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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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모든 전쟁은 내전이다. 왜냐하면 모든 인류는 형제이기 때문이다.
프랑수아 페늘롱
어째서 이토록 야만적(uncivil)인 전쟁을 내전(civil war)이라고 부르는가?
엘리자베스 핏치

내전(內戰)은 한 나라 또는 공동체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말한다.

상세

영어로는 '시빌 워(civil war)'라고 부르며, '시민 전쟁', '시민끼리 하는 전쟁'이라는 의미가 된다. 정권(헤게모니)을 잡은 쪽에서는 '반란군에 의한 내란(內亂, rebellion)'이라고 격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주권과 영토를 걸고 국가끼리 싸우는 일반적인 전쟁과는 달리, 국가 내부적으로 파벌끼리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정치성을 띄는 것이 특징이다. 일단 전쟁인만큼 당연히 무력이 사용된다. 수습에 실패할 경우엔 1국가 다체제가 들어서거나[1] 아예 삼국지처럼 국가가 쪼개지는 사태도 발생한다. 국가가 아예 해체되어 버리는 후자의 경우, 내전이 아닌 그냥 전쟁이나 국제전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바로 그런 예 중의 하나다.

과거에는 지배 계층끼리의 헤게모니 투쟁형 내전(예: 장미전쟁, 일본 전국시대 등)이 많았기 때문에 외침에 비해서 오히려 피해가 적을 수 있었다. 외침은 지배 계급(군인)과 징병된 일부 민간인만의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민간인에 대한 약탈, 방화, 학살 등을 수반하는 반면, 이러한 내전은 일단 권력을 잡으면 자신에게 세금과 충성을 바칠 백성들은 곧 그들의 재산이었기 때문에 민간인들을 함부로 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본의 세키가하라 전투 같은 경우 사무라이들이 죽기살기로 싸우고 있는걸 백성들이 도시락 까먹으면서 누가 이길지 재미있게 구경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물론 백기, 항우, 조조 같은 학살자들도 있기는 했지만.[2]

그러나 현대에는 일반 전쟁에 비해 그 피해가 훨씬 더 심각하다. 내전이 어느 한쪽의 승리나 평화적으로 종결되어도, 이미 스스로의 국력을 타인이 아닌 자신들의 손에 의해 잔뜩 소모시킨 관계로 국가가 파탄나는 데다 주변의 멀쩡한 국가들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 외전이었다면 우리가 많이 피를 본 만큼 적국도 피를 많이 봤으니 더 위협이 될 주변 요소가 적지만[3] 내전이었다면 스스로 힘을 약화시킨 셈이니 옆에 있던 멀쩡한 국가가 삼키려들 수도 있다. 이는 무력적 개입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전후 복구에 이런저런 개입을 함으로서 문화적/경제적으로 자국에 종속시키는 사회적 개입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건 국가의 입장에서는 썩 좋지 않은 셈. 더불어 전쟁의 양상도 전쟁 지역과 후방 지역이 비교적 명확히 구분되어 초기 6.25 전쟁이나 베트남 전쟁, 혹은 우크라이나 전쟁처럼 국가 전역이 전쟁터가 되는 상황이 아닌 한 전쟁 지역에서만 수탈과 파괴가 발생하는 외전과 달리[4] 내전의 경우 전쟁 전에는 (예비) 적군과 아군이 같은 국가에서 혼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5] 전쟁 지역과 후방 지역이 불명확한 경우가 대다수라 전 국토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이에 따라 피해도 전 국토적으로 발생하고 후유증도 오래 남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일반적인 국가간의 전쟁의 경우 기본적으로 전후 책임을 상층부에 전가하기도 쉽고, 유럽을 비롯한 다양한 곳에서 옛날 전쟁은 귀족들만 하던 하나의 '특권'이던 시절 형성된 관습법적 문화의 영향도 있어서 2차대전 당시 동부전선 같은 예외적으로 이데올로기가 과잉된 전쟁들 빼곤 나름 상호간 최소한 포로나 민간인 대우에 관해 암묵적인 상호존중이 생기기 마련이다. 당장 인류 최대, 최악의 전쟁이었던 2차대전만 해도 나치스의 인종 이념에 따라 서부전선에선 그래도 비교적 통상적인 전쟁의 규율이 지켜지는 편이었다.[6] 또 전쟁 중이나 전쟁에서 승리하면 내적 단합을 꾀하기도 쉽다.[7] 반면 근현대의 내전의 경우 주로 이데올로기적, 국가 내 다른 민족간 적대적인 감정이 이미 사회 내에서 팽창할만큼 부풀어있고, 근본적으로 서로 타협할 수 없는 "같은 나라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두고 일어나기 때문에 더욱더 무차별적이고 참혹해지기 쉽다. 이미 기존에 존재하던 사회적 분열을 자양분 삼아 터지기 때문에, 평소에는 미치광이 극단주의자로 몰릴 법한 특정 정파적 광신도들이 갑자기 힘을 얻으면서 일상적 차원에서 완장질 하나에 상대편 지지자로 의심받아 후방 테러의 타겟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내전 발발 이전엔 어쨌든 서로 이웃간이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런 소위 '내부의 적 색출'이 극단화되기 마련이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던, 끝 안 나는 소모전 끝에 타협이던 정식 국가 분열이던 간에 이렇게 평소엔 이웃, 친구, 친지였던 사람들이 정치적 이데올로기 때문에 서로 살해하고, 박해하고, 밀고했던 경험은 심각한 사회적 불신을 초래해 전쟁이 끝나도 정상적인 사회 재건을 장기적으로 힘들게 한다. 러시아부터 스페인, 그리스, 한반도, 중남미까지 20세기의 각종 민족 내 내전들은 전부 예외 없이 전쟁 자체의 파괴뿐만 아니라 이런 식으로 극심한 집단적 트라우마에 기반한 사회적 불신과 국가 분열, 독재와 정치적 테러 같은 불운한 결과를 낳았다.

