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시로카이간 선

후지시로카이간 선 (藤城海岸線)은 아키시오 후지시로 도 하나바 구하나바모토야마 역에서 마에하마 현 카나우라 시 카나우라 역을 잇는 철도 노선이다.

개요

후지시로 도에서 수도권 근교 초유의 인기 관광지인 햐쿠주리 해안 (약 45km)을 거쳐 마에하마 현 서부의 중핵시인 카나우라 시를 연결하는 철도 노선이다. 관광객과 행락객 수요가 상대적으로 적은 평일 시간대에는 선로 용량의 여유가 부족한 하마사카 본선의 바이패스 노선 역할도 겸하고 있다.

카나우라 역 ~ 토쿠하마 역 구간은 토쿠하마 선 (徳浜線)으로서 1929년에 개업했다. 본래는 토쿠하마 정의 토굴에서 생산되는 새우젓, 토쿠하마 은광의 은을 수송하기 위해 만들어진 노선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토쿠하마 은광이 쇠퇴하고, 연선의 산업단지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통근객들을 수송코자 1947년 여객 겸용 노선으로 전환되었다.

나머지 구간에 대한 구상은 1970년대부터 이루어졌다. 고도경제성장과 주5일 근무제의 도입, 휴일수의 증가, 수도권으로의 인구 집중 현상은 관광 수요를 폭증시켰고, 후지시로 도에서 별로 멀지 않으면서 광활한 해안선을 가지고 있었던 햐쿠주리 해안을 방문하는 관광객, 행락객 수도 매년 폭증했다. 교통 정체를 흡수하기 위해 기존의 해안도로 (국도 제19호선)를 확장하고, 주말에는 임시 고속버스 운행도 이루어졌지만 결국은 해안도로를 경유하는 것이었기에 교통 정체를 더욱 가중시킬 뿐이었다. 때문에 철도 노선을 신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기 시작했고, 국토교통부는 햐쿠주리 해안과 후지시로 시내를 연결하는 신규 철도 노선의 계획을 1974년에 공고하였다. 당시에는 후지시로 남부해안선으로 불렸고, 카나우라 역까지의 연장이 확정된 1983년 이후에는 카나우라 신선 (金浦新線) 등으로 불렸다.

본래 남부해안선은 사철 노선으로 운영될 계획이었다. 초창기, 남부해안선 부설 사업 입찰에 관심을 보였던 회사는 국철과 경쟁하고 있었던 후지시로 전기철도[1], 그리고 야쿠자 기업인 사기타구미였다. 사기타구미는 "신후지시로 해안철도 주식회사"라는 법인까지 세우며 입찰에 관심을 보였으나 북웅파의 영역인 한인타운 (키타마치 코리아무라)을 침공하였다가 반격을 당해 세력이 꺾이고 말았고, 사업을 철수했다. 이어 후지시로 전기철도 또한 입찰을 포기하였다. 후지시로 전기철도는 "사업의 채산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이유로 입찰을 포기하였으나, 항간에는 내각 및 국회와의 조율에서 기대만큼의 지원금을 보장받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이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었다.

1978년, 노선이 계속 유찰됨에도 불구하고 남부해안선이 지나가기로 발표된 연선 지역 (후지시로 도 니시 구, 자카비베츠 군, 하타노 군, 오시베 군) 주민들로부터 노선 설치를 촉구하는 탄원이 빗발치자, 국토교통부는 당초 사철에 양도한다는 노선 사업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노선은 국철에서 건설하고 운영하는 것으로 결정되었고, 종점이 될 예정이었던 오시베 역에서 이름을 따 오시베 선 (忍部線)으로 노선을 명명하였다. 이 때 오오타 건설, 건설업을 병행하던 사기타구미 측에서 자신들이 연선 예정지에 조성한 택지에 입주한 주민들로부터 받아낸 "남부해안선 부설 대비 교통분담금"을 횡령한 사건이 일어나 물의를 빚기도 했다.

같은해 첫 삽을 뜬 오시베 선은 1983년 하나바모토야마 ~ 자카비베츠 구간이 후지시로 순환선과 동시에 개통되었다. 후지시로 순환선을 통해 기타 노선과의 환승이 용이한 신후지시로 역, 후지시로 역 (미야코차야 역)까지 직결운행을 실시함으로써 도심과의 연계를 용이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어 카나우라 역까지의 연장 계획이 발표되었고, 토쿠하마 선 구간을 통합해 노선명을 후지시로카이간 선 (藤城海岸線)으로 결정지었다. 당초 노선명은 카나우라 선과 햐쿠주리카이간 선 중에서 결정될 예정이었으나, 후지시로의 지명도를 십분 활용코자 했던 연선 국회의원들과 주민들의 압력으로 후지시로카이간 선으로 명칭을 굳혀버렸다.[2]

1987년 3월 14일 자카비베츠 ~ 오시베카이간 구간이 추가 개통되었다. 오시베카이간 ~ 카나우라 구간은 신페이 내전이 끝난 1991년 3월 17일에서야 완공되었다. 전 구간 개통에 시간이 많이 소요된 것은 급행 운행을 대비한 대피선 신설로 인해 공기(工期)가 길어졌고, 신페이 내전 수행으로 인해 해당 구간의 건설에 들어갈 예산이 축소되었기 때문이다.

