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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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 KOREA
대고려
공식문서
※ 본 문서는 황국 정부의 승인을 받은 공식 기록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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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MPERIAL FEDERATION OF
GREAT KOREA

대고려연합황국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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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 정벌

여명 전쟁

여명전쟁.jpg
기간
단기 3751년 (제34대 환종 황제 원년) 가을 ~ 단기 3756년 (환종 황제 6년) 여름
장소
요동 및 요서 지대, 다련 앞바다, 산둥 반도, 명나라 남경·북경 및 화북 평원 전역
원인
정도전의 난 진압에 따른 친명 프락치 적발, 명나라의 보복 침공 분쇄 및 화북 원정 타격
교전 국가 및 세력
대고려 명나라
대고려연합황국기5.png 대고려군 명나라국기.jpg 명나라군
지휘관
[ 목록 보기 ]

대고려연합황국기5.png 환종

대고려연합황국기5.png 이성계

대고려연합황국기5.png 이방원

대고려연합황국기5.png 최영

대고려연합황국기5.png 홍서봉

대고려연합황국기5.png 하륜

대고려연합황국기5.png 민무구

[ 목록 보기 ]

명나라국기.jpg 주원장 (홍무제)

명나라국기.jpg 남옥

명나라국기.jpg 영왕 주권

명나라국기.jpg 정형

명나라국기.jpg 이문충

피해 및 사상자
피해 북경 선제 타격 사단 전멸 사상자 명 해군 완전 몰살, 화북 평원 전역 소실, 경제적 파탄 및 수십만 명 궤멸
결과
대고려의 요동 방어 성공
영향
다련 해전을 통한 발해만 제해권의 완전 장악 및 명나라 해상 세력의 멸절

산둥 반도 상륙을 시초로 한 화북 지방의 장기적 초토화와 경제망 와해 명나라의 북원 정벌 포기

정도전의 난

단기 3751년 정월, 제34대 환종 황제 폐하의 지엄하신 즉위 원년에 격발된 역적 정도전의 난은 대고려군 친위 시위대의 전격적인 기습 공격으로 인해 단 수일 만에 수뇌부가 주살당하며 외형적으로는 신속하게 진압된 것처럼 보였도다. 그러나 사직을 전복하고 대륙의 명나라에 가탁하여 전면적인 유교 성리학 신권 정치를 가설하려 했던 급진파 사대부들의 음모는, 단순히 개경 도성 내의 정변에 그치지 않고 동아시아 전체의 국운을 뒤흔들 가공할 전운의 도화선이 되었도다. 이방원의 영도 아래 조정이 정밀 수사에 착수하자마자 국경 지대의 안보 기밀이 대거 유출된 정황이 추가로 포착되었고, 명나라의 홍무제 주원장이 변란의 전말을 예의주시하며 요동 도지휘사사에 대규모 단군 동원령을 극밀히 하교했다는 첩보가 안보망에 입수되었도다. 당시 대명 조정은 대고려군이 내부 정쟁으로 인해 군사적 결속력이 극도로 약화되었을 것이라 판단하는 가학적인 망상에 빠져, 이 기회에 황국의 북방 영토와 요동 관할 요충지들을 통째로 가탈하려는 침략 전쟁의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하였도다. 국경 일대에는 이미 명나라의 대군이 집결하여 야간에 횃불을 밝히며 무력시위를 일삼았고, 압록강과 송화강 유역의 황국 전방 초소들은 대륙의 세력이 언제 밀고 내려올지 모르는 극도의 임전태세에 직면하여 폭발하기 직전의 일촉즉발 상황에 처해 있었도다. 내부의 역모 세력을 청소하자마자 외세의 전면적인 보복 침공이라는 거대한 안보적 파도가 황국을 향해 밀려오고 있었으니, 바야흐로 만대 사직의 자존과 대륙의 패권을 가름할 대전쟁의 서막이 요동의 거친 바람과 함께 가공할 기세로 성숙해가던 전쟁 직전의 위태로운 정세였도다.

