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역사
품계와 명칭
태조 재위기
내명부
| 품계 | 작호 | 정원 |
| 정1품 | 부인(夫人) | 25인 |
| 정2품 | 궁인(宮人) | 30인 |
| 정3품 | 상궁(尙宮) | 18인 |
| 정4품 | 궁인(宮人) | 54인 |
초기 고려에서는 왕후(王后)와 부인(夫人)으로 나눠 전자를 정실로, 후자를 후궁으로 삼았다. 호족과 결혼할 때는 '지역+(궁/원)부인'이었다. 태조의 후궁들이 호족의 여식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이 부인들의 칭호 대다수가 출신 지역의 이름을 따서 '지역+원부인'이라고 불렸다. 예를 들면 광주지역의 대호족 왕규의 딸들은 각각 광주원부인, 소광주원부인이라는 칭호가 내려졌다. 성종대까지 고려시대의 후궁제도는 비교적 단순하게 나뉘고 정리가 되지 않은 것이 보통이었다.
역사상 가장 많은 부인들을 둔 태조 왕건은 왕후가 4명이고 부인이 23명이였다. 그런데 제1왕후인 장화왕후 제외 세명의 왕후들인 신명왕후 신정왕후 신성왕후도 살아생전 충주원부인,황주원부인,대량원부인으로 불렸음으로 이를 통해 왕후들도 부인의 칭호를 혼용했다는것을 알수 있다.
성종 재위기
| 품계 | 작호 | 정원 |
| 정1품 | 비(妃) | 2인 |
| 정2품 | 궁주(宮主) | 2인 |
| 정3품 | 승은궁인(承恩宮人) | 5인 |
| 정4품 | 상궁(商宮) | 9인 |
| 정5품 | 상침(尙寢) | 18인 |
| 정6품 | 상식(尙食) | 18인 |
| 정7품 | 궁인(宮人) | 54인 |
성종 재위기 국가 제도들을 본격적으로 개편하며 내명부와 외명부또한 크게 변화하였다. 왕후 다음가는 최고 품계인 정1품에 왕비를 두었으며 이중에서도 상하가 존재했는데 상(上)에는 귀비(貴妃), 현비(賢妃), 숙비(淑妃), 덕비(德妃)의 칭호를 받았으며 하(下)에 해당되는 왕비들은 ○비(○妃) 형식의 다양한 작호를 하사받거나 궁주+왕비의 약칭인 궁비(宮妃)라고 불렸다.
문종 재위기
| 품계 | 작호 | 정원 |
| 정1품 | 비(妃) | 2인 |
| 정2품 | 궁주(宮主) | 2인 |
| 정3품 | 원주(院主) | 4인 |
| 정4품 | 승은궁인(承恩宮人) | 4인 |
| 정5품 | 상궁(商宮) | 9인 |
| 정6품 | 상침(尙寢) | 18인 |
| 정7품 | 상식(尙食) | 18인 |
| 정8품 | 궁인(宮人) | 54인 |
문종 재위기 인예왕후의 명으로 원주(院主)의 칭호가 생겨났는데 이는 궁인 이상, 궁주 이하의 위치에 있었으며 부인의 후신이였다.
숙종 재위기
| 품계 | 작호 | 정원 |
| 정1품 | 비(妃),전주(殿主) | 2인 |
| 정2품 | 궁주(宮主) | 2인 |
| 정3품 | 원주(院主) | 2인 |
| 정4품 | 원부인(院夫人) | 4인 |
| 종4품 | 승은궁인(承恩宮人) | 4인 |
| 종4품 | 원궁(院宮) | 1인 |
| 정5품 | 상궁(尙宮) | 9인 |
| 정6품 | 상침(尙寢) | 18인 |
| 정7품 | 상식(尙食) | 18인 |
| 정8품 | 궁인(宮人) | 54인 |
외명부에서 왕녀에게 내리던 전주의 직위가 내명부에 편입되었다. 부인의 품계가 부활해 새로운 명칭인 원부인으로 등장했으며 궁중 내 여관들을 더 손쉽게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작위이다. 만약 승은궁인이 10년 이상 아이를 잉태하지 못하면 다시 궁인으로 돌아가야했는데 이중에서 원궁을 선발하였다.
금상 재위기
| 품계 | 작호 | 정원 |
| 정1품 | 비(妃),전주(殿主) | 2인 |
| 정2품 | 궁주(宮主) | 2인 |
| 정3품 | 원주(院主) | 2인 |
| 정4품 | 부주(府主) | 4인 |
| 종4품 | 승은궁인(承恩宮人) | 4인 |
| 종4품 | 원궁(院宮) | 1인 |
| 정5품 | 상궁(尙宮) | 4인 |
| 종5품 | 상궁(尙宮) | 5인 |
| 정6품 | 상침(尙寢) | 9인 |
| 종6품 | 상침(尙寢) | 9인 |
| 정7품 | 상식(尙食) | 9인 |
| 종7품 | 상식(尙食) | 9인 |
| 정8품 | 궁인(宮人) | 27인 |
| 종8품 | 궁인(宮人) | 27인 |
품계가 정과 종으로 나뉘어 더욱 세분화되고 원부인의 직위가 폐지되 부주의 직위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