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바트칼란드 제국/인터넷 역사


개요

이 문서는 소컨련 해체 이후 트바트칼란드 제국의 역사를 다룬다. 또한 본 자료는 일부가 스킵되거나 일부에만 내용이 집중되어 있을 수 있으니 주의바란다.


소컨련 이후 ~ 재건국 이전

소컨련 -> 트바트

트리는 소컨련의 서기장이었다. 그리고 트리폰 1세는 자신이 창작한 원래 가국 트바트칼란드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소컨련 -> 트바트칼란드 투표를 열었고, 결국 트바트칼란드 제국이 재건국되게 된다.

트리폰 1세의 실종

트리폰 1세는 이유조차 말해주지않고 트바트 재건국 후 몇 달지나 사라졌다.[1][2]

민개위 사건

트리폰 1세가 실종되자 황실의 일원인 트리 루트는 공화주의 개혁을 기도하였고, 이와 보수공화당 등이 호응하여 민개위 사건이 발생하였다. 하지만 화들짝 놀란 트리폰 1세는 바로 돌아와 군대를 동원하였고, 이로인하여 트리 루트는 황실에서 쫓겨나고 리처드를 비롯한 보수공화당 일원들은 해외로 망명하였다.

트리폰 1세는 한동안 계엄정국을 유지했고, 트리 루트에 대한 재판도 진행되었다.[3]

민개위 사건 이후

민개위 사건 이후 트리폰 1세는 얼마 안 지나 트리 루트를 황실로 복권했고, 리처드를 비롯한 보수공화당 세력에 대한 복권도 발표하였다.[4]

이후에 황실을 중심으로 민개위 세력과 기타 정치세력들의 합작으로 대대적인 개혁과 활동으로 트바트칼란드의 활기를 불어넣었고, 계엄정국 이후 중간중간의 총선도 진행하였다.[5] 그리고 제5제국을 선포한지 얼마 안되어 그림대회와 총선 준비가 한창이었다. 그러나..

1.26 정국 전개

1.26정국.jpg
1.26 정국 당시 시위하는 칼란드인들

이후 트리폰 1세의 전쟁 분위기 고무와 설하의 부추김등으로 한컨커와 트바트칼란드간의 갈등이 고조되었고, 이어서 군부도 설하의 지원하에 한컨커와의 대전쟁을 천명하면서 트리폰 1세는 결국 대한컨커 선전포고문을 낭독하고서 실종되어 트바트칼란드는 혼란에 빠지게된다.
자세한 내용은 트바트칼란드 1.26 정국 문서 참조

정국 수습과 암흑기

트리폰 1세는 귀환하여 모든 시국을 하루만에 수습했고, 다시 트바트칼란드를 이어나가게된다. 허나 1.26 정국 당시 군벌 중 하나가 황제를 도왔다는 명분하에 완장질을 하였고, 결국 황제는 이들의 꼭두각시로 전락하게 되었다.[6] 트리폰 1세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당시 야당 정치인들과 힘을 합쳐 본 방을 터트리고 지하정부를 건국 했다. 하지만 이 또한 군벌에 들통 났고, 군벌이 이를 빌미로 트리폰 1세를 폐위하며, 결국 제국으로써의 정통 트바트칼란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트리폰 1세는 군벌들에게 정권을 뺏기며, 한컨커에 협박까지 당하며 궁지에 몰렸다. 이후 트리폰 1세는 1년간 카국판을 떠나 망명했다. 정권을 승계 받은 군벌은 인류제국에 반하여 친한컨커 행보 또한 일부 보이며 자신들이 협박으로 받아낸 트바트칼란드를 미궁에 몰아넣었다.


재건과 불안정한 제국

재건국

그러나 이럼에도 불구하고 트리폰 1세는 얼마 안가 망명정부를 조직하여 끝내 2025년 12월달 지하정부로 국가를 준비하다 2026년 1월달 공식적인 정부를 선포했다.

초기에는 지지부진한 소통률과 적은 인구등으로 재건국이 얼마 안지난 2026년 1월 4일, 트바트칼란드 존속에 관한 공민투표로 트바트칼란드가 해체 될 뻔 하기도 했다. 다행히도 공민투표는 반대 100%로 트바트칼란드는 유지되었다.

존속 유지 결정 이후에는 트리폰 1세는 트바트칼란드 왕립군을 재건하기 위해 트바트칼란드 붕괴 직후 한컨커에 부역했던 브와디프 알렉세이와 즈루미츠니 미하일로등 여러 부역자들에 대한 사면령을 공표하고, 얼마 지나 이들은 사과문을 게재하며 트바트칼란드로 복귀했다.

트리 루트 내각

트리 루트.jpg
제 1대 총리 트리 루트의 컨트리볼 초상화

1대 총리로는 트리 루트가 지명되었고, 트리 루트는 부총리로 볼호프 드미트리를 지명 했다.

트리 루트 총리는 정부 조직을 개편 하는 등 구조 개편에 힘 썻으나 황제의 권한을 제한하는 영국식 입헌군주제를 차용하려했고, 이에 불만을 품은 트리폰 1세는 크리스마스날 루트를 사임 시켰다가 트리 루트 총리의 충성 약속을 대가로 복직 했으나,[7] 얼마 안가 계엄령을 통해 내각을 해산했다.

