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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일본어]]: 日本国, [[한문]]: 日本國, [[영어]]: State of Japan)'''은 [[아시아]], [[오세아니아]]에 위치한 의원내각제, 입헌군주제, 단방제 국가이다.
 
'''일본국([[일본어]]: 日本国, [[한문]]: 日本國, [[영어]]: State of Japan)'''은 [[아시아]], [[오세아니아]]에 위치한 의원내각제, 입헌군주제, 단방제 국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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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나루히토)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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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사용하는 한자 전형인 신자체로 국호를 표기하면 日本国(일본국)이며 한자 번체로는 日本國(일본국), 한자 간체로는 日本国(일본국)으로 영어로는 Japan(저팬)으로 표기한다. '일본'의 일본어 독음은 니혼(にほん, Nihon) 혹은 닛폰(にっぽん, Nippon)인데 영어 독음은 저팬(japan)이다.
 
일본에서 사용하는 한자 전형인 신자체로 국호를 표기하면 日本国(일본국)이며 한자 번체로는 日本國(일본국), 한자 간체로는 日本国(일본국)으로 영어로는 Japan(저팬)으로 표기한다. '일본'의 일본어 독음은 니혼(にほん, Nihon) 혹은 닛폰(にっぽん, Nippon)인데 영어 독음은 저팬(japan)이다.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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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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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나루히토)/국기}}
 
[[파일:Flag of Japan.svg|섬네일|가운데|일장기(日章旗)]]
 
[[파일:Flag of Japan.svg|섬네일|가운데|일장기(日章旗)]]
일본국의 공식 국기는 '''일장기(日章旗), 히노마루(日の丸 ひのま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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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의 공식 국기는 '''일장기(日章旗), 히노마루(日の丸 ひのまる)'''다. [[일본어 (나루히토)|일본어]]로는 일장기를 '닛쇼-키(にっしょうき)'라 읽지만 [[일본인 (나루히토)|일본인]] 대다수는 '히노마루(日の丸 ひのまる)'라 읽는다. 여기서 히노마루는 일장기를 뜻하기도 하고 일본이나 [[일본국 정부 (나루히토)|일본 정부]], 또는 일본의 독자적인 무언가를 지칭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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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장==
[[일본어 (나루히토)|일본어]]로는 일장기를 '닛쇼-키(にっしょうき)'라 읽지만 [[일본인 (나루히토)|일본인]] 대다수는 '히노마루(日の丸 ひのまる)'라 읽는다. 여기서 히노마루는 일장기를 뜻하기도 하지만 일본이나 [[일본국 정부 (나루히토)|일본 정부]], 또는 독자적인 일본의 무언가를 지칭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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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나루히토)/국장}}
 
 
일장기에서 홍색(紅色)의 원은 태양을 뜻하고 전체적으로 태양이 떠오르는 형태를 형상화하였는데 이는 [[일본인 (나루히토)|일본인]]이 태양신 아마테라스의 후손이라는 신화에서 착안하였다. 초기에는 홍색 부분이 적색(赤色)이었으나 이후 홍색으로 교체됐다.
 
 
 
일장기가 처음 사용된 것은 '몬무 천황'의 치세 시기로 태양을 형상화한 깃발을 썼다는 기록이 있다.[* 속일본기에 기록되어 있다.] 허나 예전에는 현재처럼 백색(白色), 홍색 조합이 아닌 적색 바탕에 금색(金色)이나 황색(黃色)의 원을 그려 넣은 모습이었고 여기에 황실 문장을 넣어서 금어기(錦御旗)로[* 다만 가마쿠라 막부 이전에는 국장을 안 넣었다. 그 이후에 금색 원에다가 황실 문장을 장착했다.] 사용하였다. 현재의 백색+적색 조합의 일장기는 [[전근대 일본 (나루히토)|아즈치 모모야마 시대]]부터 사용됐으며, 이후 [[전근대 일본 (나루히토)|에도 막부]]가 들어서자 교역선의 상선기로 일장기가 사용되었다. 시간이 지나 일장기는  쿠로후네 사건과 메이지 유신이 일어난 개항기에 접어들면서 일본을 대표하는 국기(國旗)로 관습화됐다가[* 일본국 태정관지령 상선기령] 1900년에 제정된 '국기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기로 제도화됐다.
 
 
 
일장기는 관공서와 법이 정한 국경일에 의무적으로 게양되고[*국 국기에 관한 법률 제3조(국기 게양)] 주로 황실 행사나 국가 행사, 올림픽, 월드컵 등에서 소지하여 흔드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준국기에는 천황기가 있는데 일장기와 함께 양손으로 흔드는 경우가 있고 한 손에 다 들고 흔드는 경우도 있다. 천황기를 동반해서 쓸 때는 황실 행사에 한정한다.
 
 
 
===국장===
 
 
[[파일:Imperial Seal of Japan.svg|섬네일|가운데|십육엽팔중표국문(十六葉八重表菊文)]]
 
[[파일:Imperial Seal of Japan.svg|섬네일|가운데|십육엽팔중표국문(十六葉八重表菊文)]]
일본국의 관습상 국장은 '''십육엽팔중표국문(十六葉八重表菊文), 십육일중표국문(十六一重表菊文), 국화문(菊花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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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의 관습상 국장은 '''십육엽팔중표국문(十六葉八重表菊文), 십육일중표국문(十六一重表菊文), 국화문(菊花文)'''이다. 명칭이 다양한데 십육엽팔중표국문(十六葉八重表菊文, ,,쥬-로쿠요-하치쥬-효-키쿠,,)과 십육일중표국문(十六一重表菊文, ,,쥬-로쿠이치쥬-효-키쿠,,), 국화문(菊花文, ,,키쿠카,,) 등이 있다. 여기서 국화문은 말 그대로 이 문장에 쓰인 꽃이 국화(菊花)라서 쓰이는 이름이며, 십육엽팔중표국문의 뜻은 '16개의 잎, 8개의 겹을 가진 국화문'이다. 십육일중표국문은 '16개 홑겹을 가진 국화문'이라는 뜻이다. 보통은 국화문이라는 호칭이 널리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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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명칭이 다양한데 십육엽팔중표국문(十六葉八重表菊文, ,,쥬-로쿠요-하치쥬-효-키쿠,,)과 십육일중표국문(十六一重表菊文, ,,쥬-로쿠이치쥬-효-키쿠,,), 국화문(菊花文, ,,키쿠카,,) 등이 있다. 여기서 국화문은 말 그대로 이 문장에 쓰인 꽃이 국화(菊花)라서 쓰이는 이름이며, 십육엽팔중표국문의 뜻은 '16개의 잎, 8개의 겹을 가진 국화문'이다. 십육일중표국문은 '16개 홑겹을 가진 국화문'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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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나루히토)/국가}}
 
 
국화문에 생김새는 위에서 말했듯 국화(菊花)를 형상화한 것이고 16개의 꽃잎이 중앙을 중심으로 모여 있으며 꽃잎의 끝에는 겹쳐져 있는 꽃잎 중 돌출된 꽃잎 16개가 표현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검은색의 테두리 선이 기본이며, 노란색이 안쪽을 채운다. 국화문은 국장으로서 여러 기관의 문장에 넣기도 하며 또한 바리에이션도 꽤 있는데 화족 가문이나 궁가 문장에 이 문장의 바리에이션이 도입되는 경우가 많고 '십육국문(十六菊文)'[* 16개의 잎을 가진 국화문인데 기존 뒤에 겹쳐 있던 꽃이 제거된 모습이다.]이나 '육국문(六菊文)'[* 6개의 잎을 가진 국화문이다.]이 그 예다. 이외 천황기와 황족기 등에도 사용된다.
 
