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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오토 폰 비스마르크와 교황 비오 9세 사이의 다툼에 관한 독일 언론의 풍자화[1] |
개요
Kulturkampf(쿨투어캄프)[2]
근대 이후 성립된 세속 국가들이 정교분리를 내세우면서 교회, 특히 가톨릭의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해 일어난 정치적 알력을 일컫는 단어. 넓게 보자면 문화 투쟁은 프랑스 혁명 당시 프랑스 제1공화국이 가톨릭을 금지하고 사제들을 추방한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20세기 초반[3]까지 약 150년 동안 전 유럽에 걸쳐 일어난 현상이지만 일반적으로 '문화 투쟁'이라고 하면 독일 제국 시기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이끄는 프로이센 왕국과 교황 비오 9세 사이의 다툼을 의미한다.
내용
1870년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교황 비오 9세(Pius IX)가 교황무류성(Päpstliche Unfehlbarkeit) 교의를 선포하자, 비스마르크와 자유주의자들은 이를 세속 국가 권력에 대한 정면 도전이자 신생 제국 통합의 장애물로 인식하며 갈등이 촉발되었다. 1870년 가톨릭 세력을 대변하기 위해 결성된 중앙당(Zentrumspartei)이 1871년 총선에서 63석을 확보하며 급속히 세력을 확대하자, 비스마르크는 이를 하노버 왕가·폴란드계 소수민족·남독일 연방주의 세력이 결집한 반제국적 위협으로 간주했다. 이에 1871년 6월 프로이센 문화부(Kultusministerium) 내에 1840년부터 존속하던 가톨릭 부서를 폐지하여 조직적 대응 기반을 마련한 뒤, 같은 해 12월 사제의 정치적 설교를 금지하는 강단 조항(Kanzelparagraph)을 제정했고, 1872년 7월에는 예수회를 로마의 첨병으로 지목하여 그 지회를 해산하고 회원을 추방하는 예수회법(Jesuitengesetz)을 통과시켰다. 이 과정에서 1872년 1월 자유주의 성향의 아달베르트 팔크(Adalbert Falk)가 프로이센 종교·교육·보건부 장관으로 취임하여 이후 모든 규제 입법을 실질적으로 설계했다.
이어 1873년 5월 11일부터 14일까지 팔크법(Falksche Gesetze), 통칭 5월법(Maigesetze)이라 불리는 네 개의 법률이 프로이센 의회를 통과했다. 여기에는 신앙 이탈을 세속 판사 앞 신고만으로 인정하는 종교이탈법, 교회의 파문·징계권을 생명·재산·자유·명예에 관한 사안에서 크게 제한한 교회징계법, 가톨릭 성직자를 국가 사법기관인 왕립 종교사무재판소(Königlicher Gerichtshof für kirchliche Angelegenheiten)의 관할로 편입시킨 법, 그리고 성직자가 되려면 독일 김나지움의 아비투어(Abitur)와 독일 대학에서의 3년 신학 과정을 이수하고 모든 성직 임명에 국가 승인을 받도록 한 양성·임명법이 포함되어, 사실상 중세 서임권 투쟁(Investiturstreit)을 재현하는 수준의 통제였다. 같은 해 4월 5일에는 프로이센 헌법 제15·16·18조가 개정되어 교회의 자율적 사무 관리권 자체가 국가의 법적 감독 아래 놓이게 되었다.
결과
1871년에 프로이센 가톨릭 신자들은 23%만 중앙당을 지지했지만, 1874년에는 이 비율이 45%로 늘어났다. 비스마르크의 '문화투쟁'이 빚은 참화에 상당 부분 덕을 본 중앙당은 사회 환경에 깊이 뿌리박은 상태에서 이때까지 정치적인 활동을 하지 않았던 가톨릭 신자들을 동원하고 당과 정치의 전선을 확대하면서 "일찌감치 세력을 떨쳤다."[4] 다른 정당은 비가톨릭 진영에 포진한 그들의 지지자들을 규합하면서 점점 중앙당을 따라 했지만, 1912년에 가서야 이들은 중앙당의 대도약을 따라 잡을 수 있었다. 이때도 중앙당은 사민당 다음으로 제국의회에서 세력이 막강했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당과 보수당 소속의 의원 대다수는 여전히 사민당과 손을 잡는 데 신중했기 때문에 중앙당은 가장 강력한 원내 세력이 되었다. 이런 결과는 비스마르크가 1871년에 문화투쟁을 전개했을 때 의도했던 것이 아니었다.— 크리스토퍼 클라크, 《강철왕국, 박병화 옮김 (서울: 도서출판 마티, 2020), 770쪽
각주
- ↑ 번역하자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 베를린과 로마 사이(Zwischen Berlin und Rom). 교황: 방금 수는 언짢지만, 아직 게임은 안끝났네. 아직 나에게는 묘수가 있지. 비스마르크: 그것도 마지막이 될 걸세. 어차피 몇 수 안에, 적어도 독일에서는, 자네는 외통수 상태가 될 테니까 말이다.
- ↑ 독일어 단어인 Kultur(문화)+Kampf(투쟁). 고유명사가 되어 아예 영어나 프랑스어 등 다른 유럽어에서도 자국어로 번역하기보다 이 단어를 그대로 차용해서 쓴다.
- ↑ 특히나 스페인은 가톨릭 세력의 뿌리가 워낙 깊었기 때문에 1930년대의 스페인 내전 당시에도 가톨릭 신부들이 내전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많은 수의 신부들이 학살에 개입했다. 물론 공화파도 사제와 수도자들(+가톨릭 단체에서 활동하던 평신도들도)을 무차별 학살한 것은 마찬가지다.
- ↑ (책 속 주석)Jonathan Sperber, The Kaiser's Voters. Electors and Elections in Imperial Germany (Cambridge, 1997); Margaret Lavinia Anderson, Practicing Democracy. Elections and Political Culture in Imperial Germany(Princeton, NJ, 2000), pp. 69-1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