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상륙
여명 전쟁을 통해 대륙 명나라의 화북 지방을 철저히 초토화하고 동아시아의 절대 패권을 움켜쥐었던 대고려연합황국은, 단기 3925년 봄, 남방 해안으로부터 밀려든 왜적의 대규모 안보 침탈로 인해 새로운 국운을 건 대전역을 맞이하였도다. 일본 열도를 가학적으로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명나라가 피폐해진 틈을 타 대륙으로 진출하겠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20만 명의 전국시대 정예 연합 육군을 황국의 남방 국경선으로 출격시켰도다. 단기 3925년 4월, 왜군의 거대한 함대가 부산포 앞바다를 가득 메우며 기습적인 부산 상륙을 감행하였고, 조총이라는 신식 화기를 앞세운 적들의 파도 같은 공세 앞에 부산성을 사수하던 첨사 정발과 황국 방어군은 결사사수의 항전을 벌였으나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부산성 함락이라는 충격적인 안보적 타격을 입었도다. 기세를 올린 왜군 주력 부대는 파죽지세로 경상도 내륙을 향해 진격하였으며, 이를 저지하기 위해 긴급히 편성된 황국의 경상도 야전군과 조우하여 가공할 '경주 전투'를 격발시켰도다. 경주 전투에서 대고려군은 적들의 신식 조총 전술과 우회 기동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 탓에 방어선이 갈갈이 찢기며 왜군에게 승리를 내어주는 뼈아픈 고전을 겪었으며, 이로 인해 경상도 일대의 안보 전열이 일시적으로 파손되는 위기에 직면하였도다. 그러나 이 초기 고전은 잠자고 있던 대고려연합황국의 거대한 철혈 무위를 일깨우는 강력한 각성제가 되었으며, 선조 황제 폐하께서는 즉각 삼남 전역에 군사 동원령을 내려 적들을 사정없이 분쇄하라는 단호한 격멸령을 내리셨도다.
상주와 고령 전투
초기의 충격을 신속히 수습한 대고려군은 황국 육군의 장기인 화포 기술력과 강력한 철기병, 그리고 의병 부대의 유기적인 협동 전술을 가동하여 왜군의 진격로를 차단하기 위한 철혈 역격멸에 착수하였도다. 북진하려는 왜군 선봉대와 황국의 정예 군세가 경상도 북부의 요충지에서 정면으로 충돌하니, 이것이 바로 전쟁의 판도를 바꾼 위대한 '상주 전투'의 격발이도다. 상주 전투에서 대고려군은 여명 전쟁에서 단련된 대형 화포들과 신기전 부대를 험준한 고지대에 가설하여 다가오는 왜군의 대형을 향해 무차별적인 포격을 가하였고, 적들이 혼비백산한 틈을 타 강력한 보병 진형이 적들의 종심을 타격하여 고려의 압도적인 승리를 성취하였도다. 상주에서의 패배로 왜군의 북진 기세가 꺾이자, 경상도 서부 지대에서는 곽재우를 비롯한 의병 무리와 황국 관군이 연합하여 왜군의 보급선을 끊기 위한 가공할 '고령 전투'를 연쇄적으로 단행하였도다. 고령 전투에서 대고려군은 적들의 지형적 취약점을 철저히 이용한 기습적인 청야 작전과 매복 전술을 전개하여, 왜군의 후방 수송대와 수비 부대를 평원에서 사정없이 포위 격멸하는 찬란한 고려의 승리를 일구어냈도다. 상주와 고령에서의 연이은 대승은 왜군의 병진 진격 전략을 완벽하게 와해시켰으며, 전방의 왜적들은 보급이 완전히 고갈된 채 황국 육군의 철혈 무위 앞에 공포로 전전긍긍하는 빈사 상태로 몰리게 되었도다.