또한, 타국과의 싸움이라면 차라리 종전 후 보상을 요구할 길이라도 있지, 내전은 말 그대로 적도 국민, 아군도 국민이기에 그 어느 누구에게도 보상을 요구하기가 힘들다. 같은 나라에서 똑같이 망했는데 뭘 어떻게 털어먹겠나.[8] 오히려 무리해서 털어먹으려 들다간 외부의 위협과 손잡거나, 이렇게 망한 거 우리만이라도 잘 살아보자며 2차, 3차 내전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유형은 아래와 같이 크게 4가지 형태로 나뉜다.

  • 상충되는 이념 간의 전쟁[9]
  • 이해관계가 같은 세력끼리 편을 나누어 싸우는 투쟁[10]
  • 같은 나라 안에 묶인 민족, 종교 간의 헤게모니 투쟁[11]
  • 같은 나라 안에 묶인 민족, 종교, 지역 토착세력 중 특정 세력의 분리독립 시도 과정에서 벌어지는 전쟁[12]

내전이 끝나면 사회 안정을 위해 강력한 독재자의 출현이 뒤따르거나, 반대로 극심한 혼란 속에 국가 수반이 암살당하는 경우도 있다.

내전의 필수요소 중 하나가 무력 사용이기에, 처음에는 온건하던 시민운동도 일단 무력만 개입되기 시작하면 내전으로 비화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폭력적 시민운동은 대다수 국가에서 불법으로 규정하고 철저하게 응징을 가한다. 사실 폭력적인 시민운동을 손 쓰지 못할 정도의 정부는 이미 막장이라고 봐야 한다. 역으로 내전을 종결하는 평화 협상을 진행할 때, 향후 평화적인 시민운동 및 정치정당으로서의 위치를 보장하는 대가로 무장을 해제하고 교전을 멈추게 하는 형태로 협상을 진행할 때도 많다.

흔히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들은 기껏 독립을 이루기 무섭게 힘의 공백과 노선 갈등이 생겨 내전을 치르고는 한다. 하지만 내전의 수습이 성공적이면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표현처럼 국가 정체성이 더욱 확실해지는 효과도 있고, 구습이 많이 정리되고 진전된 시대로 도래하기도 한다. 경제가 발전한 송나라를 낳은 오대십국시대고려를 낳은 후삼국시대 등이 있다. 메이지 유신을 성공하게 한 일본의 무진전쟁과 노예제와 같은 구습을 철폐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 통합을 이루고 연방의 결속을 굳건히 하여 훗날 초강대국으로 성장할 발판을 마련한 미국의 남북전쟁도 대표적인 사례이다. 다만 이렇게 내전이 결과는 좋았다로 끝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한데, 무진전쟁이나 남북전쟁 같은 경우 외세의 직접적인 개입이 거의 없었고 순수한 정치적 갈등으로 민족, 종교적 갈등이 아니었다.