 
 
국화문이 사용된 최초의 사례는 [[전근대 일본 (나루히토)|가마쿠라 막부]] 시절, 고토바 천황의 사용이었다. 이시기, 국화문이 황실을 상징하는 가몬으로 정착됐고 금어기의 금색 원에 국화문이 장착된 시기 또한 가마쿠라 막부 시기이다. 이렇게 황실의 가몬으로 자리 잡은 국화문은 시간이 흘러 현대에 와서도 오칠동문과는 다르게 '[[일본국 황실 (나루히토)|일본 황실]]의 가몬' 지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관습상 일본의 국장이 되었다. 한편 다른 국가 상징과 비교해 국화문은 법적으로서 국장으로 보장돼 있지 않은데 전통적으로 일본을 상징하는 [[일본국 황실 (나루히토)|일본 황실]]의 가몬이었기에 관례상 국장으로 취급되고 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서는 국장 또한 법적으로 국화문을 제정함으로서 그 공백을 채우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중이며 이시바 내각의 공약으로 국장 제정이 있었기에 국장도 관습상 국장이라는 꼬리표를 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http://www.example.org 입헌정우회의 12대 공약]]
 
 
 
준국장에는 관습적으로 [[일본국 정부 (나루히토)|일본 정부]]의 상징인 '고시치키리몬(五七桐紋, 오칠동문)'이 있는데 오칠동문은 과거 [[일본국 황실 (나루히토)|일본 황실]]의 문장이었으나 점차 유력 다이묘들이 전국 시대부터 가몬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정부 상징 등으로만 사용되어 황실은 국화문만 쓰게 되었다. 이 오칠동문도 형태가 쓰임새나 사용하는 단체에 따라서 다양하다.
 
===국가===
 
 
||[youtube(S_HCh5RC6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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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의 국가는 '''기미가요(君が代, きみがよ)'''이다.
 
일본국의 국가는 '''기미가요(君が代, きみが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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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
기미가요를 한국어로 직역하면 '임의 시대'로 여기서 임(君)은 '군주', 즉 [[일본국 천황(나루히토)|천황]]이라 해석하고 이에 따라 기미가요를 '천황의 치세'로 해석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근대 이후로 기미가요 가사는 신민(臣民)이 천황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게 되었고 일부 어구에 대한 해석 논쟁이 여전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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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나루히토)/국화}}
 
 
기미가요는 요나누키 음계 (四七抜き 音階)[* 요나누키 음계란 서양 7음계를 기준으로 하여 4번째 파와 7번째 시가 빠진 5음계를 말하는데, 도-레-미-솔-라로 구성된다.]를 기반으로 삼고 있으며 여기에 서양식 화음이 덧댄 형태다. 노래는 총 11마디 29자[* 자수는 한글 기준]로 아주 짧다. 근데 이렇게 짧은 곡을 길게 부르다 보니 중간에 음이 끊기는 느낌이 난다, 중간에 멈춘 거 같다, 등의 반응이 존재하며, 서양적 화음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여론도 있다. 그리고 약간 칙칙하고 어두운 느낌이 있어 일부에서는 좀 화색이 있는 국가로 바꾸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전반적인 여론은 그냥 現 기미가요를 유지하자는 현상유지론이 가장 우세하다.
 
 
 
기미가요의 원본은 913부터 914년에 편찬된 '고금화가집(古今和歌集)'에 수록된 단가였고[* 고금화가집(古今和歌集) 하가(賀歌)] 천황이 헨조 대사의 칠순을 축하하며 기미가요를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1869년, 명치 시대에 영국군 군악대장 존 윌리엄 펜튼이 최초로 기미가요를 작곡했지만, 곡조가 너무 서양적이라는 비판을 받아 무산됐다. 이후 궁내성 아악부의 소속 오쿠 요시이사와 하야시 히로모리가 요나누키 음계를 기반으로 기미가요를 작곡하고 독일인 음악가, 프란츠 에케르트가 서양식 화음을 추가하면서 지금의 기미가요가 완성된다. 1900년에 '국가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기미가요는 정식적인 일본국 국가로 지정된다. 그러나 오키나와 민족주의자들과 [[남양 제도 (나루히토)|남양 제도]]의 원주민 독립주의자들은 독립운동에 기하여 기미가요 제창을 거부하고 있다.
 
 
 
기미가요는 연례국가행사와 일부 국경일에 의무 제창을 해야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으며,[* 국가에 관한 법률 제3조(제창)] 교육기관 조회[* 교육기관 조회에 관한 법률 제3조(국가 제창)]·민간 행사·황실 행사·각관민연례행사[* 관민연례행사에 관한 법률 제4조(국가 제창)] 등에서 개막식 때 제창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해외 올림픽이나 국제 체육 때에도 선수단에 의해 기미가요가 국가로서 제창된다.
 
===국화===
 
 
[[파일:Prunus × yedoensis-1.jpg|섬네일|가운데|소메이요시노(染井吉野, ソメイヨシノ)]]
 
[[파일:Prunus × yedoensis-1.jpg|섬네일|가운데|소메이요시노(染井吉野, ソメイヨシノ)]]
 
일본국의 국화는 '''벚꽃(桜, ,,사쿠라,,)'''이다.
 
일본국의 국화는 '''벚꽃(桜, ,,사쿠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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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
일본국의 국화는 벚꽃으로 정확히는 벚꽃의 품종 중 소메이요시노(染井吉野)인데, 원래 소메이요시노는 제주 왕벚나무와 동일 품종으로 인식됐지만 이후 서로 별개 품종으로 분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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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나루히토)/국조}}
 
 
소메이요시노는 밝은 분홍색을 띄고 있고 향기로운 냄새를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관상용 나무로 애용되며 일본 국토에는 높은 빈도로 소메이요시노가 서식하고 있어, 도심지나 마을에 벚꽃 공원이 쉽게 조성돼 잇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일본 전역에서는 벚꽃재가 연례행사로 열리고 군 계급장이나 휘장, 훈장 등에 벚꽃이 사용된다.
 
 
 
소메이요시노가 본격적으로 국제 사회와 일본 사회에 등장한 것은 1900년대로서 1901년에는 'Prunus Yedoensis'라는 학명을 부여받았고 1902년에는 소메이요시노 학원에 의하여 서양 세계에 소개됐다. 이후 1912년에는 [[도쿄도 (나루히토)|도쿄도]]가 '워싱턴 DC'에 소메이요시노를 선물하였고 이 영향으로 워싱턴 DC에서는 매년 벚꽃재가 열리게 됐다. 1919년, 제1차세계대전이 종전되고 일본은 영국, 프랑스에 종전기념으로 소메이요시노를 보냈으며, 1924년에서 1926년까지 [[조선 반도 (나루히토)|조선 반도]]의 게이조, 헤이조, 가마야마 등지에 소메이요시노를 보급하면서 벚꽃 사이슈토종에 대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하여 벚꽃 사이슈토종이 소메이요시노의 파생종이었음이 확인됐다. 이후 1963년에 '일본 국화 회의'가 설립되면서 국화수립운동(国化樹立運動)이 전개되었는데 이는 국화를 제정하자는 최초의 움직이었다. 시간이 흘러 1990년, '국화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마침내 국화수립운동은 목적을 달성함과 동시에 소메이요시노는 일본국 국화의 지위를 얻게 되고 오늘날에 이르렀다.
 
