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2026년 정치파동 또는 트바트칼란드 정치공황은 2026년 5월경부터 2025년 7월 사이의 트바트칼란드의 정치적 공백기이다. 이후 벨린스카야 제라 내각의 출범으로 어느정도 해소 되는 듯 보이다가 끝내 제라 내각이 총사퇴하며 해소되지 못하였다.
이로 인하여 국가의 위기를 느낀 청년장교단이 8.4 사건을 일으켰다.
전개
개학과 학업
2026년 3월경부터 시작된 개학으로 인하여 트리폰 1세를 비롯한 주요 인사들의 트바트칼란드에서의 활동이 줄어들었다. 4월까진 그나마 국가가 유지 되는 듯 하다가 트리폰 1세도 끝내 트바트칼란드를 소홀히 여기며 공황의 도화선을 생성했다.
옐레나의 도망
이런 상황에서 트바트칼란드의 총리로 재임하던 옐레나는 황제를 몇번 찾아가 알현하기도 하였으나 이후 무책임하게 내각을 방치했고 당에 대한 해산도 없이 방을 나갔다. 이로 인하여 트바트칼란드 내각의 장이 사임 의사도 없이 나라를 도망친 최초의 사례가 되었다.
옐레나의 도망과 방치는 공황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고 이로 인하여 105명이던 트바트칼란드 방의 인구는 80여명 언저리까지 급감했다. 그나마 트바트칼란드 왕립군 소속의 군인들은 황실과 국가에 대한 생각으로 나라를 떠나지 않고 국가재건운동과 부흥운동을 벌였다.
황제의 복귀
방학이 다시 돌아오며 트리폰 1세는 다시 트바트칼란드로 복귀했다. 생각보다 방의 상태가 충격적이었기에 무책임을 사과하며 재빠르게 활동을 시작하였다. 복귀한 황제는 군대에 대한 재편과 정치인구 재활성화등 여러 정책을 펼치며 사임하지 않아 명목상 총리직을 유지하던 옐레나를 사직 시키고 벨린스카야 제라 전 문화부 장관을 총리로 임명했다.
그 이후
황제의 복귀로 정치파동은 해결된듯 보였으나 새로 내정한 제라 총리가 단 5일만에 내각 총사퇴를 발표하며 다시금 정치는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불안감을 가진 일부 군부 세력은 커다란 사건을 기획하게된다...
결과
정치파동의 결과로 트바트칼란드 제국은 잠시의 정치적 불황기를 겪었으나 이후 정치 개선을 통해 다시금 100여명을 돌파하는데에 성공했다. 그러나 계획 없는 총리 내정 등의 문제로 군부가 폭주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여담
•이 사건 이후에 옐레나에 대한 평가가 격하되며 총리 재임시절 중 행했던 황실과 국가모독이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