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바트칼란드 1월 헌정위기 | |
| 일시 | |
| 2026년 1월 20일 ~ 2026년 1월 23일 | |
| 장소 | |
| 원인 | |
| 리스트서봐로프의 민주화를 가장한 무장 반란 | |
| 교전 세력 | |
| 정부군 | 반란군 |
| 지휘관 | |
| 정부군측 | 반란군측 |
| 피해 | |
| 1명 부상[3] | 2명 사망 2명 부상 |
| 결과 | |
| •황권 회복 •트바트칼란드인의 결집력 고무 •반란군 진압 | |
| 영향 | |
| 1월 총선 지연 사회개혁당 해산 리스트서봐로프 사형선고 | |
개요
트바트칼란드에서 1월 20일 ~ 1월 23일 사이 일어난 사건으로. 리스트서봐로프의 내란 선동에 의해 사회개혁당 일부와 선동된 공민 일부가 기존 헌법의 의회를 거부하고 불법 의회를 선포한 사건.
전개
2026년 1월 20일 유입 된 지 얼마 안된 리스트서봐로프와 사회개혁당 일당이 군인 노조를 멋대로 창설하고, 왕립군의 분란을 초래하려 들자 트리폰 1세는 리스트서봐로프를 구금하고서 긴급조치 1호를 공포하여 레프 알렉산드르 내각을 해산시키고, 브와디프 알렉세이 트바트칼란드 왕립군 총사령관을 긴급조치 특수 담당관으로 임명하며 긴급조치 시국이 시작되었다.
| 《비상조치 1호[4] 선포》
"최근 국성을 위협하고 국가 분위기에 물을 흐리는 자들이 제국의 안정과 안전 공민의 평안함을 무시하며 자신들의 말도 안돼는 억지에 동조 해달라 주창하고 있다. 제국이 건성한 한에 이러한 행위가 가능하다는 것에 짐은 동의 할수 없다. 고로 짐은 제국군으로 하여금 동원케하여 국가를 안정 시키고 1월 총선을 진행하기위해 비상조치를 선포 하는 바이다. 현 조치를 선포하는 즉시 내각은 즉각 해산되며 언론의 자유및 집회 결사의 자유도 일제히 유보된다. 황제의 명령만 있다면 모든이가 영장 없이 체포•구금 될수도 있다. 그럼 긴급조치1호를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바이다." |
| -트리폰 1세의 긴급조치 1호 선포 전문- |
1월 헌정위기
리스트서봐로프의 선동
본인의 구금 이후 자신의 잘못을 자각하지 못한 리스트서봐로프는 지속적으로 황제를 협박하며 석방 되려 했으나 석방되지 못하였고, 이에 리스트서봐로프는 정치권에 대한 선동을 시작했다. 리스트서봐로프는 사회개혁당에 먼저 정치적 선동을 가했다. 처음에는 긴급조치 해제와 개혁안 제출이라는 명목하에 협력하자 하였고, 건국당도 이에 가담했다. 그러나 1월 22일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위기의 시작
리스트서봐로프는 1월 22일 당일 급격히 급진적으로 변했으며, 건국당과 사회개혁당의 공동 선언을 요구하여 공포했다.
| "아국의 민주주의는 특정 정당이나 세력의 소유가 아니라, 국민 모두가 함께 지켜온 헌정 질서의 산물이다.[5]
현재 황제에 의해 부당하게 구금 중인 빽그라드 열사는 폭력이 아닌 사상과 언어, 불복종이 아닌 헌법적 문제 제기를 통해 민주주의의 확대와 국민의 기본권을 주장해 왔다.[6] 이는 범죄가 아니라, 비단 민주 사회에서 보호받아야 할 정치적 표현이다. 우리는 정치적 입장의 차이를 떠나, 사상과 신념을 이유로 한 구금이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와 인권의 원칙에 반한다는 데 뜻을 같이한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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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1월 22일 사회개혁당ㆍ건국당 일동- |
그러나 이후 행보는 이 선언문과 달랐다. 바로 공식적 헌법에 의거한 의회가 아닌 불법의회를 만들고 헌법을 공포해 사회개혁당에서 무장반란을 일으킬 계획을 세운 것이다.
리스트서봐로프는 트리폰 1세를 폐위 시키려했고, 국가재건최고의회를 설립해서 트바트칼란드의 민주주의를 파괴하려했다.[11]
이후에는 군인들까지 폄하도 하였다. 그러며 무장반란에 박차를 가했다.
발각과 진압
그러나 이러한 급진적 행보에 사회개혁당 일부와 건국당은 난색을 표했고, 황제에게 실태를 고발했다. 실태를 들은 황제는 즉각적으로 드미트리와 표도르에 대한 체포 명령을 내렸다.
| 사회개혁당에 반대하는 시위대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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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놀란 사회개혁당은 당사에서 무장반란을 일으켰지만, 트바트칼란드의 공민들이 사회개혁당에 반대하는 시위를 일으켰다.
이어서 트바트칼란드 왕립군도 급히 동원되며 리스트서봐로프의 반란은 1월 23일 새벽 공식적으로 막을 내린다.
이후
백그라드 리스트서봐로프는 사형을 선고 받고, 볼호프 드미트리와 도스토옙스키 표도르는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으나, 1월 23일 아침 드미트리는 단순 가담이 인정되어 사면되었다.
각주
- ↑ 당시 이름은 '한'
- ↑ 가명이 많으니 주의
- ↑ 트리 루트
- ↑ 긴급조치 1호가 맞다.
- ↑ 반대하는 공민들은 제거할 계획까지 세웠다.
- ↑ 트리폰 1세의 개인 연락에 욕설과 협박문을 보내왔으며, 불법의회를 만드는 위헌으로 해결하려했다.
- ↑ 민주주의는 국가를 파괴하지 않는선에서 허락되나 리스트서봐로프는 이미 120명 방을 날린전적이 있다.
- ↑ 본인은 120명 시기에 구국의 영웅 리처드를 카르텔로 몰아 쫓아냈다.
- ↑ 성장이 이어지던 트바트칼란드의 총선도 멈추게 한 사건을 저지름으로써 후대에게 부끄러운 선택으로 남게되었다.
- ↑ 이전부터 분탕질을 해왔으니 관용이 맞다. 범죄자를 헌법상 석방할 이유는 없다.
- ↑ 이에 반대하는 이들은 모두 처형 할 계획까지 세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