 
 
준국화로는 황실의 상징인 국화(菊花)가 있는데, 국화는 국장으로 형상화되는 꽃이기도 하다.
 
===국조===
 
 
[[파일:Phasianus versicolor versicolor -1.jpg|섬네일|가운데|일본꿩(日本の雉, 日本のキジ)]]
 
[[파일:Phasianus versicolor versicolor -1.jpg|섬네일|가운데|일본꿩(日本の雉, 日本のキジ)]]
 
일본국의 국조는 '''일본꿩(日本の雉)'''이다.
 
일본국의 국조는 '''일본꿩(日本の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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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일본꿩은 말 그대로 일본에 서식하는 고유종으로 니혼키지(日本のキジ)라 부른다. 그냥 꿩(キジ)은 초센키지(朝鮮のキジ), 즉 조선꿩을 뜻한다.
 
 
 
일본꿩의 특징은 조선꿩보다 얼굴이 더 붉고 몸통이 갈색인 꿩과 달리 초록색이라서 다른 꿩들과 식별이 편하다. 혼슈, 시코쿠, 규슈, 기타 섬에서 서식하지만, 미국에 의해 하와이 등에서 사냥용으로 키워지는 경우가 있다. 다만 미국이나 사냥용으로 들어온 일본꿩은 잡종과 교배를 하여 나온 일본꿩으로 일본꿩이라 부를 수 없는 개체가 많다.
 
 
 
일본꿩은 1880년대 부터 관습적 국조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던 역사가 있다. 하지만 일본꿩을 정식 국조로 제정하자는 논의는 1950년대 이후에 일어났고 '일본 국조 학회'에서 토의 끝에 [[일본국 정부 (나루히토)|일본 정부]]에 일본꿩을 국조로 제정하자는 청원서를 제출하게 된다. 직후 정부는 이를 수용하여 '국조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면서 일본꿩이 법적 국조에 이르렀다.
 
 
 
아직 일본꿩을 사용한 상징이나 가몬은 별로 없지만 대중매체에서 일본을 일본꿩으로 동물화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역사==
 
 
{{일본국 (나루히토)/역사}}
 
{{일본국 (나루히토)/역사}}
===근대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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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전==
 
{{본문|전근대 일본 (나루히토)}}
 
{{본문|전근대 일본 (나루히토)}}
 
{{본문|전근대 외지 (나루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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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한정부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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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한정부 시대==
 
{{본문|1900년 체제}}
 
{{본문|1900년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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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민정부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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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정부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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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정부 시대==
 
{{본문|1945년 체제}}
 
{{본문|1945년 체제}}
====쇼와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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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와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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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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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헤이세이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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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세이 시대===
=====199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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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200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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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2010년대 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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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와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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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와 시대===
=====2010년대 중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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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환경==
 
==자연환경==
 
{{본문|일본국 (나루히토)/자연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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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인구===
 
{{본문|일본국 (나루히토)/인구}}
 
{{본문|일본국 (나루히토)/인구}}
일본 국적을 가진 이는 [[일본인 (나루히토)|일본인]](日本人)이라 하며 일본인의 주류 민족은 [[야마토 민족 (나루히토)|야마토 민족]]이고 비주류 민족으로는 아이누족, 류큐족, 미크로네시아족 등이 있다.
 
 
일본의 인구는 2019년 호구조사를 기준으로 162,763,329명, 즉 1억 6276만 3329명이며 견실한 인구 증가를 이룩하고 있다. 옆나라인 중국에 비해 적다고 볼 수 있는데 당장 남한 인구의 약 3.2배이고 위에 있는 러시아보다(약 1억 4000만명) 인구가 많다. 한편 일본국은 세계 인구 순위 10위 안에 들기도 하다. 이렇게 많은 인구는 현재 일본 경제를 견인하는 주요점인 내수 경제의 바탕이 되고 있으며 풍부한 노동가능인구와 이에 편승하여 안정적인 노동생산성 성장이 보장된다. 이는 곧 국가 경제력과 산업력의 확장으로 직결된다. 한편 인구가 많으니 자연스럽게 세수가 증대되는 효과가 나온다. --그리고 그에 해당하는 사회복지비용도 증가한다.--
 
 
[[파일:동경 스크램블 교차로 사진 1.jpg|350px|섬네일|가운데|동경 시내 스크램블 교차로]]
 
일본 인구 중 청장년층(15세~64세)은 87,566,671명으로 전체 인구 중 53.8%를 차지하고 있다. 유소년층(0세~14세)은 전체 인구 중 24.2%인 39,388,726명이며 노년층(65세~100세 이상)은 35,807,932명으로 전체 인구 중 22%의 비율을 가지고 있어 일본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상태다. 이렇게 노년 인구가 많은 이유는 제2차세계대전 전후, 내각의 대규모 사회적, 문화적 규제 폐지로 전쟁이란 이유로 절제되어 있던 성 욕구가 터져 나오면서 탄생한 '단카이 세대'의 영향이 크다. 그래도 아직까지 상대적으로 높은 출산율이 유지되는 것이 일본 사회의 희망이라 볼 수 있다.
 
 
일본국의 인구 중 123,010,330명(75.6%)은 [[혼슈 (공동세계관)|혼슈]]에 분포되있으며 그 중 [[일본국 간토 지방 (나루히토)|간토]] 지방과 [[일본국 간사이 지방 (나루히토)|간사이 지방]]에 밀집되어 있는 상황이다. 한편 나머지 39,733,565명(24.4%)는 이외 [[규슈 (나루히토)|규슈]], [[시코쿠 (나루히토)|시코쿠]], [[홋카이도 (나루히토)|홋카이도]]와 [[일본 열도 (나루히토)/남방 제도군|남방 제도군]], [[일본 열도 (나루히토)/난세이 제도|난세이 제도]]에 거주하는데 규슈에는 20,860,206명(12.8%), 시코쿠는 7,741,790명(4.8%), 홋카이도는 8,226,993명(5%), 난세이 제도와 남방 제도군, 기타는 2,904,575명(1.8%)이다.
 
 
인구 비율에서 국외인 비율이 처참한데 기존 일본인을 제외한 국외인 비율이 0.N%를 찍고 있으며 오히려 최근들어 가장 최저 비율인 0.3%를 찍어버렸다. 이는 해외인에 대한 배척 성향이 주 원인이다. 게다가 아직 일본 노동가능인구가 안정적인 편이기에 외국인 노동자 채용이 적은 것도 주 원인은 아니지만 나름 원인이기도 하다. [[에다노 내각]]은 기능견습생 명목으로 이런 해외노동자 채용을 정부 차원에서 장려하여 중앙정부 소속 기능견습생은 늘어나는데 지방정부, 특히 도쿄도에 기능견습생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도호쿠 지역의 도도부현들을 제외하면[* 도호쿠 대지진 후 재건 작업에 동원할 인력 확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기능견습생 감소 현상이 일어나는 중이다. 전국 47개 [[일본국 (공동세계관)/도도부현|도도부현]] 중 기능견습생이 늘어난 곳은 이와테 현, 아오모리 현, 미야기 현, 후쿠시마 현 뿐이고 이외 43개 도도부현에서는 기능견습생이 줄어들었다. 원인은 다양하지만 기능견습생 비자 연장을 거부하는게 가장 큰 원인이며 신입 채용을 줄이는 것도 중요 원인이다. 최근 0.3%라는 경이로운 국외인 비중이 나오자 일본 정부는 관련 규제 개혁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일본국의 출산율은 2019년 기준으로 2.22이며 전년 대비 0.02 증가하였다. 일본이 출산율은 1970년대 이후부터는 계속 2.n을 유지하고 있는데 간혹 2.0까지 떨어지기도 하였다. 가장 최저점은 1.n(미정)이다.
 
