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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붕괴 Распад СССР Collapse of the USS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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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일시 | 1991년 12월 26일 오전 2시 (소련 해체로부터 33년 경과) | |
내용 | 소련의 공식 해체 러시아 등 소련 구성국 15개국의 독립 독립국가연합 창설 주권국가연맹 무력화 완전한 냉전 종결 | |
관련 선언 |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연방 해체 연설 (1991년 12월 25일 발표) | |
관련 조약 | 벨라베자 조약 (1991년 12월 8일 체결) 알마아타 조약 (1991년 12월 21일 체결) |
개요
Совет Республик Верховного Совета СССР констатирует, что с созданием Содружества Независимых Государств Союз ССР как государство и субъект международного права прекращает свое существование. 소련 최고회의 공화국 평의회는 독립국가연합 창설과 함께 소련이 국가로서 그리고 국제법의 주체로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한다. |
1991년 12월 26일 소련 최고회의 공화국회의 선언 142-N호. |
1922년 12월 30일에 건국된 소련은 건국 69주년을 4일 앞둔 1991년 12월 26일 붕괴하였다. 소련이 무너지면서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국가들은 새롭게 국제 사회에 등장하였다. 소련이 해체되면서 공산진영 또한 막을 내리며 20세기 후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세력이 이념적으로 대립하던 냉전 시대가 공식적으로 완전히 막을 내렸다. 사실 이미 2년 전인 1989년 12월 2일 조지 H.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몰타 정상회담에서 냉전 종식을 선언하기는 했다. 하지만 데탕트 같은 사례처럼 당시 소련 지도부의 입장은 소련 정치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유동적으로 변할 위험이 있었으며 이는 완전한 냉전 종식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1985년 3월 취임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1970년대부터 지속된 동구권의 경제 침체와 체제의 한계 속에서 이를 타개하기 위하여 페레스트로이카를 시행하였고 정치개혁을 통해 소련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는데 소련의 개혁은 소련의 잠재되어 있던 민족 문제가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고, 1989년 7월 분리독립을 원하는 발트 3국에서 주권 선언을 하게 되었으며 고르바초프는 연방 존속을 묻는 국민투표를 하여 연방 유지파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왔으며 이를 바탕으로 주권국가연합을 설립하여 연방 해체를 막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는 8월 쿠데타가 발발하여 무산되었으며 쿠데타를 진압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옐친이 실권자가 되었고 옐친은 벨라베자 조약을 체결하여 소련을 탈퇴하였으며 마지막 구성원인 카자흐스탄이 탈퇴하고 결국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사임하면서 소련은 그 막을 내리게 되었다.
역사
탈퇴 순서
원인
소련은 사회주의 계산 논쟁에서 지적된 여러가지 문제들을 지님으로 인해 체제에 몇가지 비효율적인 지점들을 가졌고, 냉전,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으로 인한 군비 지출로 예산을 낭비하기도 하였으며, 석유 파동으로 인한 석유 의존 경제로 인해 유기가 하락하자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이처럼 소련은 관료들의 무능을 중심으로 여러가지 필연적ㆍ우연적 요소들이 맞물려 경제 침체가 장기화되는 상황에 처했다.
이러한 장기적인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고르바초프 정권은 관료의 통제 아래 시장주의를 도입하는 페레스트로이카와 정치적 자유주의를 도입하는 글라스노스트를 단행하였다. 그러나 페레스트로이카는 일시적으로 경기 침체를 다소 완화하는 데에 그치고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채로 여전히 관료들의 무능이나 사회주의 계산 논쟁에서 지적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었으며, 급진적인 정치적 자유주의의 도입을 추진한 글라스노스트는 기존에 소련에서 억압되었던 여러가지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 문제들이 산발적으로 분출되도록 하였고, 특히 글라스노스트로 인한 소련공산당의 입지의 축소는 소련공산당으로 하여금 고르바초프를 경계하도록 하였다.
끝내 소련공산당이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이것이 실패하자, 이로써 세력이 커진 당시 러시아의 대통령 옐친은 소련을 해체하여 제1의 권력자로 거듭나겠다는 개인적인 야욕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그는 이전에 소련에서 억제되었으나 글라스노스트 이후 표면에 드러나기 시작한 민족 문제를 더욱 자극해 각 공화국이 소련으로부터 독립하도록 부추겼고, 그 결과 모든 공화국들이 소련에서 탈퇴하며 소련은 해체되었다.
즉, 소련의 해체는 지나친 관료주의를 기반으로 한 국유화로 인한 체제의 비효율성과 특히 무능한 관료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여러가지 악재들이 결합하여 초래된 경기 악화에 대해, 고르바초프가 부작용이 많은 조치들을 취하고도 이를 적절히 관리하지 못하여 마침내 옐친의 야욕을 막지 못한 것에 그 원인이 있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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