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

개요

사도신경은 사도들의 신앙을 충실히 요약했다는 점에서 이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마땅하다. 사도신경은 로마 교회의 세례를 위한 옛 신경이다. 이 신경의 막중한 권위는 다음과 같은 사실에서 비롯된다.
“이 신경은 사도들의 으뜸인 베드로의 사도좌가 있고 그곳에서 공적인 결정을 내렸던 로마 교회가 간직하고 있는 신경이다.”
성 암브로시오, 「신경 해설」, 7: CSEL 73, 10(PL 17, 1196)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94항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행하는 신앙고백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보통 사도신경이라 부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안에서 한결같이 고백했던 참신앙의 요약이기 때문이며 또한 이것은 순수한 사도적 가르침으로부터 추론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장 칼뱅, 『제네바 요리문답』 제15항

사도신경(使徒信經, 라틴어: Credo/Symbolum Apostolicum), 사도신조(使徒信條) 또는 종도신경(從徒信經)은 기독교의 신앙 고백문 중 하나이다. 교회 공동체에서 기본적으로 믿어야 할 교의를 요약 정리한 것으로, 언뜻 보면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의 간략화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더 오래된 기원을 가진 별도의 신앙고백이다. 서방 그리스도교, 곧 가톨릭 라틴예법과 대부분 개신교에서는 전례 중 사도신경을 암송한다.[1]

유래

[Credis in Deum Patrem Omnipotentem?][3]
Credis in Christum Iesum, Filium Dei,
qui natus est de Spiritu Sancto ex Maria virgine,
et crucifixus sub Pontio Pilato et mortuus est et sepultus, et resurrexit die tertia vivus a mortuis, et ascendit in caelis et sedit ad dexteram Patris, venturus iudicare vivos et mortuos?
Credis in Spiritu Sancto, et sanctam Ecclesiam et carnis resurrectionem?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를 당신은 믿습니까?]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
성령으로 동정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시고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가시어 성부 오른편에 앉으셨으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습니까?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교회와 육신의 부활을 믿습니까?
-로마의 히폴리토, 「사도전승」, 215~17 저술[2]

본래 로마 교회에서 세례를 받을 때 사용하던 신앙고백문에 기초하여 발전했다고 추정한다. 하느님의 전능함, 창세의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죽음의 과정과 부활, 승천, 심판에 대한 예언, 성령과 교회 공동체에 대한 믿음, 부활과 영생에 대한 믿음을 차례로 약속한다.

2세기 무렵부터 영지주의 및 몬타누스주의 등 이단 사상이 대두되자 기독교가 신앙을 정립하고자 정했다고 보고, 이 신조에 의거하여 이단을 구분한다. 325년 제1차 니케아 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사람은 파문된다. 따라서, 사도신경을 외워 이에 대한 믿음을 선서하지 못하면 곧 이단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공동체 내에서 효과적인 신앙 검증 도구로 기능한다.

개신교 측에서는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오의 복음서 16,16)라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토대로 만들어졌다고 보기도 하며, 사도의 신앙고백이라는 말을 사도적 권위의, 즉 성경의 내용을 잘 요약하여 권위가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한편, 사도신경에 대해 전해지는 이야기 중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만방으로 선교를 위하여 흩어지기 전에 한 구절씩 붙여서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지만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가톨릭과 개신교에서도 이 전설이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한다.

종파별 사용

서방교회

가톨릭

개신교

동방교회

정교회를 비롯한 동방교회에서는 사도신경을 쓰지 않는데, 동방교회의 전승으로 사도신경의 연원이 사도시대에 닿아 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만을 사용한다.

1054년 동서 대분열 전에는 정교회와 가톨릭이 한 교회였다고 하지만, 당시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같은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는 매체가 전무한 시절이었다. 따라서 동방과 서방은 각각의 관구를 세운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의 전승 계보에 따라서 시간이 지나도록 강화된 정보와 또 시간이 흐르면서 희미해지거나 없어진 정보의 종류가 제각각 달랐다. 따라서 사도신경의 연원에 대한 정보가 서방과 동방이 달랐다.

따라서 동서방의 1054년 동서 대분열 후 이를 봉합하기 위한 피렌체 공의회에서 동방의 에페소스의 대주교였던 마르코스 에우게니코스가 동방교회의 전승으로는 사도신경의 연원이 사도시절까지 닿아있음을 입증할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이미 4세기 즈음부터 사도신경이 사도시대로 연원이 닿는다고 믿었던 서방교회와 달리, 동방교회는 그러한 연원 자체를 입증할 수 없어서, 즉 사도신경의 구절을 열두 사도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삽입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어서 사용하지 않는다.

각주

  1. ↑ 반대로 동방 그리스도교, 곧 가톨릭 동방예법과 정교회에서는 전례 중 사도신경을 암송하지 않는다. 다만 전례 중 암송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딱히 사도신경의 내용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2. ↑ 본문의 그리스어 원문은 소실되었으나 5세기 무렵의 라틴어 번역은 남아있다. 발췌한 라틴어 본문 및 한국어 번역은 『하인리히 덴칭거: 신경, 신앙과 도덕에 관한 규정.선언 편람』 제10항을 따랐다.
  3. ↑ 「히폴리토의 법규집」Canones Hippolyti을 토대로 복구한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