이 전쟁들이 다른 내전과 다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내전의 양상은 전면전이었지만, 본질적으로는 국민 다수를 통일 정부에 대항한 정치세력이 일방적으로 끌고간 제한전의 측면이 있다. 좁게보면 종교적, 인종적으로 동일한 정치세력간 갈라져 치른 전쟁인 것. 그래서 국민들끼리 서로 방패막이로 너 죽고 나 살자 식으로 끝장을 보기 보다는 어느 정도 자제한 편으로 무진전쟁에서 도쿠가와 요시노부에도 성이 포위되자 큰 무력 충돌 없이 성문을 열고 신정부군에 항복했고, 남북전쟁에서도 남부는 북부와 협상의 여지를 남겨놓기 위해 워싱턴 D.C.를 함락시킬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고 북부도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도 남부에 대해 상당히 관대한 전후 처리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간 휘하의 시민들부터 등을 돌리기 때문. 물론 전쟁 후반부에 가면서 대립이 격화되어 윌리엄 테쿰세 셔먼이 남군의 수도 애틀랜타를 싹 불태웠고, 1차 무진전쟁에서 패한 잔당이 아이즈 번, 홋카이도로 도주해 2,3차 전쟁인 동북전쟁, 에조전쟁을 일으키면서 그 일대인 동북지방은 에도와 달리 초토화되었다. 내전이 격화되는 시점에서는 결국 양 내전 모두 후반기 민간인 피해가 확대되었으며, 링컨 대통령이 남부 출신에 의해 암살당하자 빡친 북부가 남부에 군정을 실시했으며, 메이지 유신도 안정화되기까지 메이지 6년의 정변, 세이난 전쟁 등 반유신 세력의 반란사례도 적지 않았다.

남북전쟁의 가장 큰 효과는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 확립에 기여했다는 것, 미국은 애초부터 13개 식민지의 연합이었기에 각 주의 힘과 목소리가 컸다. 남부연합이 연방탈퇴를 하며 주의 주권 드립을 친 것도 속내는 노예제 사수지만 겉으로 드러낼 명분으로는 그게 제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겉으로나마 주의 주권을 위해서는 나라가 쪼개지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공공연하게 내세워질 정도로 각 주의 영향력이 셌던 것. 하지만 남북전쟁 이후에는 달라지는데 이전에도 그랬고 이후에도 미국은 주가 연방탈퇴를 하려고 하는 때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명문화된 규정이 없다. 문제는 왜 없냐는건데 여러 주가 연합하여 정부와 국가를 조직하고 4년이나 싸웠는데도 실패한 일을 다시 하려는 주가 없기 때문이다. 즉, 남북전쟁에서 북부(현 미국)이 자력만으로 남부를 확실하게 조져놓았기에 선례가 되어 이후에는 탈퇴드립을 못 치게 된 것. 물론 당연히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더 뚜렷해졌다. 실제로 연방정부의 뜻에 분리독립시도도 아니고 고작 주지사가 주방위군을 동원해서 항명을 한 리틀록 사건이 1950년대에 있었는데, 그나마도 연방정부에 저항하겠다고 한 게 아니라 인종차별주의자인 주지사가 연방정부의 흑백통합방침에 반발해서 흑백분리를 유지하겠다고 버틴 것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분리독립 시도 따위가 아니라 그냥 상급자에게 항명한 것인데 그마저도 그리고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이 3204호 명령을 내리고 주방위군을 연방군에 편입시켜서 바로 무력화시켜 버렸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주지사와 주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일본의 무진전쟁은 반대로 반군이 승리를 거두었지만, 이후 승리한 집단이 천황 중심의 체제하에 주도한 메이지 유신의 성공으로 인해 일본 열도의 시민들에게 일본인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크게 기여한 내전이었다. 지금도 일본은 수십개의 과거 번, 현재 현으로 구분된 지방자치가 강한 국가로 일본인이라는 통일 국가의 개념이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무진전쟁 이후로는 천황을 중심으로 일본의 국민이라는 의식도 강해지고 메이지 정부주도의 경제개혁과 각종 사회개혁이 통해 그것을 유지할 수 있었다. 사가의 난, 세이난 전쟁 등 반란을 일으킨 변방의 번들도 결국 제압되어 메이지 정부에 굴복했다.

