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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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국립문서 고지사항
8.4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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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26년 8월 4일 ~ 2026년 8월 5일
장소
트바트칼란드 제6제국 국기.png 트바트칼란드 제국 프렌트킬린시
원인
군부내의 통제파와 황도파의 갈등 , 벨린스카야 제라 내각 총사퇴 , 정치세력 부재 , 군인정치 허가
교전 세력
진압군궐기군
트바트칼란드 제6제국 국기.png 통제파 군부
제국치안대.png 제국치안대
트바트칼란드 황도파.png 황도파 군부
지휘관
진압군측궐기군측
트바트칼란드 제6제국 국기.png 트리폰 1세 (트바트칼란드 황제)[1]
트바트칼란드 제6제국 국기.png 젬랴노바 스트라나 (트바트칼란드군 군무총감)
트바트칼란드 제6제국 국기.png 쿠즈네초프 니키타 (육군총감)
트바트칼란드 제6제국 국기.png 로만 황태자 (육군참모장)
제국치안대.png 바데로프 스테판 (치안총감)
트바트칼란드 제6제국 국기.png 트리폰 1세(트바트칼란드 황제)[2]
트바트칼란드 황도파.png 아르카디예프 알렉산드르 (육군 군수보)
트바트칼란드 황도파.png 토카예프 레프 (제12보병여단장)
트바트칼란드 황도파.png 먀흐키 스베토리크 (참모장교)
트바트칼란드 황도파.png 오시니아크 안제이 (참모장교)
트바트칼란드 황도파.png 스챤 블라디미르 (제3소대장)
피해
1명 부상[3]1명 부상[4]
결과
•궐기군 자진해산
영향
군부대립 격화
민간정치 확대

개요

8.4 사건 또는 유제프 사건은 2026년 8월 4일 10시경부터 2026년 8월 5일까지 일어났던 트바트칼란드군 황도파의 쿠데타 모의사건이다.


배경

트바트칼란드는 2026년 정치파동으로 제대로된 국가로서의 구실을 하지 못하다가, 트리폰 1세의 귀환으로 2026년 7월 19일에 벨린스카야 제라 내각이 출범 했다. 그러나 제라 내각은 이후 단 5일만에 내각이 총사퇴를 결정하며 며칠간 정치세력이 부재해지게 되었다.

문민통제가 줄어들고 황제 또한 우유부단한 정치적 의사를 밝히며 총리 내정자를 정하지 못하자 이때 그나마 엘리트 계층이던 군부 사이에서는 황제의 결정을 기다리며 문민통제를 유지하자는 측의 기성군부인 통제파와 이참에 좌익세력들을 척결하고 완전히 황제에게 권력을 이양하자는 황도파가 대립하게 되었다.

2026년 7월 19일에는 육군 총사령부에서 쿠즈네초프 니키타 소장이 토카예프 레프 중령과 말싸움을 벌이기까지도 하였고,[5] 2026년 7월 말을 기점으로 민간정부인 제라 내각의 사퇴까지 일어나자 군부는 쿠즈네초프 니키타 육군총감을 비롯한 기성군부를 주축으로 한 통제파와 아르카디예프 알렉산드르 준장을 비롯한 청년군부를 주축으로한 황도파로 완전히 나뉘어지게 되었다.

제라 내각 사퇴 이후 총리 내정자 지명이 늦춰지자 2026년 8월 3일부터 아르카디예프 알렉산드르 준장은 궐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알렉산드르 준장은 청년장교들을 포섭하고 궐기문을 작성하였다.


전개

8월4일

8월 4일 오후 10시경, 토카예프 레프 제12보병여단장은 알렉산드르 준장에게 12여단의 통제권을 일임했다. 알렉산드르 준장은 스베토리크 소위에겐 1소대를 이끌고 트바트칼란드 공산당 당수인 가닐렌 유제프을 피습할 것을 명했고, 안제이 소위에겐 2소대를 이끌고 추야크 점령을 명했다. 그리고 블라디미르 소위에겐 3소대를 이끌고 육군 총사령부 진입을 명했다.

오후 11시경, 가닐렌 유제프의 집 앞에서 스베토리크 소위의 1소대 병력이 내리고 집으로 진입했다. 유제프는 정부의 관료가 아니었기에 제국치안대 경관들의 경호가 있진 않았다.

유제프 피습.jpg
피습 당하기 직전인 가닐렌 유제프

유제프의 자택으로 진입한 1소대 병력들은 침실에서 자고 있던 유제프를 포위했다. 뒤이어서 스베토리크 소위가 들어왔고, 스베토리크는 유제프에게 경례를 올리고 총을 격발했다. 그러나 3발중 2발이 불발이고 1발만이 유제프의 가슴에 박혔다. 궐기군들은 유제프가 쓰러져 숨을 멈추자 유제프의 자택을 떠났다. 하지만 유제프는 갑작스러운 쇼크로 잠시 기절했을 뿐, 사실 죽지 않은 상태였던지라 목숨을 구했다.

한편 2소대 병력들은 추야크 앞에 도착했고, 위조한 군무총감의 칙서를 바탕으로 추야크 앞 제국치안대 경관들을 무장해제 시켰으며, 3소대는 육군 총사령부에 도착해 수비병들을 제압하고 육군총감실에 남아 업무를 보던 쿠즈네초프 니키타 육군총감에 총을 겨누었다. 궐기군은 피습하려했으나 토카예프 레프 중령의 제지로 쏘진 못했다.

8월 5일

궐기군은 선언문을 발표하고 궐기를 이어나가려했으나, 블라디미르 소위의 투항과 총사령부의 대응 및 황제가 사면과 내각 수습을 약속하자 자진 해산했다.


각주

  1. ↑ 군통수권자로써 중재 담당
  2. ↑ 군통수권자로써 중재 담당
  3. ↑ 가닐렌 유제프 공산당수 피습.
  4. ↑ 진압군 사격으로 주동자인 알렉산드르 준장이 공격 당했다.
  5. ↑ 둘의 친분이 두터웠기에 당시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