계엄정국

2026년 1월 10일, 트리폰 1세는 즈루미츠니 미하일로 총사령관을 계엄사령관으로 하여 계엄령을 선포했다. 내각은 당연히 해산 되었다. 이후 트리폰 1세는 4일뒤인 2026년 1월 14일, 임시총리로 당시 지방지구 계엄사령관이었던 준장 레프 알렉산드르를 임명했고 프렌시아에게 대리청정을 맡겼다. 그러나 하루만에 대리청정을 종료하고 알렉산드르 임시총리를 공식 제2대 총리로 지명하였다.

알렉산드르 내각

레프 알렉산드르.jpg
제 2대 총리 레프 알렉산드르의 사진

트리폰 1세의 대리청정 종료 선언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알렉산드르 내각은, 초기 국가 중앙화를 위해 황제의 권한 강화에 몰두 하였다.

「[ 제21조 (비상조치) ]

➀ 비상조치는 전시에 준하는 사태나 특수 상황일 경우 내정·외교·국방·경제·재정·사법등 전반에 걸쳐 황제폐하께서 발동 가능한 초헌법적 통치 권한이다.
• 권한 발동 자체만에 대한 사법 심사는 받지 아니한다.」

— 1월 헌법, [제21조 비상조치]

대표적으로 신헌법인 1월 헌법 공포로 비상조치라는 권한을 추가했으며, 황제의 말에 대부분 수긍하는 태도를 보였다. 허나 6일만인 2026년 1월 20일 트리폰 1세의 비상조치 선포로 내각은 다시 해산 되었다.[8]

비상조치와 헌정위기

헌정위기.jpg
1월 헌정위기 당시 포격 당하는 사회개혁당 당사

레프 알렉산드르 내각이 해산되고 비상조치 정국이 시작되자, 옛 트바트칼란드의 분란과 파괴를 조장한 군벌 세력들이 민주화를 빌미로 반란을 일으켰다.
자세한 내용은 트바트칼란드 1월 헌정위기 문서 참조

비상조치 종료

비상조치가 종료되고, 헌정위기 당시 일부 가담자들은 사면 되었다.[9] 비상조치가 해제되자마자 트바트칼란드의 첫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트바트칼란드 제 1대 총선거의 결과로 사면된 볼호프 드미트리의 국가질서당이 4석을 확보하며 압승 했다.[10] 이로써 볼호프 드미트리 내각이 성립되게 되었다.

드미트리 내각

볼호프 드미트리.jpg
제 3대 총리 볼호프 드미트리의 사진

드미트리 내각은 선거에서 진 건국당을 포용하며 연립내각을 구성했다. 초기에는 황제의 권한을 축소하려는 등의 개헌안을 추진하려했다. 그러나 며칠간 총리가 잦은 직무유기를 하였고, 트바트칼란드의 소통률이 급감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얼마 안 가 트리폰 1세는 다시 비상계엄령이 선포했다.

《황제 긴급 담화》

존경하는 공민 여러분, 저는 트바트칼란드의 황제로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공민 여러분께 호소 드립니다.

지금까지 추야크는 우리 제국 건국 이후 1건의 황제 권한 박탈 헌법을 발의하였으며 지난 1월 1대 추야크 출범 이후에도 5명째 직무유기를 추진 중에 있습니다. 이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유례가 없을 뿐 아니라 트바트 민족 역사상 전혀 유례가 없던 상황입니다.

황제를 겁박하고, 다수의 내각에서 직무유기하는 등 행정 업무를 마비시키고 법무부 장관 공석, 내무부 장관 공석, 의장 공석, 부의장 공석 등으로 정치마저 마비시키고 있습니다.

제국 예산 처리도 국가 본질 기능과 내란범죄 단속, 민생 치안 유지를 위한 모든 주요 예산을 심의하지 않아 제국 본질 기능을 훼손하고, 트바트칼란드를 간첩 천국, 민생 치안 공황 상태로 만들었습니다. 질서당은 내년도 예산에서 재해 대책 예비비 100억 가코, 군인 지원 수당 3만8400가코, 공민 공직, 제국 모의전 개발 사업 등 10억 가코를 삭감하였습니다. 심지어 군 초급 간부 봉급과 수당 인상, 당직 근무비 인상 등 군 간부 처우 개선비조차 제동을 걸었습니다.

이러한 예산 폭거는 한마디로 트바트칼란드 재국 재정을 농락하는 것입니다. 예산까지도 오로지 귀찮음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이러한 질서당의 입법 직무유기는 예산 공석화까지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국정은 마비되고 공민들의 한숨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자유 트바트칼란드의 헌정 질서를 짓밟고, 헌법과 황실에 의해 세워진 정당한 제국 기관을 교란시키는 것으로서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입니다.

