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경제국 국무원

(토론 | 기여)님의 2020년 4월 6일 (월) 16:54 판
황실 문장.png
대경제국의 황실 시종·보좌 기관
 
최고 기관·시정자문 사무
국무원
시종 사무황명 출납 사무
궁내부내관부
자문 사무여관 사무
원로원내명부
감찰 사무
승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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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경제국 국무원
大敬帝國 國務院 / National Ministry of Korea Empire
대경제국 국무원기.png
설립일 1987년 10월 2일
설립 근거 대경제국 헌법
전신 대경제국 제1제국 황립자문원
소재지 청경 특별자유시 중구 덕수로 99 덕수궁 석조전 별궁
직원 수 2607명
예산 1750억 7831만 3045원
국무대신 8대 김당정

개요

황제는 전항의 국무를 집행할 때 이를 보좌·자문할 기관인 국무원을 둔다.
— 대경제국 헌법 제10조 제3항

대경제국 국무원(영어: National Ministry of Korea Empire, 한문: 大敬帝國 國務院)대경제국 황제를 보좌·자문하는 기관이다.

상세

국무원황제에 대한 자문과 보좌의 업무를 맡고 있는 궁무부 기관으로 직제는 내각의 부와 동일하고[1] 그 수장인 국무대신도 다른 내각대신부와 같은 의전서열에 배치되있다. 한가지 다른 점은 국무대신황제가 직접 임명하는[2] 공무원이고 관습상 귀족들만 임명되는 요직으로서[3] 내각대신부와 실질적으로 감히 동급이라 말하기에는 애매하다. [4]

역사

국무원은 1987년 10월 2일에 설립됐다. 초대 국무대신에는 김의수 남작이 임명되었는데 그는 황실이 스위스로 망명하자 동반으로 스위스로 망명하여 망명한 황실을 보필했다. 황실을 보필했던 경력에 영향을 받아 김의수 남작은 제정복고 후 황실의 은혜로 국무대신에 임명되었다. 물론 낙화산 인사였지만 능력만큼은 기존 보수적이었던 귀족과는 사뭇 다른 개혁가적인 정책관을 가지고 있었고 무엇보다 이전에 파벌정치로 부패했던 시종조직의 말로를 알고 있었기에 철저히 反파벌정치의 가치관을 내세웠다. 아예 파벌정치를 금지시키는 원령[5]을 공포하고 특별사범조직을 창설하여 파벌정치가 일어날 틈도 주지 않았다. 김의수 남작의 국무대신 재임기간 동안 국무원은 초기 기틀을 다졌고 이후 취임한 이영걸 남작의 재임기에는 현재의 국무원에 모습을 갖췄다. 이영걸 남작이 국무대신직에서 사임하고 다음에 취임한 차남영 남작은 관료 출신의 귀족으로 국무원에 관료주의를 입각시키는 한편 김의수 남작이 공포했던 파벌정치를 금지시키는 원령을 더욱 강화하였다. 차남영 남작이 비리 스캔들로 사퇴하고 후임자로 이임선 남작이 국무대신에 임명되었는데 이임선 남작은 '궁내조칙'을 입안·주청하여 지금까지 관습상으로 존재했던 궁무부 기관들과 궁무부 기관들이 공포하는 행정규칙들을 명문화하는 한편, 지금까지 암암리에 존재했던 비리 행각을 뿌리채 뽑을려고 궁무부 기관들의 공무원에 대한 대규모 감찰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너무 급진적이었던 개혁가 성향이었던 이임선 남작은 귀족원로의 압박으로 에서 사퇴하고 그는 후임으로 평상택 남작을 지명한다. 평상택 남작은 어느정도 귀족의 신임을 받고 있던 자로서 국무대신에 임명되는데 큰 무리수는 없었다. 평상택 남작은 재임기 동안 이전 국무대신들이 추진했던 개혁안들을 정리하고 보수적인 귀족들을 설득하여 반발을 억눌렀다. 나름의 무리수 없이 재임기를 보내던 평상택 남작은 갑자기 심장발작으로 사망해버리고 그 후임으로 귀족원로였던 김일선 남작이 국무대신에 임명됐다. 그는 지극히 보수적인 귀족이었지만 한때 관료 출신이었던 적이 있어서 다른 보수적인 귀족보다는 속이 뚤려 있던 사람이다. 그는 재임기에 평상택 남작이 정리했던 개혁안들을 집행하는 개혁가적인 행동을 보여줬지만 이내 일부 개혁안의 집행을 철회하는 행동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어쨌든 김일선 남작은 2016년에 은퇴를 선언하고 역시 국무대신직에도 사표를 던진다. 그는 후임으로 이청민 남작을 지명하였는데 이청민 남작은 당시까지만 해도 개혁가적인 귀족이라 알려져 있었고 김일선 前 국무대신도 "이제 세대교체가 필요한 시점"이라 언급했던 점을 종합하여 이청민 남작에게 국무원의 개혁을 맡긴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허나 그는 최순실을 뒷배로 두고 국무대신에 오른 것으로 김일선 남작은 귀족원로였음에도 일개 평민의 압박으로 이청민 남작을 후임으로 지명했던 것이다. 직후 국무대신에 재임된지 1년도 안되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그도 최순실을 후견인으로 두고 있었던게 발각되버렸고 결국 이청민 남작은 국무대신에서 사퇴한다. 귀족회의는 회의 끝에 이청민 남작의 후임으로 김당정 후작을 지명한다. 김당정 후작은 지금까지 평상택 남작이 국무대신직에 있으면서 했던 개혁안을 수정하여 재집행하고 있으며, 김의수 남작 때 창설되어 김일선 남작 때 폐지된 '특별사범조직'의 복설을 두고 귀족원로와 대립하고 있다.[6] 현재는 궁내부와 함께 '정례감찰기구'로 승정원의 감찰을 받고 있다.