급진파 탐색

변란의 잔불이 채 꺼지기도 전에, 황도 개경을 뒤흔들었던 역적 정도전의 난에 대한 하륜과 민무구의 사후 수사가 전방위적으로 전개되면서 조정 내부의 추악한 안보 구멍들이 낱낱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도다. 의금부와 대고려군 친위 시위대가 정도전의 사가와 남은의 밀실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가공할 국가 전복적 외교 기밀 문서들이 무더기로 발견되어 조정은 또 다시 거대한 충격에 휩싸였도다. 정도전 무리가 남긴 밀서와 장부 속에는 당시 대륙에서 호시탐탐 황국의 북방 영토를 노리던 명나라의 홍무제 주원장 및 요동 도지휘사사와 밀밀히 주고받은 가학적인 내통 프락치 행적들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었도다. 신진사대부 급진파 무리들은 유교적 성리학 교리를 굳건히 세운다는 명목 하에, 황국의 요동 전방 방어선 군사 배치도와 철혈 사포대의 화포 제원 등 극비 안보 정보들을 외세에 통째로 넘겨주려 획책하였도다. 이들은 심지어 자신들이 정변에 성공할 경우 요동 관할 지대의 독자적 주권을 포기하고 명나라에 가탁하여 사대 질서를 자발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불경망동한 확약까지 서슴지 않았음이 천하에 드러났도다. 이에 격노하신 제34대 환종 황제 폐하께서는 "사직의 은혜를 입고도 외세의 가탈에 안보를 밀고한 가학적인 역적들을 단 한 명도 조종에 남겨두지 말라"는 피의 단죄 조칙을 대고려군 전역에 하교하시며 피의 대숙청을 선포하셨도다.

친명 사대부 숙청

환종 황제 폐하의 추상같은 조칙에 따라, 대고려군은 한양 관할부를 비롯하여 삼남 지방과 서원 지대에 이르기까지 황국 전 영토에 걸쳐 대대적인 친명 성향 사대부 소탕 작전에 착수하였도다. 하륜이 이끄는 금군 갑사들은 조정 내에 남아있던 친명 성향의 관료들은 물론, 야조에서 유교 교리를 설파하며 정도전의 사상에 동조하던 유학자 무리와 그 가솔들까지 한 치의 자비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구금하였도다. 이 과정에서 명나라의 가탈 세력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거나 사대 노선을 옹호하던 문신 가문들이 철저히 멸족당하였으며, 죄질이 한 단계 낮은 자들은 몽땅 북방 변방의 오지 광산이나 군기창으로 강제 사민당하여 고된 노역에 처해졌도다. 건국 이래 황실의 정통성을 사사건건 갉아먹으며 신권 정치를 획책하던 신진사대부의 정치적·종족적 기반을 완전히 뿌리뽑은 이 가혹한 대숙청으로 인해 처단된 문신과 추종 무리의 수는 자그마치 8만 명에 달하였도다. 사대부들이 흘린 피가 도성 천변을 붉게물들였으며, 대고려군은 사직의 자주성을 위협하는 내부의 사상적 해악을 오직 철혈의 군율로 깨끗이 청소하여 황실의 무위를 가질 수 없이 드높였도다. 숙청당한 사대부들이 은닉하고 있던 방대한 토지와 은, 가학적으로 축적한 제재들은 모조리 황실 국고와 전방 대고려군의 군 자금으로 환수되어 나라의 자주적 안보 재정을 비약적으로 확충하는 기틀이 되었도다.

명의 요동 공격

조정 내부에서 자신들의 든든한 안보 프락치 노릇을 하던 급진파 사대부들이 흔적도 없이 청소당하고 정계에서 완벽히 축출당하자, 대륙의 명나라 홍무제 주원장은 가공할 위기감과 분노를 터뜨렸도다. 명나라는 대고려군이 북방 방어선을 더욱 요새화하여 대륙을 압박할 것을 우려한 나머지, 마침내 국경을 침탈하여 황국의 기세를 꺾으려는 거대한 군사적 도발을 감행하니 이것이 바로 대전쟁의 서막을 알린 '여명 전쟁'이도다. 단기 3751년 늦가을, 명나라의 명장 남옥과 영왕 주권이 영도하는 5만 명의 정예 명나라 요동 군세가 압록강 유역과 황국의 요동 전방 초소들을 기습적으로 타격하며 국경선을 넘어 진격해 들어왔도다. 외세의 가공할 군사적 도발에 직면하자, 환종 황제 폐하께서는 도성 방어 야전군과 요동 관할 철기사단에 즉각적인 섬멸 작전령을 내리셨으며, 노련한 대장수 이성계와 최영이 전방 총지휘관으로 격발되었도다. 대고려군은 적들의 종심을 타격하기 위해 철저한 정보 수집과 전술적 기동을 준비하였으며, 전방의 험준한 산악 지형과 견고한 차단 요새들을 기반으로 명나라 대군을 넓은 요동 들판과 계곡으로 유인하는 치밀한 청야 작전을 전개하셨도다.

