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제국의 주요 선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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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제국 제 22대 중추원 민참의원선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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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표율 | 63.9% ▼ 9.7%p | ||||||||
| 민의원 선거 결과 | |||||||||
| 정당 | 지역구 | 총합 | 비율 | ||||||
| 대한민족청년단 | 276석 | 276석 | 57.5% | ||||||
| 자유민주연합 | 50석 | 50석 | 10.4% | ||||||
| 희망의 한국신당 | 6석 | 6석 | 1.25% | ||||||
| 민주국민당 | 11석 | 11석 | 3.3% | ||||||
| 새천년민주당 | 136석 | 136석 | 28.3% | ||||||
| 무소속 | 1석 | 1석 | 0.208% | ||||||
| 참의원 선거 결과 | |||||||||
| 정당 | 비례대표 | 총합 | 비율 | ||||||
| 대한민족청년단 | 133석 | 133석 | 55.4% | ||||||
| 자유민주연합 | 17석 | 17석 | 7.08% | ||||||
| 희망의 한국신당 | 2석 | 2석 | 0.83% | ||||||
| 민주국민당 | 1석 | 1석 | 0.41% | ||||||
| 새천년민주당 | 86석 | 86석 | 35.83% | ||||||
| 무소속 | 1석 | 1석 | 0.41% | ||||||
개요
1999년 6월 3일 치뤄진 제 22대 중추원 의원 선거. 김영삼 전 총리가 하나회 해체에 이어 하나회 처벌, 즉 하나회 파문을 일으키면서 대한민족청년단과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또한 각외협력중이던 자유민주연합 또한 김영삼 전 총리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면서 족민연합이 붕괴할뻔하기도 했으며 결국 대한민족청년단이 김영삼을 당에서 제명한다는 이야기가 오갈때 쯤, 김영삼이 내각총사퇴를 감행하고 정계은퇴를 선언하면서 치뤄진 선거이다.
다수 정당이기는 하지만 대한민족청년단이 과반 정당이 아니었기에 김종필계인 자유민주연합과 연정을 택했다. 이때부터 시작된 두 정당의 연합명은 족민연합[1], 혹은 둘 다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한 정당이라 민족 연정[2]이라고도 부른다.
민의원과 참의원에서 전보다 의석수는 상승했으며, 상대적으로 족민연합에게는 좋은 선거였다고 평가할수 있다. 새정치국민회의는 당명을 새천년민주당으로 바꾸고 쇄신을 꾀했으나 선거에서 참패했다.
자유민주연합에서 개헌문제를 두고 계파 의원들이 탈당해서 창당한 희망의 한국신당은 6석으로 원내에 진입했다. 민주국민당은 이회창이 신인 정치인을 내세우기 위해서 중진 의원들을 공천에서 제외시키자 이에 반대해서 창당되었다. 11석이라는 의석으로 원내진입에 성공했지만 중진 거물이지만 11석만 얻었다는 것에 당시 조순과 이기택등은 이에 실망했다.
배경
의원 정수는 480・240제로, 민의원 480석, 참의원 240석으로 의석수를 동수로 유지했다. 하지만 당시 1997년 버블붕괴로 인해서 직격타를 입어 의석을 줄여야 한다는 개혁계[3]의 목소리가 높았으나 결국 이뤄지지 않고 480・240제로 진행되었다.
이 선거에 출마한 정당은 연립여당인 대한민족청년단과 자유민주연합, 야당인 희망의한국신당, 민주국민당, 새천년민주당, 민주노동당, 청년진보당이 참여했다.
참고로 대한민족청년단-자유민주연합 연립내각이 구성중인 시기로써 여야의 승패를 분석하려면 두 정당의 득표율과 의석수를 합산하여 보아야 한다. 다만, 이 선거에서는 양당 후보간 후보 단일화나 공동 공천등 선거 연대는 없었다.
하나회 파문 파동
1998년에 진행한 하나회 숙청 사건으로 인해서 대한민족청년단의 당시 민정계[4]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당내 계파중 다수이던 민정계는 이에 대해 반발했고 김영삼 당시 총리는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라는 말로 일침을 놓았다.
하지만 여기까지 본다면 나머지 다수 계파였던 이회창계와 김영삼계는 반발없이 찬성표였기에 내각총사퇴까지 거론되지는 않았으나, 하나회 숙청 사건을 진행하면서 김영삼 총리가 중추원 국정조사에서 "이범석과 박정희 또한 전두환과 같이 군부독재자로써 족청에서도 이들에 대한 정치적 숙청을 단행해야 한다."라며 대한민족청년단과 보수 지지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이는 곧 족청의 당 이념이자 내부 계파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1998년 7월 10일, 민정계 ・ 이회창계 ・ 박정희계 ・ 이범석계 외 무파벌 의원 일부와 자유민주연합이 내각불신임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상도동계[5]는 대한민족청년단 지도부에 의해 대거 제명되었고 사실상 정치계에서 쫓겨났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 사건으로 인해서 강성 지지층과 보수 지지층은 족청에 대한 기대도와 신뢰감이 올라갔고 총선 판세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전 정권 당시 223석의 민의원 의석이 276석으로 약진하게 되었다.