 
===언어===
 
===언어===
{{본문|일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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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일본국 (나루히토)/언어}}
일본국의 국어(國語)는 '가나(仮名)'라는 일본 국문(國文)으로 기록되는 [[일본어]]이며 [[일본 열도 (나루히토)|일본 열도]]의 [[일본인 (나루히토)|일본인]] 절대다수가 국어로써 혹은 생활에 용이함을 위하여 사용 중에 있고[* 사실 일본인과 대화 민족은 엄연히 다른 뜻이고 일본인 속에 야마토 민족이 있는 것이다. 일본인에는 아이누족이나 류큐족, 재일한인들도 포함된다.] 해외에 거주하는 일본국적의 [[일본인 (나루히토)|일본인]]도 대개는 사용한다. [[야마토 민족 (나루히토)|야마토 민족]]은 해외 거주인을 제외하면 [[일본어]]를 통용한다. 다만 아이누족이나 류큐족, 재일한인, 재일중국인 등은 자국 언어나 전통 언어를 겸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한편 글로벌 언어로 정착한 영어에 관하여 일본국 정부는 정규 교육 과정에 영어 교육을 의무화시키는 등 영어 교육을 보편화시켰다. 이외에 제2외국어로는 프랑스어, 중국어, 독일어, 라틴어 등이 인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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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의 국어(國語)는 '가나(仮名)'라는 국문(國文)으로 기록되는 [[일본어]]이며 [[일본인 (나루히토)|일본인]] 절대다수가 국어로써 혹은 생활에 용이함을 위하여 사용 중에 있고 해외에 거주하는 일본 국적의 [[일본인 (나루히토)|일본인]]도 대개는 사용한다. [[일본인 (나루히토)|일본인]]은 따라서 [[일본어]]를 통용한다. 아이누어나 산칸어 등 지역어가 존재하고 일본어 자체의 방언도 다양하다. 한편 글로벌 언어로 정착한 영어에 관하여 일본국 정부는 정규 교육 과정에 영어 교육을 의무화시키는 등 영어 교육을 보편화시켰다. 이외에 제2외국어로는 프랑스어, 중국어, 독일어, 라틴어 등이 인기가 많다.
 
===종교===
 
===종교===
일본국은 [[일본국 헌법 (나루히토)|일본국 헌법]]에 의거하여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며 정교(政敎)의 분리를 규정하고 있다.[* 즉 제정일치사회를 부정한다는 뜻이다.] 또한 '국가 연례 행사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국가 행사에는 종교 색채가 함유되면 안된다고 규정한다. 이로 인하여 정부관료들의 신사참배 등, 국가신토나 종교에 관련된 행사는 국가 행사가 아닌 정치인 개인이 치루는 행사로 분류된다. 기타적으로 일본에는 기복 신앙이 대중화되었으며 신토, 불교, 기독교 등 주요 종교의 사상에 착안한 신종교의 발생 빈도가 빈번하다. 그러나 이렇게 발생한 신종교는 사이비 종교와는 다르게 상식적, 윤리적, 비영리적[* 다만 성금을 걷는 신종교도 존재하는데 이럴 경우에는 '성금·모금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부의 방침 하에 성금을 모집한다.]인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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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은 [[일본국 헌법 (나루히토)|일본국 헌법]]에 의거하여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며 정교(政敎)의 분리를 규정하고 있다.
 
 
[[일본인 (나루히토)|일본인]]은 종교를 여러개 갖는 '복수종교(複数宗教, おおいのしゅうきょう)'라는 종교 생활을 하는데 이는 과거 일본이 여러 종교의 영향을 받은 것과 종교 간 연결된 상호 관계에 의해 파생됐다. 그 예로 신불습합이 있었다.[* 신불습합은 신토와 불교의 융합 현상으로 메이지 시대 이후 '신불분리'에 따라 와해되었다.] 복수종교의 종교생활면을 간단하게 보면 일본국의 전통 종교인 불교와 신토는 거의 일본 국민 생활 전반에 동화되어 있기에 태생 초부터 불교나 신토, 혹은 둘 다를 믿기 시작하며[* 이럴 경우에는 처음부터 복수종교 생활을 시작한다.] 이후 기독교 세례를 받게 되거나 불교를 믿게 되어 복수교적(複数黨籍)을 갖는다. 이런 면에서 복수종교 생활은 세속적이라 볼 수 있다.[* 일본은 문부과학성 산하 문화청의 주도 하에 종교인은 소속된 종교를 정부에 신고하는 '교적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러한 특징 덕에 일본에서 종교인 집계를 하면 종교인 집계인수가 일본 전체 국민 수를 넘어가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그냥 매년 그렇다-- 한편 난요 제도는 토착적인 애니미즘 종교가 존재했으나 야마토 민족의 이주가 왕성해지고 그 여파로 신사들이 건립되면서 점차 신토가 지역 종교로 자리잡았으며 원주민 사회 속에서 존승되는 정도로 전락하였다.
 
