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공산당 내란 사건

월본 월본의 대내외 분쟁
연도 정부 사건이름 관련인
2018년 5월 구창모 정부 앨런, 하늘미르 등 서구와 외교마찰 구창모, 앨런, 하늘미르
2018년 9월 모창민 정부 대한국의 군사 도발 모창민, 대한국 (한비자, 이원 황제)
2019년 2월-3월 민주우 정부 구창모 게이트 구창모, 포장
혁명공산당 내란 사건 혁명공산당
(나카모토 사토시, 멘체스터 등)
2019년 9월 전영록 정부 청아그룹 퇴출 사건 리한, 청아, 전영록 정부
2019년 10월 리한 사태 리한그룹 (리한)
2019년 11월 민주우 정부 하나국 디자인 분쟁 민주우, 장현
2021년 1월 이맹박 정부 월본의 가상국제연합 탈퇴 이맹박, 가상국제연합
2021년 1월 구창모 권한대행 월본사회주의연방 사건 나의재, 문대성, 전영록
2022년 1월 Mirai 정부 월본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건 전월본공산당
(한비자, 까마귀, 한유 등)
2023년 2월 다카기 그네 정부 2023년 월본 헌정위기 육성준, 다카기 그네, 박헌희, 윤건희, 세이시로 등
2024년 6월 마츠다 하루토라 정부 2024년 월본 헌정위기 마츠다 하루토라, 에지스, 구창모, 수보, 미라이 등
6.18 테러 마츠다 하루토라, 타츠바나 요쿠온
2025년 1월 아사모토 강치 정부 월본 정부와 기업 간 충돌 사태 대한청아, 시나노, 경제특수본, 사법부
2025년 5월 아사모토 강치 정부 비상사태 파동 아사모토 강치, 하로히토
혁명공산당 내란 사건
혁명공산당 사건.png
기간 2019년 2월 27일 ~ 3월 1일
장소 월본국 국회의사당
원인 가국련 의장 게이트
황실의 배후 공작 의혹
목표 황실폐지 및 공화정 전환 시도
멕시코에 망명정부 결성
결과 게시글 수백개 손실
민주우 총리 사퇴 및 무정부 사태
내란 선동(망명정부)
영향 정계 위축
제5대 월본 국회의원 선거
대치세력 혁명공산당
* 나카모토 사토시
* 맨체스터
황실
* 메이우 천황
월본 정부
* 민주우
* 정문석

혁명공산당 내란 사건은 2019년 2월 27일~3월 1일 혁명공산당 당원인 나카모토 사토시와 맨체스터가 일으킨 황실 부정 및 내란 사건이다.

혁명을 완수합시다.

월본 인민 공화국 수립을 제안합니다.
카페를 따로 만들고 독립을 추진하여 전월본의 해방을 추진합시다.

혁명공산당 당사에서 나카모토 사토시의 발언
월본 황실 폐지 및 황족들의 모든 권리 포기
2019년 2월 28일 여론조사에서


사건

월본 혁명공산당 내란 사건 투표.png

2018년 12월 창당된 혁명공산당은 사건 발생일인 2019년 2월까지 센다이 지사 선거에 출마하거나 사회민주당과 연대 하는 등 적극적인 정치활동을 해왔다. 그러나 가국련 의장 게이트 사건이 발생하였고 여론이 나빠지자 결국 정부는 황실과 협의하여 연합 의장을 교체하기로 한다. 이 과정에서 자민당계 인사들이 반발하기도 했었으나 갑자기 연관도 없던 인물들이 동조하기 시작했다. 혁명공산당은 국회의사당을 통해 황실의 폐지#공화제로 전환을 주장하였으며 이런 터무니 없는 발언이 나올 당시 자민당에서도 '선을 넘었다'며 반박하였다. 그러나 이런 선넘는 발언들에 거센 반발을 받았지만 결국 황실 폐지에 관한 여론조사를 강행하였고 가상국가 멕시코에 월본인민공화국이라는 망명 정부#를 세우기까지 한다.