연표

  • 1987년 10월 2일 - 대경제국 헌법에 의거해 대경제국 국무원 설치, 초대 국무대신에 김의수 취임
  • 1988년 2월 5일 - 황영건설 설립
  • 1991년 11월 13일 - 2대 국무대신에 이영걸 남작 임명
  • 1992년 1월 5일 - 국무원법 1차 개정
  • 2001년 10월 6일 - 3대 국무대신에 차남영 남작 임명
  • 2001년 12월 18일 - 황실 유학 재단 설립
  • 2004년 1월 6일 - 4대 국무대신에 이임선 남작 임명
  • 2005년 8월 29일 - 궁내조칙 제정
  • 2007년 6월 24일 - 국무원법 2차 개정
  • 2008년 3월 18일 - 5대 국무대신에 평상택 남작 임명
  • 2009년 11월 13일 - 제1차 궁내조칙 개정
  • 2011년 6월 30일 - 6대 국무대신에 김일선 남작 임명
  • 2014년 5월 25일 - 제1차 궁내조칙 개정 철회
  • 2016년 4월 18일 - 누군가의 입김으로 7대 국무대신에 이청민 남작 임명
  • 2016년 12월 5일 - 8대 국무대신으로 김당정 남작 임명
  • 2017년 1월 18일 - 제2차 궁내조칙 개정

구성

국무원도 궁무부 기관 중 1개인지라[7] 궁내부 다음으로 귀족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다. 한 해에 국무원에 관한 공무원고시에서 100명이 시험을 보면 겨우 1명만 합격이 되는 미궁이다. 이래서 非귀족 공무원 채용을 위해 귀족만 받는 고시와 평민만 받는 고시가 따로 존재한다.[8]

황제의 임명을 받는 국무대신은 국무원의 행정사무를 맡는 제1정무차관, 국무원의 본업인 황제에 관한 자문·보좌 업무를 맡는 제2정무차관을 임면한다. 물론 황제의 재가가 있어야 가능하다.[9] 정무차관은 예하에 사무차관을 두며, 제1 정무차관은 기획조정관, 글로벌협력관, 인사조정실, 재무실을 둔다. 제2정무차관은 자문출납실, 기획실, 보고주재관, 보익관을 둔다. 국무대신 직속으로는 대신보좌관, 대신대변인을 두는데, 특별한 경우에는 대신대변인 아래에 대신부대변인을 둔다.[10]

국무대신

대경제국 국무대신기.png
대경제국 국무대신
大敬帝國 國務大臣
The National Ministry Minister of Korea Empire
350px
현직김당정 (8대)
취임일2016년 12월 5일
파벌시종파

국무대신은 국무원의 장(長)으로 그 임면권은 황제가 가진다. 임기는 종신제이며, 황제가 해임하거나 스스로 사임할 때까지 국무대신직에 있을 수 있다. 국무대신의 공관은 명경 대정원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명경에 있어서 국무대신 집무실이 위치한 국무원 중앙청사와의 이동이 불편하여 그냥 중앙청사 별관을 실질적인 공관으로 기능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명경 대정원황실 소유의 정원(庭園)이었고 현재도 사실상 황실의 정원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정도면 왜 명경 대정원이 국무대신 관저 됐는지 가늠이 불가하다.