국철은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상당한 건설 부채를 안고 노선 운영을 시작했으나 결과는 대성공적이었다. 전 구간 완공 첫 해인 1991년에만 연간 이용객 1,000만 명을 넘기는 대기록을 세웠다. 2010년대에 들어 연선의 부동산 개발 및 유료특급열차의 운용, 관광 상품의 개발을 통해 국철의 캐시카우 노선으로 활약하는 중.

연선 현황

건설 당시부터 급행 운행과 고속 운행을 상정하였기 때문에 선형이 매우 좋다. 우선, 오구리 역 이동 (以東) 구간에서는 건널목이 전무하다. 성토 구간과 고가 구간으로 건설하였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1920년대에 건설된 지상 구간으로 건널목이 존재하는 오구리 역 이서 구간은 2009년부터 단계적으로 입체화 공사가 진행 중이며, 복선화 공사도 병행 중이다. 오오자토 역 ~ 카나우라 역 구간이 2019년까지 복선 및 입체화가 완료되면 사업이 완료된다.

기점인 하나바모토야마 역에서 자카비베츠 역 구간은 후지시로 도 하나바 구의 신도심 구간을 빠져나가 마에하마 현 니시후지시로 시, 자카비베츠 시의 주택 지역이 이어진다. 이어 스미카마우라 역 ~ 타카무라카이간 역 구간은 햐쿠주리 해안 국립공원 연선을 따라 지어졌기 때문에 열차를 탄 상태에서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해안선과 해수욕장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해안선 가까이 지어진 점은 양날의 검과 같아서 지진해일이 발생할 시 직격타를 입기 쉬운 구간이기도 하여 진도 3 이상의 지진이 감지되면 해당 구간은 즉시 운행을 중단하고 대체 수송을 실시하도록 되어 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로 발생한 2011년 아키시오 서해안 쓰나미 사태 당시 고가 지주가 염해(鹽害)를 입고, 해수욕장과 연결되는 오시베카이간 역이 침수되는 등 상당한 피해를 입기도 했다.

토쿠하마 선과 분기되는 오구리 역을 넘어서면 완연한 내륙 구간이 되며, 고시히카리쌀로 유명한 카나우라 평야를 지나간다. 상대적으로 수요가 적었던 일부 구간은 1929년 당시의 단선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으나, 연선의 개발 분위기에 맞물려 입체화와 복선화가 단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운행 형태

당초 도심과의 연계를 목적으로 지어진 노선이기에 노선 안에서만 운행하는 열차는 많지 않으며, 양끝의 기종점에서 후지시로 순환선, 하마사카 본선과 상호 직결 운행을 하고 있다.

우등 열차

하마시오 (はましお)는 1987년 3월 14일 오시베카이간 역까지의 구간이 개통된 이후 도입된 유료특급 열차로, 승차구간의 승차권 외에 특급권이 필요하다. 일 왕복 16개편이 운행되며, 성수기 (6월 ~ 9월)에는 임시 열차를 투입해 일 왕복 28개편까지 증회된다.

일부 열차는 카나우라 역에서 하마사카 본선카와시로 선, 군바 선을 경유, 에바라 역 , 츠키구시 역, 군바 역까지 운행한다.

정차역은 아래와 같다. ( ) 괄호 표시는 일부 열차만 정차하는 역이다.

사용 차량

E231계를 베이스로 일본의 긴키 차량[3] 다이한 차량이 공동 개발한 차량. 통근형인 0번대와 근교형인 1000번대, 2000번대 접수대가 고루 쓰인다.
특급 하마시오에 투입되는 우등형 전동차.
특급 하마시오에 투입되는 우등형 전동차.

이전에 사용된 차량

역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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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북웅파 계열 자본에 흡수된 것은 1985년의 일로, 이전에는 온천업을 하던 카시와기 상사 (柏木商社)가 대주주였다.
  2. 여기에는 사정이 있는데, 후지시로카이간이라는 노선명은 제3의 대안이었다. 카나우라 선은 카나우라 지역 주민들이, 햐쿠주리카이간 선은 햐쿠주리 해안 지역 주민들이 밀면서 충돌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도이자 최대 도시이며 기점 도시인 후지시로를 부득불 따 온것.
  3. 긴키 닛폰 철도 (긴테쓰)의 계열사로, 아키시오의 철도 회사들은 관행적으로 일제 부역 논란에서 자유로운 긴키 차량으로부터 차량을 수주받아왔다. 히타치, 니혼 차량 등은 전범기업으로 부역한 사실이 있다는 이유로 기피당하는 중. 긴키 차량도 2차 대전 이전에 설립된 기업이지만, 아키시오 철도 기업들이 차량 개발 수준이 선진적이었던 일본 철도 차량 기업들과 완전히 연을 끊기에는 현실적 어려움이 많았기에 그나마 1945년 자본 개편이 이루어진 긴키 차량과는 우호적인 관계를 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