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톨릭(로마)을 상징하는 성 베드로 | 정교회(콘스탄티노폴리스)를 상징하는 성 안드레아 |
|---|---|
| 언어 | 표기 |
|---|---|
| 라틴어 | Schisma Graecorum |
| 영어 | East–West Schism, (the) Great Schism, Schism of 1054 |
| 스페인어 | Cisma de Oriente y Gran Cisma |
| 그리스어 | Σχίσμα των δύο Εκκλησιών |
| 러시아어 | Раскол Восток-Запад |
| 한자어 | 東西大分裂 |
개요
|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
| 에페소 5장 23절 |
| “그리스도께서 갈라지셨다는 말입니까?” |
| 고린토 1서 1장 13절 |
동서 대분열 혹은 동서 교회의 대분열은 원래는 그 유명한 니케아-칼케돈 신조를 비롯해서 여러 세계 공의회의 합의를 따르는 양대 기독교인 동방 교회(훗날의 정교회)와 서방 교회(훗날의 가톨릭)가 1054년에 분열되어 오늘날의 정교회와 가톨릭으로 갈라선 시점이라고 역사가들이 보는 사건으로, 기독교사와 세계사에 손꼽히는 중대한 사건이다.
정교회에서는 ‘서방 대이교’라고 부르며, 반대로 가톨릭에서는 '동방 대이교'라 부른다.[1]
이 갈등은 900년이 지난 20세기 들어서야 교회일치운동의 확산 덕에 화해 무드로 들어갔으며, 1965년을 기준으로 동서 교회는 상호 파문을 취소하고 교류를 재개하였다.
서론
후대 역사가들의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할 때 이 시점을 두 교회가 갈라지기 시작한 시점으로 판단한다는 것이지, 실제로는 1053년까지 한 교회였다가 1054년부터 딱 갈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이전과 달리 재통합되지 못하여 영영 떨어져 나간 것이다. 실제로 1054년 이전에도 두 교회가 상호 파문을 한 적이 있으며, 반대로 1054년 이후에도 두 교회가 교류를 이어갔다. 그러므로 이 문서에서는 1054년의 사건뿐만 아니라 그 이전의 두 교회의 관계에 대해서도 서술한다.
동서 분열에 대해, 정교회는 하나인 교회로부터 로마 측이 분열되어 나갔다고 인식하며, 가톨릭은 정반대로 하나인 교회로부터 콘스탄티노폴리스 측이 분열되어 나갔다고 인식한다. 다만 양측에서는 모두 서로에 대한 시선이 개신교에 대한 시선과는 차이가 있으며, 분열 전 역사를 어떤 형태로든[2] 공유한다고 인식은 하고 있다.
배경
그 근원을 따진다면, 서로마 제국이 훈족의 이동으로 인해 남하하기 시작한 게르만족의 지속적인 침입을 받다 결국 서로마가 멸망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로마는 서방 영토를 아예 상실해버렸고,[3] 서방 교회는 로마의 보호를 받을 수 없게되면서 서방 세계에 헬게이트가 열린 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하튼 이민족들의 유입과 서로마의 멸망으로 서방 세계가 개박살 난 와중에도 어찌저찌 이민족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켜가며 어떻게든 생존한 서방 교회는 게르만족을 개종시키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4]
그래도 동서 교회는 서로마의 급작스런 붕괴로 인해 벌어진 혼란을 수습하는 동안에는 멀쩡히 하나의 통합된 지체를 이루고 있었으나, 서방 교회가 어찌저찌 이민족들을 개종시킨 끝에 이 난장판이 수습되자 이미 로마의 동서 분리 때부터 수면아래서 부터 올라오던 수위권 문제가 또 나오게 된다. 또, 이미 교리적 논쟁이 일어나서 본래 하나였던 알렉산드리아 교회가 정교회와 콥트 정교회라는 두 교회로 분열되는 등 이미 꽤나 오래 전부터 교회의 일치는 무너질 대로 무너져가던 상황이었다.[5]
5~10세기의 여러 충돌
726년, 성상파괴운동
1054년, 상호파문 사건의 전말
진짜 분열
오늘날: 화해와 일치의 노력
교황 바오로 6세와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 아티나고라스 1세.
위 두 사람이 이러한 흑역사를 고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1964년 당시 가톨릭 교회의 수장인 교황 바오로 6세와 정교회의 대표인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 아티나고라스 1세가 예루살렘에서 역사적인 만남을 가졌으며 바오로 6세가 교황으로서는 최초로 정교회의 여러 지도자들과 만남을 가지기도 했고 반대로 아티나고라스 역시 정교회의 대표로서 최초로 바티칸을 방문하는 등 서로 교회의 일치를 위해 노력하였다.
이듬해인 1965년 12월 7일 1054년 동서 교회 대분열 이후 무려 900여년 만에 가톨릭과 정교회는 서로에 대한 파문을 철회하였다. 물론 900여년 간 분열되어 있었던 만큼 이 화해는 일단 명목상으로 화해한 것이며, 교회 일치 노력에 어느 정도 진전은 있지만, 서로 간의 입장과 견해 차이는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이다.
그 외에 대해선 교회 일치 운동 참고.
각주
- ↑ 나 먼저 원리를 따른 것이다. 정교회 입장에서는 서쪽의 가톨릭이, 가톨릭 입장에서는 동쪽의 정교회가 분리해 나간 것이기 때문이다.
- ↑ 정교회 시점의 역사관이든 가톨릭 시점의 역사관이든
- ↑ 동로마의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반달·고트 원정으로 서로마의 영토를 수복하기 전까지 로마는 동서로 나눠진 것을 제외하면 아예 서로마를 영토적으로 상실해버리게된다.
- ↑ 이민족들이 글을 읽을 줄 몰라서 개종 시키키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민족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기 위해 성상을 적극 활용한다.
- ↑ 하지만 콥트 정교회와 정교회의 대화이든, 콥트 정교회와 가톨릭의 대화이든, 오늘날엔 당대의 분열이 표현 차이에서 비롯되었다는 데 넓은 공감대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톨릭과 정교회의 대화처럼) 현실적인 실무 문제가 남아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