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강태자

고려 고종의 왕태자
효강태자
孝强太子
효강태자.png
출생 1186년 1월 28일
고려 개경 개성부 만월대 만령전
책봉 1205년 1월 28일 (20세)
(천명 33년)
고려 개경 개성부 만월대 회경전
사망 1210년 2월 21일
고려 개경 개성부 만월대 수창궁
능묘 순창묘
재위기간 고려 왕태자
1205년 1월 28일 ~ 1210년 2월 21일
서명 효강서명.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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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부왕 고종
모후 왕후 김씨
형제자매 부왕 기준 2남 2녀중 장남
모후 기준 2남중 장남
배우자 폐태자비 유씨
슬하 경민태손
부모 부왕 금상 왕창
모후 왕후김씨
시호 효강태자(孝强太子)
종교 교종

개요

고려 제 18대 국왕 고종과 왕후김씨의 아들인 효강태자를 다루는 문서로 , 고려 최초 왕위에 오르지 못한 왕위계승자이다.

생애

고종의 왕태자

왕태자는 이복여동생 화순택주와 한날 한시에 탄강하였다. 궁중에서는 이를 두고 길흉을 점쳤으나, 노상서들이 “쌍생의 기운은 나라의 문운(文運)을 밝힌다” 하여 경사로 삼았다.

태자는 어릴 적부터 총명함이 남달랐다. 일곱살에 이미 『천자문』의 구절을 외웠고, 열 네살에는 글자의 뜻을 물으면 단순히 풀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찌하여 그러한 이치가 되었는가”

를 되묻곤 하였다.

내시부 기록에 따르면 서고에 꽂힌 서책의 배열이 어지러워진 것을 보고 스스로 분류하여 정리하며

책 또한 벼슬과 같아 제 자리를 얻어야 뜻이 선다.

아고 말하였다고 한다.

열 여섯살에는 경연에 배석하여 경학을 듣다가, 강론 중 한 구절의 해석이 서로 엇갈리자 스스로 주석을 인용해 논박하였다. 그 논지는 다음과 같았다.

“경(經)은 한 시대의 글이 아니라 만세의 거울이옵니다. 만일 오늘의 이해로만 해석한다면 경은 이미 죽은 글이 될 것이옵니다.”

이에 시강관이 크게 감탄하며 “비록 나이는 어리나 뜻은 이미 군자의 경지에 이르렀다” 고 평하였다.

스무살에는 흉년이 들었을 때 창고의 곡식 분배 장부를 살피고는 “곳간이 비어 백성이 굶는 것이 아니라, 길이 막혀 굶는 것”이라 하여 운송로를 먼저 정비할 것을 건의하였다.

실제로 공부는 하천 준설과 창고 이전을 시행하자 기근이 완화되었다고 전한다. 이는 단순한 자비심이 아니라, 형세를 읽는 정치적 안목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태자는 무예 또한 소홀히 하지 않았다. 활을 쏘아 과녁을 맞히는 데 능했으되, 이를 두고 “활은 사람을 맞히기 위함이 아니라 마음을 바로 세우기 위함”이라 하였다. 학문과 무예를 함께 닦는 것을 군주의 도라 여긴 것이다.

이른 죽음

그러던 어느날 역병인 백선이 나성에 다시 떠돌기 시작했고 궁녀들까지 병에 걸리며 궁중의 담을 넘어 결국 태자마저 백선에 의해 앓아눕고 말았다.

하지만 이 사실에 조정에 알려지면 몇몇 기득권층들이 이를 노려 태자의 안위를 위협함은 물론이요 외세에도 좋지 않다 판단한 왕후 김씨와 몇몇 재신들이 이 사실을 은폐하고 중궁전에서 치료를 진행하였다.

하지만 2년만에 상궁들의 진술로 이 사실이 금상에게 알려졌고 금상이 분노해 왕후와 재신들을 처벌하였으며 공식적으로 치료를 진행했으나 결국 1210년 2월 21일 향년 24세에 훙서하였는데 그 유언은 다음과 같다.

아들 석아, 아비가 늘 지켜보고 있으니 이를 잊지말고 일을 시행하라.

이처럼 태자는 총명함이 단지 기억력에 그치지 않고, 사물의 근본을 파고드는 성정과 현실에 적용하는 실천력으로 드러났다. 조정 대신들은 일찍이 “장차 나라의 중흥을 이끌 인물”이라 평하였으나, 병환이 깊어 뜻을 다 펴지 못하니 조야가 애통해하였다.

이후 부인인 유씨는 폐비가 되어 사사당하고 아들인 경민태손마저 즉위하지 못하고 부왕 고종에 의해 팽당했으니 일가가 모두 멸하였다. 그나마 손자인 금상이 안전하게 보위에 올랐으나 그마저도 동생인 낙랑공의 손자로 입적되어 즉위했으니 하늘에서 곡을해도 모자르지 않을 비참함이라 할 수 있다.

평가

비록 나이는 어리나 뜻은 이미 군자의 경지에 이르렀다

가족관계

  • 배우자 : 폐태자비 유씨 - 이저후의 딸
    • 장남 : 왕태손 왕 각

아버지는 작금의 금상폐하 , 어머니는 문하시중 김지한의 차녀인 왕후김씨인데 형제관계는 부계기준 여동생 화순택주,남동생 낙랑공 , 남동생 계양후, 여동생 화억택주이며 모계기준 남동생 낙랑공 이다.

여담

태자는 용모 또한 빼어났다고 전한다. 체구가 장대하여 키가 육척 이치 남짓(約 六尺二寸)에 이르렀으니,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는 “문(文)과 무(武)가 한 몸에 깃든 형상”이라 일컬었다.

어릴 적부터 활쏘기를 즐겨 여름날 햇볕 아래에서도 사대를 떠나지 아니하였으므로, 피부는 희다기보다 은근히 그을린 빛을 띠었다 한다. 이를 두고 궁인들은 “백옥이 햇살을 머금은 듯하다”고 속칭하였다.

눈썹은 짙고 곧아 마치 먹으로 그은 듯하였으며, 눈빛은 맑으면서도 매서워 가까이 마주하면 절로 자세를 바로잡게 하였다고 한다. 다만 웃을 때에는 그 기운이 누그러져 온화함이 비쳤으니, 위엄과 부드러움이 함께하였다 전한다.

입술은 붉어 앵두와 같다 하여 궁중에서는 은밀히 “앵순(櫻脣)”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하며, 목소리는 맑고 깊어 뜰 안을 가득 울렸다고 한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