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달

Coconut (토론 | 기여)님의 2018년 1월 28일 (일) 12:32 판 (→‎역사)
아사달 제국
阿斯達 帝国
Empire of Bahiland
아사달 국기.png
국기
아사달 제국 국장.png
황실 문장
면적 약 24만 km2
인구 83,645,796명
수도 평경시
국가 조국찬가
공용어 아사달어
정부형태 단일국가, 입헌군주정, 의원내각제
황제 함화제
대내상 공석
민족구성 예맥족 98%, 여진족 2%
종교 국교 없음
불교 28%, 개신교 10%, 천주교 3%, 무종교 59%
화폐 아사달 완
GDP 명목 $2,728,525,865,520
1인당 GDP 명목 $32,620
전자정부 주소 http://cafe.naver.com/asadalofficial

아사달 공화국(아사달어: 雅士㼀 共和國(아사달 공화국)), 약칭 아사달은 동아시아에 있는 국가이다. 서쪽으로는 중국, 동쪽으로는 러시아와 맞닿아 있으며, 동해를 사이에 두고 일본과 마주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한국과 맞닿아 있다.

상징

국호

1862년 생화유신으로 새로운 왕조가 건국되었다. 새 국명을 논의하던중에 나온 '왕을 통달하는 청렴한 관리가 다스리는 나라'라는 뜻의 아사달이 국명으로 채택되어 현재에 이른다.

국기

아사달의 국기

빨간색은 아사달의 주요 민족인 아사족, 파란색은 국토 중앙을 가로지르는 압록강과 두만강, 연두색은 국가의 영산인 백두산, 노란 별은 명예와 진보의 길잡이를 의미한다.

국가

역사

아사달의 역사
阿斯達史
아사달사.PNG

고려시대 (458-866)

7세기 수나라와 당나라의 침입으로 멸망 위기를 맞았으나, 당나라가 3차침공의 실패로 인해 이민족에 대한 영향권을 잃어버리며 돌궐과 티베트 등이 당나라를 위협하자, 당과 고려는 평화협정을 맺고 국가를 유지할수 있게 된다.
이후 고려는 전성기를 맞았으나 9세기 들어 쇠퇴하기 시작했고, 866년 강현성의 난으로 멸망한다.

진-조선 쟁패기 (866-890)

강현성은 평양을 점령하고 새로운 왕조 진을 세웠다. 그러자 동쪽에서는 한 호족이 세력을 키워 흥요를 세운다.
24년의 대립 끝에 진은 조선을 멸망시키고 고려의 옛 영토를 통일한다.

진(발해) (891-1234)

진이 한반도 북부를 통일한지 얼마 되지 않아 거란족에 의해 요나라가 세워진다. 진은 남쪽을 통일한 마진과 화친하였고 군사를 정비하는 등의 대비를 하였다. 그 결과 3차례에 걸친 요나라의 침입을 막아낼수 있었다.
1125년 송나라와 협공하여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북쪽의 흑수말갈까지 복속시키는등 전성기를 맞았으나, 13세기에 지배층의 내분이 발생하였고, 결국 1234년 몽골제국의 침입을 받고 멸망한다.
진은 고려와 달리 말갈인들을 등용하여 이들을 사회 지배층으로 끌어올렸고, 송나라에 조공을 바쳤지만 전성기에는 내부에서는 완전히 황제체제를 사용하는 외왕내제를 사용하였다. (진은 내부에서의 이름, 발해는 송에게 받은 국호이다.)

오사국 (1371-1865)

원나라가 홍건적의 난 등으로 쇠퇴하기 시작하자, 정진경은 요동 반도에서 말갈족과 함께 아사달을 세운다.
16세기까지는 명과 조선의 강력한 견제로 한반도 북부와 요동을 차지하는데 그쳤으나, 임진왜란때 예한(마진의 후신)에 군을 파견한 것을 계기로 예한을 속국화하고, 북방의 말갈족들을 정벌하면서 힘을 키우게 된다.
아사달의 성장을 두려워한 순나라는 아사달을 침공하나, 이를 물리친다.
아사달은 조선을 속국화하면서 관청을 설치하여 제주도를 직접 지배하였고, 이후 하멜 일행이 제주도에 표류하자 이를 계기로 네덜란드로 시작하여 서양의 여러 국가들과 교류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19세기 초반 완안씨 가문의 세도정치로 쇠퇴하게 된다.

아사달 제국 (1865~1945)

서양과의 교류는 신진 문물을 받아들이고 세도가를 타도하자는 신진 개화파라는 새로운 세력을 만들었고, 이들은 세도가의 수탈로 고통받는 백성들의 지지를 얻었다.
이들은 당시 황제였던 순화제와 힘을 합쳐 1860년 세도가를 몰아내고 최초의 근대적 개혁을 실시한다. (순화개혁)
그러나 급진개화파는 정씨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입헌군주제 국가를 건국하기를 원하여 온건파를 제거한 뒤 순화제를 압박하여 퇴위시켰다. 그리고 급진개화파의 대표적 인물이었던 박신양이 황제에 즉위함으로서 아사달 제국이 시작된다. (생화유신)
아사달 제국은 독일식 입헌군주제를 채택하였다.
1930년대 경제난으로 인해 일본과 동맹을 맺고 동아시아 전쟁을 일으켰다. 아사달은 중국에서 승승장구하였으나 일본의 진주만 공습 이후에 연합군에 밀리기 시작했고, 1945년 소련이 아사달 본토를 침공하면서 항복하게 된다.

아사달 인민 공화국 (1951~1991)

6년간의 소련의 군정을 거쳐 사회노동당 하의 공산정권이 수립된다. 제국 시절에 성장한 기업들의 대부분이 공산 정권의 탄압을 피해 일본으로 망명한다.
한편 몇차례의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반면 1963년 임필명 서기장에 의해 소련에서 독립된 독자노선을 걷게 되기도 한다.

아사달 공화국 (1991~)

1989년 동유럽 혁명에 영향을 받아 1990년 공산 정권을 타도하는 2.17 혁명이 일어난다. 그 결과 자본주의를 경제체제로 하는 민주 정권이 수립되었으며, 아사달은 정부와 시민들의 주도로 빠른속도로 경제 성장을 이루는 중이다.

자연환경

영토(면적)

인문환경

인구

민공 83년, 아사달 통계청은 전체 인구가 8000만을 돌파하였다고 발표했다.
동아시아의 다른 국가들과 다르게 아사달의 인구는 꾸준히 증가 추세에 있다.

언어

국민 대부분이 조선어족에 속하는 아사어를 사용하며, 공용어로 지정되어있다.
만주족 자치주에서 사용하는 지역어로서 만주어가 있다.

종교

민공 38년 조사 결과 불교가 24%로 가장 우세하고 도교 9%, 개신교 6%, 가톨릭 2%가 뒤를 이었다.

교통

행정구역

정치

정당

행정

국제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