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서문하성 中書門下省 | |
|---|---|
| 국가 | |
| 창설 | 918년 7월 25일 |
| 역사 | 918년 7월 25일 내의성 성립 982년 3월 19일 내사문하성으로 개칭 1076년 11월 7일 중서문하성으로 개칭 |
| 수장 | 문하시중 |
| 업무 | 고려 행정 전반 |
개요
중서문하성은 고려의 행정관청이다. 국정 전반 모든 일에 관여하며 최고 의결 기관에 해당한다.
상세
유례는 당나라의 3성 6부 체제다. 당에서 처음에 중서성과 문하성을 별도로 두어 중서성이 정책을 발안하면 문하성에서 검수하게 하였는데 이가 시간이 갈 수록 구분이 모호해지자 중서성과 문하성의 신하들을 동중서문하평장사에 임명해 중서성과 문하성을 사실상 일원화 하였다. 당 멸망 후 건국 된 고려는 실질적으로 무의미 해진 중서성과 문하성의 구분을 폐지하고 이를 하나로 통합하니 이것이 중서문하성이다.
중서문하성의 관리는 종2품 이상의 재신(宰臣)과 정3품 이하의 낭사(郎舍)로 구분되는데, 재신은 고려 최고 국무회의인 재추의 구성원으로서 실질적인 국정 운영을 하였고, 낭사는 언론이나 봉박 등 국정 외의 일을 전담하여 재신과 국왕을 보조 한다.
수장은 종1품의 문하시중으로, 명목상 종1품의 중서령이 더 위지만 이는 은퇴한 문하시중을 위해 마련된 명예직이기에 문하시중이 실질적 중서문하성의 장관이자 고려 신하들 전체의 수상(首相)으로 국정 전반을 이끈다.
문하시중은 권위가 높고 문벌귀족이여도 혈통의 격이 낮은 경우 오르지 못했기에 공석인 경우가 많았다.[1] 그렇기에 문하시중이 있는 경우 아상(兒相)인 문하시랑평장사가 수상을 맡으나 문하시중과의 차이가 엄격하기에 재추에서 문하시랑평장사는 수상인 경우에도 상석에 앉지 못하고 공석으로 두어야 한다. 매우 소수의 경우지만 문하시랑평장사도 공석인 경우 중서시랑평장사가 수상을 맡았다.[2]
재신
중서문하성의 종2품 이상 관리를 재신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모두 재상이다. 다른 신하들과의 격 차이가 매우 심했으며 가장 낮은 정당문학에만 오르더라도 만인이 우러러 본다.
재신들은 모두 상서성 소속 상서6부의 판사(判事)를 겸하며 상서6부의 상서들을 감독하였다. 이들은 상서6부를 지휘하였고 상서6부의 상서가 집행하는 형태였으며 상서성의 장관인 상서복야가 업무가 없는 한직이기에 실질적으로 상서성은 중서문하성에 종속된다.
문하시중
고려 문하시중 |
|
[ 펼치기 · 접기 ] |
문하시중은 중서문하성의 장관으로 고려 신하 전체의 수상(首相)이다. 고려의 최상류층인 문벌귀족 중에서도 최상의 손꼽히는 가문 출신이 문하시중에 오를 수 있으며 대개 재위 중인 태후나 왕후와 매우 밀집한 혈족의 관계를 가진 경우에만 임명이 될 정도로 이르기 힘든 관직이었기에 공석의 역사가 더 길다.
문하시중은 명예직인 중서령, 상서령과 함께 종1품으로 신하의 품계 중 그 위가 가장 높았다. 또한 모든 문하시중은 천자의 스승인 3사 중 태사(太師)의 직을 받았는데 3사의 직은 모두 정1품이기에 행수법에 따라 수태사(守太師)로 임명되었다.
판사를 역임할 때 조정에서 가장 중요한 이부와 병부의 판사를 겸직하였다.
평장사
고려 평장사 |
|
[ 펼치기 · 접기 ] |
평장사는 정2품으로 문하시랑평장사와 중서시랑평장사 둘로 나뉘는데, 문하시랑평장사 쪽이 더 위다. 그렇기에 문하시랑평장사는 아상(兒相)으로 대우 받았으며 문하시중이 공석인 경우 조정의 수상이 되었다. 그러나 중서시랑평장사가 실무에 관여하는 역사가 많았기에 문하시랑평장사 보단 중서시랑평장사가 더 높은 권력을 지닌 경우가 많았다. 박수연, 이태주, 김지은의 경우가 그렇다.
