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대 중추원 의원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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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제 27대 중추원 민참의원선거
제 27대 민참의원 선거 포스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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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14일
제 27대 중추원 의원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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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율 62.6% ▲ 11.3%p
민의원 선거 결과
제 27대 민의원 의석 찐개편안.svg
정당 지역구 총합 비율
대한민족청년단 286석 286석 59.58%
자유민주연합 37석 37석 7.7%
민주당 83석 83석 17.2%
시민통합당 52석 52석 10.8%
새천년민주당 13석 13석 2.7%
통합진보당 9석 9석 1.875%
참의원 선거 결과
제 27대 참의원 의석 개편안.svg
정당 비례대표 총합 비율
대한민족청년단 104석 104석 43%
자유민주연합 55석 55석 22.9%
민주당 37석 37석 15.4%
시민통합당 31석 31석 12.9%
통합진보당 8석 8석 3.3%
새천년민주당 5석 5석 2.08%

개요

제 27대 중추원 의원 선거. 문재인 내각이 문재인 게이트로 내각총사퇴를 단행한 뒤, 치뤄진 조기총선거이다. 문재인 내각총리대신은 총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을 차지할줄 알았으나, PD계가 NL계의 민주노동당과 신설합당하여 통합진보당을 창당했다. 또한 정동영계와 비문,비노계가 탈당하여 민주당을 창당했다. 결국 열린우리당은 시민단체였던 시민통합당으로 흡수합당하였다. 이로 인해 진보 계파 갈등이 심화되었고 종국에는 선거 패배로 이어졌다.

배경

문재인 게이트

태광실업회장인 박연차가 2011년 6월말, 경무대 총무 비서관인 정삼문에게 100만 달러를 각각 문재인 내각총리대신과 김정숙 여사에게 흘러들어갔다. 심지어 2006년에는 이미 김정숙 여사에게 박연차가 억대의 명품시계 선물을 전달하였다. 사건전말은 여기서 더 복잡해지는데, 문재인은 연철호에게 500만달러를 사업투자금을 명목으로 전달했다. 이 상황에서 노무현 전 내각총리대신의 아들인 노건호도 연철호와 함께 행동에 가세했고 박연차는 노무현 전 내각총리대신의 딸인 노정연에게 40만달러를 제공하면서 사태가 커졌다.

선거 직전인 2012년 3월 말에 갑작스럽게 불법 뇌물 게이트가 터지면서 문재인은 엄청난 정치 리스크를 짊어지게 됐다. 문재인은 검찰국 조사에서 로비와 불법 돈세탁 혐의를 전면 부인했지만 결국 혐의가 밝혀지면서 총리직에서 사퇴할지, 총선거까지 정치 리스크를 짊어지고 총리직 연임을 통해서 법부로 회부되지 않을지 두가지 선택지가 남아있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도 정치적 압박이 문재인에게 가해졌고, 26대 선거때 발생한 열린우리당과 진보정당과의 관계는 여전히 파국이었다. 당내 비문계의 반대표로 내각불신임을 통해 강제로 사퇴당할 위기에 처한 문재인은 정치적 저항을 외치며 국회해산권을 사용했다.

하지만 문재인 게이트로 열린우리당 당 내부는 이미 분열이 시작됐고 정동영계와 비노·비문계는 탈당해서 민주당을 창당하기에 이르었다. 심지어 열린우리당 내부 PD계 또한 민주노동당과 신설합당을 통해서 통합진보당을 창당했다. 결국 열린우리당은 창당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이했고 원외 정치민간단체인 시민통합당으로 신설합당되면서 시민통합당을 창당했다.[2]

하지만 시민통합당열린우리당은 전라도 북부 지역에서 표심이 상당했는데 전라도 지역은 여론조사에서 완전히 민주당과 새천년민주당에게 상실하였고, 황해도와 경기 북부에서도 시민통합당의 지지도는 최저를 기었다. 이후 민의원 선거결과에서는 시민통합당이 야권 제 2당으로 추락했으며 의석은 고작 52석으로 쪼그라들었다.

  1. ↑ 선거가 1년동안 미뤄졌다.
  2. ↑ 신설합당이나 당명은 동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