 
====신토====
 
====신토====
원래 신토는 종교가 아닌 일본의 '문화'로 여겨졌는데 일본의 애니미즘 신앙으로 파생된 일본의 전통 신앙으로 이루어지는 생활 방식 혹은 이념의 총체로 정의되고 있다. 신토의 역사를 보면 조몬 시대부터 조금씩 그 틀이 형성되다가 야요이 시대, 고훈 시대를 거쳐 그 원형이 완성되었고 이때까지 신토는 뚜렷한 종교라는 특성이 없어서 다른 종교와 섞이기도 하였는데 복수종교라는 일본인의 종교 문화와 연계되면서 신불습합이 일어나기도 하였고 후기에는 천주교의 영향을 받아 현재에 이르어 중앙집권화에 성공, 정식적인 종교화가 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종교성이 별로 없어 강한 정체성과 체계적인 조직이 전무했던 신토는 19세기에 접어든 후, 이세신궁의 신관이었던 '아이야 도이치(会谷 盗一)'가 서양의 천주교를 보면서 신토 또한 천주교처럼 조직화되어 '종교(宗敎)'의 모습을 갖출 것을 주장하게 되고 이의 일환으로 여러 지역에 분권적으로 존재하던 신사들을 신궁의 예하로 통합시키는 신토통합운동(神道統合運動)을 전개한다. 한편 '우부야시키 나츠히코(産屋敷 夏彦)'라는 또다른 신관은 천주교의 교황청을 모방하여 모든 신사들을 통할하는 기구의 설립을 이세신궁에 청원하는 교무부설립청원운동(敎務府設立請願運動)을 일으킨다. 또한 신토는 신불습합와해운동(神佛習合瓦解運動)을 통해 신토의 중앙집권화를 사사건건 방해하던 불교와 연을 끊으려 기도한다. 이후 세 운동 모두 목적을 달성하였고 1879년에 교무부가 설치되며 1881년에는 대부분의 지방 신사들이 해당 지방의 신궁에 관리를 받기 시작한다.  이로서 교무부가 신궁을 통할하고 신궁이 신사를 통할하는 조직적 구조의 틀이 정립된다. 허나 이러한 중앙집권화 운동은 일부 지방 신사들의 지지를 얻어내지 못 하였고 이렇게 개혁에 불응한 신사들을 '불응신기(不應神祇)'라 한다. 아이야 신관을 위시로 하는 협상파는 불응신기도 포용하여 개혁에 동참시키는 온건적인 노선을 지향했지만 우부야시키 신관을 위시로 하는 '신궁회(神宮会)'는 협상파의 포용 노선을 지양하고 개혁에 협조하지 않는 불응신기는 불가역적으로 배제, 순응한 신사들로만 개신을 추진해야 한다 주장하면서 대립각을 세운다. 이윽고 신궁회가 양보하면서 불응신기와의 협상에 들어갔고 현재까지 대부분의 지방 신사가 중앙집권화를 이룩했지만 일부 신사는 아직까지 불응신기로 남아 있다. 한편 앞서 말한 두 운동으로 천주교처럼 신토를 종교로 가꾸어 나가기 시작한 신궁회와 '창경회(彰炅会)'는[* 협상파가 표면 위로 올라오면서 창설한 조직이다.] 훗날 신토의 양대 파벌이 되버린다. 20세기 초반이 되어 신토는 천주교처럼 교무부를 정점으로 하는 완연한 중앙집권적 지배 구조와 아마테라스오오카미를 중심으로 교리를 개편하게 된다. 이로서 신토는 여타 다른 종교들처럼 종교의 색을 갖추게 되었으며 오늘날까지 그 체제를 유지하게 된다. 신토의 파벌 정계는 1900년대에서 1950년대까지는 창경회가 우세를 점했지만 이후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는 낙수론 계열인 신궁회가 우세를 점한 상태이며 기존 이세신궁파와 새로 등장한 헤이안신궁파가 연고지를 기반으로 대립하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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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토는 뚜렷한 종교라는 특성이 없어서 다른 종교와 섞이기도 하였는데 복수종교라는 일본인의 종교 문화와 연계되면서 불교와의 융합인 신불습합이 일어나기도 하였고 후기에는 천주교의 영향을 받아 현재에 이르러 중앙집권화에 성공, 정식적인 종교화가 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종교성이 별로 없어 강한 정체성과 체계적인 조직이 전무했던 신토는 19세기에 접어든 후, 이세신궁의 신관이었던 '아이야 도이치(会谷 盗一)'가 서양의 천주교를 보면서 신토 또한 천주교처럼 조직화되어 '종교(宗敎)'의 모습을 갖출 것을 주장하게 되고 이의 일환으로 여러 지역에 분권적으로 존재하던 신사들을 신궁의 예하로 통합시키는 신토통합운동(神道統合運動)을 전개한다. 한편 '우부야시키 나츠히코(産屋敷 夏彦)'라는 또다른 신관은 천주교의 교황청을 모방하여 모든 신사들을 통할하는 기구의 설립을 이세신궁에 청원하는 교무부설립청원운동(敎務府設立請願運動)을 일으킨다. 또한 신토는 신불습합와해운동(神佛習合瓦解運動)을 통해 신토의 중앙집권화를 사사건건 방해하던 불교와 연을 끊으려 기도한다. 이후 세 운동 모두 목적을 달성하였고 1879년에 교무부가 설치되며 1881년에는 대부분의 지방 신사들이 해당 지방의 신궁에 관리를 받기 시작한다.  이로서 교무부가 신궁을 통할하고 신궁이 신사를 통할하는 조직적 구조의 틀이 정립된다. 허나 이러한 중앙집권화 운동은 일부 지방 신사들의 지지를 얻어내지 못 하였고 이렇게 개혁에 불응한 신사들을 '불응신기(不應神祇)'라 한다. 아이야 신관을 위시한 협상파는 불응신기도 포용하여 개혁에 동참시키는 온건적인 노선을 지향했지만 우부야시키 신관을 위시하는 '신궁회(神宮会)'는 협상파의 포용 노선을 지양하고 개혁에 협조하지 않는 불응신기는 불가역적으로 배제, 순응한 신사들로만 개신을 추진해야 한다 주장하면서 대립각을 세운다. 이윽고 신궁회가 양보하면서 불응신기와의 협상에 들어가 현재까지 대부분의 지방 신사가 중앙집권화를 이룩했지만 일부 신사는 아직도 불응신기로 남아 있다. 한편 앞서 말한 두 운동으로 천주교처럼 신토를 종교로 가꾸어 나가기 시작한 신궁회와 '창경회(彰炅会)'는[* 협상파가 표면 위로 올라오면서 창설한 조직이다.] 훗날 신토의 양대 파벌이 되버린다. 20세기 초반이 되어 신토는 천주교처럼 교무부를 정점으로 하는 완연한 중앙집권적 지배 구조와 아마테라스오오카미를 중심으로 교리를 개편하게 된다. 이로서 신토는 여타 다른 종교들처럼 종교의 색을 갖추게 되었으며 오늘날까지 그 체제를 유지하게 된다. 신토의 파벌 정계는 1900년대에서 1950년대까지는 창경회가 우세를 점했지만 이후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는 낙수론 계열인 신궁회가 우세를 점한 상태이며 기존 이세신궁파와 새로 등장한 헤이안신궁파가 연고지를 기반으로 대립하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불교====
 
====불교====
 
[[파일:일본 도다이지 대불전 정면.jpg|350px|섬네일|가운데|도다이지 대불전]]
 
[[파일:일본 도다이지 대불전 정면.jpg|350px|섬네일|가운데|도다이지 대불전]]
일본의 불교 신자수는 [[일본국 정부 (나루히토)|일본국 정부]]의 통계 조사 결과 일본 국민의 48.1%인 78,220,289명(7822만 289명)이며 전국의 사찰 수는 약 7만 5천곳, 승려는 약 18만명 정도이다. [[일본국 정부 (나루히토)|일본 정부]] 문부과학성이 관할하는 불교 부문의 종교법인은 461개, [[일본국 (나루히토)/도도부현|도도부현]] 관할 불교 부문 종교법인은 7만 6875개로 종교 법인 중 가장 많은 파이를 가지고 있으며 한편 주요 종파로는 대승불교를 원칙으로 하는 진언종과 정토종이 있다.
 