조직

  • 대신
    • 대변인
      • 부대변인(비상설)
    • 대신보좌관
  • 제1정무차관
    • 사무차관
      • 기획조정관
      • 글로벌협력관
      • 인사조정실
      • 재무실
  • 2정무차관
    • 사무차관
      • 자문출납실
        • 기획실
      • 보고주재관
      • 보익관

업무

국무원은 황제의 자문기관 겸 보좌기관으로 이에 따라 업무도 자문 업무와 보좌 업무로 나눌 수 있다.

자문 업무에서 국무원은 같은 자문 기관인 원로원과는 달리, 황제에게 시정자문[11]을 한다.[12] 시정자문은 황제가 지시한 내용에 대해 시정자문을 하는 경우와 황제가 기획한 내용에 대해 시정자문을 하는 경우로 나뉘며, 대표적으로 재가에 관한 시정자문안은 전자에 해당한다. 시정자문 업무를 총괄하는 자는 '시정관'으로 2정무차관 예하 사무차관이 겸한다. 시정자문 업무를 기획하고 집행하는 것에 대한 조칙으로는 '시정조칙'이란게 존재하며, 부속조칙으로 '시정자문 출납조칙'과 '보고자문 출납조칙'이 있다.

보좌 업무는 내관부와 합업을 한다. 다만, 황제를 보좌하는 업무에서 양측 부서 모두 서로 통일된 지도 체계가 없다보니 말그대로 '엇박자 성향'의 비효율적인 업무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적어도 제1차 궁내조칙 개정 철회 이전에는 서로 업무 현황을 보고하고 자문하는 상설기관인 '국내관'[13]을 두었지만 제1차 궁내조직 개정이 철회되면서 국내관도 폐지가 되버렸다.[14] 국무원의 보좌 업무를 맡는 조직은 '보익관'으로 그 수장인 '보익조정관'은 국무원의 보좌 업무를 총괄한다. 그래도 양 기관이 공식적으로 지켜야 하는 보좌 업무에 관한 규정인 '보익조칙'이란게 존재한다.휴 다행

각 조직 업무

산하 조직

소속 기관

산하 단체

  • 황실 토목 황사 - 황립기관들의 공사와 여러 토목 활동, 수리를 담당한다.
  • (재)황실 유학 재단 - 황실 개개인의 세영(稅瑛)[15]으로 운영되는데 헌경궁 이씨이영궁 이씨와 같은 몇몇 궁가의 후원금도 운영자금에 보탬이 되고 있다. 가난한 인재들을 외국으로 무료로 유학보내는 조건으로 황립 아카데미의 인력으로 참여시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현재는 가난한 인재들을 외국으로 무료 유학을 보내고 후원도 해주는 후원 단체가 되었다. 다른 황립 단체와는 달리 이 산하단체의 재단법인은 법인내 이사 5명중 4명의 선출권을 국무대신이 단독적으로 임명이 가능하여 사실상 국무원 산하 단체이지만 최고이사 1명이 모든 결정권을 가진 형태인 이 법인에서 이사들은 황제의 재가를 받은 인물만 임명이 가능한지라 이 재단이 황립 단체인지 국무원 산하 단체인지 애매모호하다. 이사회가 최고이사의 결정권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어 사실상 황제의 임명을 받는 최고이사의 독주도 불가능하기에 구체적인 재단법인의 표명이 없는 이상 국무원 산하 단체로 보고 있는게 현재 여론이다. 그래서 재단법인을 통할하는게 사실상 국무원이 된 것이다.

특징

국무원의 외청인 궁내부는 왕실 사무와 시종 업무를 담당하는 쪽으로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국무원은 황제의 정무 사무를 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대개 국무원의 정무차관급 관료에 임명되려면 외청 수반직에 2년 있다가 오는게 관례이고 예외로는 사무차관에 1년, 외청 부수반직에 6개월을 재직하다가 정무차관에 임명되는 루트도 존재한다. 이곳도 이웃나라의 궁내청과 비스무리한 파벌 정치가 열리고 있다. 외청 궁내부에서 진출한 관료와 귀족 출신 관료들이 연합한 시종파와 현임 황후인 소혜원을 등에 업고 대대적으로 중앙정계로 진출하고 있는 양산 소씨 관료와 R-계 관료의 연합인 성정파가 서로 첨예하게 대립 중인 형국이다. 이외에도 근왕파와 청년귀족파, 중도파의 3개의 파벌이 더 있지만 존재감이 없으며 최근 중도파 관료 3명중 2명이 춘추관으로 인사 이동이 되면서 사실상 중도파는 소멸하게 된다. 자세한 건 대경제국 국무원/파벌 정치 문서를 방문하시오. 중앙 행정 기관 중에서는 6개의 외청을 둘 정도로 외청이 많다. 국무원을 비롯한 황제가 인사권을 가진 행정기관 중에서 헌법에 따라 설치된 기관은 없으며, 대부분은 별도의 법령으로 설치됐다. 이 뜻은 국무원과 예하 관서, 기타 황실의 인사권이 퍼져있는 행정 기구는 황실이 헌법에 사실상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주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비판

