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나라/역사

황건적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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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184년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고 대흥산 전투와 청주성 전투를 승리하여 약 500만명의 군사들을 모았으며 5년뒤인 189년 황건적은 한나라를 정복하였다. 이때부터 황나라의 역사가 시작되는데 한나라를 정복한 189년, 황건적의 우두머리인 장각은 낙양의 군사기지를 기반으로 중국 전역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또한, 점령한 마을에 백성들에게는 모두 태평교를 믿게하여 생각보다 쉽게 대륙을 통제했으며 한나라를 정복한지 2년뒤 191년에 장각은 스스로를 황제로 칭하며 누를 황(黃)자에 나라 황나라를 건국하였다.

한반도 정복

중국 대륙을 모두 정복한 황나라는 220년부터 유비,조조,손권등을 처단하기 위해 수많은 전투를 치뤘으며 그런 전투 경험으로 황나라군의 군사력은 아주 막강해진다. 그리고 280년에 황나라는 한반도를 점령하기 위해 고구려를 침공한다. 요동성을 시작으로 안시성,국내성,평양성까지 단 3일만에 정복한다. 일주일뒤 위례성까지 정복한 한나라는 백제,신라,가야 연합국을 상대로 모든 전투를 압살하며 고구려를 침공한지 3주만에 한반도를 통일한다. 장각은 한반도에 300만명의 군사를 보내서 통치하게 했으며 한반도의 모든 값비싼 물건과 발전된 기술을 약탈해갔다.

일본열도 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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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나라는 사실 한반도를 먼저 침공한 이유가 한반도에 이어서 일본열도까지 정복하기 위함이었다. 한반도를 정복하고 5년동안 일본열도 정복을 위한 준비를 마치고 285년에 황나라는 일본열도를 침공한다. 침공 초기에는 일본인들의 거센 공격으로 고전하였으며 황나라는 초기에 전쟁을 끝내려 했지만 실패하자 1차 퇴각을 감행한다. 이후 장각이 직접 전쟁을 지휘하며 2차 침공(287년)을 시작하였다. 약 500만명의 군사들은 손쉽게 교토와 중심지를 점령하였고 288년 9월 결국 일본 제15대 천황인 오진에게 항복을 받는다. 일본 열도 정복으로 인해서 황나라는 동아시아의 강대국이 되었으며 일본 황실문양도 가져온다.

300년 ~ 1000년

일본열도를 정복한 황나라는 이제 연속적인 전쟁으로 혼란스러운 국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여러 정책을 실행하는데 먼저 293년부터 황나라에서 노비제를 폐지하고 여러 서방 국가들과 외교를 시작 하였으며 이런 정책으로 인해서 황나라는 1차 전성기를 맞이한다. 하지만 이 시기에 황나라에는 반란세력이 등장하고 세력을 키웠으며 황나라 황제 장각은 이들을 처단하기 위해 한반도와 일본 열도에서 약 1000만명의 군인들을 모아 반란세력을 모두 없애버린다. 이후 황제 장각은 병으로 사망했으며 황나라는 300년부터 1000년까지 “평화의 시대”를 맞이했으며 아무런 전쟁 없이 황나라의 전성기를 이어간다.

몽골제국과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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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시기가 이어지던 1235년, 몽골제국이 침공하며 대전쟁을 시작한다. 몽골군은 한반도를 먼저 공격하였으며 당시 황나라 황제였던 장건은 200만명의 군인을 한반도로 보낸다. 하지만 황나라군은 약 700년간 아무런 전쟁을 겪지않아서 전투경험을 모두 잊어버렸으며 군사훈련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몽골제국은 침공 3년만인 1238년, 한반도의 70%를 점령했으며 이로인해 황나라는 첫번째 대위기에 처한다. 황제 장건은 여러 서방 국가들에게 지원을 요청하며 연합군을 결성한다. 1241년, 황나라군과 연합군은 한반도로 진격하여 치열한 전투를 하였으며 몽골군은 결국 1244년, 한반도에서 철수한다. 황나라 황제 장건은 이번 기회에 몽골제국을 점령하려고 했지만 당시 신하들의 엄청난 반대로 몽골원정을 포기한다.

