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경귀비

(왕대비 최씨에서 넘어옴)
고려 예종의 후궁
선경귀비ㅣ鮮景貴妃
왕대비 최씨.jpeg
출생 1093년 7월 9일
고려 충주 진한공 왕유의 사저
사망 1173년 12월 2일
고려 황도 개주 숭덕궁
본관 부계 개성 왕씨
모계 충주 최씨
재위기간 고려 귀비
1130년 8월 1일 ~ 1145년 10월 7일
고려 귀비(복위)
1153년 10월 23일 ~ 1157년 10월 26일
고려 왕대비
1157년 10월 26일 ~ 1173년 12월 2일
[ 펼치기 · 접기 ]
종교 불교
부군 예종
슬하 장녀 공예왕후
차녀 경안택주
삼녀 정안궁주
작호 귀비(貴妃) → 왕대비(王大妃)
시호 선경귀비(鮮景貴妃)
궁호 적격궁(積慶院)
별호 왕대비 최씨(王大妃 崔氏)

개요

고려 예종의 후궁.

문종과 인질덕비의 아들인 진한공 왕유와 진항공비 최씨의 딸로 순덕왕후 사후 5년뒤에 귀비로 간택되었다.

생애

사랑받지 못한 후궁

귀비 최씨는 예종이 근친혼 폐지를 강력 주장하던 시기에 참지정사 이자겸의 추천으로 간택된 왕비로 예종에게 직첩을 받은 후에 아들을 낳지 못하자 자신의 처소에 찾아오지 않는 예종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쓸쓸한 나날들을 보냈다.

폐위

예종이 승하하며 다른 후궁들과 함께 출궁당할 위기에 쳐해졌을때 , 이자겸에 의해 적경궁 상궁과 대식[1]을 하고 무당을 불러들여 왕실을 저주했다는 누명을 쓰고 폐위당했다.

금상폐하 , 대행대왕의 후비인 귀비 최씨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궁인들과 대식을 이어가는 망측한 짓을 하고 , 궐 내로 무녀로 들여 굿을 하여 부처와 왕실의 명예를 더렵혔습니다.
하니 귀비의 지위를 박탈해 폐위시키고 출궁시키소서.

— 이자겸의 상소

귀비 최씨는 상복이 강제로 벗겨진채로 적경궁에서 끌려나와 출궁당했고 이후 정목대왕의 재위기인 1153년 10월 23일 다시 귀비로 복위되어 만월대로 돌아왔고 정목대왕은 자신의 어미 폐비 김씨(고려)를 떠올리며 어미를 대하듯 지극정성으로 모셨다.

박지만의 정변

박지만이 정변을 일으켜 대부분의 공신들과 대왕태후였던 사숙왕후를 시해하자 평주원부인과 함께 가마를 타고 본궐 뒷문을 통해 개경을 빠져 나오려 했으나 , 박지만의 군대가 가마를 포위해 다시 만월대로 돌려 귀비에게 폐위 교서를 내밀었고 결국은 직접 폐위교서에 국새를 찍고 말았다.

말년과 사망

1155년 10월 26일 정목대왕이 폐위되고 인종 왕위에 오르자 왕대비로 존봉되었으며 오랜세월 학질을 앓다 1173년 12월 2일 생을 마감하고 선경귀비라는 시호를 받았다.

세상에 한이 너무 많다.

어찌 이리 떠나냐 싶지만 소중한 이들을 너무 많이 잃었다.

이자겸과 박지만에게 저항하신 사숙태후 폐하와 문하시중 김지원에게 미안합니다.

이제 가니, 벌은 달게 받겠습니다.

여담

왕대비 재위 당시 만월대만 오면 박지만의 정변 당시 일들이 생각난다며 개경을 떠나 황주 숭덕궁에서 말년을 보냈다.

각주

  1. ↑ 궁중 여성들끼리의 동성행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