  
 
[[파일:호류지 사찰.jpg|250px|섬네일|가운데|호류지]]
 
[[파일:호류지 사찰.jpg|250px|섬네일|가운데|호류지]]
일본에 불교가 처음 전래된 시기는 6세기경의 [[전근대 일본|아스카 시대]]로 이때 불교 종파 중 '남도육종(南都六宗)'으로 불리우는 삼론종, 성실종, 법상종, 구사종, 율종, 화엄종이 전파됐다. 이러한 불교 전래를 주도했던 세력은 한반도 서남부 국가인 '백제'의 승려들이었다. 한편 당시 정사를 폈던 우마야도 황자(쇼토쿠 태자)는 불교의 공인을 추진하던 외척 가문인 소가씨의 주장을 수용하여 불교 진흥에 노력했는데 이에 따라 호류지와 같은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일본의 유명 사찰들이 창설됐다. 일본에 불교가 설파되며 견당사를 통해 일본의 주요 승려들이 당나라에서 불교 학문 등을 수입·연구를 시작한다. 견당사로 돌아온 승려들은 직후 사이초와 구카이의 주도 하에 천태종과 진언종 등을 일본에 새로 개창하였다. 그리고 [[전근대 일본 (나루히토)|나라 시대]]에는 율령국마다 대표되는 절을 창설하는 '고쿠분지' 제도가 실시되어 지방으로도 불교가 급격히 확산된다. 허나 일본 불교는 연도가 지나며 말법 사상이 유행하기 시작한다. 말법 사상이란 석가모니의 불교 설파 후 첫 천년기에는 제대로 석가의 가르침이 구주되지만 두번째 천년기에 접어들면서 불교는 암흑기에 접어든다는 이론으로 [[전근대 일본 (나루히토)|헤이안 시대]]가 되는 기원후 1000년대에 말법 사상이 급격히 확산되고 불교 비관론이 등장하며 일본 불교는 점차 쇠퇴기에 접어든다. 그리고 가마쿠라 시대가 되자 이러한 쇠퇴 현상은 가속화된다. 가마쿠라 시대에 일본은 빈번한 전쟁과 전염병으로 사회가 혼란하였고 백성들은 말법 사상에 젖여 있는 승려들에 대한 대체재, 딱딱하고 규율에 얽매인 불교의 대체재로 한반도에 존재하던 정토종의 아미타 신앙을 믿기 시작한다. 직후 아미타 사상이 충분히 유입되자 이를 기반으로 정토종도 일본에 전래된다. 아미타 사상이라는 학문 기반과 혼란한 사회상을 비료로 쉽게 일본에 뿌리를 튼 정토종은 일본 불교 사회의 주요 종파로 등극하였고 불교가 대중화되면서 불교는 급격한 세 확장을 이룬다. 그리고 헤이안 시대에 전파된 '가지(加持)'를 통하여 본인이 곧 부처가 된다는 진언종이 유행하였으며 오늘날까지 진언종은 일본의 주요 종파의 지위를 유지하게 된다. 정토종과 아미타 신앙의 대중화가 밑거름이 되어 [[전근대 일본|전국 시대]]에는 잇키 주도의 민간 사찰들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전근대 일본 (나루히토)|에도 시대]]가 개막된 후 불교와 신토가 융합되는 '신불습합'이 융성하였는데 불교 중심으로 편성된 신불습합은 재력가와 정부 관료들의 후원, 일본 상공업의 성장에 편승하여 전성기를 누린다. 그러나 점차 불교는 정계와 유착하기 시작하고 '신정유착'이 불교의 폐습으로 자리 잡는다. 근대에 접어들어 신토가 천주교화 정책을 펼치면서 '신불분리'가 진행되고 승려들은 신정유착 폐습의 철폐와 불교의 쇄신을 요구하는 운동을 벌였다. 이후 현재에 이르어 일본 불교는 그리 넉넉치 않은 상황인데 이촌향도 현상으로 지방 사찰의 재정을 지원하던 농가들[* 단가(檀家)라 부른다.]이 감소함에 따라 일본 불교 사회는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파일:일본 승려들 1.jpg|350px|섬네일|가운데|일본 불교의 승려들]]
 
[[파일:일본 승려들 1.jpg|350px|섬네일|가운데|일본 불교의 승려들]]
일본 불교의 특징은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종교 활동이 전개되지 않고 그 사찰의 주직이나 개산조사[* 불교 종파나 절을 새로 세운 사람을 일컫는다.]을 중심으로 종교 활동이 전개된다. 이때문에 부처 불상을 모시는 법당보다 개산조사 등을 모시는 법당이 나름 많다. 일본 전역에 기복신앙이 퍼져 있는 것과는 다르게 일본 불교는 사상적, 교육적인 노선을 타고 있는데 개인의 깨달음을 중시한다. 개인의 깨달음을 중시하여 이에 말미암아 일본 불교는 통일된 종교 기구 수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도 하다. 한편 일본에서 승려는 '직업'이라는 인식이 매우 강하며 [[일본인 (공동세계관)|일본인]]은 승려를 장례주관인이라 생각하거나 자식에게 직업을 대물림하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여기서 일본은 결혼이 가능하고 자식도 가질 수 있는 대처승이 많은 것이 이들의 인식에 크게 기인한다. 한편 승려를 '부업'으로 가진 재가승이나 '알바 승려'같은 직종도 존재한다.
 
 
====기독교====
 
====기독교====
 
[[파일:우라카미 성당 1.jpg|350px|섬네일|가운데|우라카미 성당의 모습]]
 
[[파일:우라카미 성당 1.jpg|350px|섬네일|가운데|우라카미 성당의 모습]]
일본 내 기독교 신자는 41,593,000명으로 전체 일본 국민의 25.6%를 차지한다. 기독교 중에서 일본 가톨릭 교회의 비중이 크고 개신교 동방 정교, 성공회의 파이는 적은데, 일본 가톨릭 교회의 신자는 30,404,483명이고 일본 성공회의 신자는 2,537,173명이며, 장로교와 루터교 등의 개신교 교단들의 신자는 7,944,263명, 일본 정교회는 707,081명에 신자를 보유하고 있다. 신자수에 있어 신토와 불교에 밀려 3위이지만 실질적으로 그 종교의 진실된 신앙심을 가진 신자수는 기독교가 신토를 밀어내기도 한다. 기독교 신자 중 개신교는 일본 내 등록되어 있는 문부과학성 관할 기독교 종교 법인은 622개, [[일본국 (나루히토)/도도부현|도도부현]] 관할 기독교 종교 법인은 35,000개로 총합 35,622개의 기독고 종교 법인이 있다. 그러나 도도부현의 기독교 종교 법인 중 최악의 경우에는 10명 미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종교법인도 존재한다. 이런 경우는 시정촌 중 촌에 존재하는 법인인 경우가 많다. 이외 개신교 종교 교단 270여개가 일본에 상주하고 있다.
 
