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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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적 정의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위 38°선 전역에 걸쳐 북한군이 불법 남침함으로써 일어난 한반도 전쟁.

한국전쟁의 배경

전후의 전개 1943년 12월의 카이로선언에서 ‘조선’의 독립을 보장하였고 이는 다시 1945년 7월의 포츠담선언에서 재확인되었다. 다만, 독립은 ‘적당한 시기에’ 이룩한다는 조건부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1945년 8월 15일에 일본은 항복하였고, 그 통치지역이었던 한반도는 군사적인 편의에 따라 38선을 경계로 남북한은 미 · 소 양군에 의하여 분할, 점령되었다. 분할된 상태로 미 · 영 · 소 3국 외상은 그 해 12월에 모스크바에서 회동하고 한반도에 5년 간 신탁통치를 실시할 것을 합의하였다. 이에 대하여 한국민은 맹렬히 반탁운동을 전개하였으나 좌파세력이 소련의 지령을 받고 찬탁으로 돌아섬으로써 정치적인 혼란이 일어났다. 한국문제가 반탁운동으로 난국에 직면하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1946년과 1947년 두 차례에 걸쳐 미소공동위원회가 개최되었으나 아무런 해결책도 강구하지 못한 채 결렬되었다.

1947년 9월에 미국은 소련의 반대를 뿌리치고 한국 문제를 일방적으로 유엔에 제기하였다. 이로써, 38선을 경계로 한 남북한은 미국과 소련의 대립 속에서 이데올로기의 갈등마저 겪으면서 국제 무대에 노출되었다. 1947년 11월에 열린 유엔총회에서는 유엔 임시한국위원단을 구성하고 그 위원단의 감시 아래 남북한 총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러나 북한을 점령하고 있는 소련군사령관은 1948년 초에 활동을 개시한 위원단의 입북을 거절하였다. 이에 유엔소총회에서는 선거의 감시가 가능한 지역의 총선거를 결의하여 그 해 5월에는 남한만의 선거가 행해졌고, 8월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그 해 12월의 제3차 유엔총회에서는 한국을 총선거가 실시된 합법정부로 승인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북한에서는 김일성(金日成)을 중심으로 하여 ‘최고인민회의’ 선거를 실시하여 9월에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선포함에 따라 소련을 비롯한 공산 여러 나라가 이를 승인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한반도에서는 남북한이 각각 별개의 정권을 수립하여 분단을 공식화하였다. 정부 수립을 마친 북한은 곧이어 미소 양군의 철수를 요구하였고, 이에 부응하여 지정학적으로 유리한 소련은 그 해 10월부터 철병을 개시하였다. 남한에서는 공산세력의 준동에 대응하여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을 요청한 바 있고, 이에 따라 미군의 주둔은 잠시 연기되긴 하였으나, 1949년 6월에 미국은 약 500명에 달하는 군사고문단만을 남긴 채 남한에서 철병을 완료하였다.

남북한의 군사력 증강

미국과 소련이 그어 놓은 잠정적인 군사분계선이었던 38선은 이제 남북한이 각각 별개의 정부를 수립함으로써 국경 아닌 국경선이 되어버렸다. 그러한 분단 과정에서 우선 북한은 소련에 의한 계획적인 군사력 증강에 박차를 가하여 1948년 10월에 소련군이 철수할 때까지 이미 완전 무장한 4개 보병사단과 소련제 T-34 중형전차로 장비한 제105 기갑대대를 편성하였다. 1949년 3월 17일에는 소련과 북한 간에 조소군사비밀협정이 체결되고, 또 3월 18일에는 중공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여 중국 공산군에 있던 조선군 2만 5000명이 북한에 인도되었다. 이로써 10개 북한군 사단 13만 명이 38선에 배치되었고, 10만 명의 예비군까지 후방에 조직되었다.

