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뤼셀 왕국/역사

역사

벨기에 왕국기

2011년7월24일

벨기에 왕국기에 프랑스어,플라망어(네덜란드어),소수의 독일어권등언어 사용지역에 따라 3개의 연방정부를 나누고 그렇게 오랜세월벨기에 왕국을 유지하던도중,정치적 혼란이 벨기에 왕국을 한번뒤덮고벨기에의 5개당들이 내각을 겨우유지하고 있던중,네덜란드어권,프랑스어권,소수의 독일어권 연방정부들간의 갈등이 심화되어 벨기에 왕국내부에서연방정부의 분리독립을 추진하자는 목소리가 벨기에 각지에서 나오기 시작했다.허나 그 여론은 극단주의자들의 말도안되는 말이란 평가를 받으며 사그라졌다.

분열기

2014년1월8일

새해가 밝은후 얼마지나지 않아서 벨기에 왕국의 경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기업들의 어리석은 경영과 부패한 관료,그리고 무능한 내각이 그곳에한몫을 한것이다.그로인하여 기업들은 하나둘씩 파산을 하기 시작하고그로 인하여 실업자의 수가 급증하였다.내각은 새로운 정책을 내세워서 벨기에 왕국의 경제를 다시 일으키려 노력하였으나 이미 벨기에 왕국의경제는 무너질때로 무너져있었으며 벨기에 왕국의 민심마져도 내각에 등을 돌린후였다.벨기에 왕국의 국민들은 길거리에 나앉았으며 노숙자가급격히 증가하였으며 국민들의 전체적 소비량은 급격히 하락하였다.벨기에 왕국의 경제가 무너진이유는 학자들사이 흔히 이렇게들 추정하고있다.약한 중앙정부가 세력과 지지율기반층이 상대적으로 강한 연방정부에게서지속적으로 세금을 걷어가고 그세금을 사용은하지도 않으며 어떠한 정책도 내세우지않고 이로인하여 오래전부터 좋지않던 조짐이 보이던 벨기에 왕국의경제가 무너진것이라는 것이다.그리고 이로인하여 연방정부들이 중앙정부에큰불만을 품고있었다는것도 정설이다.
벨기에 왕국의 중앙내각이 여러 정책을 펼치며 연방정부간의 단합을 도모하고경제적으로 다시 일어서려는 노력을 보였지만 이미그땐 국민들의 신뢰를 잃은지 오래였으며 연방정부의 불만도 최고조에 달해있었다.그러던중 벨기에 왕국의 내각은 경제를 되살리기위하여 졌던 빚을 제때 갚지못하여 벨기에 왕국을 빚더미로 만들어 버렸다.이로 인하여 벨기에왕국은 완전히 무너질 위기에 쳐하고,이를 꾸준히 지켜보던 작센공화국등 주변국들은 벨기에 왕국을 돕기위해 발을 벗고 나섰다.그들이 직접 돕겠다고 나선이유는 다른이유가 아닌 벨기에 왕국은행에있는 각국 정치인들의 자금과 부호들의 돈과 금괴를 보호하기 위함이였다.허나 이미 벨기에왕국은 무너져있는 상태였고 플라망연방정부에선 분리독립의 물결이 확산되었다.

2014년12월25일,크리스마스

플라망언어 연방공동체에서 분리독립운동이 확산되었다.벨기에 왕국은 플라망연방정부의 분리독립지원으로 인하여 분리독립운동의 무력진압은 시도도하지 못한채 지켜보고만있었다.그로인하여 나머지 프랑스어공동체와 독일어공동체 연방정부지역에서도 분리독립운동의 물결이 순식간에 확산되었다 벨기에 왕국에 혼란이 계속닥치던중 성난 각 연방정부(공동체)의 시민들은 벨기에 왕국에서의 분리독립 투표를 주장하며 브뤼셀에 위치한 벨기에왕궁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으며이에 벨기에 왕국은 독립을 승인한다.그후 플라망어 공동체 연방정부는 2015년7월12일에 독립을 선언하고 국가이름을 프뤼셀왕국으로 지정하였다.프뤼셀이 국제사회에 모습을 드러낸것이였다.