  
 
[[파일:마리아_관음상_1.jpg|350px|섬네일|성모 마리아를 관음상으로 표현한 모습]]
 
[[파일:마리아_관음상_1.jpg|350px|섬네일|성모 마리아를 관음상으로 표현한 모습]]
일본에 기독교가 처음 전래된 시기는 전국 시대로 포르투갈 예수회의 일본 선교 계획에 따라 파견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를 위시한 선교사들이 가고시마에서 첫 전래 활동을 시작하고 포교 범위를 넓혀간다. 이후 1600년대 초기, 기독교는 성직자 150명, 평신도 75만명을 갖게 되는데 이는 현재 일본 천주교 신자수와 맞먹는 규모이다.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가 개막되고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집권 초, 기독교에 옹호적인 입장을 내비치다가 점차 기독교 포교가 일본을 서양의 식민화하려는 거름이라 생각해 기독교 박해를 개시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갑자기 자신의 기독교에 대한 입장을 바꾼 것은 '생 펠리페 호 사건'때문인데 생 펠리페 호 사건을 요약하자면 스페인의 갈레온인 '생 펠리페 호'가 일본에 표류되고 이에 대한 구조 과정에서 이들이 남아메리카에서 그랬던 것처럼 일본 또한 식민화하려고 사전에 해안 측량을 하려다가 표류된 것으로 오인된 사건인데 이를 기점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첫 기독교 박해이자 마지막 기독교 박해인 '일본26위성인 사건'을 촉발시킨다. 일본26위성인 사건이 있은 다음 에도 막부가 들어선 당간에는 문호개방이 실시되면서 포르투갈과 스페인과의 교역이 활발해지자 다시 선교사가 일본에 포교를 시작한다. 이시기부터 일본 기독교 신자는 폭증하기 시작하는 한편 선교의 중심에 있던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열렬한 가톨릭 국가였기에 가톨릭 교회가 일본 기독교 사회를 장악한다. 막말에 접어들면서 신정파가 세를 확대해 나가자 가톨릭 교회는 대세를 감지하고 신정파에 의탁하여 지방의 신정파 조직들을 지원하였으며 보신전쟁을 끝으로 신정파를 중심으로 일본이 개편되자 신정파의 편을 든 가톨릭 교회는 더욱 득세한다. 시간이 지나 신진운동이나 대권운동 등에도 적극 참여한 가톨릭 교회는 오늘날까지 일본의 3대종교로 군림하게 되지만 성공회를 제외한 개신교, 동방정교회는 막부와 익한정부 등 지는 편에 결탁하면서 기독교 사회의 주도권을 끝내 가져오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른다.
 
 
====사이비 종교====
 
====사이비 종교====
일본국에서 사이비 종교(カルト, 카루토)의 발호 횟수는 적지만 암암리에 창시되고 일부 사이비 종교 단체는 정치 세력을 출범, 정계에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대표적인 정치 세력은 '행복실현당'. 일본에서 일어난 대규모 사이비 종교로는 '옴진리교'가 있는데 도쿄에 사카린 테러를 일으켰다가 [[일본국 정부 (나루히토)|일본국 정부]]의 대대적인 소탕 작전으로 조직이 와해됐지만 아직까지 단체를 --세포분열-- 분리시키며 존속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종교가 상당히 세속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에 전세계적으로 보면 그다지 사이비 종교가 범국가적 문제가 되는 수준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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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에서 사이비 종교(カルト, 카루토)의 발호 횟수는 적지만 암암리에 창시되고 일부 사이비 종교 단체는 정치 세력을 출범, 정계에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대표적인 정치 세력은 '행복실현당'. 일본에서 일어난 대규모 사이비 종교로는 '옴진리교'가 있는데 도쿄에 사린 테러를 일으켰다가 [[일본국 정부 (나루히토)|일본국 정부]]의 대대적인 소탕 작전으로 조직이 와해됐지만 아직까지 조직을 분리시키며 존속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종교가 상당히 세속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에 전세계적으로 보면 그다지 사이비 종교가 범국가적 문제가 되는 수준은 아니다.
 
===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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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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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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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나루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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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1일 (일) 08:38 기준 최신판

본 문서는 나루히토가 창작한 가상의 일본국 설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제1공동세계관 일본의 설정은 현실과 같으되, 모리토모 사건 후 아베 신조가 실각하고 이시바 시게루가 내각총리대신으로 취임한 것이 분기점입니다. 이외 설정은 거의 같습니다.

 

Flag of Japan.svg
일본국
日本国
State of Japan
국기국장국가국화국조
사회문화종교국어민족
정치행정정당천황도도부현
경제산업기업무역통화
자연환경역사국군연호과학기술

 

대일본국
大日本国
Flag of Japan.svgImperial Seal of Japan.svg
국기국장
우리 시대의 평화와 화합
我等の時代の平和と和合
상징
국기일장기
국장국화문
국가기미가요
국화벚꽃
국조일본꿩
지리
면적719,155㎢
수도도쿄도
최대도시도쿄도
행정구역도도부현
인문환경
인구총인구250,817,853명(2019)
지역인구·일본 열도 142,136,597명
·조선 반도 87,350,609명
·대만도 20,727,511명
·남양 제도 603,136명
인구밀도349명/km²(2019)
민족구성일본인 97.5%
중국인 0.9%
기타 1.6%
출산률1.8명(2019)
공용어일본어
공용 문자가나·신자체
종교국교 없음
신토 14%
불교 26.9%
가톨릭 9.4%
기타 및 무종교 49.7%
군대일본국 국군
정치
정치 체제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국가요인천황나루히토
내각총리대신이시바 시게루
참의원 의장히라노 히로후미
중의원 의장가네다 가쓰토시
대심원장나카니시 간
여당입헌정우회
경제
경제 체제자본주의적 시장경제
명목 GDP전체 GDP$10,368,810,043,020(2019년)
1인당 GDP$41,340(2019년)
GDP(PPP)전체 GDP$11,306,617,995,387(2019년)
1인당 GDP$45,079(2019년)
화폐공식화폐일본국 엔 ¥
ISO 4217JPY
역사
701년일본으로 국호 개칭
1900년일본국 헌법 제정
1912년다이쇼 시대 개막
1926년쇼와 시대 개막
1989년헤이세이 시대 개막
2019년레이와 시대 개막
단위
법정연호레이와
시간대일본국 표준시
도량형SI 단위
ccTLD
.jp
국제 전화 코드
+81
국가코드
392, JPN, JP

개요

일본국(일본어: 日本国, 한문: 日本國, 영어: State of Japan)아시아, 오세아니아에 위치한 의원내각제, 입헌군주제, 단방제 국가이다.

상징

Flag of Japan.svg
일본국의 상징
日本国の象徴
Symbol of Japan
Flag of Japan.svg일장기
日の丸 ひのまる
Imperial Seal of Japan.svg국화문
十六葉八重表菊文
Kimigayo.score.png기미가요
きみがよ
Prunus × yedoensis-1.jpg벚꽃
さくら
Phasianus versicolor versicolor -1.jpg일본꿩
日本の雉

국호

언어 해당언어명칭
일본어 日本(にほん, にっぽん)
한국어 일본
영어 Japan
프랑스어 Japon
독일어 Japan
러시아어 Япония
중국어 간체&번체 日本
베트남어 Nhật Bản

일본에서 사용하는 한자 전형인 신자체로 국호를 표기하면 日本国(일본국)이며 한자 번체로는 日本國(일본국), 한자 간체로는 日本国(일본국)으로 영어로는 Japan(저팬)으로 표기한다. '일본'의 일본어 독음은 니혼(にほん, Nihon) 혹은 닛폰(にっぽん, Nippon)인데 영어 독음은 저팬(japan)이다.

