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북벌

삼족오1.png
GREAT KOREA
대고려
공식문서
※ 본 문서는 황국 정부의 승인을 받은 공식 기록물입니다.
삼족오1.png
THE IMPERIAL FEDERATION OF
GREAT KOREA

대고려연합황국 관련 문서
[ 역사 ]
[ 지리 ]
[ 정치 ]
[ 사회 ]
[ 헌법 ]
1차 북벌
여요전쟁
여요전투.webp
기간
단기 3285년 (광종 3년) ~ 단기 3320년 (성종 6년)
장소
만주 일대와 한반도 북부
원인
거란의 발해 정복
교전 국가 및 세력
고려군 요군
고려기.svg 태봉
대발해국 국기.png 발해 잔존 세력[1]
요나라국기.jpg 요나라
지휘관
[ 목록 보기 ]

고려기.svg 광종
고려기.svg 경종
고려기.svg 성종
고려기.svg 박수경
고려기.svg 서희
고려기.svg 최승로
고려기.svg 유방
고려기.svg 최숙
고려기.svg 이몽유
고려기.svg 양규
고려기.svg 강감찬
고려기.svg 황보위강

대발해국 국기.png 대광현
대발해국 국기.png 대도수
대발해국 국기.png 신덕
대발해국 국기.png 고정문
대발해국 국기.png 대심리
대발해국 국기.png 열만화
대발해국 국기.png 오현명

[ 목록 보기 ]

요나라국기.jpg 야율환
요나라국기.jpg 야율현
요나라국기.jpg 야율융서
요나라국기.jpg 야율후가
요나라국기.jpg 야율사진
요나라국기.jpg 소손녕
요나라국기.jpg 소배압
요나라국기.jpg 야율적로

피해 및 사상자
사상자 알 수 없음 사상자 약 48만 명
결과
고려 연합군의 승리
영향
발해 황국 건국
대고려연합황국 건국 토대 마련
동아시아 세력 균형 체제 확립

개요

1차 북벌, 또는 여요 전쟁은 태봉이 발해의 멸망 이후 거란을 평정하고 고구려의 고토인 만주를 되찾고자 발생한 전쟁이다. 무려 35년 동안이나 진행된 전쟁은 이후 대고려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준비

태조께서는 삼한을 통합하신 후에도 늘 북쪽의 소실된 강토[2]를 한스럽게 여기셨으니, 단기 3259년 거란의 침탈로 발해(渤海)가 무너지자 이를 제국 통합의 절호의 기회로 보셨다. 태조께서는 귀순한 발해 세자 대광현(大光顯)을 맞이하여 "그대의 나라는 나의 부모와 같으니, 이제 우리는 한 집안이다"라고 선포하시며, 태봉의 세력과 발해의 유민 세력을 결합하여 장차 고려(高麗)라는 거대한 연합 제국을 건설할 것을 비밀리에 약속하셨다. 이것은 마치 남쪽의 힘과 북쪽의 명분이 합쳐져 거대한 섬 전체를 아우르는 연합 왕국이 탄생하는 것과 같은 역사의 서막이었다.

​이어 즉위한 정종(定宗) 대왕께서는 이 '연합 제국'의 설계를 실전으로 옮기기 위해 태봉의 국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리셨다. 정종께서는 30만 명의 광군(光軍)을 조직하시되, 지휘관급에는 태봉의 호족들을, 실전 기병 대열에는 발해의 정예 기병들을 배치하여 양국 전력의 화학적 결합을 꾀하셨다. 정종 3년, 서경(西京)의 병기창에서는 고구려식 맥궁과 태봉의 강철 갑주가 쉼 없이 생산되었고, 압록강 유역에는 100만 석의 군량이 산처럼 쌓였다. 정종의 치세는 태봉 and 발해가 각자의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거란이라는 공공의 적을 물리치기 위해 하나의 칼날이 되어가는 거대한 용광로와 같았다.

고려의 포효

광종(光宗) 3년(단기 3285년), 태봉의 황제께서는 드디어 북벌의 장을 열어젖히셨다. 황제께서는 스스로를 연합황국[3]의 주인으로 선포하시며, 태봉의 정예 보병과 발해 유민 기병이 혼합된 15만 대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셨다. 고려 연합군의 첫 목표는 거란의 요동 방어선이었다. 가상 전투인 천리장성 돌파전에서 태봉의 공성 부대는 요나라의 성벽을 가루로 만들었고, 그 구멍 사이로 발해 철기군이 질풍처럼 쏟아져 들어가 적의 심장을 꿰뚫었다. 요동성(遼東城)을 점령한 광종께서는 성루에 태봉의 상징과 발해의 문양이 합쳐진 연합황국 고려(高麗)의 깃발을 높이 세우셨다.

​이 시기 태봉군은 요하(遼河)를 건너 내몽골 접경지까지 진격로를 확장하였으며, 수차례의 가상 전투인 백암 평원 섬멸전에서 거란의 주력 기병대를 완전히 분쇄하였다. 광종께서는 점령한 요동 땅에 태봉의 정교한 관료제를 이식하는 한편, 발해인 성주들에게 자치권을 부여하여 연합의 결속력을 높이셨다. 만주 벌판은 이제 거란의 수탈지가 아닌, 태봉의 문명과 발해의 무용이 결합된 고려 제국의 새로운 영토가 되어가고 있었다. 황제의 진격은 거침없었으며, 요나라의 성들은 고려의 이름 앞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제국의 길을 열어주었다.

