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경제국 시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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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경제국 시위대
大敬帝國 侍衛隊 / Korea High Lifeguard
설립일 의명 26년, 1987년 10월 12일
설립 근거 칙령 제17호
전신 대경제국 제1제국 시위대
직원 수 4,155명
시위대장 5대 한원숙
상급기관 경시원

개요

우리는 황제 폐하를 호위하는 영예로운 이들이다.
We are honorable army escorting the Korea Emperor.

— 시위대의 슬로건

대경제국 시위대(영어: Korea High Lifeguard, 한문: 大敬帝國 侍衛隊)대경제국 황제를 특정한 상황에 호위를 하는 기관이다.

상세

시위대는 경시원의 지휘를 받는 군대로 엄연히 대경제국군과는 별개의 지휘 계통에 속한다. 이에 따라 시위대에 관한 군령권은 합참의장이 소유하지 않고 있다. 시위대의 지휘관은 '시위대장'으로 불리며, 시위대장은 근위대와는 달리 시위부대장이라는 부지휘관을 둔다. 시위부대장은 중령 계급에 재임 경력이 있던 귀족이 보임되며, 시위대장은 대령 계급을 재임 경력이 있던 귀족이 보임된다. 전체적으로 시위대는 직업군인에 있는 귀족을 시위대장과 부대장에 임명하는 것을 선호하며, 현재까지 현역이 아닌 시위대장이나 시위부대장은 배출이 안됐다.

역사

시위대는 근위대와는 달리 1일 늦게 설치됐다. 설치된 당일인 의명 26년, 1987년 10월 12일에 초대 시위대장으로 '이영곤' 남작이 임명되고 초대 시위부대장으로는 '이근암' 남작이 임명된다. 이영곤 남작은 근위대보다 빠르게 시위대 훈령 제1호를 공포하여 시위대의 직제를 제정하고 대경제국군 편제를 그대로 가져와 2개 연대를 두면서 근위대와는 다르게 초기 조직 기반을 빠르게 정립한다. 이영곤 시위대장 사후로는황립포병사관학교 출신의 시위대장만 줄줄히 시위대장에 임명되었는데 경무 21년, 2009년에 취임한 4대 시위대장인 '김옥균' 남작은 평범한 육군 출신 대령으로 김옥균 남작은 시위대의 학연으로 구성되어 있던 관료구조를 혁파하고 1개 연대를 추가 설치하는 한편 개혁파 귀족의 후견 하에[1] 시위대에 관한 개혁에 박차를 가하였으나 얼마 안되어 보수파 소속의 김일선 남작이 국무대신에 오르자 시위대 내부 개혁이 중단되버린다.[2] 시간이 지나서 옥화 2년, 2019년, 김당정 국무대신이 군무원장에게 추천한 '한원숙' 남작이 시위대장에 임명되었는데 한원숙 남작은 이전 주변의 상황들로 인해 개혁을 중단한 김옥균 남작의 정치적 제자로 현재 그녀는 시위대의 내정개혁을 실시하고 있다.[3][4] 내정개혁 과정에서 가장 최근인 옥화 2년, 2019년에 제4연대가 추가로 설치됐다.

슬로건

시위대는 영예로운 이들이다.(영어:We are honorable army) (1987년~2004년)
우리는 황제 폐하를 호위하는 영예로운 이들이다.(영어:We are honorable army escorting the Korea Emperor.) (2004년~현재)

구성

시위대는 4개 연대의 보병 편제로 구성되며, 연대의 지휘관인 연대장은 시위대장이 직접 임면하되 시위부대장이 연대장 후보를 건의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연대장은 대령이나 중령 귀족이 보임되지만 중령 귀족이 주로 보임된다.대령이 연대장이 되면 시위대장과 계급이 똑같아진다. 시위대의 지휘관과 부지휘관은 위에서 말했듯이 각각 시위대장과 시위부대장으로 시위대장은 대령 계급의 보직으로서 군무원장이 건의한 인물을 경시원경이 심의를 한 후 임명되는 임명 방식을 가지고 있다. 시위부대장은 시위대장이 직접 임명하지만 상부인 경시원의 군무원으로부터 조언을 받은 후 임명한다. 이는 효과적인 시위부대장 선출을 위한 것이 목적이면서 군무원이 시위대를 관할하는데 수월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기도 하다.[5]

