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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 Kurfürstentum Brandenburg Kurbrandenbur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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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선기 | ||
| 국기 | 문장 | |
| 위치 | ||
| 1618년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의 영토 | ||
| 1157년 10월 3일 ~ 1806년 8월 6일 | ||
| 성립 이전 | 해체 이후 | |
| 북방 변경백국 | 프로이센 왕국 | |
| 위치 | 독일, 폴란드 | |
| 수도 | 브란덴부르크안데어하펠, 탕어뮌데 (1157~1417) 베를린 (1486~1806) | |
| 정치체제 | 군주제 | |
| 국가원수 | 변경백 → 선제후 | |
| 주요 선제후 | 프리드리히 1세 알브레히트 3세 아힐레스 요아힘 2세 헥토어 프리드리히 빌헬름 프리드리히 대왕 | |
| 언어 | 독일어 등 | |
| 종교 | 가톨릭 → 루터파[1] | |
| 주요사건 | 1157년 10월 3일 건국 1356년 12월 25일 선제후국으로 승격 1415년 4월 30일 호엔촐레른 가문 집권 1618년 8월 28일 프로이센 공국과 동군연합 1701년 1월 18일 프로이센 왕국으로 승격 1806년 8월 6일 신성 로마 제국 해체 | |
| 통화 | 마르크 | |
개요
브란덴부르크 변경백국(Mark Brandenburg) 또는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Kurfürstentum Brandenburg)은 오늘날 독일 베를린을 중심으로 브란덴부르크[2]에 있던 신성 로마 제국의 선제후국으로 프로이센 왕국과 독일 제국의 실질적인 중심지이자 발원지였다.[3]
동방식민운동을 통해 옛 슬라브 거주 지역에 세워진 북방 변경백국을 기원으로, 1356년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이자 보헤미아 국왕 카를 4세가 선포한 금인 칙서에서 선제후로 공인되었으며, 1415년부터 호엔촐레른 가문이 집권하였다. 1486년 요한 치체로 선제후가 베를린과 인근 쾰른의 특권을 확인하고 백부 프리드리히 2세가 세운 베를린 왕궁과 베를린 대성당이 있는 곳을 영구 거주지로 확정하며 베를린이 공식적인 수도가 되었다. 1535년 요아힘 2세 헥토어 치세 기준 넓이 26,000km2, 인구 40만 명 정도의 국가였다. 특히 17세기 프로이센 공국과의 동군연합과 대선제후 프리드리히 빌헬름 아래 폭발적인 성장 덕분에 18세기 들어서는 영방국가 중에서도 손꼽히는 강국으로 성장하였다. 선제후들은 1701년부터 프로이센 국왕을 칭했고 1806년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될 때까지 합스부르크 가문의 뒤를 이은 실질적인 제국의 2인자 노릇을 했다.
역사
역대 선제후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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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 요한 지기스문트가 클레베-베르크-마르크 공국의 계승을 위하여 칼뱅파로 개종한 이후 선제후들은 칼뱅파를 믿었다.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된 이후인 1817년 루터파와 칼뱅파를 절충한 프로이센 연합교회(Evangelische Kirche der altpreußischen Union)을 창설하면서 두 신앙이 융합되었고, 2004년 이후로는 복음주의교회연합(Union Evangelischer Kirchen)에 속한다.
- ↑ 다만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 시절의 브란덴부르크와 독일 제국 시절의 브란덴부르크 주(Provinz Brandenburg), 현재 독일연방공화국의 브란덴부르크 주(Land Brandenburg)는 경계가 모두 다르다.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 시절의 영토는 현재 브란덴부르크와 작센안할트, 폴란드의 루부시 주와 서포모제 주에 걸쳐있었다.
- ↑ 프로이센이라는 이름은 왕을 칭하기 위한 우회조항에 불과했고, 호엔촐레른 가문에게 가장 중요한 곳은 수도 베를린과 위성도시 포츠담이었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전쟁으로 전세가 불리해지면 동프로이센은 포기하고, 본토인 브란덴부르크와 상공업지대 슐레지엔, 중요 주교구 마그데부르크와 할버슈타트를 우선으로 사수하라는 유언을 남겼을 정도였다.