주장

혁명공산당이 주장하는 바는 처음엔 연합의장 교체에 대한 반발이었다. 정확히는 구창모 연합의장의 후임으로 포장 (이청우)가 임명된 것에 대한 반발이다. 당시 가상국제연합(UVN)의 상황은 한비자 게이트[1]부터 가국련 의장 게이트[2]로 인해 월본의 이미지가 급락하였고 민주우 정부는 황실에 국제사회의 여론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이미지에 의식해 포장으로 교체 임명하게 된다.# 이것이 불씨가 되고 화근이 된것이 냉전처럼 번지던 UVN계 사이의 계파 갈등이 촉발되어 친 구창모 측은 포장 임명에 거세게 반발하게 된것이다. 나카모토 사토시의 혁명공산당 역시 처음에는 이 '포장' 개인에 대한 반발로 시작하였다. 교체 임명 발표 이후 이럴바에는 의장국을 사임하자라는 발언이 나올 정도. 하지만 황실과 정부는 이미 이쪽에 신뢰가 무너져 말을 듣지 않았고 교체를 강행하게 된다.

월본에서 활동하지 않는 사람인데 어떻게 월본 사람이라 할수있겠느냐라는 내용으로 흘러 어느새 교체 반대 측은 의장국 사임 안건을 발의하지만 민주우 총리는 국회 해산# 카드를 꺼내들어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당원이었던 맨체스터는 황실 폐지와 의장국 사임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를 실시하였고 실제로 찬성표가 2표차로 근소하게 더 많았다.[3]

조사 및 처벌

사건의 절정기에는 치안 유지가 어려워지자[4] 황실은 황궁을 나와 비상통로를 통해서 B2벙커로 피신하여 '추밀원'을 긴급 소집했고 무정부 사태를 빠르게 수습하고자 하였다. 추밀원에서 사건의 조사를 하며 유권해석에 따라 관련자들을 국외 추방하였다. 이후 정보부에 의하면 관련자들은 전부 미국 가상번호로 변경하여 추적을 따돌렸고 최소 3개월 후 네이버 계정 탈퇴가 이루어졌다. 대사건의 주동자인 나카모토 사토시는 완전히 사라졌고 동조자인 맨체스터는 사건 이후 몰도바에 몇차례 방문한 것으로 확인된다.

추밀원

이 사건의 영향으로 무정부 사태를 수습하고자 야당과 정부, 황실이 모여 추밀원을 소집한다. 국제사회의 여론을 의식하여 법률자문이 가능하고 추밀원의 행동이 차후에 문제되지 않도록 친 UVN계 인물들을 끌어들였다는 일각의 주장도 있다. 추밀원을 통해 결국 긴급조치 2호를 발동하게 되었고[5] 관련자들을 최고형으로 즉결 집행한다.

영향

  • 대형 사건이 발생하자 이를 처벌하거나 제지할 법적 근거 마련이 시급했다. 또한 한동안 공산계열 정당은 눈에 보이지 않게 된다.
  • 민주우 총리가 임기를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건이 발생하였고 이에 책임지고 사퇴하고 출국했다.
  • 이 사태로 그마저도 없던 정계가 폭삭 망했다. 당시 정계 인물들 중 대다수가 이해관계 문제로 떠났다.
  • 법률이나 메뉴얼이 미비하여 사건 조사가 더디거나 수사 효력의 의문인 경우가 있고, 증거수집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지지 않아 유실되거나 확인불가하여 조사 진행에 어려움이 많았다. 더구나 사람 대 사람의 감정 다툼 사건이므로 결국 감정 소모전으로 마무리되었던 것이 아쉽게 된 사건이다.
  • 이후 민주우를 비롯해 친민계는 기피인물지정법등 사건의 관련자들을 영구적으로 이격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실제로 네이버측에 의해 게시중단되었다.

기타

  • 발언에 대한 사과#를 하기도 했으나 바로 다음에는 하야 시위#를 하며 급반전 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각주

  1. 하늘미르 왕국서 발생한 금융비리 사건. UND와 HMD의 사용에 대한 충돌부터 대한국으로 부정투자 및 부정한 돈 세탁 정황이 드러난 사건이다.
  2. 일베어와 신상유포 등에 관한 문제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연합의장국이었던 월본은 국제사회로부터 연합의장을 교체하라는 압박이 거세졌고 개인의 신뢰로 버텼지만 결국 황실과 정부는 여론의 압박에 무너져 결국 연합의장을 여론에 유리한 방향으로 교체하게 된다.
  3. 실제로 부계정을 동원했는지는 알수없으나 당시 활동하는 활동 인구보다 2배로 찍혀나왔다.
  4. 국회에서 혁명공산당 측 발언의 수위가 높아지자 민주우 내각 총리가 도중에 사퇴하였다. 내각 극초창기라 대행업무를 받을 내각의 인물도 인선하기 전이다.
  5. 이 긴급조치 2호의 원문은 하은우 전 총리가 탈퇴 전 자체 기록 말살로 유실된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