공민의 삶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직무유기와 휴가, 여당 대표의 방탕으로 국정이 마비 상태에 있습니다. 지금 우리 추야크는 직무유기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되었고, 입법 직무유기를 통해 국가의 사법 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반이 되어야 할 추야크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괴물이 된 것입니다. 지금 트바트칼란드는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풍전등화의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친애하는 공민 여러분. 저는 인류 파시스트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트바트칼란드를 수호하고, 우리 공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인 반국가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저는 이 비상계엄을 통해 망국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자유 트바트칼란드를 재건하고 지켜낼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저는 지금까지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 반국가세력을 반드시 척결하겠습니다. 이는 체제 전복을 노리는 반국가세력의 준동으로부터 공민의 자유와 안전, 그리고 국가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며 미래 세대에게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주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입니다.

저는 가능한 한 빠른 시간 내에 반국가세력을 척결하고 제국을 정상화시키겠습니다. 계엄 선포로 인해 자유 트바트칼란드 헌법 가치를 믿고 따라 주신 선량한 국민들께 다소의 불편이 있겠습니다만은 이러한 불편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조치는 자유 트바트칼란드의 영속성을 위해 부득이한 것이며 트바트칼란드가 국제 사회에서 책임과 기여를 다한다는 대외 정책 기조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습니다. 황제로서 공민 여러분께 간곡히 호소 드립니다. 저는 오로지 공민 여러분만 믿고 신명을 바쳐 자유 트바트칼란드를 지켜낼 것입니다. 저를 믿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 트리폰 1세, 긴급 담화문

황제의 계엄 선포 이후 트리폰 1세는 드미트리 내각에게 자진 내각 총사퇴를 요구 했고, 이에 볼호프 드미트리 총리는 직접 내각 총사퇴문을 발표했다.

국민 여러분

저 볼호프 드미트리는 오늘 트바트칼란드의 총리직에서 자진 사퇴합니다.

이 자리는 도망이 아니라 국가를 위한 한 걸음 뒤로 물러섬입니다.

나는 권력을 위해 이 자리에 서지 않았고 지금도 자리를 지키기 위해 국가를 위험에 빠뜨릴 생각은 없습니다.

오늘의 혼란이 내 이름 때문에 더 커진다면 그 이름은 기꺼이 내려놓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합니다. 나는 물러나지만 내가 지켜온 국가의 원칙과 질서는 결코 물러나지 않습니다.

트바트칼란드는 한 사람의 총리로 유지되는 나라가 아니라 국가 자체로 서야 할 나라입니다.

나는 떠나지만 이 나라를 위한 책임에서는 끝까지 도망치지 않겠습니다.

국가를 위해 시작했고 국가를 위해 내려놓습니다.

감사합니다. @all

국가질서당 해제와 총리직 자진사퇴를 하며.. 황제와 신 그리고 조국을 위하여!

— 볼호프 드미트리, 내각 해산 국민 담화문

이 연설문 이후 내각은 완전히 해산되었고, 임시 권한대행으로 트바트칼란드 초대 중앙은행장이자 남작인 스미르노프 사샤가 지명 되었다. 이어서 군대가 최고 추야크 의회에 투입되어 추야크도 완전히 해산되었다.

사샤 권한대행 체제

스미르노프 사샤 권한대행 체제가 출범했음에도 트바트칼란드의 방 분위기는 복구 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는 대화량이 아예 없는 날도 존재했다. 즉 트바트칼란드의 몰락이 오히려 더 가속화 된 셈이었다. 결국 트리폰 1세는 며칠 뒤 엄청난 결단을 내리게 되었다.


이전과 호황

트바트 대이동

트리폰 1세는 기존의 소통 없고 불황이던 트바트칼란드의 구도심을 버리고 신도심 도시계획에 착수하였다. 그로인하여 방의 인원은 초기화 되었으나, 초기 창설보다도 훨씬 가파른 속도로 발전을 이룩했다. 이어서 트리폰 1세는 사릴로프 이반을 제 4대 총리로 임하면서 권한대행 체제도 종결했다. 이후 그림대회 등이 실시 되며 대호황기를 맞았다.

각주

  1. ↑ 학업이 이유였다고 한다.
  2. ↑ 트리가 말했지만 그걸 몰랐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사건은 추후 서술하는 민개위 사건의 주원인이 된다.
  3. ↑ 판결의 결과 사상자가 없었고 애국의 마음이 참작 되어 황실에서만 쫓겨나고 무죄로 판결 내려졌다.
  4. ↑ 리처드는 그러나 귀국하지 않았다
  5. ↑ 물론 황제가 선거 결과가 마음에 안들어서 계엄령을 선포했지만...
  6. ↑ 이때 군벌은 기존 충성파와 활약자들은 카르텔이라며 배척 당했으며 트바트 정교회를 자기들끼리 이단 취급하였다. 이로 인하여 리처드는 트바트칼란드를 다시 떠났으며, 여러 장성들 또한 카르텔로 몰려 쫓겨났다.
  7. ↑ 이때 볼호프 드미트리가 10초간 권한대행을 맡았다. 즉 루트 총리는 10초만에 굴복 했다는 것이다.
  8. ↑ 본인이 만든 법 조항에 본인이 해산 당한셈...
  9. ↑ 대표적으로 볼호프 드미트리
  10. ↑ 당시 추야크 의석수에 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