베네룩스 전쟁

2015년8월18일

프뤼셀왕국이 체제를 정비하기 시작하였다.국민투표로 체제는 입헌군주제,의원내각제,자본주의 체제로 정하였고 국기는 브뤼셀시의 깃발로 정해졌으며 브뤼셀이란 도시의 이름을 프뤼셀로 바꾸었으며 프뤼셀왕국의 수도를 프뤼셀로 공식지정하였다.그렇게 프뤼셀왕국이 체제를 정비하며 정치적 안정을 찾으려할때쯤 큰일이 벌어졌다.벨기에왕국이 역사의 뒷편으로 사라졌다.프랑스어공동체,독일어공동체가 각각 왈롱,그로센라이크란 이름으로 분리독립을 한것이다.그리고 얼마지나지않아서 그로센라이크는 룩셈부르크에 흡수합병을 요청하였고 룩셈부르크는 요청을 받아들여 그로센라이크는 독립한지 얼마 지나지않아서 합병되었다.왈롱은 룩셈부르크를 그로센라이크 지역 차지란 명분으로 전쟁을 걸었고 왈롱은 무리없이 룩셈부르크 전지역을 손에 넣었다.왈롱의 전쟁으로 위협을 느낀 프뤼셀은 작센공화국(아즈센 제국)에동맹을 요청하였고 작센측은 이를 받아들이고 이에 왈롱은 북쪽의 네덜란드와 동맹을 하여 서유럽에는 싸늘한 기운만 감돌았다.그리고 그날 저녁,왈롱은 네덜란드와 프뤼셀 왕국을 기습공격하였고 이에 프뤼셀 왕국은 작센에 파병을 요청하여 본격적인전쟁이 시작되었다.

2017년8월17일

프뤼셀-작센 연합군은 왈롱-네덜란드군의 침략을 막아내는데성공하고 역으로 작센군은 네덜란드를 점령,프뤼셀군은 왈롱을점령하였으며 통일을 하는데 성공하며 베네룩스 삼국의 영토를모두 얻게된다.학자들은 작센측에서 영토요구를 하지않았단걸의아해하며 그 의도를 지금도 분석중이다.

현재

2017년8월17일

프뤼셀왕국은 베네룩스 삼국의 모든영토를 얻게되고 전후 고장나거나 낡은 무기들은전쟁이 끝났기도하고 유지비가 많이든다고 판단하여 공군과 해군의 장비를 모두 없애버리고 해산하고 프뤼셀왕국이 전후의 피해를 복구할때까지는 다시 조직하지 않기로 당시 프뤼셀지도층은 선언하였다.그리고 낡은 소총,기갑차도 폐기하며 프뤼셀왕국에서의 예산에서 국방비를 대폭감소시켰다.그리하여 프뤼셀은 경제개발과 전후피해복구에만 집중할수

있게되었다.이를 두고 말이 좀많다

2018년7월1일

프뤼셀의 지도층이였던 (전)플라망언어공동체 연방정부인사들이 모두 정계에서 내려와 프뤼셀의 내각,의회가 모두 비게되고 이에 정계에 남아있던 플라망언어공동체 인사들은 프뤼셀총선거를 실시하고 그로인하여 프뤼셀왕국의 내각총리는 리에주의원 출신 의원인 오셀롯 디 파비아가 당선되었다.그후 내각의 경제부장관은 벨기에 왕국에서 분리독립활동을 초창기부터 활발히한 카그가,국방부는 작센 공화국에서 넘어온 메이지라는자가 맡게되었다.

2018년7월5일

프뤼셀왕국은 왕의 빈자리를 채우기위하여 유럽의 모든 왕가들을 프뤼셀에 초청하여 정착하게하고 그중에서 프뤼셀의 국왕감을 찾게되고 그리하여 합스부르크왕조의 한남자가 국왕의 자리를 차게된다.그리고 국왕이 프뤼셀왕국에 들어서면서 영국과 같이 이름만있는 신분제를 실시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그리하여 프뤼셀은 신분이 나뉘게 되었으며 신분으로 인한차별은 없애기로 하였다.

2018년7월7일

프뤼셀왕국이 EU의 공식가입국으로 인정받아 가입하게되었다.이를 계기로 프뤼셀은 전세계로 수교를 신청하였으며 활발한 외교정책을 펼쳤다.

2018년7월13일

프뤼셀의 의원들은 아직 만들어지지않은 헌법을 제정하게되고 이날을 제헌절로 정하였다.각4개의 당이 합의하에 만든 헌법으로 내각 총리인 Ocelot도헌법집필에 함께 참여한것으로 알려져있다.

2018년7월15일

앨런제국에서 프뤼셀에게 동맹제의가 들어왔다.프뤼셀왕국의 활발한 외교활동이 빛을 바라는 시점이엿다.이에 내각총리는 의회의 자문을 구한뒤 앨런제국과 동맹을 맺어 앨런제국과 프뤼셀왕국의 사이를 굳건히하였다.빈트제국에있는 대사관원들에게 소식이 전해져왔다.섹트라는 조직이 빈트제국의 수도인 모스크바에서 쿠데타를 일으켰다는것이다,총리인 Ocelot은 이에대하여 알아보고 빈트에서 대사관원들 철수를 권고하자 그즉시 대사관원들을 철수시켰다.섹트가 프뤼셀왕국에게 영향을 미친 최초의 사건이다.