나주와 용인 전투
경상도에서 진격이 가로막힌 왜군이 황국의 곡창 지대인 전라도를 가탈하여 보급을 확보하고자 서쪽으로 군세를 대거 우회시키자, 대고려군은 전라도의 관문과 산악 지대를 요새화하여 적들을 맞이할 완벽한 안보 덫을 가설하였도다. 전라도로 진입하려는 왜군 대부대와 황국의 호남 방어군이 나주 평원 일대에서 정면으로 맞부딪히며 가공할 '나주 전투'가 전개되었도다. 나주 전투에서 대고려군은 적들을 거대한 협곡과 평원의 중심부로 깊숙이 유인한 뒤, 미리 매복해 있던 전라도 순찰 보병대와 화포대들이 사방에서 불포를 방사하여 진입한 전라도 내 왜군을 단 한 명도 남김없이 완전하게 '전멸'시키는 무쌍의 전공을 세웠도다. 호남 사수에 완벽하게 성공한 황국군은 기세를 몰아 경기도 남부의 요충지인 용인으로 군세를 집결시켰으며, 도원수 권율의 총지휘 아래 한반도 중부를 장악하려던 왜군의 잔존 주력 부대를 격멸하기 위한 '용인 전투'를 격발시켰도다. 용인 전투에서 권율 장군은 적들의 수적 우위와 조총 사격을 무력화하기 위해 견고한 진지전을 가설한 후, 적들이 공세를 펼치다 지친 틈을 타 황국의 철기사단과 보병대를 전격 투입하여 왜군의 전열을 갈갈이 찢어발겼도다. 이 위대한 용인 전투의 대승을 통해 권율은 한반도 내에 주둔하던 왜군의 핵심 전열을 완벽하게 청소하고 소탕하였으며, 패잔병들은 도성 근처로 도망치지도 못한 채 남방 해안가로 비참하게 패주하기 시작하였도다.
해전 및 대마도 상륙
육지에서 대고려 육군의 철혈 공세 앞에 왜군이 가혹하게 단죄당하는 동안, 광활한 남해안 바다에서는 전라좌수사 이순신 제독이 이끄는 황실 자주 대함대가 적들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기 위한 영웅적인 해상 소탕전을 전개하였도다. 이순신 제독은 황국의 독보적인 전함인 거북선과 판옥선에 여명 전쟁의 승리를 이끌었던 신형 화포들을 촘촘히 장착하고, 왜 해군의 주력이 집결해 있던 옥포와 사천 앞바다로 격렬하게 기동하였도다. 역사적인 '옥포 해전'과 '사천 해전'에서 대고려 수군은 왜군 함대를 넓은 바다로 유인한 뒤 학익진을 비롯한 천재적인 함대 기동 전술을 펼쳐 왜 해군의 거선들을 사정없이 격파하고 바다 위에 수장시켰도다. 사천 해전에서는 독보적인 돌격선인 거북선이 적진의 중심부를 헤집으며 왜 해군의 지휘 체계를 완벽하게 분쇄하니, 대명 수사를 몰살했던 황국 수군의 무위가 왜적들에게도 가공할 안보적 재앙으로 다가왔도다. 해전의 연이은 대승으로 남해안의 제해권을 완벽하게 장악한 대고려군은, 단순한 방어에 머무르지 않고 적의 배후를 타격하기 위해 '남해안 전투'를 전개하며 거대한 '대마도 보복 상륙 작전'을 전격적으로 결행하였도다. 황국의 정예 상륙군을 가득 태운 자주 대함대는 대마도 해안가에 거침없이 닻을 내렸고, 남해안 전투와 상륙 작전을 통해 대마도를 지키던 왜적의 방어 진지들을 화포 세례로 초토화하며 대마도 전역을 황국의 철혈 군화 아래 완전히 제압하고 장악하였도다.
왜나라의 항복
단기 3926년 가을, 한반도 내에 상륙했던 20만 명의 육군이 상주, 고령, 나주, 용인에서 전멸당하고, 믿었던 해군마저 이순신 제독에게 격멸당한 데 이어 대마도까지 대고려군에게 장악당하자, 일본 열도의 도요토미 군사 정권은 완벽한 파멸의 안보 위기에 직면하였도다. 황국의 대함대가 왜의 본토인 규슈와 에도 앞바다까지 위협하며 전면적인 열도 초토화 작전의 기세를 보이자, 가공할 공포에 질린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마침내 황국 조정에 전령을 보내 무릎을 꿇고 가학적인 침략 행위에 대한 '무조건 항복'을 엄숙히 선언하였도다. 선조 황제 폐하께서는 왜적의 항복을 받아들이시는 조건으로, 황국의 남방 안보를 영구히 수호하고 외세의 도발 의지를 완전히 거세하기 위한 위대한 영토 할양 조칙을 반포하셨도다. 이 정전 협정을 통해 왜의 핵심 해상 요충지였던 대마도(對馬島)와 오도열도(五島列島), 그리고 남방 해로의 거점인 탐라(濟州)가 대고려연합황국의 공식 행정 영토로 완벽하게 편입[1]되는 대업이 이룩되었도다. 사관은 다시금 기개 높은 붓으로 사초에 기록하기를, 내부의 변란을 딛고 대명 전쟁을 승리로 이끈 데 이어 왜적의 가공할 안보 침탈까지 오직 황국의 철혈 무위로 청소하고 국토를 드넓힌 임진왜란 대전역은, 대고려연합황국의 자주적 위엄을 천하만국에 영구히 각인시킨 영광스러운 승리의 역사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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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탐라의 영토 확장으로 제데로된 황국의 완성이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