참지정사
참지정사는 종2품이며 평장사로 진출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한다.[3] 재신 중 하급자로서 실무를 많이 수행하였고 이에 외교나 의례 등 행사를 담당하는 예부의 판사 직을 많이 겸직하기도 했다.
정당문학
정당문학은 종2품으로 재신 중 말단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꽤나 연로하여 은퇴를 앞둔 관료들이 임명되었기에 참지정사의 하급자 보다는 중서문하성 내에서도 별도의 관직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또한 글 재주가 좋은 사람들이 정당문학을 역임하는 경우도 있으니 왕명을 전달하는 중추원부사와 겸직하게 했다.
정당문학의 대표격으로 여겨지는 인물로 천독고와 묘향이 있는데, 각각 재상지종 재상 가문인 영양 천씨와 성원 묘씨의 시조다.
중서령
고려 중서령 |
|
[ 펼치기 · 접기 ] |
중서령은 문하시중, 상서령과 함께 종1품으로 고려의 신하가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지위다. 그렇지만 문하시중과 다르게 중서령과 상서령은 명예직이다.
상서령이 고위 왕족에게 쥐어진 직이라면, 중서령은 은퇴한 문하시중의 예우를 위해 임명되었다. 역대 중서령은 3명으로 이자헌, 이자연, 김지한이 있는데, 이는 황보제공과 김지원은 문하시중의 임기 도중 사망했기 때문에 중서령을 받지 못한 탓이다.
섭정공
고려 섭정공 |
|
[ 펼치기 · 접기 ] |
국왕은 자신이 공백일 상황을 대비하여 섭정공을 임명하는데, 섭정공은 국왕 부재시 왕권을 사용할 수 있으며 이는 국왕의 명령인 교서와 동등하게 여겨진다.
섭정공은 명목상 중서문하성의 소속이며 역대 문하시중 모두가 섭정공을 역임했다. 이외의 경우엔 평장사인 박수연과 제왕(諸王)인 낙랑공이 있다.
섭정공의 경우엔 일단 왕의 대리인이긴 하나 왕이 멀쩡히 살아있기에 국정을 운영함에 있어서 신하된 도리에 따라 정도를 지켜야 한다. 역대 섭정공 중 가장 위세가 높은 두 인물인 이자연과 김지한은 이 규칙을 지키지 않았는데, 이들은 섭정공의 권한을 사용하여 인사를 매우 급격하게 교체했다. 이자연의 경우엔 딸이 왕후였기에 의례와 관련되어 이 권한을 주로 행사했으며, 김지한의 경우엔 고종이 부재중인 일이 많았으며 하필 유설의 난이 일어난 터라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둘은 국정을 잘 운영했기에 이에 대해 따로 공개적으로 문제 삼아지진 못했으나 김지한은 공예왕후와 갈등 관계에 있었기에 견제를 받아야 했다.
본래 재신이 섭정공을 역임하는 것이 관례인데, 고종은 섭정공이던 김지한 사후 자신의 둘째아들 낙랑공을 섭정공으로 임명한 후 사실상 모든 권한을 이양하였다. 낙랑공은 왕족이었으며 고종이 지속적으로 낙랑공에게 힘을 실어주며 사실상 왕처럼 군림하였으며 이전 섭정공과는 확실히 다른 경우를 보여줬다.
각주
- ↑ 실제로 역대 문하시중들은 모두가 재상지종 중 태후가문 출신이며 태후 혹은 왕후와 매우 밀집한 관계를 가졌다. 황보제공은 신정왕후의 부친이다. 이자헌은 목종의 실질적 왕후던 선정숙비의 부친이다. 이자연은 인예왕후의 부친이다. 김지원은 태후 가문 출신이며 동생 김지한은 왕후 김씨의 부친이다. 홍배용은 사숙왕후의 동생 홍경표의 손자이며 상왕후 홍씨의 양부다.
- ↑ 박지만의 정변으로 문하시중 김지원과 문하시랑평장사 곽덕순이 한꺼번에 죽어 당시 중서시랑평장사던 임언년이 일시적으로 수상을 맡은 경우와 수상 문하시랑평장사 김지은이 장형을 맡고 사망하자 중서시랑평장사던 황보탁이 수상이 된 사례 밖에 없으니 극히 드물었다.
- ↑ 세도 가문 출신 이태주와 김지은도 평장사로 오르기 전 꽤 오랜 시간 참지정사에 머물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