2018년7월21일9시30분경

빈트제국의 섭정인 리차드청 섭정이 프뤼셀에 입국하여 총리인 오셀롯과 빈트-프뤼셀간의 정상회담 날짜를 잡으며 프뤼셀-빈트간 교류를 확대하려하였다.

2018년7월21일10시

앨런제국과 예정되있던 프뤼셀-앨런 정상회담이 시작되었다.회담에선 유학생파견,무비자협정 등 양국의 활발한 교류를 위한 협정들이 체결되었다.이를 7.20선언이라 칭하였다.

2018년7월22일

프뤼셀 왕국의 총리인 [[Ocelot]이EU의회의 의장이 됨에따라서 프뤼셀 왕국이 EU의 의장국이 되었다.

2018년8월2일

소말리아,포르투갈,프로이센 공화국,몰타 연방 공화국,러시아,스웨덴 제국,화천인민연방,브리튼 왕국과 같이 다양한국가와 수교를 맺음으로써 프뤼셀 왕국의 대외적 입지를 강화시켰다.또한 포르투갈 공화국출신의 김태훈이란 자가 내무부를 맡게되었다.

2018년8월3일

가상국가연합 의장국 선출과정에서 프뤼셀왕국이 빈트제국을 의장국으로 지지한다는 선언문을 발표하였으며 이를 8.3지지문 이라칭하며 프뤼셀 왕국과 빈트제국의 우호적 관계를 다시한번 강조하는 사건이 되었다.이에 특별히 반응한 나라는 없었다.또한 야마토와 수교를 맺었으며 가상국가연맹 회의가 이날 진행되었으며 이날 회의의 성과는 크게없었다.

2018년8월5일

국왕선출기간이 선포되며 온유럽의 수교국들에게 국왕을 선출하니 후보를 모집한다는 공문을 보냈다.결과적으로 국왕은 초대국왕인 알베르1세가 국왕이 되었으며 이에 국왕은 보답하여 적극적으로 정사에 참여하였다.또한 프뤼셀 왕국의 문학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투투명드레곤 이라는 책이 희망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이는 순식간에 프뤼셀 왕국의 베스트셀러로 지정되었다.

2018년8월6일

화천인민공화국에서오스트리아 제국과 단교를 권유하는 친서가 도착하였으며 이에 외교부장관인 투페는 격노하여 아예 두곳과 단교를 해버리자 하였으나 Ocelot 총리의 설득으로 중립을 지키며 오스트리아 제국,화천인민공화국사이서 중립을 지키기로 하였다.프뤼셀 왕국내부에서 총기소지를 합법화하자는 여론이 확산되자 총리가 이에대한 성명을 공식적으로 발표함으로써 이 여론은 어느새인가 사라지게되었다.투페 외교부장관이 외교법을 발행하고 국회의사당에 제출되었다.이를 지켜본 이바노프 황제는 빈트제국 법무부 장관정책보좌관으로 투페를 스카웃하였다.프뤼셀의 국토부 장관이자 합스부르크 가문(프뤼셀계)의 가주인 루돌프5세시드1세를 암살시도하여 14일 동안불구가 될정도의 부상을 입혔으며 이에 루돌프는 처벌을 받고 작센 공화국과 프뤼셀간의 사이가 애매해졌다.

2018년8월7일

카이란 제국에서 특사가와서 수교를 신청하여 이를 와교부장관인 투페가 승인하여 양국이 수교를 맺게되었다.의회에서 개헌을 요구하여 헌법의 '내각'부분의 33조인"내각은 의회를 해산시킬수없다"라는 조항을 "내각은 의회를 해산시킬수있다"라고 바꾸었다.이는 의회에서 만장일치로 개헌요구가 통과되었다.

2018년8월8일

프뤼셀 왕국이 본격적으로 방위사업에 투자를 하기 시작하였다.이에 주위국 빈트제국,작센 공화국,와사인민연방)에 무기 수입,대여등을 요청하였다.

2018년8월9일

교육부 장관인 칠푸아가 청소년 봉사활동 시간 단축 정책을 펼쳤다.또한 빈트제국의 브리트니 특별구역에서칼리닌의 노력덕에 유로스텔스기를 얻게 되었다.또한 외교부 장관이였던투페가 외교법으로 인한 마찰로 인하여 외교부 장관직을 사임하고 프뤼셀 왕국에서 떠났다.

