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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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정교회
Syriac Orthodox
100%
시리아 정교회의 주교단 모습
계통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
오리엔트 정교회
유형 일신론
유일신교
창시 창시자 야곱 바르다에오스
창시 시기 553년 시리아
지역 주요 신앙 지역 -
중앙기관 명칭 성 게오르기우스 성당
안티오키아 총대주교 이그나티우스 아프렘 2세
규모 신도 약 500만명

개요

시리아 정교회는 "안티오키아와 전 중근동총대주교, 안티오키아 총대주교"를 수장으로 하는 오리엔트 정교회 소속 독립 교회로 이 교회에서 합성론(Miaphysitis) 신학을 크게 발전시킨 사제 "야코부스 바라데스"(ܝܥܩܘܒ ܒܘܪܕܥܝܐ)의 이름을 따서 흔히 "야고보파 교회(Jacobite Church)"라고 불렸다. 그러나 현재 시리아 정교회에서는 이 명칭으로 불리는 것을 영 좋아하지 않으며 자신들을 "시리아 정교회(Syriac Orthodox)"라고 불리길 원한다.

본부는 안티오키아 총대주교좌가 있는 시리아 다마스쿠스의 성 게오르기우스 성당이다.

역사

유대인 박해 이후 예루살렘을 떠난 몇몇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에 의해 시리아에 처음 복음이 전해졌다. 순교자 성 스테파노스 보제에 의하면 서기 34년에 바르나바사도 바울로가 안티오키아를 방문해 그곳에 머물면서 복음을 전하였으며 그 이전인 33년에 베드로가 안티오키아에 복음을 전하고 그의 사도좌를 세웠다. 그 사도좌가 바로 시리아 정교회의 수장인 안티오키아 총대주교이다.

543년부터 578년 사망시까지 에데사 주교를 지닌 야곱 바르다에오스 (ܝܥܩܘܒ ܒܘܪܕܥܝܐ)[1]는 553년 제2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의 중재를 거부하고 비칼케돈파 시리아 정교회를 수립하였다. 그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 베드로 4세와 연대하였고, 이로써 현재까지도 시리아 정교회와 콥트 정교회는 상호 협력하여 오리엔트 정교회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연유에서 시리아 정교회는 종종 야곱파 교회(Jacobite Church), 야코부스파 등등으로도 불린다.

동로마 제국에서는 시리아 정교회를 이단으로 여기고 탄압하였다. 시리아 정교회와 그리스 정교회 사이의 심각한 알력은 수백여 년간 이어졌는데, 7세기 아랍 무슬림들이 동로마 제국으로부터 시리아를 정복하자 시리아 정교회 신도들은 아랍인들을 해방자로 여기며 환영하였다 한다. 서기 10세기 시아파 무슬림 왕조로서 동로마 제국과 대치하던 함단 왕조의 신민 상당수가 시리아 정교회 신도였고 이들이 동로마 제국 대신 함단 왕조를 지지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안티오키아 총대주교(시리아 정교회)는 1445년 이래로 모든 총대주교들의 이름이 '이그나티우스'로 통일되어 있어 '이그나티우스' 외에 자신의 부가명칭에 따라서 총대주교를 구분한다. 예를 들면 현 총대주교의 이름인 '이그나티우스 아프렘 2세'도 '아프렘'이라는 명칭으로 '~세'를 구분하는 것이다. 선임 총대주교 중 이그나티우스를 공경하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전통으로, 티베트달라이 라마처럼 고유명사화된 이름이다. 안티오키아 전례에서 유래한 서(西)시리아 전례를 사용하고 있다. 또한 사도 토마스 이래 뿌리를 내려 온 인도의 그리스도교 교회들 중 일부도 시리아 정교회 계열로 분류된다.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이나 쿠르드족 학살 못지않게 1915년 이후로 오스만 제국에서 살아가던 시리아 정교회 신자들도 학살을 꽤 당했다고 하지만 아르메니아인들과 달리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2]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약 10~30만 정도가 학살당했다고 한다. 이런 아픔을 같이 겪어서인지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와 사이가 좋아서 튀르키예를 비난하며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성토한다.


  1. 아랍어로는 야쿱 바르 압다이 (مار يعقوب البرادعي)
  2. 이러한 저조한 관심은 동시리아 전례를 따르는 아시리아인 역시 마찬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