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영종: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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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계 (成桂) → 단 (旦)
| 방원 (芳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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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왕 환조, 모후 의혜왕후
| 부왕 태조, 모후 신의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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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의왕후
| 폐비 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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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교
| 유교 (성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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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0cm
| 179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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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조 (太祖)
| 영종 (靈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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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천명인광덕성흠 (啓天明仁匡德成欽)
| 체천지강익헌예덕 (體天至康翼憲睿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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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문헌의정선무열신영대왕 (聖文憲懿正宣武烈神英大王)
| 여민기천패헌희덕위효대왕 (戾愍欺天悖憲稀德委孝大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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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냥|''' 왕은 이르노라. 하늘이 많은 백성을 낳아서 군장(君長)을 세워, 이를 길러 서로 살게 하고, 이를 다스려 서로 편안하게 한다. 그러므로, 군도(君道)가 득실(得失)이 있게 되어, 인심(人心)이 복종과 배반함이 있게 되고, 천명(天命)의 떠나가고 머물러 있음이 매였으니, 이것은 이치의 떳떳함이다. '''|태조 전위교서 일부}}
{{이냥|''' 내가 덕이 부족한 몸으로서 일찍이 세자의 자리에 있어 오직 뜻을 공경히 이어 받들지 못함을 두려워하였는데, 부왕(父王) 전하께서 명을 내리시기를, ‘내가 병이 들어 오랫동안 정사를 보지 못하여 만기(萬幾)의 중함을 생각하니, 더욱 마음에 병이 된다. 너에게 정사를 부탁하고 한가롭게 있으면서 병을 잘 조리하겠다.’ 하시기에, 내가 두세 번 굳이 사양하였으나 할 수 없어서 승락하고, 이날에 마지못해 대위(大位)에 올랐다. '''|영종 전위교서 일부}}


==개요==
==개요==

2025년 4월 8일 (화) 16:23 판


조선왕조.png
조선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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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태조 영종 단종 태종
제5대 제6대 제7대
세종 연산군 -
조선 제2대 국왕
영종ㅣ靈宗
영종34.png
출생 1367년 6월 21일
동북면 함주목 귀주동 이성계 사저
즉위 1402년 10월 22일 (35세)
한성부 경복궁 근정전
사망 1426년 12월 7일 (향년 59세)
한성부 전옥서
능묘 현릉 (玄陵)
재위기간 조선 왕세자
1392년 8월 13일 ~ 1402년 10월 22일
조선 국왕
1402년 10월 22일 ~ 1423년 8월 5일
조선 상왕
1423년 8월 5일 ~ 1426년 12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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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전주 이씨
방원 (芳遠)
부모 부왕 태조, 모후 신의왕후
배우자 폐비 민씨
자녀 1남
종교 유교 (성리학)
신장 179cm
묘호 영종 (靈宗)
존호 체천지강익헌예덕 (體天至康翼憲睿德)
시호 여민기천패헌희덕위효대왕 (戾愍欺天悖憲稀德委孝大王)
내가 덕이 부족한 몸으로서 일찍이 세자의 자리에 있어 오직 뜻을 공경히 이어 받들지 못함을 두려워하였는데, 부왕(父王) 전하께서 명을 내리시기를, ‘내가 병이 들어 오랫동안 정사를 보지 못하여 만기(萬幾)의 중함을 생각하니, 더욱 마음에 병이 된다. 너에게 정사를 부탁하고 한가롭게 있으면서 병을 잘 조리하겠다.’ 하시기에, 내가 두세 번 굳이 사양하였으나 할 수 없어서 승락하고, 이날에 마지못해 대위(大位)에 올랐다.
영종 전위교서 일부

개요

고려 말기의 명장이자 조선을 건국한 조선왕조의 창업군주로 조선의 초대 국왕

묘호는 태조(太祖), 성은 이(李), 초명은 성계(成桂). 즉위 후 개명한 이름은 단(旦).

귀신같은 활솜씨와 지휘력으로 홍건적과 왜구를 연달아 막아내 최영과 함께 구국의 영웅이 되었다. 고려 말 최대 군벌로서 실력을 갖춘 데다가 신흥무인세력들과 급진 신진사대부들의 협력과 지지를 받으며 정계의 주요 인물로 떠오른다. 위화도 회군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정적들을 차례로 숙청했으며 마침내 1392년에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개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