기타

  • 마스코트로 오얏꽃이가 있다.
  • 국무대신은 대대로 주로 세습남작의 작위를 가진 귀족이 맡았는데 최근에 와서 후작 출신의 김당정이 취임하면서 이러한 관습이 깨졌다.
  • 황실 기관 중에서는 할 일이 없어서 가장 활발히 인터넷 활동을 하고 있다. 당장 봐도 황실 공식 계정을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트위치[16], 유튜브 계정을 모두 신설한 상황다. 네이버 카페 계정 네이버 블로그 계정 인스타그램 트위터 계정 트위치 채널 유튜브 채널 페이스북 계정 * 본 계정은 진짜 신설된 계정이 아닙니다!
  • 신기하게 유관단체가 존재하지 않는다.왜냐하면 죄다 외청이 가져갔거든
  • 외국인들이 많이 착각하는 것은 이름만 국무원(國務院)이지 실상은 그냥 대경제국 황제를 시종하는 최고시종기구다. 그래서 한문을 공부한 외국인은 국무원을 보고 내각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이러한 사람들을 위해 이름을 국무원에서 차라리 궁무부로 바꾸고 기존 궁무부의 뜻은 다른 것으로 대체하자는 주장이 있었으나 국무원은 '그런 작은 이유로 인해 일국의 행정기관명을 바꿀 수는 없다'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이후 이임선국무대신이 나서서 '국무원으로 기관명을 지은 것은 국가의 정사(국무)를 돌보시는 황제 폐하의 자문을 하는 기관이기에 기관명을 국무원으로 짓는게 합당하다 여겨 국무원으로 지어진 것이다.'라 밝혔다.[17]

각주

  1. 이건 궁내부도 마찬가지.
  2. 내각대신부는 총리대신이 지명한다.
  3. 귀족헌법에 따라 법에 따라 정해진 공무원직(대표적으로 궁무부에 관한 공무원직들)을 제외하면 공무담임권이 없다. 이는 황족도 마찬가지.
  4. 게다가 국무대신궁무부에 관한 칙령에 따라 모든 궁무부 기관들의 장(長)인데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은 궁무부 기관 1개가 내각각부 1개와 규모가 거의 비슷한 바람에 국무대신내각의 대신으로 치면 그 대신이 여러명의 대신들에 장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실질적으로 작은 총리대신이라 봐도 좋다
  5. 부령과 비슷하다.
  6. 하지만 귀족원로 내부에서도 개혁가 출신의 일부 귀족원로가 김당정 후작을 지지하고 있긴 하다.
  7. 이말은 귀족들의 공무담임권이 열려 있는 기관이라는 뜻.
  8. 2009년부터 실시됨.
  9. 형식상으로 존재하는 것이지만 실제로 재가를 거부할 수 있다.
  10. 예를 들어 현직 대변인이 휴직 중인 경우.
  11. 시정자문은 자문을 하는 사람이 자문을 하지 않아도 자문기구가 조언을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 말그대로 '시정'자문이다.
  12. 원로원은 그 반대로 황제가 하청한 자문을 답하는 곳이다.
  13. 궁내부 예하에 있었다. 왜냐하면 내관부에 두자니 내관부에 휘둘릴 가능성이 있었고 마찬가지로 국무원에 두자니 국무원에 영향을 크게 받을 가능성이 있어서 제3자인 궁내부에다가 두기로 합의했다.
  14. 여기서 내관부와 국무원이 서로 비공식적으로 협의를 하면 안되냐는 주장이 있지만 '궁내조칙'이 정하는 바에 따라 비공식 협의는 궁무부 기관에서 전면 금지되어 있다.
  15. 일종의 황실 구성원에게 내려지는 월급이며, 황제는 세영이라 부르지 않고 제교(帝皎)라 부르며 제교와 세영을 통해 황제와 황실의 사재가 모이는 것이다. 즉 어디서 셈 솟아오르는 듯이 생기는게 아니란 거..
  16. 이정친왕 이후가 주로 사용함.
  17. 제헌위원회에서 실제로 국무원 말고 국무자문원으로 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왠지 국무자문원의 준말로 국자원이 나올거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