그런 점에서 두 전쟁 모두 '같은 미국인,일본인들끼리 싸우다 화해'라는 명제 아래 지금까지 자국에서도 이슈가 되지 못한 심각한 자국내 소수박해는 그대로 남아있다. 이렇게 패배한 남부를 어물쩡 다시 받아들이던 과정에서 막상 전쟁의 목적이었던 해방 노예 흑인들의 민권은 다시 개판이 되어, 결국 20세기 내내 미국 사회를 뒤흔든 인종 문제의 씨앗을 낳았다는 점에서 순전 백인들과 연방 정부만의 입장인 "그 이후 남부와 북부는 화해해서 세계최강 미합중국을 만들어냈습니다"란 식의 역사 해석은 현대 와서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원래 처음부터 남부건 북부건 흑인을 노동력 취급했지 시민취급하지도 않았고 그들의 정치적 의사따윈 전쟁에 하나도 반영하지 않았다. 2022년 현대까지 와서 미국에서 가장 사람들을 골치 아프게 하는 사회 문제가 인종 갈등임을 생각하면 남북전쟁이 전적으로 좋은 쪽으로만 끝났다는 것도 한물 간 관점이다. 물론 노예제도는 확실히 없어지는 등 개선된 면도 없지 않으나 기존에 주장하던 만큼은 아니라는 것. 무진전쟁 역시 이전부터 막부 중심의 정치구도에서 변방이었고 패주한 막부파와 손잡고 저항한 동북지방, 현 도호쿠에 대한 차별이 심각해서 도호쿠는 일본의 경제발전시기에도 낙후되어 가난한 지역 딱지를 벗지 못했고 그 지역은 물론이고 원래 동북지역에 존재하던 야마토 민족과 다른 민족인 에미시들의 후예들, 홋카이도의 아이누인들도 식민지처럼 탄압당했고 그외 종족이 다른 류큐인들도 탄압당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까지도 일본의 소수민족으로 인종차별에 대해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민족 갈등과 종교 갈등이 관련된 내전의 경우 국가를 말아먹는 1등 테크이기도 하며, 육지는 북두의 권으로 바다는 원피스로 만든 소말리아 내전, 그에 못지않게 나라를 막장으로 만든 콩고 내전, 예멘 내전, 시리아 내전이 있다.

사실 이렇게 민족 문제가 얽힌 내전은 상당히 복잡한 문제로 어느 편의 입장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쟁의 성격에 대해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분리독립을 목표로 하여 소수민족이 일으킨 내전의 경우 그 국가의 다수/주류 민족의 입장에서는 내전 또는 반란에 불과하지만 소수/비주류 민족의 분리독립파들의 입장에서는 그들을 같은 국민으로 생각하지 않으니 내전이란 말은 가당치도 않고 독립운동 내지는 자기 고향을 강점한 외세 또는 적국에 대항한 전쟁으로 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팔레스타인에서 터진 무력충돌 같은 경우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자기 나라 내의 내전 또는 반란을 '진압'한 것으로 보겠지만 팔레스타인 입장에서는 '적국' 이스라엘과 전쟁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 특히 유고 내전과 같이 내전의 결과 실제로 나라가 분단되거나 분열되었다면 더욱 논란이 생길 수 있다.

미국이나 스페인, 르완다, 이라크, 앙골라, 알제리처럼 어쨌든 결과론적으로만 보면 내전 종식 이후에 재건과 국가 발전에 성공한 경우도 하나같이 예외 없이 내전에 관련된 역사적 문제와 정치적 의미는 화목한 대화를 순식간에 얼어붙게 만들 만한 파급력을 가진 집단적 트라우마와 지금까지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기나긴 정치적 악영향을 낳는다. 다른 나라랑 비교하면 그래도 양차대전도 비껴갔고, 비교적 평온한 20세기 근대사를 보낸 아일랜드만 하더라도 사실 정책상으론 거의 차이가 없는 피어너 팔, 피너 게일 특유의 양당제가 다른 문제가 아니라 아일랜드 내전 당시 누구 편을 들었냐 이런 역사적 문제 하나에서 기원했을 만큼, 거의 100년 가까이 나라의 정치 지형을 주도하는 짙은 역사적 암운을 제공했다.

