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제국의 주요 선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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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제국 제 2대 중추원 제헌 국회의원 선거[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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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표율 | 91.9% ▼ 3.6%p | ||||||||
| 의원 선거 결과 | |||||||||
| 정당 | 지역구 | 총합 | 비율 | ||||||
| 한국독립당 | 38석 | 38석 | 18.09% | ||||||
| 자유당 | 24석 | 24석 | 11.43% | ||||||
| 대한민족청년단 | 15석 | 15석 | 7.14% | ||||||
| 한국민주당 | 10석 | 10석 | 4.76% | ||||||
| 대한부인회 | 5석 | 5석 | 2.4% | ||||||
| 사회당 | 2석 | 2석 | 0.95% | ||||||
| 무소속 | 117석 | 117석 | 55.7% | ||||||
개요
1952년 10월 15일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 제 1대 국회의원 임기 종료로 인해 치뤄진 선거다.
선거 직전에 터진 이기붕·조선그룹 정경유착 사태로 인해서 순식간에 자유당 정권과 이승만 내각에 대한 신뢰도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이 과정에서 조선그룹의 비자금을 연립여당인 한국민주당 후원회로 흘러들어가게 하였고 이것이 자유당의 비자금으로 사용되었다. 조선그룹이 각종 국책사업에서 미국 원조금과 공직기계를 제공받았으며 당시 만주 내전 군납도 독점하면서 품질이 안좋은 장비를 생산하였다는것이 발각되었다. 이후 미국의 강력한 압박과 유권자의 신뢰를 잃은 자유당은 선거에서 패했으며 한국민주당과의 각외협력도 분열되었다.
심지어 선거 전일인 14일에는, 조선그룹이 허구로 방직기를 수출한다는 계약서를 산업은행에 제출하고 산업은행이 불법으로 조선그룹에 달러를 제공한것이 적발되었으며 산업은행에 조선그룹이 이중장부를 통해 돈세탁을 했다는 사실과 적산 가옥과 공장부지 가격을 임의로 산업은행과 조작하여 이익을 취했던것이 적발되면서 자유당은 여당에서 야당으로 추락했으며 한국독립당이 당선되는데 일조했다.
- ↑ 이땐 양원제가 아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