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제국의 주요 선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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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제국 제 30대 중추원 민참의원선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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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표율 | 74.3% ▲ 12.7%p | ||||||||
| 민의원 선거 결과 | |||||||||
| 정당 | 지역구 | 총합 | 비율 | ||||||
| 대한민족청년단 | 274석 | 274석 | 57.08% | ||||||
| 자유민주연합 | 41석 | 41석 | 8.5% | ||||||
| 시대전환 | 3석 | 3석 | 0.625% | ||||||
| 국민의당 | 83석 | 83석 | 17.29% | ||||||
| 민주당 | 38석 | 38석 | 7.9% | ||||||
| 새로운 미래 | 23석 | 23석 | 4.7% | ||||||
| 민주평화당 | 6석 | 6석 | 1.25% | ||||||
| 사회민주당 | 7석 | 7석 | 1.4% | ||||||
| 진보당 | 5석 | 5석 | 1.04% | ||||||
| 참의원 선거 결과 | |||||||||
| 정당 | 비례대표 | 총합 | 비율 | ||||||
| 대한민족청년단 | 87석 | 87석 | 36.25% | ||||||
| 자유민주연합 | 27석 | 27석 | 11.25% | ||||||
| 시대전환 | 1석 | 1석 | 0.41% | ||||||
| 국민의당 | 35석 | 35석 | 14.58% | ||||||
| 민주당 | 39석 | 39석 | 16.25% | ||||||
| 새로운 미래 | 34석 | 34석 | 14.16% | ||||||
| 민주평화당 | 3석 | 3석 | 1.25% | ||||||
| 사회민주당 | 4석 | 4석 | 1.6% | ||||||
| 진보당 | 10석 | 10석 | 4.16% | ||||||
개요
제 30대 중추원 의원 선거. 이명박이 총리직을 연임하지 않겠다 선언한 후, 연임하지 않고 새로 치뤄진 선거. 안철수계와 중도층 의원들이 대거 탈당하며 창당한 국민의당으로 인해 민주당과 족청에서 의석을 일부 상실했다. 국민의당은 제 1야당이던 민주당을 제 2야당으로 밀어내고 제 1야당으로 올라섰으며, 중도실용주의를 표방하면서 대한민족청년단과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은 당난(黨亂)의 상황이었다. 기껏 친문과 비문(비노)계를 통합시켜서 진보 제 1야당으로 올라섰지만 또다시 계파 갈등으로 무너진 것이다. 계속 노선 차이로 갈등을 겪던 민주당은 이낙연계친문계와 친명계이재명계가 대립하기 시작했다. 이재명이 당대표가 되며 당권을 잡자, 이에 반발한 이낙연계와 친문계,비명계는 탈당하여 새로운 미래를 창당했다. 이로 인해 사실상 의석이 반쪼가리(..)가 되버린 상태에서 중도계의 민주당 의원들이 탈당하면서 국민의당으로 합류하자 민주당은 제 2야당으로 추락했다.
거기에 계파가 없던 진보 의원들과 정동영계는 친명계의 부상과 이낙연계의 탈당으로 인해 친명계가 당에서 더 유리해지자 결국 민주평화당을 창당하며 민주당에서 탈당했다. 심지어 온건 진보주의 의원들과 시민단체가 같이 사회민주당을 창당했다.
진보당은 통합민주당에서 당명을 변경하고 PD계 일부가 민주평화당으로 이적, NL계가 당권을 완전히 잡았다.
배경
실패한 야권 대통합
문재인 게이트로 인해서 야권은 분열되어 있었다. 정동영의 민주당, 친문·친노 성향의 새정치민주연합, 김대중계·반문·반노의 새천년민주당, NL·PD계의 통합진보당은 제 28대 중추원 초반부터 중기 말까지 분열되어 있었다. 친명이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고, 친문·친노가 약세로 접어들었다. 이 틈을 타 새천년민주당이 처음으로 민주당에 흡수합당되고, 그 다음 새정치민주연합과 민주당이 민주당으로 신설합당했다.
하지만 3당이 합당 한 후, 곧바로 치뤄진 제 29대 선거에서 민주당이 약진할것이라고 꿈에 부풀었던 민주당 인사들은 선거결과를 보자마자 좌절했다. 대한민족청년단이 인터넷 유세와 더불어 신진인사를 내세워 개혁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어필했고, 이명박 내각때 역성장과 저성장의 반복을 극복하고 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하자 유권자 표심이 곧바로 족청으로 기울면서 민주당이 선거에서 참패하기에 이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정동영 당대표가 억지로 계파를 제어하고 있던 민주당은 결국 선거가 패배하자마자 곧바로 계파갈등이 심화됐다. 선거 후 다음달에 곧바로 치뤄진 전당대회에서 이재명이 당대표로 선출되고, 곧바로 당 요직이 친명계로 채워지자 친문계인 이낙연계는 비명계와 함께 새로운 미래 창당에 들어갔다.
심지어 이 상황에서 계파 제어를 하지 못하던 이재명 당대표는, 정동영계와 온건 좌익 무계파 의원들이 민주평화당을 창당하면서 당에서 대거 탈당, 거기에 중도 의원들까지 안철수의 국민의 당 창당에 합류하면서 의석이 제 29대 선거에서 82석이던 의석이 38석까지 내려앉았다. 심지어 이재명이 추진하던 신진 진보 의원 영입도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에는 온건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가 사회민주당을 창당하면서 제 24대 중추원보다 진보 분열이 엄청났다.
이런 상황속, 진보세가 강하던 황해도 지역, 함경·평안도 지역 마저 진보계들에게서 등을 돌리면서 야권의 의석은 더욱 약세로 접어들었다.
중도의 부상
좌익, 그러니까 진보가 계파 갈등으로 유권자 표심이 돌아섰고, 당시 개선되던 경제상황에 따라 시민들은 경제정책과 사회 문제를 해결할 실용주의적인 정당을 찾기 시작했다.
당시 대한민족청년단에서 중도를 맡던 안철수는 실용주의를 외치며 신당 창당을 발표, 국민의 당이 창당되었다. 이후, 민주당과 대한민족청년단에서 각각 탈당하여 조정훈등이 세운 시대전환이 선거에 참여하며 야권 판도를 뒤집어버렸다. 진보 정당들이 분열하고, 실용주의를 내세우던 국민의 당은 경기도 지역에서 대약진을 이뤄내면서 총 83석, 제 3당과는 민의원에서 45석이나 차이나기에 이르었다. 시대전환은 당 지도부 인사들 3명이 당선되며 원내진입에 성공했다.
이명박의 정계은퇴
이명박이 개조내각을 끝으로 정계은퇴를 선언하면서 친이계가 당에서 몰락하기 시작했다. 곧바로 부상하기 시작하던 친홍계와 친이계는 계파 갈등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명박이 외치던 실용보수주의와는 달리, 홍준표는 이회창 정신을 이어받아 홍준표 노믹스등 기존 보수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 하고 있었다.
전당대회에서 홍준표가 선출되며 공천에서 친이계가 대거 탈락하고, 이명박이 정계은퇴를 단행하면서 중도 표심이 실용주의를 외치던 국민의당으로 빠져들며 전 선거에 비해 의석이 감소하였다.
출구조사
| 족청 | 자민련 | 국민의 당 | 민주당 | ||||||
| 34 | 2 | 9 | 3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