발해 봉기

태봉의 군대가 전방에서 요나라를 압박할 때, 적의 심장부에서는 대광현(大光顯)[4]이 이끄는 발해인들의 대규모 봉기가 터져 나왔다. 태봉 왕실의 일원으로 예우받던 대광현은 요나라 내부의 발해 유민들에게 "우리의 진정한 조국, 태봉의 황제군이 왔다! 모두 일어나 고려의 기치를 들라!"는 격문을 전파했다. 광종 12년, 요나라의 동경 요양부와 상경[5] 인근, 그리고 정안국에서 수십만 명의 발해인이 무기를 들고 일어났으니, 이것이 요나라의 근간을 뒤흔든 '친태봉(親泰封) 대봉기'였다.

​대광현은 6명의 발해 명장들과 함께 요나라의 보급 창고를 불태우고 후방 연락망을 완전히 차단시켰다. 요나라의 명장 야율휴가는 전방에서는 태봉의 정규군과 싸고 후방에서는 발해 봉기군과 싸워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 대광현의 봉기군은 가상 전투인 상경 후방 매복전에서 거란의 구원군 3만 명을 궤멸시키는 전과를 올렸다. 이로 인해 요나라는 제국 내부가 사분오열되었으며, 남방의 태봉 세력과 북방의 발해 부흥 세력은 만주 한복판에서 뜨겁게 손을 맞잡았다. 두 세력의 합일은 명실상부한 고려(高麗) 연합황국의 완성을 의미하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인고의 방어

광종의 승하 후 즉위한 경종(景宗) 대왕의 치세에는 제국에 거대한 시련이 닥쳤다. 요나라는 명군 경종 야율현과 명장 소손녕을 앞세워 잃어버린 만주를 되찾기 위해 총력전을 선포했다. 단기 3312년, 거란의 20만 철기군은 태봉의 점령지를 초토화하며 요동으로 밀고 내려왔다. 가상 전투인 혈천(血川) 대평원 전투에서 태봉군은 거란의 파상공세에 밀려 수만 명의 사상자를 내며 요하 서쪽에서 퇴각해야 했다. 태봉 내부에서는 "전쟁을 멈추고 본토로 돌아가자"는 나약한 목소리가 나왔으나, 경종께서는 서경을 사수하며 요동의 핵심 거점들을 끝까지 지켜내셨다.

​경종께서는 비록 신체는 병약하셨으나 정신만은 태산과 같아, 서경의 방어선을 직접 순시하며 군사들을 독려하셨다. 이 시기 태봉군은 수세 속에서도 발해인들의 유격 전술을 적극 활용하여 거란군의 보급로를 끈질기게 괴롭혔다. 요나라는 전진을 거듭할수록 발해인들의 저항과 태봉의 견고한 성곽 방어에 막혀 국력을 소진하기 시작했다. 경종 대의 10년은 표면적으로는 영토를 일부 상실한 패배처럼 보였으나, 실제로는 요나라의 골수를 갉아먹으며 성종 대의 대반격을 준비한 제국의 처절한 인고(忍苦)의 시간이었다.

대업의 완성

단기 3314년 즉위한 성종(成宗) 대왕은 제국의 운명을 건 최후의 승부수를 던지셨다. 성종께서는 지략의 화신 서희(徐熙)를 전면에 내세워 요나라와의 최종 담판에 임하게 하셨다. 당시 요나라는 송(宋)나라와의 전쟁 가능성과 태봉-발해 연합군의 거센 공세 사이에 끼어 파멸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서희는 성종[6]과 요동 대담판에서 "태봉은 고구려의 후계자이며, 발해의 땅은 우리 조상의 땅이다. 너희가 점유한 만주는 본래 고려(高麗)의 것이니 물러가라"는 서슬 퍼런 논리로 적을 압도했다.

​서희는 동시에 송(宋)나라와 화친을 맺어 요나라의 외교적 고립을 완성했으며, 거란이 물러나지 않을 시 태봉과 송이 협공할 것임을 천명했다. 결국 성종 6년(단기 3320년), 요나라는 만주 대륙에 대한 고려의 영유권을 완전히 인정하고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성종께서는 상경의 하늘 아래 대광현과 오현명 등 발해 지도자들을 대동하고 역사적인 선포를 하셨다. "오늘부터 남쪽의 태봉(泰封)과 북쪽의 발해(渤海)는 하나의 몸, 하나의 국가인 고려(高麗)가 되었음을 천하에 알린다!" 이로써 35년의 대북벌은 장엄한 승리로 끝났고, 반도와 대륙을 아우르는 위대한 고려 연합황국의 시대가 열렸다.

둘러보기

  1. ↑ 대광현이 이끄는 세력과 정안국군
  2. ↑ 고구려의 영토인 요동, 간도, 연해 지역 등등
  3. ↑ 대고려연합황국
  4. ↑ 왕계
  5. ↑ 현 적봉
  6. ↑ 요나라 성종인 야율융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