만
혁명에 있어서 최고의 권력은 많은 무뢰한의 수중에 맡겨져 있다.
조르주 당통
압제는 혁명의 씨앗이다.
D.웹스터(미국의 정치가)
열등한 자는 평등해지려고 혁명을 일으킨다. 평등한 자는 우월한 자가 되고자 혁명을 일으킨다.
아리스토텔레스
혁명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찾아온다.
벤델 필립스(미국의 평론가)
혁명적 정신은 모두 인간의 조건에 반대하는 인간의 항의 속에 있다.
혁명은 그 시초부터 학대받고 압박받은 자에 대한 정의의 행위이어야 하지 장래에 이루어지는 보상의 약속이 아니다. 혁명을 성공시키는 것은 희망이지 절망이 아니다.
표트르 크로포트킨
혁명에 있어서 인간은 두 종류로 갈라진다. 원인을 만드는 자와 그것에 의해 이익을 얻는 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낡은 주의나 낡은 법률을 인정하지 않고 이 두 가지를 부수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혁명의 특성이다.
에이브러햄 링컨
우리가 무서워하는 것은 억압된 민중이 그 억압의 밑바닥에서 비굴한 만족을 찾아내는 일이다. 아무리 천박하고 불충분한 혁명일지라도 그보다는 낫다.
윌리엄 모리스
지상의 모든 민족은 두 가지 혁명을 경과한다. 하나는 정치혁명으로, 이것에 의해 그 민족은 전제자, 혹은 침략군으로부터 그들 중 자치권을 되찾는다. 두 번째 혁명은 사회 혁명으로, 이 속에서 사회의 여러 계급이 서로 싸워, 최후에 전국민을 위한 정의가 얻어지고 상태가 안정되기에 이른다.
가말 압델 나세르
개혁은 악폐의 수정이요, 혁명은 권력의 양도이다.
에드워드 불워 리턴 (영국의 작가)
혁명에 성공하면 정치가가 되고, 실패하면 범죄인이 된다.
에리히 프롬
실은 혁명이란 아무도 죽이지 않고 살리는 일이다.
루쉰
혁명을 하고도 민중이 여전히 가난하고 불행하다면 그것은 혁명이 아니다.
호치민


각주

  1. 쿠데타와 비교할 필요가 있는데 쿠데타는 대중동원 없이 군대만을 활용한 강제적인 정권교체의 한 방법으로 쿠데타 그 자체로 혁명이 될 수 없다. 하지만, 마냥 반역이라고 하기도 그런 것이 학계에서 혁명으로 여겨지는 튀르키예 독립 전쟁의 예처럼 그저 혁명적 변화를 일으키는 방법의 일종으로 쿠데타를 동원될 수 있다.
  2. 3pg, Goldstone, Jack A. Revolutions: A Very Short Introduction. OXFORD UNIVERSITY PRESS INC, 2014.
  3. 적극적 자유(~을 할 자유)
  4. 소극적 자유(~로부터의 자유)
  5. "Any attempt at revolution is by definition a rebellion, so efforts to overthrow a regime but fail are often called rebellions. Still, not every rebellion succeeds leads to revolution" 8pg, Goldstone, Jack A. Revolutions: A Very Short Introduction. OXFORD UNIVERSITY PRESS INC, 2014.
  6. agency는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 결정을 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진 대상을 지칭하는 말로, 현실에 대해 인식, 체험하고 그것에 대해 작용하는 대상을 지칭하는 주체와 거의 그 뜻이 일치한다. 여기선 혁명을 주도하는 주체를 지칭한 말로, 북한의 주체사상과는 전혀 다른 관점이다.
  7. 영국 '부유층' 출신으로 보수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에드먼드 버크는 가장 급진적인 형태로 진행이 된 프랑스 혁명을 깠지만, 의외로 진보적인 인물이었다. 그가 유독 프랑스 혁명을 깐 이유는 '영국의 정치체제 변동의 역사'와 관계되어 있다. 프랑스부르주아프로테스탄트, 농민 등 모든 하위계층이 협심하여 왕정을 뒤집어 엎었다면, 영국은 귀족층만이 왕에게 대항하여 왕정은 유지한 채 그들의 권리만을 보장받았다. 더구나 그는 법률가의 자제이며 부유층이었으므로, 프랑스 혁명 같은 혼란상을 싫어한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다.
  8. 그러나 조금만 세월이 흐르면 또 다른 특권 계층이 등장한다.
  9. 소련으로 넘어가게 된 계기는 10월 혁명으로 임시정부를 타도한 혁명이다.
  10. 이를 통해서 전두환대한민국 대통령이 되는 발판을 마련했기 때문에 '5.17 쿠데타'로도 불린다.
  11. 해당 사건의 판례인 96도3376의 내용을 읽어보면, 대법관들이 전두환 및 신군부 세력은 '내란행위자'(불법세력)이고 대항한 광주 시민들은 '그에 대한 저항세력'(합법세력)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래는 판결문 내용이다.
    (판시사항) 10.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폭동적 시위진압행위가 국헌문란에 해당하는지 여부(적극) 판결문_보기_-_96도3376
    (판결요지) 5·18내란 행위자들이 1980. 5. 17. 24:00를 기하여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등 헌법기관인 대통령, 국무위원들에 대하여 강압을 가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에 항의하기 위하여 일어난 광주시민들의 시위는 국헌을 문란하게 하는 내란행위가 아니라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난폭하게 진압함으로써,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에 대하여 보다 강한 위협을 가하여 그들을 외포하게 하였다면, 그 시위진압행위는 내란행위자들이 헌법기관인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을 강압하여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한 것으로 보아야 하므로 국헌문란에 해당한다.
  12. 오스만 제국의 붕괴는 두 가지 경우가 모두 포함되어 있는데, 이븐 사우드의 혁명으로 사우디 아라비아 왕국을 건설하게 되어 오스만은 외세가 되었는데, 그 오스만 마저도 케말 파샤의 혁명으로 튀르키예 공화국이 되어버리고 기존 오스만은 불법세력이 된다.
  13. 하지만 인민들이 폭력적으로 변한 것은 결국 혁명 이전에 기존 정치 세력의 가혹하고 폭압적인 지배가 있었기 때문이다.
  14. 마리 앙투아네트의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지"라는 발언은 사실이 아니다. 자세한 것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마리 앙투아네트 문서를 참조 바람. 그러나 당시 왕족에 비해선 검소했다 하더라도, 굶어 죽어가는 서민들이 그런 것을 고려할 이유는 없다.
  15. 다만 프랑스 혁명이 남긴 영향은 살아남아 이후 전 인류의 삶을 바꿔버렸다. 달리 말하면, 사회적 혼란 없이 혁명의 과실을 누릴 수 있는 것은 혁명 다음의 세대들이다.
  16. 영어로는 bed of rose. 주로 'not a bed of rose'의 꼴로 '근심 걱정 없는 생활이 아닌'의 뜻으로 쓰인다. 즉 혁명은 꽃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17. 원문은 "History reminds us that revolutions are not so much events as they are processes."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