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고려)

고려 의장기 문양.svg
고려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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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혜종 정종(定宗) 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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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종 성종 목종 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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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고종 금상
추존 국왕 · 왕후 · 왕태자 · 태상왕 · 왕태후
고려 초대 국왕
태조ㅣ太朝
태조.jpeg
출생 877년 2월 4일
신라 패강진 송악군 사찬 용건의 사저
즉위 918년 7월 30일
태봉 철원성 정전
사망 943년 7월 9일
고려 개주 만월대 천덕전
능묘 현릉
재위기간 고려 국왕
918년 7월 30일 ~ 943년 7월 9일
서명 태조서명.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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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개성 왕씨
부모 부왕 세조
모후 위숙왕후
왕후 장화왕후
신명왕후
신정왕후
신성왕후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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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목대부인, 정목부인, 동양원부인

숙목부인, 천안부원부인, 흥복원부인 후대량원부인, 대명주원부인, 광주원부인 소광주원부인, 동산원부인, 예화부인 대서원부인, 소서원부인, 서전원부인 신주원부인, 월화원부인, 소황주원부인 성무부인, 의성부원부인, 월경원부인 몽량원부인, 해량원부인

슬하
19남 4녀 20남 4녀[ 펼치기 · 접기 ]
장남 - 혜종
차남 - 정종

삼남 - 광종
4남 - 문원대왕
5남 - 대종
6남 - 안종
7남 - 중통국사
8남 - 수명태자
9남 - 원녕태자
10남 - 효제태자
11남 - 효명태자
12남 - 법등군
13남 - 자리군
14남 - 효목태자
15남 - 효은태자
16남 - 효성태자
17남 - 효지태자
18남 - 광주원군
19남 - 의성부원대군
20남 - 왕자
장녀 - 흥방궁주
차녀 - 대목왕후
삼녀 - 낙랑공주
사녀 - 부인 왕씨
종교 불교
휘 건(建)
신체 171cm
묘호 태조(太祖)
시호 응운원명광렬대정예덕장효위목신성대왕

(應運元明光烈大定睿德章孝威穆神聖大王)

별호 성조(聖祖) / 열조(烈祖) / 용조(龍祖) / 황조(皇祖)

태왕(太王)

연호 천수(天授) (918년 ~ 933년)
저서 훈요 10조

개요

태조 초상화.jpg
공식 어진
"태조 신성대왕(太祖神聖大王)께서... 요하(遼河)와 패수(浿水)의 놀란 파도를 진정시키고, 진한(秦韓)의 옛 땅을 얻어 열아홉 해 만에 천하[寰瀛]를 통일하셨으니, 공적은 더없이 높고 덕망은 한없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려사》〈열전:황보제공〉

고려를 건국한 개국군주이자 초대 국왕. 수많은 호족들이 난립하던 후삼국시대의 난세를 평정하여 후삼국의 통일을 이룩하였다.

묘호와 시호

공식 묘호는 태조(太祖)이며 존경의 의미로 '성조'(聖祖), '열조'(烈祖)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시호는 《고려사》 <태조 기> -총서-:

응운원명광렬대정예덕장효위목신성대왕(應運元明光烈大定睿德章孝威穆神聖大王)

<태조 기> -총서를 따르면 처음에 혜종이 '신성'을 , 정종이 '위목'을 , 광종이 '장효'를 , 경종이 '예덕'을 , 성종이 '대정'을 , 문종이 '원명광렬'을 , 인종이 '응운'을 올렸다. 이 긴 시호를 줄여 대표적으로 '신성대왕'이라고 부른다.

생애

위키스 상세 내용 로고.svg 자세한 내용은 태조(고려)/생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재위

내치

후삼국 통일

태조는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건국한 뒤, 후백제와 신라를 상대로 오랜 전쟁을 이어갔다. 이후 견훤이 아들 신검에게 축출되어 고려로 망명하자 이를 받아들였으며, 마침내 일리천 전투에서 후백제를 크게 격파하였다. 이어 후백제가 항복하고 신라 또한 스스로 귀부함에 따라 후삼국을 통일하였다.

호족 포섭과 혼인

태조는 전국 각지의 호족 세력을 포섭하고 왕권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여러 유력 가문들과 혼인 관계를 맺었다. 이로 인해 네 명의 왕후와 스물세 명의 부인을 두게 되었으며, 각지 호족들의 지지를 얻어 나라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복잡해진 왕실 혈통과 외척 세력으로 인해 훗날 궁중 암투와 왕위 계승 분쟁의 원인이 되었다.

북진정책과 서경 중시

태조는 고구려의 계승을 자처하며 북진정책을 국시로 삼았다. 특히 서경을 중요하게 여겨 자주 행차하였으며, 북방 민족의 동향을 살피고 국경 방비를 강화하였다. 또한 평양을 북진의 중심지이자 왕업의 근본이 되는 땅으로 보아 중히 대하였다.