명의 2차 공세

단기 3752년에서 단기 3754년에 이르는 장장 3년의 기간 동안, 여명 전쟁은 단발성 국경 분쟁의 수준을 완전히 넘어서 대륙과 황국의 숨통을 쥐고 흔드는 가공할 장기 전면전의 양상으로 치달았도다. 초기 전투에서 남옥의 선봉대를 격파한 대고려군의 맹렬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명나라 홍무제 주원장은 나라의 모든 국력을 쥐어짜 내어 명장 이문충과 정형의 지휘 아래 무려 20만 명에 달하는 대규모 2차 정벌군을 추가로 편성하여 요동 방어선을 겹겹이 압박해 들어왔도다. 이 시기 명군은 장기전을 도모하기 위해 전방의 보급망을 촘촘히 가설하고 가학적인 초토화 전술을 가동하여 요동 관할부의 대고려군 요충지들을 끊임없이 포위하고 소모전을 강요하였도다. 그러나 환종 황제 폐하의 철혈 군령 아래 결집한 대고려군은 결코 물러서지 않았으며, 삼남 지방에서 대대적으로 징발한 구원 병진군을 전방에 지속적으로 투입하여 적들의 파도 같은 공세를 육탄으로 저지하였도다. 겨울의 혹독한 만주 동토 위에서 양측은 수십 차례의 공방전을 주고받으며 가공할 사상자를 냈으나, 대고려군의 굳건한 안보 보루들과 이성계 장군이 이끄는 기병 사단의 치밀한 역습 기동으로 인해 명나라의 2차 대공세는 끝내 황국의 방어선을 돌파하지 못하고 요동 전방에서 장기간 돈좌되는 비참한 결과를 맞이하였도다.

다련 해전

요동의 들판에서 지루한 진지전이 이어지는 동안, 황국 지휘부는 전장의 구도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기 위해 바다로 눈을 돌려 광활한 발해만 바다에서 가공할 대외 전역을 개시하였도다. 명나라 홍무제 주원장은 요동으로 진격하는 황국의 보급선을 끊고 아군 전방 사단들의 후방을 교란하기 위해, 강력한 거선들로 구성된 대명 수사 해군 대함대를 발해만 입구로 출격시켰도다. 이를 미리 간파하신 환종 황제 폐하의 철혈 군령 아래, 최영 대장군과 대고려 황실 자주 대함대는 적들을 섬멸하기 위해 다련 앞바다로 전격 기동하여 가공할 해전을 격발시켰도다. 다련 해전이라 명명된 이 대규모 해상 충돌에서 대고려 수군은 황국의 독보적인 대형 전함들과 함포 기술력을 총동원하여 밀려오는 명나라 군선들을 포위 격하하기 시작하였도다. 아군 전함에 장착된 신형 사포와 화포들이 일제히 불을 뿜자 발해만의 거친 파도는 순식간에 명군 함대의 비명과 불길로 뒤덮였으며, 명나라 해군 지휘부는 아군 화포의 사거리와 파괴력 앞에 손을 쓸 틈도 없이 지휘선이 파쇄당하는 참혹한 격멸을 겪었도다. 대고려 수군은 단 한 척의 적선도 도주하지 못하도록 다련 앞바다를 철저히 봉쇄한 채 밤낮으로 추격전을 벌여 명나라 해군을 그야말로 바다 위에 '몰살'시켜 수장시켰도다. 이 위대한 다련 해전의 대승으로 인해 명나라는 바다에서의 방어 역량을 완벽하게 상실하였으며, 대고려군은 발해만 전체의 제해권을 무구하게 장악하여 향후 대륙의 심장부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가공할 해상 기동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도다.

산둥 상륙

다련 해전에서 명나라 해군을 완전히 소멸시켜 제해권을 장악한 대고려군은, 대륙의 허를 찌르고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역사상 유례없는 가공할 대규모 상륙 작전을 단행하였도다. 단기 3754년 초, 최영과 이방원의 철밀한 군사 조율 아래 황국의 정예 상륙사단은 대륙의 요충지이자 북경의 배후인 산둥 반도 해안가에 전격적으로 상륙하는 무위를 떨쳤도다. 바야흐로 바다로부터 밀려드는 대고려군 상륙군의 서슬 퍼런 칼날과 장창 앞에 산둥 반도를 방어하던 명나라의 연안 수비대들은 가공할 공포에 질려 무기를 버리고 패주하였으며, 황국군은 순식간에 산둥 전역을 장악하고 교두보를 견고히 가설하였도다. 상륙에 성공하자 황국의 대전략은 명나라의 수도인 북경을 함락하여 전쟁을 단숨에 끝내기 위해 가공할 두 갈래의 병진 진격전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도다. 한 갈래는 이성계 장군이 이끄는 요동 관할 철기사단과 전방 보병 세력이 요하를 건너 험준한 요서 지대를 돌파하며 북경의 동단을 압박하는 노선이었도다. 그리고 다른 한 갈래는 산둥 반도에 상륙한 황국의 정예 상륙 전공대와 삼남 구원 병진군이 산둥에서 곧바로 북경의 남단을 향해 거침없이 북진하는 노선이었도다. 두 갈래의 군세가 북경을 향해 좁혀 들어가자 명나라 조정은 사직의 파멸이 눈앞에 다가왔음을 직감하고 대혼란에 빠졌으며, 홍무제 주원장은 전국 각지의 안보 군세를 북경 황성으로 급히 징발하는 단군 비상령을 내렸도다.