2018년8월10일

프뤼셀 왕국이 중동지역의 난민을 수요하기로 결정하고 그에대한 정책을 펼쳤다.프뤼셀 왕국의 시민권을 얻으려면 개종을 해야하되 난민의 신분으로 프뤼셀 왕국에 머물려거든 개종이 필요없다고 리에주주의 주지사인 루돌프 5세가 선언하였다.

이로 인하여 프뤼셀 내각과 의회는 경찰특공대 창설을 추진하였으며 이 뒤로 난민은 내무부에서 관할하기로 하였다.

2018년8월11일

프뤼셀 왕국과 빈트제국간의 직행 항로가 신설되었다.또한 프뤼셀에 있는 요새들을 알베르1세께서 국방부와 함께 조사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암스테르담,리에주등의 도시부근의 요새를 강화시키기로 하였다.

2018년8월12일

대영과의 회담이 있으나 열리지않았다,이유는 대영측의 부재이다.유럽연합에서 발전/신용도 평가가 나왔다.예상외로 긍정적이였다.국방병력이 증원되었다.

2018년8월13일

프뤼셀 왕국의 고등학교에서 교련과를 추가하자는 목소리가 나왔으나 이는 사관학교의 존제로 인하여 교련과 추가 정책은 폐기 되었다.

2018년8월14일

특수학교에 cctv를 설치하자는 의견이 교육부에서 나왔다.이는 통과되었으며 프뤼셀 왕국의 모든 특수학교에 카메라가 설치되었다.

2018년8월15일

사회민주주의카그당의 당대표인 카그가 프뤼셀 해방의 축사를 프뤼셀 왕국 광장에서 발표하였다.

2018년8월16일

프뤼셀 왕국에서 폭격기를 수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그에따라 폭격기를 타국에서 수입하려 시도하였다.

2018년8월19일

프뤼셀 왕국이 카카오톡 가상국가 연합에서 탈퇴하였다.또한 카이란 제국과의 회담을 가졌으며 이에 참석자는 카이란 제국의 황제인도르와 각부서의 장관,언론사의 기자들이였다.이 회담에서는 카이란기업의 프뤼셀 진출 자유화가 거론되었으며 프뤼셀-카이란 동맹이 체결되었다.또한 양국간의 교류를 장려하기로 하였다.

2018년8월21일

프뤼셀 왕국-카이란 제국간의 2차 회담이 열렸다.이에는 데미안스 카이란 재건위 위원장이 참석하였으며 이 회담에서는 카이란-프뤼셀의 동맹협의체 구성을 추진하였다.

2018년8월23일

작센 공화국에서 첫,민주적인 절차로 대통령이 당선되었으며 메이지가 이소식을 직접 전하였다.또한 데미안스 카이란 재건위 위원장이 프뤼셀 왕국에 방문을 하였다.

2018년8월24일

바티칸 시국에 파견된 특사가 돌아와 성과를 보고하였다.또한 보건복지부에서 모든 학교에 니코틴 검사를 실시하여 흡연학생을 찾아 담배를 끊게 하도록 노력하였다.국내 기업이 외화를 벌시에도 세금을 부과하도록 정책을 펼쳤다.

2018년8월25일

보건복지부에서 7급 공무원을 선발하였다.프뤼셀이 담배를 마약,사치품,의약품으로 분류하며 그 기준을 정하고 담배의 등급을 정하였다.

2018년8월26일

프뤼셀 왕국이 신분제를 체계화하여 막장 설정이 나오지 않도록 미리 방지 하였다.

역대 국왕

재임기간:초대~2대(현재)
칭호:'검소한자'
업적: 왕궁을 새로짓지 아니하고 게릴라전으로 홰손된 옛 벨기에 왕가의 왕궁을 수리하여 재사용을 함으로써 국가의 부담을 덜었다.또한 헌법을 준수하며 프뤼셀 왕국을 입헌군주제 국가답게 만드는데 큰기여를 하였다.군대개혁을 주도하여 프뤼셀 왕국의 나약한 국력을 키웠다.자신보다 신분이 낮거나 내각,의회,타국인사에게도 존칭을 쓰며(근데 이건 기본아닌가?) 미덕을 보였다.또한 차기 국왕의 대관식을 준비 하는 등 차후에 국왕자리에 오를 인물을 위하여 배려를 하였다.사치를 부리지 않았으며 프뤼셀 왕국 시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왕가의 모범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