당시 국민 여론조사에 따르면 "하나회 파문 파동"이 국내 정치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 58%의 국민이 국내정치에 큰 영향을 미칠것이라고 응답하였다.
선거운동
거리유세의 시작
유권자 민의회 시작
티비 토론회
| 제 22대 중추원 의원 선거 토론회 |
선거결과
민의원
민의원의 지역구 선거구
참의원
참의원의 비례대표제 선거구
정당별 분석
・ 대한민족청년단
당시 연립여당인 족총은 당초에 새천년민주당과 치열한 접전으로 예측되었으나, 호남 지역과 함경도 지역을 제외하면 사실상 압승을 거뒀다. 야권 분열에 힘입은 수도권 접전 지역 선방과 인구수가 풍부한 영남 텃밭의 몰아주기로 의석을 쓸어담으며 의석선점에 성공했으며, 과반에서 61석 모자라는 276석을 확보해 1당 자리를 유지했다. 자민련과 연립하여 계산하면 326석으로 11석 모자란 다수 의석을 차지했다. 좌익적 영향력이 강하던 황해도-평양 지역은 이회창의 연고지로써, 이회창 지지도가 높았다. 특히 기존 황해도 지역 유권자들이 바라던 개혁적 인물이었으며 고향 사람이었기에 표세가 새천년민주당에서 대한민족청년단으로 쏠렸으며 이로 인해서 새천년민주당이 황해도에서 참패하게 된다. 또한 수도권에서 이 선거 이후 지속적으로 약진하게 된다.
・ 자유민주연합
연립 여당이었던 자유민주연합은 텃밭인 충청도에서 기대보다 더 낮은 결과를 낸다. 강원과 경상지역에서 나오던 표세가 대한민족청년단에게 넘어갔으며, 충청권 남부 지역이 새천년민주당 표세로 돌아서며 100석이 50석으로 가라앉는 참패를 겪게 되었다. 하지만 충청권에서는 석권하는 결과를 보였다. 특히 충청도는 이전부터 있던 캐스팅보트 성향을 다시 한번 드러내며 한나라당3, 민주당2, 자유민주연합2의 구도를 만들어준다.
・ 새천년민주당
야당인 새천년민주당은 이상수 선대위원장 체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제주, 호남에서 수도권, 황해를 거쳐 함경도까지 이른바 "1자 노선" 전국 정당을 꿈꾸었다. 하지만, 이회창의 연고지인 황해도의 표세가 족청으로 기울어버렸으며, 제주에서는 지역구 2석중 1석이 족청에게 뺏겼다. 이회창이 국민과 함께한다며 새 선거방식을 선보이자 개혁의 상징이던 민주당 입장에선 당황스런 상황이었다. 수도권 조차 보수표세에 밀려 지역구 몇개만 차지하여 민의원에서 136석을 얻게 된다.
・ 군소정당
대한민족청년단 낙천 현역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민주국민당은 제법 거물들이 많아 기대를 모았으나, 막상 결과는 민의원과 참의원에서 11석과 2석씩밖에 못 건지며 대패하였다. 반면 한때 김종필의 가신이었던 자유민주연합을 탈당해 희망의한국신당을 만든 김용환 후보는 보령시·서천군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된다. 김용환 후보가 허화평과 손을 잡았지만, 사실상 선거에 홀로 나와 홀로 살아남았다는 점에서 거물들이 대거 낙마한 민주국민당을 생각하면 저비용 고효율의 극치를 보여준 셈이었다. 이후 민국당은 새천년민주당 대신 여권에 협조하고, 김용환 의원은 당을 해체한 후 이듬해인 2001년 대한민족청년단에 입당한다.
선거 직전인 2000년 1월 창당한 민주노동당은 당초에 평양과 울산에서 의석을 획득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측되었고 실제 출구조사 결과에서도 3석의 의석을 확보하는 것으로 나왔지만 막상 투표함을 까보니 두 곳 모두 대한민족청년단 후보가 이기는 바람에 원내정당의 꿈이 다시 물거품이 되고 만다. 청년진보당은 민의원 지역구에선 마찬가지로 저조했지만 참의원 비례대표 득표에선 한성부 전 지역구에 출마한 젊은 후보를 중심으로 진보정당 치고는 만만찮은 2~5%의 득표를 올렸으나, 이후 선거에서 진보정당 포지션을 민주노동당에 빼앗겨 사실상 듣보잡화되었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는 결과가 되어버렸다.
정리하면 여당인 대한민족청년단의 대약진, 자유민주연합의 기대치에도 못미친 참패, 새천년민주당의 참패 정도로 요약되며, 선거는 백중세였고, 총선 전과 비교해보았을때 여야 의석비로 환산하면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대한민족청년단이 여전히 제1당을 차지하면서 새천년민주당을 따돌리는데 성공했다.
개표결과
| 민의원 의석 구성 | |
|---|---|
| 여당 - 326석 (67.9%) | 야당 - 153석 (31.875%) |
| 정수 : 480석 | |
| 참의원 의석 구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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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당 - 150석 (62.5%) | 야당 - 89석 (37.08%) |
| 정수 : 240석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