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2대 국왕 양종│讓宗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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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
| 출생 | 기원전 35년 1월 21일 |
| 신원 미상지 | |
| 사망 | 9년 7월 20일 (향년 44세) |
| 김 포테이토 농원 | |
| 능묘 | 농릉 |
| 재위 | 김 원자 |
| 기원전 35년 1월 8일 ~ 1년 4월 20일 | |
| 김 왕태자│공양태자 | |
| 1년 4월 20일 ~ 6년 8월 18일 | |
| 김 2대 국왕 | |
| 6년 8월 18일 ~ 9년 7월 20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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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생애
태자 책봉
1년 음력 4월 20일(초력 원년), 아버지 김씨가 국가를 건국함에 따라 김의 왕태자로서 책봉되었다. 자신이 태자에 책봉됐다는 말에 농장에서 나온 후 "내가 태자라니! 차라리 류를 시키지?"라며 중도대군을 책봉하라며 자신의 왕위 계승 자격을 무산 시키려 했었으나, 이후 선왕의 강요로 결국 받아들였다.
재위
아무튼 왕이 되긴 했으나, 포인트 혁명 이후 양종은 농장 일이나 즐길 뿐 정치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묘호를 수여할 때 악시가 제한되기도 했다. 신과의 관계 회복에 대한 의사에 지지 의사를 표했으며, 이후 김신교가 건설되었다. 그러나 신이 무단으로 히메지시에 김해항구를 설치 했는데, 무역하는 물자가 대마와 그걸 달여 만든 마약이었다. 군을 파견해 그들을 생포했으나, 이로 인해 김해전쟁이 발발헀다.
사망
양종대왕실록에서 김해전쟁 도중 전사하여, 김해전쟁이 종전됐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위서로 판명난 원종야사에선 전장에 직접 뛰어들지 않고 그저 농사만 계속 이어갔다고 서술이 되어 있어, 사망에 대한 논란이 있다.
생존 여부?
양종대왕실록에서는 9년 경 사망했다고 나오지만, 그 당시 백성들이 그가 농장에서 지내는 일을 서술한 원종야사에선 장종에게 왕위를 넘기고 가화왕후와 밭에서 노후를 보냈다고 나온다. 또한 장종은 항구를 활용해 어류들을 포획하기 바빴으나, 감자까지 같이 무역을 했었다는 기록이 있다. 감자가 그렇게 오랜 기간 싹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으며 감자를 가화왕후가 홀로 길렀다 한들 백성을 나눠주고도 남아 돌 양이 되기는 커녕 농부들이 한 끼로 먹을 양 밖에 재배가 불가능했을 것으로 추정되어 생사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또한 원종야사에 따르면, 중도대군과는 다른, 또 다른 아들의 존재 유무가 나오는데, 해당 야사가 거짓이 아닌 사실을 입증하는 상황이 최근 벌어졌다. 해당 자녀의 이름은 김우(金優)로, 서농군이라 불렸다하며 현재 해당 인물의 자손으로 알려진 왕족 이외의 김씨를 발견해, 해당 야사가 진짜일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이러할 경우 사망 시기가 9년 7월 20일에서 13년 4월 4일로 정정될 뿐만 아니라, 상왕으로 재임했었다는 추가적인 기록이 있다는 얘기가 된다. 실제로 원종야사에는 상왕표(上王表)라는 표(表)가 존재한다.
여담
- 그의 능묘가 위치한 포테이토 농원은 그의 종증손 숭종이 신도시 무지개빛똥칼라타워[3]를 짓기 위해 농원을 대대적으로 철거해 버렸다. 현재 그의 능묘는 U.T. 안에 있으나 오랜 시간 방치되어 현재 나무가 왕릉을 붕괴 시키고 자라 있다.
- 시법에 따른 양종(讓宗)으로 묘호가 채택되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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