민생 안정과 구휼

후삼국의 오랜 전쟁으로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지자, 태조는 세금을 감면하고 빈민을 구휼하도록 명하였다. 각지의 유망민들을 안정시키고 황폐해진 농토의 복구를 장려하였으며, 지나친 수탈을 금하도록 하여 민심을 수습하고자 하였다.

불교 진흥과 왕권 정비

태조는 불교를 나라를 지키는 근본으로 여겨 여러 사찰을 중창하고 승려들을 우대하였다. 연등회와 팔관회를 장려하여 민심을 하나로 모으고자 하였으며, 불교를 통해 왕권의 권위를 세우고 나라의 안정을 도모하였다.

외치

후백제 정벌

태조는 후백제와 수차례 격돌하였으며, 초반에는 공산 전투에서 크게 패하여 신숭겸과 김락 등을 잃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후 국력을 정비하고 견훤과 손을 잡아 반격에 나섰으며, 일리천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어 후백제를 멸망시켰다.

신라 병합

신라는 말기에 이르러 국력이 크게 쇠퇴하였고, 경순왕은 더 이상의 저항이 무의미하다 판단하여 고려에 항복하였다. 태조는 경순왕을 우대하고 신라 왕족과 귀족들을 예우하여 민심을 안정시키고 통합을 이루고자 하였다.

거란 배척 정책

태조는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을 배척하였다. 거란이 보낸 낙타와 예물을 받지 않고 사신을 유배보냈으며, 낙타를 굶겨 죽게 하였다고 전한다. 이는 발해 유민을 받아들인 태조의 정책과 함께 고려가 고구려의 계승국임을 드러낸 사건으로 평가된다.

북진정책 추진

태조는 압록강 일대까지 국경을 넓히고자 하였으며, 북방 지역에 성곽과 군사 거점을 정비하였다. 또한 여진 세력의 동향을 경계하고 북방 호족들과 관계를 맺으며 훗날 고려의 북진 기반을 마련하였다.

붕어와 유조

태조는 집안 내력으로 인해 콩팥에 병이 있었고 그로 인해 무릎에 무리가 가 평소 거동이 어려웠다. 그러던 중 극심한 가뭄이 발생하여 무려 11일이라는 기간의 천도제를 지냈다. 콩팥에 가는 무리는 더 심해지고 결국 천도제를 지내던 중 혼절하였고 얼마 안가 유조를 남긴채 붕어하였다.

황상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뜬구름처럼 덧없는 인생은 예로부터 그러한 것이니라."라고 하고 말을 마친 후 잠시 뒤에 훙서하였다. 왕위에 있은지 26년이며 나이는 67세였다.


《고려사》〈태조 기〉

평가

태조를 평하건대, 난세를 평정하고 삼한을 다시 하나로 합한 군주라 할 만하도다. 궁예를 폐하고 고려를 세운 뒤 후백제를 멸하고 신라를 귀부케 하였으니, 이는 실로 천명이 아니고서야 이루기 어려운 일이었다.

태조는 각지의 호족들을 품어 나라의 기틀을 세우고 백성들의 삶을 안정시키고자 하였으며, 불교를 숭상하고 북진의 뜻을 세워 고구려의 옛 기상을 잇고자 하였다. 또한 발해 유민을 받아들이고 거란을 배척하였으니, 기개 또한 드높았다.

허나 지나치게 많은 혼인과 외척 세력은 훗날 종친과 후비들의 권력 다툼을 불러왔으니, 이는 태조가 남긴 가장 큰 화근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고려 왕업의 근본을 세운 공은 실로 크니, 후세에 이르러서도 태조를 개국의 성군으로 칭하는 이가 많았도다.


《고려사》〈태조 본기〉

“폐하는 천하를 품은 분이셨으나, 한편으로는 누구보다 외로우신 분이기도 하셨습니다. 백성 앞에서는 엄한 군주요 영웅이셨으나, 밤이 깊어지면 전란 속에서 죽어간 이들을 홀로 떠올리며 긴 한숨을 내쉬시곤 하셨습니다.

세상은 폐하를 삼한을 통일한 성군이라 부르나, 신첩은 압니다. 그 모든 영광 뒤에는 누구보다 무거운 짐을 짊어진 한 사내가 있었다는 것을.”

—  장화왕후
폐하는 비록 군사를 일으켜 천하를 얻은 이이나, 패한 이를 업신여기지 아니한 군주였도다. 내가 나라를 들어 항복하였음에도 예로써 대하고 왕족과 신하들까지 후히 대우하였으니, 실로 그 도량이 넓었다.

또한 후삼국이 오랜 전란으로 피폐해졌거늘, 능히 민심을 수습하고 삼한을 다시 하나로 모았으니 이는 참으로 영웅의 기상이로다.

만일 금상이 아니었더라면 삼한의 백성들이 어찌 다시 한 깃발 아래 모일 수 있었겠는가. 나는 비록 왕좌를 내어주었으나, 그에게 나라를 맡긴 것을 후회하지 아니하노라.

—  경순왕
아빠 짱 —  혜종

초상화 및 기타 유물

태조 초상화.jpg
공식 어진
태조 영정.jpg
태묘 영정
태조 청동상.png
태조 청동상

가족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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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