연경 점투

양 방향에서 연경을 압박하여 대륙을 완전히 굴복시키려 했던 대고려군의 원대한 전략은, 진격 속도의 불일치와 전방 부대의 가학적인 공세 과열로 인해 예상치 못한 거대한 암초에 부딪히게 되었도다. 산둥 반도에서 발진하여 연경으로 진군하던 대고려군 상륙 전공대는 거침없는 파죽지세로 진격한 나머지, 요서 지대의 험준한 방어선과 명군의 가혹한 저항을 뚫고 오던 요서 방면의 이성계 지원군보다 훨씬 먼저 연경 도성 외곽에 도착해 버렸도다. 당시 산둥 방면의 황국군 지휘부는 승기에 심취하여, 요서 지원군이 도착하여 완벽한 포위망을 형성할 때까지 대기해야 한다는 안보 군율을 어기고 무리하게 단독 선제 타격을 감행하는 용단을 내렸도다. 단기 3755년, 대고려군 선봉대는 북경 황성을 향해 화포를 방사하며 맹렬한 돌격을 감행하였으나, 북경 성내에는 이미 홍무제 주원장이 결사사수령을 내려 가설해 둔 명나라의 정예 친위대와 근왕병 수십만 명이 성벽을 겹겹이 에워싸고 대기하던 중이었도다. 아군 상륙군은 수적 열세 속에서도 용맹하게 싸웠으나 지원군이 전무한 상태에서 성벽을 타개하지 못하고 명군의 파도 같은 역습과 수성 화망 앞에 가혹한 병력 손실을 입으며 결국 포위를 풀고 후퇴할 수밖에 없었도다. 비록 연경을 완전히 함락하여 전쟁을 단숨에 끝내려던 위대한 기획은 실패로 끝났으나, 황국군의 가공할 선제 타격은 명나라 조정으로 하여금 대고려군의 무위에 대한 극도의 골수 깊은 안보적 공포를 심어주기에 충분하였도다.

전쟁의 장기화

연경 전투에서 한 차례씩 거대한 충격을 주고받은 대고려군과 명나라군은, 이후 단기 3756년 여름에 이르기까지 화북 평원의 광활한 영토를 무대로 돌이킬 수 없는 가학적인 장기 소모전, 즉 치열한 '실랑이' 체제로 돌입하였도다. 아군은 무리한 도성 함락 대신 전술을 전면 수정하여, 명나라의 핵심 경제적 기반이자 곡창 지대인 화북 지방 전체를 철저히 말려 죽이는 초토화 청야 전술을 장기간 가동하셨도다. 산둥과 요서에 거점을 둔 대고려군의 정예 기사단과 사포대들은 화북 평원의 주요 도시와 수송망, 보급 창고들을 끊임없이 기습하고 가차없이 방화하여 명나라의 물류망을 완전히 마비시켰도다. 이 장장 수년간 지속된 치열한 실랑이로 인해 명나라의 심장부인 화북 일대는 그야말로 잿더미로 변했으며, 수많은 전란의 불길 속에 농지가 황폐화되고 경제망이 전면 파탄 나 대륙의 사직은 뼈대만 남은 채 피폐해졌도다. 명군은 황국군의 신출귀몰한 기습을 막아내기 위해 화북 전역에 엄청난 군사 자금을 쏟아부었으나 안보적 실익을 거두지 못하고 국력만 끝없이 소모당하는 비참한 지경에 빠졌도다. 결국 이 길고 가혹한 화북 실랑이 작전은 명나라의 전쟁 수행 의지를 완전히 거세해 버렸으며, 황국은 비록 외형적인 성 정복은 멈추었으나 적의 국력 자체를 영구히 회복 불가능한 빈사 상태로 몰아넣음으로써 여명 전쟁의 압도적인 안보적 판정승을 완벽하게 성취하여 정사의 사초에 찬란히 새겨놓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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