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6대 국왕 홍색탑군│虹色塔君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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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 32년 12월 10일 |
| 김 C. New City CVCC | |
| 사망 | 61년 6월 24일 (향년 29세) |
| 김? | |
| 능묘 | 공유릉(共有陵) |
| 재위 | 김 왕태자│해상태자 |
| 32년 12월 10일 ~ 52년 7월 16일 | |
| 김 6대 국왕 | |
| 52년 7월 16일 ~ 61년 6월 24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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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생애
자녀들의 존재?
후김에 의해 발생한 논란. 30대의 나이로 전쟁 중 전사해, 신-니카 김 북벌 전쟁이 종전된 이후 보라공주의 자녀들은 북김을 통치하게 되었는데 우리는 홍색탑군이 누군지 모른다며 성씨를 니씨로 변경했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현재 후김을 통치하는 가문은 김씨 가문의 남은 사람들인데, 실질적으로 록강공주의 후손은 이미 주씨 또는 다른 기타 성씨이기에 배제가 되버린다. 그럼 남은 후손은 홍색탑군의 자녀라는 소리가 되는데 공식적으로 알려진 자녀가 없다. 부왕인 숭종 또한 본관을 변경한 후 왕좌에 오른 왕이기 때문이다. 또한 춘추왕의 존재마저 사실상 애매한 실정인데, 백중대학교에 의회를 마련한 것도 모자라 간이 회의실과 총리실이 있다. 춘추왕은 사실상 신적 존재같은 느낌이라 보아도 무방한 실정.
그러나 70년 11월 8일 그의 존재가 드러났다.
본명은 김춘추.
공유릉 김씨전당에 그가 어록을 남겼는데, 홍색탑군을 욕하는 내용이었다.
또한 두음절의 이름의 경우 유조 부터 시작됐기에 더욱 부왕을 찾기가 어려운 실정이다.자기 아버지를 욕하려나..?
3대 총리인 주흠승이 말하길 왕의 정보를 애시당초 풀 생각이 없다 밝혔으며, 춘추왕에 대한 정보는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의해 유출된 것이라 말했다.
복고왕정당과 달리 공화선도당은 공화제로 변경하길 원하는 마당에 국왕 체제가 계속 유지될지도 불문이다.
여담
- 신-니카 김 북벌 전쟁 도중 도종이 사하고 종전이 되자, 후신과 니카제국에서 그의 유해를 수습해 공유릉에 해벽왕의 두개골을 안치한 뒤[1] 남은 모든 신체의 골격을 전세계 각지로 수출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신체 부위는 세키도리야스국에 유해 9개가 있는 것으로 확인 되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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