1250년 ~ 16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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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나라는 몽골제국과의 대전쟁 이후로 다시 평화의 시기를 맞이한다. 하지만 1400년, 서방 국가들의 압박으로 한반도와 일본열도에 항구들을 개방하고 강제적인 개혁개방을 당했으며 결국 1436년, 황나라는 전제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 국가로 바뀌었다. 이로써 황나라 황실의 권위는 추락하였고 아무런 권력도 없는 그저 국가의 마스코트 신세로 바뀌었다. 이후 황나라의 총리들은 급진적인 개혁을 통해 황나라를 선진국으로 변화시켰고 이 시기에 여러 유럽 국가들을 통해 수입한 물건들이 황나라 백성들에게 아주 인기가 많았다. 또한, 1500년 ~ 1600년까지는 “도시 발전의 시기”로서 낙양의 서양식 건물들이 들어서고 서양인들이 빈번하게 돌아다니게된다.

공백의 3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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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나라는 개혁개방으로 눈부신 국가발전을 경험하고 있었다. 하지만 1620년부터 1900년까지의 역사문서가 현재까지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으며 이 시기를 “공백의 300년”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2003년에 낙양의 한 동굴에서 해석할 수 없는 문자로 쓰여진 비석이 발견되었는데 전세계에 박사들이 모두 모여 이 비석에 쓰인글을 해석한 결과 어느 국가가 1620년에 황나라를 하루만에 점령했으며 그 국가에서 독립하기 위해 어느 선언을 하였고 300년만의 독립했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그 300년간의 자료는 모두 소각되었고 찾지도 말라고 적혀있었다.

1,2차 세계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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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황나라는 1914년 1차 세계대전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는데 황나라는 중립을 선언하며 자국민의 안전만을 중요시했다. 당시 황나라 총리였던 뤼신양은 “중립평화선언”으로 서양 국가들에게 빠른 전쟁 종식과 자국민의 안전보장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서 황나라의 경제발전은 예전과 달리 정체 되었는데 1918년, 전쟁이 끝나고 끝까지 중립을 유지한 결과 황나라는 아무런 피해없이 경제 성장률을 5%이상 끌어올린다. 그리고 황나라는 1920년부터 다당제를 도입하여 기존의 일당체제 정치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였다. 이후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이때도 중립국을 선언하여 위기를 모면하고 1946년부터 황나라는 현대 국가로 발전을 시작한다.

1950년 ~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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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부터 시작된 “경제개발 100년 계획”은 황나라를 현대 국가로의 발전으로 이끌었다. 황나라 수도 낙양은 경제개발의 영향으로 어느 국가의 도시와 비교해도 그 규모나 건물등이 전혀 밀리지 않았으며 황나라는 1980년에 처음으로 국무위원을 개편하여 약 1700년간 존재했던 황건군 조직을 폐지하고 황나라 국방부와 여러 행정부를 만들었다. 이후, 황나라는 약 120조원을 투입해 죽은 사람을 살리는 장치를 개발하였고 2000년 1월 1일, 21세기 돌입기념으로 황나라 1대 황제인 장각을 부활시켰다. 장각 황제는 2005년에 황나라 제95대 황제로 즉위하였다. 그리고 2025년 2월 18일, 황나라 황제 장각은 “새천년, 새국가”라는 구호를 외치며 지금까지 황나라의 역사는 모두 구-황나라의 역사로 취급하고 신-황나라를 건국한다고 모든 국민들에게 선포하였다. 따라서 황제 장각은 신-황나라의 1대 황제로 취임하며 황나라의 역사는 새로 시작되었다.

2025년

2025년 2월 24일, 황나라 초대 국회의원 선거인 황나라 제1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실시하였다. 국민당은 220석으로 압승하였고 이를 견제하기 위해 야권연대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