국기

틀:일본국 (나루히토)/국기

일장기(日章旗)

일본국의 공식 국기는 일장기(日章旗), 히노마루(日の丸 ひのまる)다. 일본어로는 일장기를 '닛쇼-키(にっしょうき)'라 읽지만 일본인 대다수는 '히노마루(日の丸 ひのまる)'라 읽는다. 여기서 히노마루는 일장기를 뜻하기도 하고 일본이나 일본 정부, 또는 일본의 독자적인 무언가를 지칭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국장

틀:일본국 (나루히토)/국장

십육엽팔중표국문(十六葉八重表菊文)

일본국의 관습상 국장은 십육엽팔중표국문(十六葉八重表菊文), 십육일중표국문(十六一重表菊文), 국화문(菊花文)이다. 명칭이 다양한데 십육엽팔중표국문(十六葉八重表菊文, 쥬-로쿠요-하치쥬-효-키쿠)과 십육일중표국문(十六一重表菊文, 쥬-로쿠이치쥬-효-키쿠), 국화문(菊花文, 키쿠카) 등이 있다. 여기서 국화문은 말 그대로 이 문장에 쓰인 꽃이 국화(菊花)라서 쓰이는 이름이며, 십육엽팔중표국문의 뜻은 '16개의 잎, 8개의 겹을 가진 국화문'이다. 십육일중표국문은 '16개 홑겹을 가진 국화문'이라는 뜻이다. 보통은 국화문이라는 호칭이 널리 사용된다.

국가

틀:일본국 (나루히토)/국가

일본국의 국가는 기미가요(君が代, きみがよ)이다.

국화

틀:일본국 (나루히토)/국화

소메이요시노(染井吉野, ソメイヨシノ)

일본국의 국화는 벚꽃(桜, 사쿠라)이다.

국조

틀:일본국 (나루히토)/국조

일본꿩(日本の雉, 日本のキジ)

일본국의 국조는 일본꿩(日本の雉)이다.

역사

틀:일본국 (나루히토)/역사

근대 이전

익한정부 시대

1900년대

1910년대

1920년대 초기

문민정부 시대

1920년대 중후기

1930년대

1940년대 초중기

국민정부 시대

쇼와 시대

1940년대 후기

1950년대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

헤이세이 시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초기

레이와 시대

2010년대 중후기

2020년대

자연환경

인문환경

인구

언어

일본국의 국어(國語)는 '가나(仮名)'라는 국문(國文)으로 기록되는 일본어이며 일본인 절대다수가 국어로써 혹은 생활에 용이함을 위하여 사용 중에 있고 해외에 거주하는 일본 국적의 일본인도 대개는 사용한다. 일본인은 따라서 일본어를 통용한다. 아이누어나 산칸어 등 지역어가 존재하고 일본어 자체의 방언도 다양하다. 한편 글로벌 언어로 정착한 영어에 관하여 일본국 정부는 정규 교육 과정에 영어 교육을 의무화시키는 등 영어 교육을 보편화시켰다. 이외에 제2외국어로는 프랑스어, 중국어, 독일어, 라틴어 등이 인기가 많다.

종교

일본국은 일본국 헌법에 의거하여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며 정교(政敎)의 분리를 규정하고 있다.

신토

신토는 뚜렷한 종교라는 특성이 없어서 다른 종교와 섞이기도 하였는데 복수종교라는 일본인의 종교 문화와 연계되면서 불교와의 융합인 신불습합이 일어나기도 하였고 후기에는 천주교의 영향을 받아 현재에 이르러 중앙집권화에 성공, 정식적인 종교화가 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종교성이 별로 없어 강한 정체성과 체계적인 조직이 전무했던 신토는 19세기에 접어든 후, 이세신궁의 신관이었던 '아이야 도이치(会谷 盗一)'가 서양의 천주교를 보면서 신토 또한 천주교처럼 조직화되어 '종교(宗敎)'의 모습을 갖출 것을 주장하게 되고 이의 일환으로 여러 지역에 분권적으로 존재하던 신사들을 신궁의 예하로 통합시키는 신토통합운동(神道統合運動)을 전개한다. 한편 '우부야시키 나츠히코(産屋敷 夏彦)'라는 또다른 신관은 천주교의 교황청을 모방하여 모든 신사들을 통할하는 기구의 설립을 이세신궁에 청원하는 교무부설립청원운동(敎務府設立請願運動)을 일으킨다. 또한 신토는 신불습합와해운동(神佛習合瓦解運動)을 통해 신토의 중앙집권화를 사사건건 방해하던 불교와 연을 끊으려 기도한다. 이후 세 운동 모두 목적을 달성하였고 1879년에 교무부가 설치되며 1881년에는 대부분의 지방 신사들이 해당 지방의 신궁에 관리를 받기 시작한다. 이로서 교무부가 신궁을 통할하고 신궁이 신사를 통할하는 조직적 구조의 틀이 정립된다. 허나 이러한 중앙집권화 운동은 일부 지방 신사들의 지지를 얻어내지 못 하였고 이렇게 개혁에 불응한 신사들을 '불응신기(不應神祇)'라 한다. 아이야 신관을 위시한 협상파는 불응신기도 포용하여 개혁에 동참시키는 온건적인 노선을 지향했지만 우부야시키 신관을 위시하는 '신궁회(神宮会)'는 협상파의 포용 노선을 지양하고 개혁에 협조하지 않는 불응신기는 불가역적으로 배제, 순응한 신사들로만 개신을 추진해야 한다 주장하면서 대립각을 세운다. 이윽고 신궁회가 양보하면서 불응신기와의 협상에 들어가 현재까지 대부분의 지방 신사가 중앙집권화를 이룩했지만 일부 신사는 아직도 불응신기로 남아 있다. 한편 앞서 말한 두 운동으로 천주교처럼 신토를 종교로 가꾸어 나가기 시작한 신궁회와 '창경회(彰炅会)'는[1] 훗날 신토의 양대 파벌이 되버린다. 20세기 초반이 되어 신토는 천주교처럼 교무부를 정점으로 하는 완연한 중앙집권적 지배 구조와 아마테라스오오카미를 중심으로 교리를 개편하게 된다. 이로서 신토는 여타 다른 종교들처럼 종교의 색을 갖추게 되었으며 오늘날까지 그 체제를 유지하게 된다. 신토의 파벌 정계는 1900년대에서 1950년대까지는 창경회가 우세를 점했지만 이후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는 낙수론 계열인 신궁회가 우세를 점한 상태이며 기존 이세신궁파와 새로 등장한 헤이안신궁파가 연고지를 기반으로 대립하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불교

도다이지 대불전
호류지
일본 불교의 승려들

기독교

우라카미 성당의 모습
성모 마리아를 관음상으로 표현한 모습

사이비 종교

일본국에서 사이비 종교(カルト, 카루토)의 발호 횟수는 적지만 암암리에 창시되고 일부 사이비 종교 단체는 정치 세력을 출범, 정계에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대표적인 정치 세력은 '행복실현당'. 일본에서 일어난 대규모 사이비 종교로는 '옴진리교'가 있는데 도쿄에 사린 테러를 일으켰다가 일본국 정부의 대대적인 소탕 작전으로 조직이 와해됐지만 아직까지 조직을 분리시키며 존속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종교가 상당히 세속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에 전세계적으로 보면 그다지 사이비 종교가 범국가적 문제가 되는 수준은 아니다.

교통

행정구역

정치

정당

행정

국제관계

경제

사회

교육

문화

언론

교육

관광

군사

단위

법정 연호

시간대

관련 문서

각주

  1. 협상파가 표면 위로 올라오면서 창설한 조직이다.

둘러보기

Flag of Japan.svg
일본국
日本国
State of Japan
국기국장국가국화국조
사회문화종교국어민족
정치행정정당천황도도부현
경제산업기업무역통화
자연환경역사국군연호과학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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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의 영토
日本国の領土
Territory of Japan
일본 열도삼한 반도대만도남양 제도
지시마
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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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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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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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다이토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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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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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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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