편제

  • 제1연대
    • 제1대대
    • 제3대대
  • 제2연대
    • 제2대대
    • 제4대대
    • 제6대대
  • 제3연대
    • 제3대대
    • 제7대대
  • 제4연대
    • 제8대대
    • 제9대대
    • 제10대대

제1연대

제2연대와 함께 시위대 편제 중 가장 먼저 태어난 곳으로 초대 연대장으로는 前 경시원경인 '소권성' 남작이 보임했으며, 이후 현재 연대장은 '박홍석' 중령[6]이다. 지금까지 연대장은 박홍석 중령을 포함하여 6명이 있다. 무기 공급처는 수원 조병창이고 인원은 1004명이다. 예하에 두 개의 대대[7]를 두고 있다.

제2연대

제1연대와 함께 시위대 편제 중 장남으로 제1대 연대장에는 '김이손' 남작이 임명되었고 現 연대장인 제7대 연대장으로는 '김청희' 남작이 임명된 상태다. 무기 공급처는 수원 조병창으로 예전인 경무 10년, 1998년 1년 동안은 수원 조병창이 아닌 제일 조병창에서 무기를 공급받았다.[8] 現 인원은 1019명으로 경무 14년, 2002년까지는 인원이 1030명이었다가 인원이 감축되어 버렸다.

제3연대

2009년에 설치된 연대로 시위대의 4개 연대 중에서는 차남에 해당한다. 경무 21년, 2009년 설치 당일에 초대 연대장으로 '김영남' 남작이 임명되었다. 이후 1대를 지나 現 연대장은 제3대 연대장인 '이진규' 남작이다. 인원은 설치 초기부터 지금까지 계속 1009명을 유지하고 있고 무기 공급처로는 수원 조병창을 선정하고 있다.

제4연대

제4연대는 옥화 2년, 2019년에 설치된 연대 편제로 지금까지는 연대장이 1대 밖에 없다. 現 연대장은 '남궁성가' 백작이다.[9] 현 인원은 1059명으로 시위대의 4개 연대 중에서는 가장 인원이 많다. 무기 공급처에는 수원 조병창을 지정하여 공급을 받고 있다.

기타

  • 특이하게 시위대는 무기 공급처를 오로지 수원 조병창으로만 한정하고 있다.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시위대장과 경시원 고위관계자들만 알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 시위대는 중앙지휘소가 없고 연대마다 권한이 강한 자치지휘소만 존재한다.

관련문서

각주

  1. 평상택 국무대신이 적극 후원했다.
  2. 게다가 이때는 궁내대신도 귀족원로이자 보수파인 이운서 후작이 재임하던 시절이었고 그나마 평상택 국무대신이 이를 통제하다가 김일선 남작이 취임해버리면서 통제장치도 사라져버린 이운서 후작은 더욱 시위대의 개혁에 압박을 넣었다.
  3. 지금 내정개혁을 하기도 딱 좋은 상황인데 궁내대신과 국무대신 모두 개혁파 소속이기 때문.
  4. 하지만 궁내대신도 국무대신도 마찬가지의 문제인 귀족원로들의 견제가 여전하다.
  5. 군무원은 효율적으로 시위대를 비롯한 산하 조직을 감독하고 조언할 것이며 그 대표적 예는 '시위부대장 임명 조언'에 있다고 보면 좋다? 군무원 팩트체크를 해보자!
  6. 박병석 남작의 아들이다.
  7. 제1대대, 제3대대
  8. 1998년에 수원 조병창의 일부 생산 라인이 망가져서 제1연대에만 무기를 수급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 버렸다. 그리고 경무 11년, 1999년에 다시 수리가 되어 수원 조병창에서 재공급을 받고 있다.
  9. 시위대 연대장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백작이다. 시위대 뿐만 아니라 근위대와 지방대에 있는 연대장들 중에서도 유일하게 백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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