막강한 군사력을 갖추게 된 김일성은 이어 국내외 정세의 변화에 고무되어 무력통일을 구상하게 되었다. 국외의 요인으로는 ① 1949년 10월 중국 대륙이 공산화되었고, ② 1949년 6월에 주한미군이 철수를 완료하였으며, ③ 1950년 1월 미국의 극동방어선에서 한국과 대만을 제외시킨다는 애치슨(Acheson, D. G.)미국무장관의 성명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④ 1949년 말경 김일성이 모스크바를 방문, 남한의 무력침공 계획에 대한 스탈린(Stalin, I. V.)의 승인을 받아냈다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또 국내의 요인으로는 ① 남조선노동당의 실질적 붕괴에 따라 남한 내부에서 ‘인민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해졌고, ② 김일성은 ‘민족해방을 위한 투사로서의 경쟁’에서 박헌영(朴憲永)을 압도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 그리고 ③ 남한이 아직도 정치 · 경제적으로 혼란상태에 있었고, ④ 국군의 병력 · 장비가 열세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김일성은 1950년 4월 초 조선노동당 중앙정치위원회에서 무력통일안을 확정시키는 한편, 이러한 침략계획을 은폐하기 위하여 북한 공산당은 남북통일 최고입법회의의 서울 개최, 남북 국회에 의한 통일정부 수립을 주장하는 등, 평화공세를 펼쳤다.

한편, 남한에서는 1946년 1월에 미군정 산하 국방경비대와 해안경비대가 1948년 8월에 정부가 수립되면서 각각 육군 · 해군으로 국군으로 개편되었고, 1949년 4월에는 해병대, 그리고 10월에는 공군이 편성되어 병력은 약 10만에 이르렀다. 그러나 장비가 빈약하여 북한의 군사력에는 비할 수 없는 상태였다. 더구나 예비군도 없이 8개 사단 중 4개 사단은 38도선에서부터 먼 후방에 배치되어 공산게릴라 소탕에 여념이 없었다.

호칭

대한민국(이하 남한)의 입장에서는 주로 한국전쟁, 한국동란(韓國動亂), 6·25 전쟁(六二五戰爭), 6·25 사변(六二五事變), 6·25 동란(六二五動亂)이라 부르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북한)에서는 조국해방전쟁(祖國解放戰爭)이라 부른다. 다른 국가들도 조선전쟁(朝鮮戰爭, ちょうせんせんそう, 일본),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戰爭, 중국), 한국 전쟁(Korean War, 미국 등 서구권) 등 입장에 따라 제각기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중국의 지원

Mao wanted to show solidarity with the Korean Communists and thereby solidify China’s standing within the world movement. He also believed that it was important both for the domestic and regional policies of his new regime that China be seen as willing to fight its enemies.마오쩌둥은 조선 공산주의자들과의 연대를 보여줌으로써 세계 운동에서 중국의 입지를 공고히 하고자 했다. 또한 중국이 적과 기꺼이 싸우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새 정권의 국내 및 지역 정책 모두에 중요하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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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념 전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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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산주의 역사 ]
역사
  1. 독일농민전쟁 (1524년)
  2. 산업 혁명 (18세기 중반)
  3. 프랑스 혁명 (1789년)
  4. 의인동맹 창설 (1836년)
  5. 공산주의자 동맹 창설 (1847년)
  6. 제1인터내셔널 성립 (1864년)
  7. 파리 코뮌 (1871년)
  8. 메이데이 총파업 (1886년)
  9. 제2인터내셔널 성립 (1889년)
  10. 10월 혁명 (1917년)
  11. 러시아 내전 (1917년)
  12. 독일 11월 혁명 (1918년)
  13. 스파르타쿠스 봉기 (1919년 2월)
  14. 코민테른 성립 (1919년 3월)
  15. 소비에트 연방 성립 (1922년)
  16. 제1차 국공 내전 (1927년)
  17.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1928년)
  18. 스페인 내전 (1936년)
  19. 대숙청 (1937년 7월)
  20. 제2차 국공 합작 (1937년 9월)
  21. 그리스 내전 (1946년 3월 30일)
  22. 제2차 국공 내전 (1946년 3월 31일)
  23. 냉전 (1947년)
  24. 한국 전쟁 (1950년)
  25. 베트남 전쟁 (1955년)
  26. 1956년 헝가리 혁명 (1956년)
  27. 대약진 운동 (1958년)
  28. 쿠바 혁명 (1959년)
  29. 문화대혁명 (1966년)
  30. 니카라과 혁명 (1978년)
  31. 페레스트로이카 (1985년)
  32. 동유럽 혁명 (1989년 6월)
  33. 소련의 붕괴 (199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