또한 이권을 노리는 외부 강대국들이 내전에 은근슬쩍 발을 담궈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경우도 많다. 이는 종종 강대국끼리의 대리전으로 비화되고는 한다. 한 마디로 집안 싸움에 이웃집 깡패들이 개입하는 꼴. 6.25 전쟁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미국에서는 남북전쟁을 'American Civil War' 또는 'The Civil War'[13]라고 쓴다. 이러한 언어문화에 밝지 못한 일부 번역서에서는 '시민 전쟁', '미국 내전'이라고 직역해 버려 독자들이 모르는 또다른 내전이라 오해할 여지를 만드는 때도 있다. 영국에서는 'The Civil War'이라 하면 곧 '잉글랜드 내전'(The English Civil War)을 의미한다. 러시아 적백내전은 Гражданская война в России(Russian Civil War)으로 표기한다.


  1. 예를 들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여기에 해당된다. 다만 중화인민공화국홍콩, 마카오도 1국가 다체제이지만, 이것은 오히려 쪼개져 있던 것을 합치는 과정에서 국가만 합쳐놓고 각자의 체제를 유지한 것이라서 내전과는 무관하다.
  2. 백기는 좀 애매한 게 당시만 해도 말이 같은 중국이지 사실상 외국인들이었기 때문에 엄연히 한 국가가 건설된 상황에서 자기 나라 백성들을 상대로 학살을 벌인 항우, 조조와 비교하기는 어렵다, 또한 적군의 포로를 학살해서 적의 국력을 깎아먹을 생각을 한 것이지, 항우나 조조처럼 무지성으로 저지른 건 아니다.
  3. 적다고 적은 이유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라도 '적국'이 하나만 있는 경우는 예외라고 해도 좋을 만큼 드물기 때문. 굳이 적국이었던 나라가 아니더라도 중립국, 심지어 이전까지 동맹을 맺었던 국가가 두 나라를 모조리 집어삼킬 수도 있다. 물론 그런 나라들끼리의 외교전이나 내부 정치 상황 등으로 인해 어찌어찌 무사히 넘어갈수도 있겠지만. 또한 외전이 없었더라면 이후의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거나 그 피해가 적어진다는 것은 if를 논하기 이전에 상식적으로 당연한 이야기이다. 똑같은 사태에 직면하더라도 국력이 멀쩡한 상황이냐 소모된 상황이냐는 분명 차이가 크기 때문. 특히 임진왜란의 경우 국력 소모도 국력 소모였지만, 그 소모로 인해 정기적으로 실시하던 여진족에 대한 예방 전쟁을 벌이지 못하게 되어 여진족이 더 쉽게 강성해지면서 결과적으로 병자호란이 일어났다고 봐도 될 정도이다.
  4. 이런 후방 지역의 상대적 안정 때문에 일어난 촌극이 1차대전 이후 독일에서 유행한 괴소문인 배후중상설이다.
  5. 특히 남북전쟁 같은 지역적 내전이 아닌 이념적, 민족적 이유로 벌어지는 내전이 더 심하다.
  6. 법학자 카를 슈미트는 이를 두고 "독일은 동방에서는 차별적인(discriminatory) 전쟁을, 서방에선 차별하지 않는 전쟁을 치렀다"고 표현했다.
  7. 물론 명분이 있고없고와 무리하지 않냐에 따라서 다르다. 가령 2차대전을 사례로 들면 이탈리아의 경우에는 워낙에 무솔리니가 전쟁 전쟁 해서 이탈리아군의 사기가 그리 높지 않았다. 반면 일본에게 먼저 선빵맞은 미국은 선빵맞은 분노로 일본을 조져야 한다는 여론으로 일치단결되었다.
  8. 한 쪽이 완전히 패배해서 하나로 통합된 경우는 당연한 것이고, 아예 나라 자체가 둘로 나뉜 경우라고 해도 한 쪽이 독립했다는 얘기는 다른 한 쪽이 이를 무력으로 제압할 충분한 능력이 없었음을 의미하므로 보상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별로 없다.
  9. ex: 스페인 내전, 국공내전, 그리스 내전, (내전으로의 성격을 인정할 경우) 6.25 전쟁베트남 전쟁
  10. ex: 장미전쟁, 카다피 축출 후 현 리비아 내전.
  11. ex. 시리아 내전, 아프리카 국가들의 내전
  12. ex: 남북전쟁, 돈바스 전쟁
  13. 특정한 내전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The가 반드시 들어가야 남북전쟁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